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모래성의 살인 - 다니하라 쇼코


2007년 창원추리문고

<모래성의 살인>은 2001년도 후지미 미스터리 문고로 나왔던 '라이트노벨 미스터리' <천사가 열어준 밀실>(통칭 미나미 시리즈) 속편이다. 두 번째 작인 <용관의 비밀>까지는 같은 브랜드 '후지미 미스터리 문고'로 나왔지만, 사실 이 시리즈는 라이트노벨보다는 오히려 '일반 미스터리' 장르에 더 맞는 내용이다보니, 당시 라이트노벨 주독자층한테 어필하지 못했던 듯 하다.

그렇다고 정통 미스터리만으로 보기에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연령대와 대화나 상항묘사등을 일반적 미스터리로 놓자니, 이 또한 애매했다. 그래서 어중간한 라이트노벨 미스터리라는 평을 받지 않았나생각한다.하지만 데뷔작인 <천사가 열어준 밀실>은 밀실 미스터리를 다루면서 책 제목과 본 내용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미스터리 플롯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완성도는 꽤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시리즈 두 권만 내놓고 집필활동을 그만 두었던 '다니하라 쇼코'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시리즈 두 권이 '동경창원사'에서 복간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완전신간 <모래성의 살인>이 나왔다. (사실 꽤 기대작이었다.)

일단 구성은 전작과 비슷하다. 이번작도 전작처럼 주인공이자 화자인 '미나미'가 어떻게 알바를 하게 됐는지 경위를 꼼꼼하게 묘사한다. 폐허전문 카메라맨의 조수 알바를 하게 된 미나미. 어쩌다보니 친구 나오미와 옆집 사는 러시안블루 겐조를 데리고 카메라맨 조수 알바를 하러 외딴 저택에 가게 되고, 거기서 '미라'가 된 시체를 발견한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데..........

이번에도 실제 사건이 등장하기까지 페이지 수를 좀 잡아먹는 편이긴 하지만, 전작에 비하면 사건의 등장은 빠른 편이다. 특이한 점은 전작까지는 탐정역으로 주인공 미나미의 옆집에 사는 남학생 '슈야'였는데, 이번작에서는 미나미와 동행하는 '나오미'(아버지가 형사라는 설정)가 탐정역을 맡는다. 물론 중후반까지만 말이다. 나중에 후반에는 미나미아 나오미의 친구인 '가노코'라는 미스터리 마니아 소녀(이자 재벌 딸래미)가 바통을 이어받아 탐정역을 잇는다.

시체의 이동, 밀실 트릭 등 범인의 정체보다는 범행 수법에 좀 더 초점이 맞춘 플롯이다. 미스터리 팬이라면 익숙한 몇 가지 패턴을 이리 저리 섞어놓아서 전작들에 비하면 좀 복잡해진 부분도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단순하다. 그리고 탐정역이 바뀌어가면서 탐정의 추리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뒤집히는 것 역시 추리소설 팬들에게는 익숙한 패턴. 이번에는 확실하게 '미스터리'에 작가가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물론 그렇게 공들인 요소가 재미와 직결이 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미스터리를 떠나서 전체적인 재미만 보자면 데뷔작 <천사가 열어준 밀실>이 제일 좋았고, 순수하게 미스터리만 보자면 이번작 <모래성의 살인>이 좋았다. 미스터리만 생각하면 이번작은 좋은 작품이지만, 이것이 여고생 주인공과 맞닿으면 재미의 초점이 미묘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시리즈 4번째는 단편집으로 여기서는 일상 미스터리 계열을 다루는데, 아무래도 <미나미 시리즈>는 여고생이 살인사건에 조우하는 것보다는 분위기상 일상 미스터리 계열이 훨씬 잘 어울린다.

