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3일 수요일

속죄 - 미나토 가나에

2009년 동경창원사 (미스터리 프론티어)
2010년 우리말(북홀릭)

최근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일본산 미스터리(거의 대부분이)를 의욕적으로 출간하고 있는 북홀릭에서도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이 우리말로 발간됐다. 제목은 <속죄>. 작가의 데뷔작 <고백>과 비슷한 소재, 비슷한 구성을 보여주는 연작 미스터리 단편집이다.근데 사실 여기서 더 설명하는 건 사족에 가깝다. 아니 그냥 뱀다리다. <속죄>는 정말 <고백>과 비슷한 녀석이다.  제목도 두 글자잖아! 똑같다.(ㅋㅋ) 물론 <고백>을 안 읽어본 독자한테는 '뭔 멍소리여 시방' 이런 느낌이겠지만, <고백>을 읽어본 독자라면 '비슷하다면, 뻔하겠구만 OR 오오! 재밌겠는데!' 정도의 반응으로 갈릴 것 같다.

그래도 뱀한테 다리를 붙여보자면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 여자애가 강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사건의 목격자는 피해 아동의 또래 친구들 4명. 이 4명의 소녀들이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일어나는 연쇄반응을 그냥 단편으로 묶어두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강간살해범의 정체가 드러나고 말이다. 솔직히 사건의 진범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속죄>에서 중요한 점은 어릴적 트라우마를 간직한채 성장한 여성이 어떻게 트라우마의 지배를 받아 망가져가는 연쇄 작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걸 소설 안에서는 속죄라고 한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긴 한데, 사실 사용된 소재 (아동 강간 살해)는 상당히 노골적이긴 한데, 실제 전개는 그다지 놀라울만한 요소(각 단편에 쓰인 문체와 플롯이 전부 같다)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 <속죄>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 보여줘야지 리미트 해제! 이런 반응이 나올지는 나도 확실히는 모르겠다. 다만 <고백>과 너무 비슷한 소재와 비슷한 구성으로 벌써부터 식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문체와 구성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만큼은 마음에 쏙 드는 작가라서 그런지 <속죄>에 더 냉정한 평을 하게 된 건 아닌가 싶다.

평점 4 / 10

초록 캡슐의 수수께끼 - 존 딕슨 카

1939년
2010년 우리말(로크미디어)

로크미디어에서 의욕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총대 메는 심정으로 내놓고 있는 듯 보이는 딕슨 카 시리즈 4번째 장편 추리소설이 얼마전 발간됐다. 제목은 <초록 캡슐의 수수께끼>. 이번에도 역시 딕슨 카 다운 멋진 상황 설정을 동반하고 있다. 세 명의 목격자가 멀쩡히 두 눈을 뜨고 빤히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독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목격자는 증인이되고 자신들이 본 것을 진술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 같이 목격해놓고 증언은 삼인삼색으로 엇갈리고 만다. 대체 범행은 어떻게 저질러 진 것이고, 범인은 누구일까?

 마을 가게에서 파는 초콜릿을 먹고 아이가 죽는, 일명 독 초콜릿 사건은 아무래도 모 소설을 연상케 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아실만한 분들은 다들 알거라 생각해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고, <초록 캡슐>은 독 초콜릿 사건이 시발점이긴 해도 실제 핵심은 중인환경에서 벌어지는 살인이다. 어찌보면 좁은 의미의 닫힌 공간을 뜻하는 밀실 보다는 보다 확장된 개념의 넓은 개념의 밀실이다. 사람들이 빤히 보고 있는데, 범인은 당당하게 다가와서 당당하게 범행을 저지르고 사라지고 마니까 말이다. 그런 부분이야말로 밀실의 대가 딕슨카 다운 발상이다.

