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6일 일요일
해한가 - 나승규
2008년 시드노벨
당신은 사람을 사랑하십니까?
글쎄요......
죄송합니다....
사랑?........
한국적 라이트노벨이란 타이틀을 달고 <미얄의 추천>과 더불어 호사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졌던 <해한가>를 드디어 읽어보게 됐다. 라이트노벨 이란 말 자체가 일본에 근간을 둔, 일본적 코드가 다분히 묻어난 말인데, 여기에 한국적이란 정체불명(?)의 말을 붙였으니, 과연 어떤 괴작(?)이 탄생할 것인가, 걱정이 앞선 건 사실인데, 일단 <해한가>는 기존 라이트노벨 - 눈감고 돌을 던져도 맞을 정도로 괴랄하게 넘치는 흔하디 흔한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의 학원물, 코미디, 모에 캐릭터 - 와는 일단 궤를 달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사람을 사랑하시나요? 라는 문구가 1권 첫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고, 이건 그대로 1권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랑하냐는 질문에 전부 NO라고 대답한 세 명의 인물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정이며, 이 설정은 주제를 부각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 세 명이 알고 있는 지인이 교통사고가 나서 생사의 기로에 서다가 결국 사망하는데, 세 명은 각자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자기탓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을 깨트리는 역할을 '해한가(家)'라는 광대 캐릭터가 맡고 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여고생이란 점을 빼고는 일반적으로 잘 팔리는 - 두 번 이상 읽고 싶지 않은 - 라이트노벨과는 내용 자체가 많이 다르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제가 살아있는 라이트노벨인 것 까지는 좋지만, 문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가 없다면 문체가 좋다거나, 묘사력이 뛰어나다거나 다른 장점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해한가>는 주류 라이트노벨과 차별화를 했다는 것이 특징일뿐 별다른 장점을 찾기가 어렵다.
가령 미스터리를 예로 들자. 미스터리의 주제? 라면 일반적으로 범인의 정체를 파헤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다른 예도 있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하나만 예시로 든다.) 그렇다면 독자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작가는 어떤 식으로 소설을 써야 할까? 불가능한 연쇄살인사건으로 기대치를 잔뜩 늘어놓고, 마지막에 가서 '어 그거 그냥 자살이야' 라고 맺어버린다거나, 희대의 엽기 연쇄살인범이 잡혔는데, '걔 정신병이라서 그런거래' 라고 허무(?)하게 끝난다면 독자들 원성이 이만저만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그런 허점을 노리는 미스터리라면 예외겠지만서도.)
<해한가>가 비슷하다. 주제의식은 있지만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플롯이다. <해한가>는 3명의 캐릭터의 각자 시점으로 진행되면서 한 곳으로 모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일명 '도미노'식 진행으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방식인데, 3명의 캐릭터가 안고 있는 한을 풀어야 한다는 설정때문에 '모인다'는 플롯이 묻혀버렸다. 이 플롯이 중요했던 이유는 그동안 A에 관해 이런 저런 생각을 3명의 캐릭터가 각자 갖고 있었지만, 그들이 한데 모이게 만든 인과관계를 위한 도미노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도미노는 완벽이란 말은 못해도 상당히 치밀하게 만들어야 옳다. 병원 앞으로 배경으로 처음에는 아무 관련이 없는 듯 하다가 아 그런 식으로 하나로 엮이는구나! 하는 느낌을 이용해서 마지막 한풀이(카타르시스)를 극대화시켰어야 재밌는 구성이 될 것이다. 소설에서도 비슷한 플롯으로 흘러가긴 하는데, 3명은 너무 빨리 모였고, 그에 비해 한풀이는 너무 늦게 나왔다. 중간이 비어버린 꼴이다. 3명이 모인 이후에 나온 에피소드 중에는 미리 나왔어야 하는 것도 있다. 그래야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지니까 말이다. (무슨 내용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가장 실망했던 것은 해한가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장면. 척하니 나와서 '그만 좀 하지?' '응! 오케이!' 라는 식으로 끝나버리는 결말 부분은 성의가 없다. 해한가는 무당(탐정)이 아니기 때문에 미스터리의 해결편을 기대하는 건 아웃이지만, 그래도 그동안 각자 고민해온 캐릭터들이 우스꽝스러워지지 않는가? 차라리 해한가는 처음부터 후반까지 짤막하게 각각의 캐릭터와 조우해서 수수께끼같은 말만 던지고 사라지는 그런 캐릭터로 그려버리는 것-1권에서도 그런 식의 처리가 되어있긴 하지만 - 이 더 낫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해한가는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조언'을 했어야 했다. 그렇게 조언을 받은 3명이, 해한가의 일방적인 해결이 아닌, 각자 스스로 굴레를 벗어던진다는 해답이 깔끔한 결말이었을지 모른다. (아예 3명 동반자살을 시켜버리는 것도 괜찮은 결말이었을지 모르지만........) 실망이 컸지만 뒤에 수록된 단편 <물망초>를 보고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이런 스타일은 차라리 '단편'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라. 해한가가 수수께끼의 '할리퀸' 같은 역할을 맡아서 나오는 6편 정도의 단편을 묶은 단편집이 있다면 이건 이것대로 꽤 즐겁게 볼 수 있을 듯 한데 말이다. 추가로 해한가의 정체에 관해 알려줄 듯 말 듯 살짝살짝 언급해가면서 감질맛 나게 한다면 더 좋을 수도 있겠고. 단편은 연작식으로 엮어서 1권의 핵심 내용을 후반부에 나눠서 배치해서 주제를부각하는 방식도 생각해법할 만한데......뭐 탁상공론은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요는 아쉬웠다는 얘기다. 일단 1권만 보면 다음 권은 그다지 땡기지가 않는다. <해한가>가 주제와 흥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무조건 이걸 넣어야 한다. 미스터리!! 그런 의미에서 '물망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단편이었다. 아주 뻔한 내용도 포장을 적절히 하면 재밌는 내용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해한가는 조언만 하고 해답은 스스로 구한다는 방식도 물망초에서 보여준다. 여동생과 아웅다웅하는 장면은 적절한 유머(실제 여동생이 있는 입장에서 남얘기 같지가않았다......)를 담고 있어서 강약조절에서도 좋았다. 본편 내용은 불만이 많았지만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이 괜찮아서 지금도 망설이고있다. 2권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여담) 오츠 이치가 대단하긴 대단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OTL
평점 3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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