평점 5 / 10

2009년 12월 25일 금요일

소녀의 무덤 - 제프리 디버

1995년
2008년 우리말(비채~모중석 스릴러 클럽)

<소녀의 무덤>은 <링컨 라임 시리즈>로 국내서도 많은 팬을 보유한 '제프리 디버'의 초기 수작이다.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교도소를 탈출한 범인이 농아들을 인질로 삼아 옛 도살장 건물에 들어가서 농성을 벌인다. FBI에서 인질 협상 전문가가 파견되어 현장을 지휘하며 인질범과 협상을 한다. 약 600여 페이지 책 중에 500페이지는 중간의 협상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시리즈물이 아니고 단권 완결이지만 꽤 두꺼운 페이지 때문에 읽기도 전에 질려할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제프리 디버가 무슨 작가인지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독자들한테도 마찬가지. 일단 디버의 개략적인 특징은 빠른 전개와 스릴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 3가지 정도가 된다. 디버의 대표작인 <링컨 라임 시리즈>는 디버의 장점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재밌는 시리즈물이다.

그리고 <소녀의 무덤>(13년만에 우리말로 나온)은 디버의 장점을 확립했다고 볼 수 있는 초기 대표작이다. 소설 내용의 대부분이 인질범과 협상사 사이의 신경전이라고 할 정도로 그 부분에 엄청난 초점에 맞추어져 있는데,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속도감과 스릴이 잘 살아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떡밥을 살짝 뿌리면서 뭔가 있을 것 같은데, 같은데 독자를 기대하게 만드는 동시에 마지막에 가서 한방에 훅 하고 보여주는 맛은 <링컨 라임 시리즈>에서 보여주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있다.

링컨 라임은 시리즈물이다보니 가급적 순서대로 보는 편이 좋고(아니어도 상관은 없지만) , 권수도 많다보니 부담이 갈 독자들한테 <소녀의 무덤>과, 얼마전에 우리말로 나온 <남겨진 자들> 이 두 권의 특급 스릴러는 디버 입문서로서 전혀 손색없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두 권을 읽어보고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독자가 있다면 제프리 디버는 그냥 머릿 속에서 삭제하기 바란다. 하지만 두 권을 보고 흥분을 느꼈다면 <링컨 라임 시리즈>는 추천작이다. 물론 실망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PS.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족) <잠자는 인형> 우리말 출간예정이라고 해서 참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벌써 1년도 넘게 흘렀다. 그러나 <슬리핑 돌>을 아직 우리말로 읽을 수 없다. 출판사는 각성하라!!

평점 8 / 10

2009년 12월 20일 일요일

녹색은 위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944년
2009년 우리말 (시작 - 메두사 컬렉션)

이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그렇구나로 인식만 하고 있던 <녹색은 위험>을 정말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온다 리쿠' (일본 작가)의 본격 미스터리를 논하는 인터뷰를 보고 나서부터였습니다.

거기서 온다 리쿠는 <녹색은 위험>을 본격 미스터리하면 떠오르는 작품으로 꼽더군요. 공습이 한창인 런던, 거기에서 야전병원을 배경으로 전혀 살해당할 만한 사람이 아닌 사람이 살해당합니다. 용의자는 6명.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원. 그 안에서 펼쳐지는 얽히고 섥히는 인간관계와 미스터리. 온다 리쿠가 좋아할만한 요소가 잔뜩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게 기대감을 키우다가 살짝 잊혀졌다 싶언던 찰나 2009년도 초에 정식 우리말로 나왔습니다. (Oh! My God~~)

기본적인 스토리는 위에서 살짝 언급한대로입니다. 여기에 커크릴 경감 (녹색은 위험은 커크릴 경감을 탐정으로 한 시리즈 두 번째입니다. 전 시리즈를 다 보고 싶어집니다. 어디 용사 출판사가 나타나서 다 번역해주면 안될까요? OTL)이 우연(?)히 엮여들어서 사건을 해결하게 되죠.

일단 <녹색은 위험>의 특징은 살아있는 캐릭터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적절한 플롯의 전개 그리고 마지막 반전입니다. 간호사와 의사들의 관계는 애증과 유머가 섞여들어가서 흥미진진하고, 적당한 순간에 사건이 일어나고 역시 적당한 시간에 딱 다음 사건이 터지고 마지막에는 약속대로의 반전까지 치밀하게 준비하는 등 미스터리 소설이 재미있기 위해서 갖추어야할 미덕을 전부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온다 리쿠가 좋아할만 하더군요. 다 읽고 나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래서 <녹색은 위험>은 지금 봐도 시간을 초월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입니다. 굳이 흠을 잡자면 '엘러리 퀸'의 미스터리 같은 치밀한 논리와는 약간 동떨어져 있습니다. '엘러리 퀸' 보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중기에 해당하는 미스터리와 동류라고 봐도 좋겠죠.