 이 작품은 1939년 발표된 작품으로 2010년 우리말이 정식으로 소개되기까지 무려 7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국내 추리소설 시장이 옆의 섬나라 일본의반 정도만 되었어도 진즉에 소개되었을 작품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소개된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비록 고전 추리소설이다보니 문체와 전개, 사용된 트릭등에서 시대가 많이 흘렀구나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지만, 딕슨 카의 밀실 미스터리는 그런점을 충분히 감안하고 읽어도 즐겁게 읽을수 있는 녀석들이다. 일본산 미스터리에 질린 독자, 영미권의 작금의조류인 크라임 스릴러 류에 싫증난 독자가 있다면 딕슨 카의 밀실 추리소설을 추천해 본다. 로크미디어에서 나온 <밤에 걷가> <아라비안 나이트의 살인> <유다의창> <초록 캡슐의 수수께끼>정도는 읽어두면 분명 시간 낭비나 손해봤다는 생각은 들지않을 것이라는데 내 손모가지는 귀해서 못 걸겠고, 그냥 500원 정도 걸겠다. (난 노예 계급이라 500원도 거금임..ㅠ.ㅠ)

 여담) 아무래도 제목이 제목이라서 그런지, <초록은 위험!>이 떠오른다. 아무렴, 초록은 위험하다! 특히 추리소설 팬이라면 말이다! ㅋㅋ

 평점 7 / 10

2010년 6월 22일 화요일

시인~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 마이클 코넬리

1996년
2009년 우리말 (랜덤하우스)

 마이클 코넬리의 대표작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시인>. 아마 마이클 코넬리 입문작으로 어떤 책을 추천하겠느냐? 하고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시인>을 선택할 겁니다. 그만큼 재밌는 미스터리거든요.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주인공 나 - 잭 매커보이, 직업은 신문기자 - 형(형사)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대생이 허리가 동강나서 죽은채 발견된 끔찍한 살인사건을 추적중이던 형이 담당 사건에 너무 몰입하다 생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경찰들은 발표하지만, 나는 거기에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형의 자살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다가 뜻밖의 단서가 포작되죠. 그래서 자살 사건은 살인 사건으로 바뀌고 기타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다른 곳에서 발견되면서 <시인>의 미스터리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자살로 위장된 형사들의 죽음. 그리고 유서로 남긴 애드거 앨런 포의 시에서 발췌한 문구들....

 줄거리만 봐도 상당히 흥미진진하다는 느낌이 들 겁니다. 600페이지 정도로 볼륨감도 장난 아닌 녀석인데 초반 정교하게 묘사되는 사건과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통한 내면 묘사가 독자를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도록 만드는 마력을 구사합니다.  여기에 범인 시점을 다루는 챕터가 듬성 듬성 섞여 들어가서 소설에 긴장도 불어넣어줍니다. 이런 것들이 잘 섞여서 <시인>은 참 깔끔하게 읽히는 거죠. 바로 마이클 코넬리의 강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알 수 있지만, 마이클 코넬리는 참 친절한 작가입니다. 묘사도 꼼꼼하고 충실하고 독자를 배려할 줄 아는 작가이죠. 그래서 두꺼운 책임에도 부드러운 치즈 케익 처럼 조금만 먹어야지 하면서도 계속 해서 한 입 더 한 입 더!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 지금까지 먹은 치즈 케익 조각들을 다 합한 칼로리를 계산해 보고 독자는 놀라게 됩니다! 엇! 살 찌겠다! 그게 바로 '반전'입니다.  그렇게 <시인> 은 미스터리가 가져야할 덕목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건 전개, 캐릭터들의 관계, 그리고 마지막 뒷통수 때리기까지요. (단, 1996년도 작품이었다는걸 감안을 해야할 부분도 존재합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보통 이렇게 두꺼운 책을 보고 나면 흔히들 드는 생각이 이런 부분은 좀 빼버리고이런 부분은 추가하는 편이 낫지 않나? 하면서 맘대로 작가의 고뇌(?)를 부정하는 생각을 하는데, <시인>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두껍긴 한데 어디를 빼야할지 참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 미스터리거든요. 추천작!

