2008년 학산문화사
<문학소녀 시리즈>를 무척 좋아는 하지만 구태여 이중으로 돈을 들여 원서, 우리말 번역본 둘 다 살 예정은 전혀-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없었습니다. 그런데, 6권을 뜻하지 않게 한글판으로 읽어버린 바람에 어쩌다보니 1권부터 우리말로 차근차근 재독하게 됐습니다. (이미 원서로 재독은 끝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삼독, 사독이 되겠지만요.)
그래서 여기서는 미스터리 포인트를 주로 얘기해 보려 합니다.
일단, 문학소녀 시리즈는 정통 미스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미스터리 관점에서만 보자면 단점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때문에 점수가 일점 일점 깎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포괄하는 의미의 미스터리로서 여유있는 관점으로 접근하기로 합니다.
-1권의 포인트 (핵심 내용 누설 있음)
고딕체로 들어간 '수기'를 과연 '누가' 썼느냐 하는 것이 사실 1권의 미스터리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작금의 미스터리 세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전형적인 '서술트릭'을 사용하고 있죠. 처음의 수기는 주인공인 이노우에 코노하의 또 다른 '고백'이 아닌가 싶은 뉘앙스를 살짝 풍기지만 중반 이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모토로 가타오카 슈지가 쓴 수기라는 사실이 토오코의 입을 빌려서 밝혀집니다. 수기의 막바지를 보면 S라는 인물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독자들도 같이 S가 과연 누굴까 생각을 하는데 정신이 팔립니다. 이미 고딕체 수기는 '전부' 가타오카 슈지의 수기라는 선입관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밝혀지는 S의 정체. 허망합니다. 추리랄 것도 없이 그냥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서 사건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하나의 반전을 추가했습니다. 스스로 S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사실은 S가 아니고 진짜 S가 따로있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이렇게 1권의 사건은 끝나는 듯 보이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남아있습니다. 다케다 치아는 어째서 슈지의 수기에 집착을 하는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치아라는 캐릭터 자체는 덜렁이에 귀여운 얼굴의 소녀로 전형적인 만화 캐릭터 같은 인물상입니다. 여런 요소 자체가 또 다른 함정입니다. 하지만 코노하와 다지이 오사무의 <인간실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감이 빠른 독자는 '뭔가' 캐치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뜬금없는 막판 뒤집기가 아니라 일단 단서는 제공되기는 하죠. 그리고 마지막에 기존의 수기는 가타오카 슈지가 아니라 다케다 치아의 글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이런 고딕체의 독백을 뱉는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미스터리 요소는 후속 시리즈에서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문학소녀 시리즈의 단골메뉴가 됩니다.
1권은 전체 시리즈 중에서 분량이 제일 적습니다. 우리말로 읽은 분들은 230페이지 정도의 양때문에 슈지의 자살에 얽힌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좀 위화감을 느꼈을지도 모르죠. 1권의 최대 단점은 바로 그 부분에 있습니다. 미스터리가 주인이었다면 작가는 아마 그 부분을 위장하기 위해 더 공을 들였을 겁니다. 또한 진실이 밝혀지는 것도 자칭 문학소녀의 '상상'으로 해결을 했겠죠. 그러나 이 시리즈는 달콤하고 애절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기 위해 '미스터리' 요소를 도입한 드라마>미스터리 부등호가 성립하기 때문에 제 푸념은 일개 미스터리 팬의 볼맨소리일 뿐입니다.
미스터리>드라마 입장에서 보자면 단점도 적잖은 허점이 많은 소설이지만, 미스터리가 가미된 재밌는 드라마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썩 괜찮은 선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표지의 '순정만화'같은 그림에 속지 마시고- 특히 남성 독자- 선입견 없이 그냥 읽어보시라고 추천합니다. 다 읽고 재미없었다면 이 시리즈는 그냥 머릿속에서 DELETE 해버리면 그만이고, 반대로 재밌다면 저랑 같이 팬이 되면 됩니다.
댓글 1개:
제겐 이 1권이 [문학소녀] 전체 시리즈 중 가장 '미스터리다운' 이야기였어요. 완성도는 차치하더라도, 플롯이 일단 미스터리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 '미스터리어스' 한 분위기가 제일 농밀하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2권부터는 고품격 막장(...) 인간드라마가 되어버렸죠; 음. 그나저나 우리말판까지 구매하시다니 이런 책덕의 귀감이 되실 분(...) 하긴 저도 슬슬 온다 리쿠 책을 원서+번역본 이중체제로 구매하고 있습니다. 슬슬 미쳐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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