우리말본의 꼬투리를 잡자면 표지입니다. 사전정보 없는 독자가 이 책 표지를 보면 '로빈 쿡'의 의학 스릴러와 비슷한 소설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뭐 저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의학 스릴러라는 장르도 맞기는 하지만 <녹색은 위험>은 어디까지나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고전 미스터리를 꼭 지금에 와서 읽어야 하나 고민하는 미스터리 팬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세요. <녹색은 위험>은 꼭 읽어보셔야할 걸작입니다. 절대 표지에 속지 마세요~~

평점 8 / 10

이와 손톱 - 빌 S.밸린저

1955년
2008년 우리말(북스피어)

빌 S. 밸린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와 손톱>은 정통 미스터리는 아니다. 미스터리 하위 장르인 '서스펜스' 정도에 들어갈만한 스토리인데,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프롤로그에서 한 사내는 여러 이름을 갖고 있고, 복수를 하고, 살인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살해당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곧이어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한 사내의 살인죄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고, 이와 병행해서 마술사 남자가 나와서 여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이야기의 흐름이 있는데, 독자들 대부분은 아마 이 두 가지 줄기가 어떻게 한 군데서 만날까? 플롯의 대략적인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실제 내용도 두가지 흐름이 하나로 합쳐진다.

초판본-우리말도 마찬가지-에 한해서 결말 부분을 봉인처리를 해놨는데, 사실 지금 시점에서 <이와 손톱>이 보여주는 교차서술이라는 서술 트릭을 이용한 긴장의 고조와 결말에서 뻥 터르리는 구성은 전형적인 서술 트릭 패턴 중 하나이고, 소설에서 쓴 트릭은 변화구보다는 거의 직구에 가깝다. 물론 <이와 손톱>은 1955년도에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지금 처럼 개나 소나 서술트릭 - 특히 일본산 미스터리 - 을 사용하는 작금의 미스터리의 한계 속에서 서술 트릭의 고전에 속하는 <이와 손톱>은 혹자에게는 너무 밋밋할 수도 있다. (이런 교차서술을 이용한 서술 트릭은 <기나긴 순간>에서도 그대로 쓰였다.)

<이와 손톱>은 트릭을 배제하고 서서히 고조되가는 서스펜스 만으로도 재밌는 작품이지만 한켠으로 원본의 출간년도를 유념해두고 읽는다면 그 재미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이와 손톱>을 재밌게 읽었다면 세바스티앙 자프리조의 명작 <신데렐라의 함정>을 추천한다.

평점 6 / 10

2009년 12월 16일 수요일

에반게리온 破 (극장판)

2009년

상영 마지막 날 우여곡절 끝에 볼 수 있었다.
일단 전편인 <序>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에다가 약간 새로운 장면을 집어넣었다고 느꼈을 정도로 그다지 바뀐 모습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파>는 오리지널 요소가 제법 많이 가미되었다. 아스카가 '당하는(?)' 장면은 극장판이 오버랩되고, 극중 몇 번이고 나오는 <그 남자 그 여자> 배경음악은 좀 웃겼고, <서>에 이어 <파>에서 같은 구도로 보여주는 서비스 장면은 즐겁다.

협소설, 판타지, 게임, 만화 장르에서 너무나 흔해 빠진 주인공 각성 공식은 이제는 지겨울법 한데, 비주얼과 사운드 덕택에 뻔한 플롯인 걸 알면서 속아주는 맛은 아직도 유효하다. 특히 디지털 상영이다보니 화질은 괜찮았고, 음질 역시 만족스러운 편. 비상시 오퍼레이터가 센터 스피커에서 떠드는 동시에 리어에서도 연신 수다스럽게 재잘재잘 거리는 사운드가 제법이었다.