 평점 8 / 10

2010년 6월 15일 화요일

덧없는 양들의 축연 - 요네자와 호노부

2008년 신초사
2010년 우리말(북홀릭)

<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5개 단편이 '바벨의 모임'과 '주인과 하인' 그리고 '블랙 유머'라는 공통 키워드로 엮인 연작 아닌 연작 단편집입니다. 이중에 바멜의 모임은 독서회를 말하는 것인데, 양가집 규수들이 모인 모임으로 정확히 어떤 녀석이다라고 묘사하기보다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여주면서 독자들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스타일의 묘사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주인과 하인은 등장하는 캐릭터의 신분을 말하는 것으로 직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 단편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에서는 한 하인의 수기를 통해서 사건이 전개되고 묘사됩니다. 다음 단편 '북관의 죄인'  '산장비문' 전부 하인의 집장이라면 '타마노 이스즈의 명예'와 '덧없는 양들의 만찬'은 주인의 입장입니다. 마지막 '블랙 유머'는 이 책의 광고 문구중 하나였던 '마지막 반전'과 이어지는 요소인데, 여기서 말하는 반전은 정말 놀라서 뒷골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멋진 반전이 아니라, 딱 보는 순간 '헛' 하고 실소가 터지는 정도의 일격입니다. 터진 실소는 제목과 연결되어서 그냥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걸리죠. 물론 마냥 좋은 웃음은 아닙니다. 어딘가 좀 찝찝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뒷끝이 개운치 못한 떨떠름한 것도 아닌 느낌의 유머죠.

전체적으로 기존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과는 느낌이 좀 다른 듯도 합니다만 세세하게 살펴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더군요. 다양한 책들 - 특히 고전 미스터리 - 이 나오는 면은 <인사이트밀>을, 바벨의 모임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캐릭터들이란 구도는 <고전부 시리즈>를, 마지막 허무하면서 쓴웃음을 짓게하는 일격은 <보틀넥>과 <개는 어디에?>를, 캐릭터 관계성은 <소시민 시리즈>를, 비극을 연상케하거나 애잔한 느낌을 주는 대목은 <사요나라 요정>을 연상케합니다.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기존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줍니다만, 그것들이 한데 묶여서 <덧없는 양들의 축연>이란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니, 이건 '새로운' 느낌이 듭니다. 역시 소재는 비슷해도 그걸 어떤 스타일로 엮느냐에 따라서 작가만의 풍미가 나타나는 것이겠죠. 그래서 <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재밌는 미스터리 단편집입니다. 단, 미스터리보다는 암흑동화 같은 느낌이 더 강하지만요. 물론 미스터리만 기대하면 '아웃'입니다. (노파심에서..ㅋㅋ)

평점 6 / 10

2010년 6월 11일 금요일

달미궁,여름미궁 ~ 교 & 잇페이 시리즈 02 - 카미야 유우

2003년 백천사 문고판
우리말(학산문화사)

국내에는 <미궁 시리즈>로 알려진 <교 잇페이 시리즈> 문고판 제 2 권이다.

-달미궁~수정관의 살인
 5년 전에 우연히 만났던 츠키코라는 소녀와 재회한 교.  '내가 아빠를 죽였어!'라는 말을 남긴 츠키코는 교 앞에서 사라졌지만 5년이 지나 톱모델로 나타난다. 교가 자신의 '달의 기사'라고 말하는 츠키코는 교와 잇페이를 수정관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 안에서는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한정된 공간과 인원을 이용한 밀실 미스터리이면서 간단한 트릭이 사용된 트릭물이기도 하다. 캐릭터들의 인간관계가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사건의 진상과 초반에 이미 제시하고 있는 범인상으로 이어지는 플롯이 제법 괜찮았다. 표제작 중 하나 답게 즐겁게(?) 볼 수 있는 완성도이다.

-시간미궁~미노타우로스의 살인
교가 다니는 의학부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외모와 성적이 뛰어나지만독설가인 교는 소문의 소재로딱 알맞은 캐릭터. 그런 그와 비슷한 소문을 몰고 다니는 '시마 토모코'는 교한테 보기 좋게 채인다. 그리고 얼마후 의학부 건물앞 광장에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토모코는 불에 타서 죽고 경찰은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놓고 공방을 벌인다.하지만 교는 토모코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녀의 죽음은 타살이란 생각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이번 편에서는 상당히 비중 높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유키 히사요시라는 남성 캐릭터인데, '미래'의 교를 보는 느낌을 주는 그런 인물이다. 여기서는 그냥 사건 관계자로 조역으로 나오지만 나중에 한자리 제대로 꿰차게 된다. 또한 왜 이 시리즈가 '미궁'인지 알 수도 있다. 그리고 잇페이가 맡은 역할은 미궁의 '탈출구'라는 것도 말이다.

 트릭이 주요 소재인 미스터리이면서 중간 중간 미스 디렉션을 잘 심어놓았다. 표제작 제목에서는 빠졌지만 안정적인 플롯이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여름미궁
 잇페이 고향에 같이 가게 된 교. 4년에 한 번 갈 수 있는 바다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사당에서  열리는 해신제에 참가하지만 잇페이와 교 앞에 나타난 건 '시체'였다. 시체의 정체는 어릴적 잇페이가 잘 따르던 히로시의 형 에츠시였다. 사망 시각은 대략 이틀전. 그런데 해신 사당에 올 수 있는 방법은 4년에 한 번 물길이 열리는 것이다. 과연 에츠시는 자살? 아니면 타살?

 밀실물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결국 '숨은 통로'가 존재하기 때문에 밀실 자체의 완성도나 긴장감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이쪽도 눈에 띄는 것은 인간관계의 변화다. 아니 뿌연 관계도가 점점 선명해져가는 구도는 이 시리즈 공통의 매력이고, 그것이<미궁 시리즈>를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사건의 전개나 결말 전부 낭만적인(?) 내용이다.

-야마다 군의 재난
 농구 동호회 시합에 도우미로서 나서게 된 야마다 잇페이. 하지만 잇페이를 방해하는 악질적인 장난이 속출하는데........ 제목 그대로 수난의 잇페이다. 그리고 실연 당하는 잇페이 - 네 애인은 교일텐데...ㅋㅋ -.

 미스터리는 굳이 따지자면 '후던잇' 정도가 알맞겠다. 누가 잇페이를 방해하는지, 하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상당히 이기적인 범인의 행동이지만, 결과는 경사로세~ 경사로세~로 끝나는 전형적인 '소년소녀 만화' 스타일이다.

-Winner~승리자
 교의 중학생 시절 동창생 에피소드.
 미스터리 보다는 그냥 '로맨스' 물이긴 하지만, 굳이 여기에서 미스터리 요소를 찾는다고 한다면 어째서 교가 '도박'에서 '승리'를 확신했는지 정도겠지만,좀 억지가 아닌가 싶다. 그냥 미스터리는 잊어버리고 시리즈 외전 단편으로 교와 관련된 과거 에피소드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토마토 공주를 찾아라
 주인공이 여장남자가 되어 여고에 잠입해서 수수께끼의 복면작가 '토마토'를 찾는다는 내용. 학교 안에서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토마토를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게 '시나리오'대로 였다는 내용으로 미스터리 터치(Who?)를 가미한 순정만화라 그런지 제법 재밌게 볼 수 있었던 단편이다.  1990년도에 발표된 단편이라 카미야 유우의 풋풋한 초기 그림체를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평점 6 / 10

2010년 6월 9일 수요일

ALONE TOGETHER - 혼다 다카요시

2000년 후타바샤
2003년 문고판
2010년 우리말(소담출판사)
 