운좋게 극장 정중앙 좌석에서 볼 수 있어서 더 재밌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여담) 불쌍한 아스카~~

평점 6 / 10

기나긴 순간 - 빌 S. 밸린저

1957년
2008년 우리말 (북스피어)

<이와 손톱>, <연기로 그린 초상>에 이어 세 번째로 국내에 정식 소개된 밸린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기나긴 순간>. 독자에 따라서는 여기서 실망을 많이 한 사람도 있겠고, 나름 즐겁고 재밌게 읽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와 손톱> 우리말 초판의 봉인본 스타일로 나와서 기대를 많이하기도 했겠지만,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할 사실은.......

<기나긴 순간>은 '서술 트릭'을 사용한 미스터리란 것이다.

작금의 일본 미스터리에서 개나 소나(?) 사용중인 서술 트릭은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거의 시초에 가까운(아니 시초인가?)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시대와 아이디어가 내놓은 걸작 트릭이었다. 하지만 그 트릭을 잘 알고 있는 독자가 비슷한 유형의 트릭을 사용한 다른 미스터리를 접했다면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안 봐도 비디오다.

<기나긴 순간>도 이와 마찬가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비운의 작품이다. 일단 50년 전에 나온 작품이고 여기 쓰인 트릭은 고전적인 서술 트릭 문법이다. 너무 단순해서 지금은 이것만으로는 독자를 속여넘기기 힘들 정도라서 몇 가지 트릭을 더 추가해야 그나마 잔뼈 굵은 독자와 승부가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시점에 고전 문법에 충실한 트릭과 반전을 들고 나와서 독자에게 직구를 던지는 건 사실 처음부터 얘기가 되질 않는다. 그래도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고전 작품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물론 <이와 손톱> <연기로 그린 초상>도 같이 읽으면 금상첨화~

그래서 <기나긴 순간>을 아직 안 읽은 독자, 또는 앞으로 읽으려고 하는 독자가 있다면 출간 년도를 유념해서 읽기를 바란다. 내용은 인터넷 서점이나, 출판사 사이트 가면 대충 알 수 있으니 패스~~

평점 5 / 10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다우트(Doubt) - 도노가이 요시키

2007년 스퀘어 에닉스 (강강 코믹스)
2009년 우리말 (서울문화사)

<다우트>는 전 4 권으로 깔쌈하게 끝난 '살인 게임'을 소재로 한 밀실 미스터리 만화입니다. 동명의 연극과 영화가 있지만 제목만 같지 전혀 다른 내용이니 일단 안심을...... 완성도와 포스는 연극 또는 영화 쪽이 훨씬 높습니다.

일단 '다우트 래빗'라고 토끼 속에 숨어든 늑대를 찾는 게임에 참가했던 이들이 오프라인 모임으로 모여서 노래방에 놀러 갑니다. 하지만 잠깐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폐허가 된 건물 안. 그리고 참가자 중 한 명이었던 소녀가 시체로 발견됩니다. 문은 닫혀있고, 문을 열기위해서는 각각의 사람에게 하나씩 새겨진 '바코드'가 필요하고요. 과연 이 멤버 중에 누가 '늑대'일까요?

뭐 그런 내용입니다. 이 녀석이 범인인 듯 하다가 저녀석인 듯 하다가, 늑대는 거짓말쟁이다보니 등장인물 - 주인공으로 생각되는 녀석의 말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죠. 그렇다고 엄청나게 머리를 혹사해야하는 그런 미스터리는 결코 아닙니다. 설정은 재밌지만 그 설정을 풀어서 전개하는 역량은 기존의 것을 대부분 그대로 답습하거든요. 멤버들의 과거사 부터 거시기가 거시기 했다거나 등등 후반부로 갈수록 좀 유치해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야노 류오의 <극한추리 콜로세움>이 이와 유사한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라이트노벨 쪽에서는 도바시 신지로의 <문 밖>이라는 녀석이 또한 유사품입니다. 이런 게임 감각의 미스터리는 대단히 흥미롭지만 그 흥미로움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기 딱 좋은데, <다우트>도 그 점이 아쉽습니다. 좀 더 '복잡'하게 만들어줘도 좋을텐데, 왜 이리 평범하게 처리해버렸을까? 다 읽고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입니다. 시도는 뭐 새로울 것 없지만 해결편까지 이렇게 판에 박힌 듯이 만들 이유는 없죠.