<미싱>이란 단편집에 몇 년전인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말로 말이죠. 그 속에 들어간 단편은 미스터리는 미스터리인데, 정통 미스터리는 아니고 뭐랄까 그냥 미스터리 플롯을 살짝 가져다가 쓴 ‘일반 소설’에 가까운 내용이었는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었습니다. 책 제목 그대로 ‘상실’을 그린 단편으로 각 단편은 독립적이지만 ‘미싱’이란 걸로 한데 묶이는 연작 단편집같은 분위기였는데, 국내에는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꽤 즐겁게(?) 읽었고 아는 사람들한테 추천도 좀 하고 했었습니다.그러다가 작가(혼다 다카요시)의 첫 장편 소설을 바로 구해서 읽고 역시 이 작가는 ‘일회성’이 아니구나하는 어떤 ‘확신’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이번에 소개할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입니다. 장편소설이라고는 해도 뭐 일본 소설 대부분이 분량이 매우 적듯이 이 녀석도 차 한잔 마실 시간(......)이면 술술 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일단 전작(이자 데뷔작) 은 그래도 ‘미스터리’라는 수식어를 달아줄 여지가 많았는데, <얼론 투게더>는 연필로 쓴 미스터리라는 수식어를 지우개로 군데 군데 지워서 좀 보일 듯 말듯하게 만들었더군요.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미스터리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성장이야기인가? 라고 묻는다면 이 또한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이 가진 ‘능력’을 보면 이건 또 판타지인가?라는 질문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여기서도 대답은 No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럼 뭐냐? 하면 그냥 짬뽕입니다. 전작이 상실이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제목 그대로 얼론과 투게더 이야기입니다. (응? ^^;;;;;;) 주인공 자신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의뢰를 받은 의대교수의 이야기, 주인공이 다니는 학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주인공과 연인의 이야기를 통해 절망과 희망은 백지 한 장 차이이고 그것들은 언제나 ‘함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그게 바로 <얼론 투게더>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고, 미스터리, 로맨스,판타지 등은 그걸 장식하기 위한 소도구일 뿐입니다.
 
물론 어디선가 좀 본 듯한 읽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가장 큰 의문은 굳이 장편으로 했어야 하는가?라는 점입니다. 장편보다는 그냥 연작 단편이 더 잘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다 다카요시의 다른 작품 등 여라 작품도 국내에 소개될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걱정이 들기도 하는데, 이왕이면 소개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스터리’만으로 <얼론 투게더>를 읽었다간 후회막급일 겁니다^^
 
평점 5 / 10
 

기담수집가 - 오타 다다시

2008년 동경창원사(창원 크라임 클럽)
2010년 우리말(레드박스)
 
동경창원사(도쿄소겐샤) 단행본 브랜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좀 정통방식 미스터리에 가까운 녀석이 ‘창원 크라임 클럽’으로 나오고, 가벼운 분위기와 신예 작가 또는 젊은 작가들의 미스터리가 주로 나오는 ‘미스터리 프론티어’가 있습니다. 오타 다다시의 <기담수집가>는 전자, 창원 크라임 클럽에 속한 단행본으로 2008년도 1월 일본에서 발간됐고, 나름 기대도 했던 녀석인데, 이게 우리말로 나왔더군요. 제가 알기로는 오타 다다시의 추리소설은 이게 최초 번역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 맞을 겁니다. 총 7 개의 짤막한 내용의 단편이 들어있는데, 마지막 한 편을 제외하고는 전부 같은 방식입니다.
 
기담 수집가 에비스와 그의 조수(?) 히사카.
각 단편은 스트로베리 힐즈라는 가게 안의 두사람에게 자기가 겪은 기담을 얘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에비스는 의뢰인의 기담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옆에 있던 히사카가 찬물을 끼얹으며 전혀 기담같지도 않다고 끼어들고, 기담을 사건으로 끌어내립니다. 이 부분 때문에 일본내에서 이 책을 광고할 적에 ‘안락의자 탐정물’이라는 문구를 사용했고, 그래서 크라임 클럽 쪽으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뭐 작가 인지도-중견작가죠-도 있었고 하니 말이죠.
 
아무튼 간단한 구조의 짤막한 단편이 같은 패턴으로 6개가 연달아 나오는 터라 마지막에가서는 좀 지칩니다. 매화 반복되는 마법소녀 변신장면과 , 로봇 애니메이션의 합체장면을 연달아 봐서 나중에는 그냥 스킵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죠. 아마 이런 식으로 단편이 한 2-3편 더 나왔더라면 분명 대충 읽고 넘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의뢰인들이 기담이랍시고 갖고 오는 녀석들은 일견 기담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어깨 위에 달린 무거운 물건을 들이받는 용도보다는 좀 건설적인 방면으로 이리 저리 굴리다보면 기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사건 내용은 압축되있고, 단서와 등장인물은 한정적이라서 그 만큼 사건의 진상을 깨닫는 것도 쉽죠. 하지만 드러난 사건의 진상은 그야말로 ‘현시창’이란 말이 잘 어울립니다. 현실은 시궁창의 준말인데,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반복구조로 매회 반복되는 기담을 가장한 안락의자 단편이 마지막에 가서는 좀 구도가 바뀝니다. 원래 이 녀석은 잡지에 연재된 단편이고 마무리 단편은 단행본 발간에 맞추어 새롭게 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단편 덕분에 이 <기담수집가>는 그냥 묻힐뻔한 단순한 안락의자탐정물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기담수집가’에 딱 알맞은 내용으로 바뀝니다. 모든 것은 기담을 위해. 이게 단편 제목인데, 참 잘 지은 제목이다. 아하, 작가의 의도는 그런 것이었나 싶은 생각에 무릎을 탁 치면서 왠지 등꼴이 살짝 오싹해지는 기분이 드는 등, 전체적으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단편집입니다. 오타 다다시 입문서로는 좀 고개가 갸우뚱해지긴 합니다만, 어차피 우리말로는 이 녀석 뿐이라서 일단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단밤과 금화와 엘름>이 우리말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북홀릭(학산) 쪽에 잘 알맞을 듯 한데 말이죠.
 
평점 5 / 10

블러드 워크 - 마이클 코넬리

1998년
2009년 우리말 (랜덤하우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로 알게 된 마이클 코넬리. 90년대 초반에 데뷔해서 외국에서는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사실 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무래도 일본 쪽 미스터리만 파고들다보니 자얀스레 영미권 미스터리는 등한시하게 된 것이 그 이유일 겁니다. 어쨌든 위에서 말한 <링컨...변호사>도 일본에서 나온 해외 미스터리 순위 보다가 어, 이거 진즉에 우리말로 나온 건데 그렇게 마이클 코넬리라는 작가를 머릿속에 새겼고, 현재는 ‘소중한’ 미스터리 작가로 자리매김했지요. 뭐 계기야 어떻든 결과가 중요한 거겠죠? 이런 경우에는 말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1998년도작 <블러드 워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BLOOD WORK. 영문 발음 그대로 제목을 삼았네요. 뜻은 저도 모릅니다.^^ 심장병으로 FBI를 은퇴하고 심장이식만 기다리고 있던 테리 메케일렙. 그런 주인공에 운좋게 장기 기증자가 나타나서 메케일렙은 기적적으로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 회생합니다. 그렇게 재활치료를 받는중 메케일렙 앞에 미모의 여인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 말을 하죠. 제 동생을 죽인 살인범을 잡아주세요, 라고 말이죠. 메케일렙은 제반사정에 따라서 거절하지만 여인은 그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말을 입에 담습니다. 제 동생의 심장이 당신 가슴속에 있어요 라고 말이죠. (정확한 대사는 아니고 그냥 현재 제 기억에 나는대로 주절거렸으니, 실제 소설 속 표현과는 좀 다르겠지만 정황상 의미는 거의 같을겁니다^^) 그래서 단순 강도살인 사건의 수사를 맡은 메케일렙. 하지만 책은 500 페이지 정도 됩니다. 1페이지당 28줄!이나 됩니다! 놀랍죠. 활자량도 많습니다. 이거 예전 같으면 그냥 분권해서 내놓을 분량입니다. 그런데 1권으로 나왔더군요. 뭐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강도살인 사건인데 이렇게 두꺼운 책이 필요는 없겠죠? 아니나 다를까 사건은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를 보여줍니다.
 