어쨌든 전 4 권으로 권수는 많지 않습니다. 사실 4권도 약간 긴 편입니다. 읽고 나서 시간과 돈이 졸라 아깝구만!라고 한탄할 정도로 재미없지도 않습니다만, 아니 독자에 따라서는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없다고 한탄할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너그러운(?) 독자다보니 그냥 저냥 적당하게 보고 넘기면 괜찮은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관대한 평가일지도 모르겠군요.) 근처 대여점에 이 만화책이 있다면 일본 불우이웃 돕는 셈 치고 빌려보세요.

중간 중간 약간은 잔혹한 장면의 묘사도 있으니, 그런 쪽에 민감한 분은 삼가길 바랍니다.

평점 3 / 10

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모래선혈 - 하지은

2009년 로크미디어 (노블리스 우드 클럽)

<얼음나무 숲>이 나온지 약 1년 만에 나온 하지은의 신작 <모래선혈>.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국적불명의 무대를 배경으로 한 - 읽다 보면 모 역사적 사실이 떠오르기도 하다만 어쨌든 통각마비인 주인공 레아킨 쿠세 황제의 동생입니다. 어릴적 부터 색과 감성을 잃어버린 그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매료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매료시킨 작가를 찾아서 '가출'을 합니다. 제국 쿠세가 식민지배중인 라노프로 가게 된 레아킨은 그곳에서 여류작가 '비오티'를 만나게 되죠.

이번에는 전작과는 좀 판이한 분위기의 판타지입니다.
<얼음나무 숲>은 차가우면서 따사로운 겨울 분위기와 음악이란 소재가 만나서 몽환적 분위기를 잘 살렸다면 <모래 선혈>은 땡볕이 내리쬐는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끊임없이 걷는 삭막하면서 텁텁한 분위기를 냅니다. (색과 감성을 잃은 레아킨이란 주인공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 강합니다.)하지만 단 하나의 청중을 위해 연주를 하던 <얼음나무 숲>의 천재 음악가와 거침없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와 단 한 명의 독자를 그린 <모래선혈>은 겉모습은 얼핏 달라보이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라노프에 도착한 레아킨은 죽음의 탑의 심판관이 되어 쿠세에 항거하는 라노프인을 처형하는 일을 맡습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매료시킨 작가를 찾는데, 남자인줄 알았던 작가는 알고니 여자였습니다. 게다가 레아킨이 상상하던 작가와는 나쁜 의미로 거리가 멀었죠. 하지만 서서히 감정을 하나 하나 알아 가는 어린아이 같은 레아킨과 그런 레아킨을 도와주는 비오티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매력적입니다. 여기에 쿠세와 라노프 사이에 얽히 라노프의 독립운동 이야기가 곁들어져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나아갑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단점(재미면에서)이 눈에 많이 띕니다. 전작은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미스터리를 적절하게 활용한 면이 돋보였던 반면, 이번에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평이합니다. 프롤로그를 장식한 황제의 '주사위'가 마지막에 재밌게 쓰이기는 합니다만, 읽고 나니 이건 웬걸 '집안 싸움'을 좀 거창하게 본 느낌이 마구 들더군요.

순수한 재미만 논한다면 <모래선혈>은 <얼음나무 숲>에 비해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모래선혈> 본문에서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언급하는 부분입니다만, 재미에 주력하면 내용이 없다고 뺨 맞고, 내용에 주력하면 지루하다고 뺨 맞는다는 대목입죠.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게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인데, <모래선혈>은 하지은의 과도기적 작품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각설하고(?) <모래선혈>의 교훈은 '금연 합시다'입니다. (.........???????)

평점 7 / 10

2009년 12월 8일 화요일

전파적 그녀 OVA ~ 행복 게임

2009년

가타야마 겐타로 원작 <전파적 그녀>의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 두 번째가 나왔다. 1편은 원작 1권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거겠지만), OVA 2편은 예상대로라면 원작 2권을 각색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원작 3권에 해당한다. 따라서 원작과는 다른 부분이 몇 군데 존재하고, 많이 삭제된 장면도 생겼다.