기본 도식은 하드 보일드입니다. 주인공이 증거를 수집하고, 단서를 찾아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가설을 세우고, 그걸 입증하고 용의자를 설정하고 범인을 잡는 거죠. 전체적인 순서는 이렇게 간단하지만 현실은 물론 소설 속 범죄 해결도 그리 순탄치많은 않죠. 전직 FBI요원 메케일렙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시카메라 복사 테이프를 보고 또 보고, 최면 수사도 해보고, 여기 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과거 호의적이었던 동료의 도움도 받지만 범인의 함정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 와중에 심장이식을 해준 이의 언니와 만나서 으싸싸도 하랴, 심장 안좋다면서 주인공 테리 메케일렙은 할 것 다 하고 다닙니다^^
 
전 마이클 코넬리의 장점은 안정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정 속에는 물론 플롯의 구성이나 적절한 터닝 포인트의 설정과 반전이 등장해야할 타이밍과 결말처리 방식 그리고 캐릭터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죠. <블러드 워크>도 그런 안정감이 빛나는 스릴러입니다. 소설에는 주인공이 전직 FBI요원이고 형사와 기타 전문직 종사요원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대사와 묘사를 보고 있으면 초보자들도 매우 손쉽게 그 어떤 어려움 없이 바로 몰입할 수 있는 친절함을 보여줍니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와는 이런 점에서 차별화가 나타나죠. 링컨 라임 시리즈는 ‘법의학’이라고 해서 증거물이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관련 용어는 솔직히 일반인들의 이해도를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블러드 워크>나 마이클 코넬리의 다른 미스터리들은 상당히 친절하면서 초보자건 전문가건 뒤를 잘 따라갈 수 있도록 그려져있지요. 그 뒤를 잘 쫓으면 기대이상의 결과물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런 게 바로 소설 책을 자꾸 집어들게 만드는 마력적인 매력이죠. 그런 점이야말로 마이클 코넬리의 최대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프리 디버의 휘몰아치는 반전 토네이도에 비하면 마이클 코넬리의 반전은 소규모 회오리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반전도 ‘적재적소’지요. 그래서 두 작가 모두 독자의 큰 사랑과 지지를 얻었을 겁니다.
 
그러고보니 동명의 영화가 있는데, 영화는 예전에 본 듯 한데, 거의 기억조차 남아있질 않을 걸 보면 무척 재미없게 본 듯 합니다. 그런데 소설은 엄청 재미나게 읽었거든요. 결론은........? 그냥 소설로 보세요^^
 
평점 7 / 10

2010년 6월 6일 일요일

기적섬의 수수께끼 - 니카이도 레이토



1996년 가도카와쇼텐
2001년 문고판 (사진)

<니카이도 란코> 시리즈로 유명한 니카이도 레이토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인 녀석이 바로 이번에 소개할 <기적섬의 수수께끼>입니다. 일본 문고판 기준 680 페이지 정도로 의외로 두꺼운 분량을 자랑하는 녀석으로 장르는 정통 추리 소설입니다. 좀 있어 보이는 말로 대체하자면 '본격 미스터리'라고도 부를 수 있겠네요.

 쇼와 초기 (소설 내 일본의 침략전쟁 준비하는 대목을 보면 대략 1930-40년대를 지칭하는듯) 명문 귀족집안의 딸이자 절세 미녀였던 유카코가 '기적섬'이란 외딴 섬에다가 지은'백아관'. 그곳에서 유카코는 그녀의 추종자들과 함께 주지육림을 즐기지만, 불가사의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백아관에서 떨어진 새벽의탑 꼭대기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된 유카코. 하지만 범인의 흔적은 오리무중으로 결국 사건은 미결로 끝나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뮤즈'라는 예술가 지망생들이 모인 동아리에 소속된 대학생들은 기적섬으로 미술품 조사를 하러 떠나면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웃고 떠다는 멤버 들의 속마음에는 어둠이 존재하고 있고, 그 어둠은 그들이 향할 기적섬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동아리 멤버들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못한채 기점섬으로 향한다. 그리고 백아관에서 그들이 조우하는 것은 얼마전까지 뮤즈 남성 멤버를 노예로 만들어버렸던 여신 유리코의 초상화였다. 뮤즈의 리더 마리오는 물론, 화백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유능한 예술가 아버지를 둔 가가미는 큰 충격에 휩쌓이고 만다. 하지만 그 초상화의 진짜 주인은 쇼와 초기에 죽었던 백아관의 주인 '유카코'였다. 또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유카코의 자손 중 한 명이 유리코였다는 것. 그리고 단순한 미술폼 조사는 유키코가 뮤즈 멤버들에게 남긴 유서가 발표되면서 예상치 못한 전개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일어나는 사고. 죽음. 잘린 머리. 동요살인. 연쇄. 자살.............. 과연 범인은 누구? Who Done It?

 이렇게 기본 준비가 되기까지-라고 쓰고 첫살인이 일어나기까지 대략 250여 페이지가 소모된다. 전체 페이지로 따져보면 거의 반 가까이 진행되서 퍼스트 머더가 일어나는 것인데, 그냥 이렇게만 받아들이면 상딩히 페이스가 느린 소설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실제 소설을 읽다보면 걸림돌이 될 정도로 느리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 그들이 외딴섬에 모여야했는지 정중하게 이런 저런 묘사와 설명이 끼어들다보니 지면이 많아진 점은 충분히 납득이 가고, 그런 부분은 지루하기 보다는 서서히 본 무대로 관객을 유도하기 위한 떡밥으로서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기에 지루하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이렇게 차곡차곡 준비했기에 이어지는 연쇄살인이 빛을 발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

 어쨌든 공전절후의 트릭이나, 고도의 서술트릭 등은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 진실을 까놓고 보면 알고보면 평범한 트릭들이 대부분인데, 그것들이 얼마나 있어보이도록 잘 포장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면 니카이도 레이토는 그럭저럭 자기 사명을 완수했다고 생각한다. 트릭에 의존하지 않고 차분하게 직구로 승부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이 들어갔어도 괜찮음직한데, 안타깝게도 들어있지 않다. 독단으로  도전장을 넣는다면 584페이지 다음에 삽입하고 싶다. 그러고보니 작가 스스로 말하기를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후던잇'에 도전한 녀석이 바로 기적섬의 수수께끼라고 한다.

 뭐 여기까지는 장점만 얘기했고 단점을 지적하자면 탐정역의 부자연스러움이다. 뜬금없이 등장해서 뜬금없이 해결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플롯의 부자연스럼이, 초반 왜 등장인물이 이런 외딴섬에 갇혀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하는 장면 때문에 부각된다. 그래서 탐정과 해결편은 카타리스시보다는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미 이건 탐정역 캐릭터가 시리즈물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탐정을 그냥 등장인물 사이로 끼어넣었더라면 그 편이 뻔한 구성이지만 안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줬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 아리스 시리즈처럼 말이다.

 그러고보니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외딴섬 퍼즐>과 같이 읽으면 꽤 즐거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흠, 대학생들이 놀러가서(?) 일어나는 사건만 놓고 보면 <월광 게임>쪽이 더 가까우려나? 이렇게 비교해보면  <학생 아리스 시리즈>에 점수를 더 주고 싶지만 말이다.


 평점 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