일단 원작 2권에 쥬자와 쥬우와 첫대면을 갖는 '오치바나 아메'의 친구 '엔도 마도카'와 '기리시마 유키히메' 두 명의 소녀가 쥬우와 처음으로 만난다. OVA 2편을 보면서 원작 2권에서 첫 등장하는 마도카와 유키히메는 아예 잘라버리진 않았을까 - 쥬우의 엄마 베니카가 OVA에서는 나오지 않았 듯이 -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아메의 코스플레 장면은 제대로 살려주고 있다. --;;;;;;;)

아무튼 기본 스토리 라인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소망 하에 행복한 사람을 불행에 빠트려 그 사람의 행복 수치를 빼앗아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욕망을 실현시키는 '행복 클럽'에 말려든 쥬자와 쥬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체적인 부분과 포인트는 원작과 동일한 진행. 하지만 아메의 여동생 히카루 관련된 부분에서 쥬우가 '이부키(히카루가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따지러 가는 장면은 아예 삭제됐고, 마지막 사건 해결 후에 다시 쥬우가 이부키에게 다짐을 받는 장면은 결과만 나오고 과정은 또 삭제됐다. 아무래도 삭제된 두 장면은 전부 액션 파트다보니, 그래서 일부러 뺀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이번 내용은 원작도 마찬가지지만 구질구질 '설명'하는 정적인 장면이 많은데,그런 부분을 원작에선 쥬우와 이부키의 동적인 장면으로 커버하고 있다. 그래서 전체적인 균형이 맞아들어가는데, 이번 OVA 2편은 그 부분에서 실패다.

OVA 1편은 원작 각색을 제법 충실하게 잘 한 편이었지만, OVA 2편은 기대 이하였다. 원작 2권의 내용(안구 수집광 사건)이 좀 뒷끝이 남는 것이라 그래서 건너띈 것인지, 아니면 그냥 소설 팔기 위한 광고용으로 대충대충 만든 것인지 - 어쨌든 OVA는 광고용임에는 분명하지만 - 이왕 만드는 것 잘 만들 수 있을텐데,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OVA 결말은 원작과 동일하게 처리했다.

평점 3 / 10

2009년 12월 6일 일요일

남겨진 자들 - 제프리 디버

2008년
2009년 우리말 (시작)

<남겨진 자들>은 링컨 라임 시리즈 (대표작은 <본 컬렉터> <코핀 댄서> 등등)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제프리 디버의 넌시리즈 작품입니다. 얼마전에 넌시리즈로 꽤 재밌는 완성도를 보여준 <소녀의 무덤>이 우리말로 출간된 적이 있는데, 그 작품과 같이 보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는 여경관 브린이 호숫가 근처 별장으로 순찰을 갔다가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살인청부업자에게 쫒긴다는 내용입니다. 거의 하룻밤에 일어난 내용(아닌 부분도 있지만 페이지 대부분은 그렇습니다.)을 그리면서 책은 약 500 페이지 넘을 정도로 두껍죠. 그런데 제프리 디버 하면 속도감 있게 술술 잘 읽히는 작가로 유명하듯이 이번 작품도 엄청나게 잘 읽힙니다. 독자는 쫓기는 토끼(?)가 된 여주인공인 된 것 마냥 소설 속으로 마음껏 몰입할 수 있습니다.

살인청부업자게 쫓기면서도 보호자 미쉘이란 도시여성을 대동한채 브린은 부상당한 몸으로도 지혜롭게 난관을 헤쳐나아갑니다. 하지만 살인범 '하트'와 동료도 바보가 아니죠. 브린의 지혜를 하나 하나 간파하면서 끈질기게 그녀의 뒤를 쫓죠. 책 대부분은 이렇게 쫓고 쫓기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단순한 내용인 듯한 미스터리입니다만, 제프리 디버의 장기인 '반전'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읽을 때는 그런가 보다 자연스레 넘어갔던 장면이 나중에 복선이 되어서 독자의 뒷통수를 때리고 마는 거죠. 책 광고문구 처럼 '엄청난' 반전은 아닙니다만, 즐거운 반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콜드 문>에서 링컨 라임의 조력자로 등장했다가 졸지에 시리즈 주인공이 되버린 '캐서린 댄스'라는 여자 캐릭터가 있는데, <남겨진 자들>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브린 매켄지' 역시 대단히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이혼경력이 있는 한 아이의 어머니인 브린은 아들에 대한 미안함에 아들을 오냐오냐 받아주기도 하지만, 사려깊고 용기있는 여성이죠. 브린이 다른 시리즈에서 재등장 - 주역이든 조역이든- 한다고 해도 저는 놀라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조역이라도 좋으니 디버의 다른 소설에서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평점 7 / 10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 존 딕슨 카

1936년
2009년 우리말 (로크미디어)

<밤에 걷다>에 이어 로크미디어에서 의욕적(?)으로 내놓은 '존 딕슨 카'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은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이 됐습니다. 출간된지 거의 70년이 지나서 우리말로 정식 소개되었는데, 시간이 흘러도 좋은 작품은 퇴색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은 딱 거기에 잘 부합하는 내용의 미스터리입니다.

프롤로그는 펠 박사 앞에 존 캐러더스 형사, 부국장 허버트 암스트롱, 대이비드 해들리 총경 이렇게 세 명이 찾아와서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말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순서대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말하는 세 명의 이야기를 듣고 펠 박사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립니다. 진실은 밝혀지고 소설은 그렇게 끝납니다.

일단 문장이나 구성 자체는 '안락의자탐정물'입니다. 독자는 펠박사와 같은 조건으로 박물관 안에서 나타난 기묘한 살인 사건을 접해야 하니까요. 따라서 한 가지 사건을 총 3 번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소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화자의 입장과 시점 주관에 따라서 같은 사건이라도 포인트가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그런 미묘하게 변해가는 사건의 내용을 즐겁게 따라갈 수 있는 독자라면 무척 재밌는 독서가 될 것이고, 긴박감과 호쾌함을 원하는 독자라면 사건의 기묘함도 적고- 카의 여타 작품에 비하자면 - 스케일도 대단히 작은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은 시종일관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요즘 미스터리의 속도감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 부분만 극복을 잘 한다면 재밌는 미스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 뒷표지에는

이 보다 더 기묘할 수 있을까?
절대로 알아 맞힐 수 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은 반드시 화를 낼 것이고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반드시 기가 막힐 것이다

라는 광고 문가가 써있는데 까놓고 말하자면 이 역시 황당무계한 과장광고입니다. 카 작품 중에 제일 기묘하지 않고, 절대로 알아맞출 수 없을 정도로 단서가 전혀 없지도 않고 따라서 전혀 화를 낼 구석도 없고, 전혀 기가 막힐 곳도 없습니다. 책 표지에 들어가는 광고문구 99%는 과장이긴 합니다만, 이번의 문구는 그 도가 좀 지나쳤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실망한 독자가 있다면 저 문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밀실 추리의 달인 카의 또 다른 대표작! 독자가 탐정과 함께 논리적으로 추리할 수 있는 추리소설! 어쩌구 정도의 문구였다면 너무 식상하겠지만, 딱 그 정도가 이 소설을 선전하는데 적당한 내용입니다.

이제 로크미디어에서 나올 카의 다음 작품은 <유다의 창>이군요. 두근두근~

평점 7 / 10

볼테르의 시계 - 강다임

2008년 로크미디어 (노블레스 클럽)

<볼테르의 시계>는 경계문학의 새로운 시도로 출간된 노블레스 클럽 시리즈 4번째에 해당하는 소설입니다. 물론 브랜드명이고 각각의 소설은 전혀 관련은 없습니다.

일단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볼테르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음직한 인명입니다. 예, 맞습니다. 프랑스의 풍자시인이자, 후에 합리주의적 게몽사상가로 활동했던 실존인물입니다. 이런 실존인물을 갖고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작가 강다임은 맛깔스러운 판타지 소설을 만들었습니다.

<볼테르의 시계>는 1725년 프랑스를 배경으로 볼테르가 총 3 번의 시간 여행을 하게 되기까지의 경위와 시간 여행의 구체적 내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목의 시계는 시간여행을 하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그렇게 지어진 거겠죠. 절대 이성의 존재를 증명하기 외한 세 번의 여행과 로드(LOAD)가 불가능한 마지막 여행, 그리고 모든 여행에서 등장하는 에밀리라는 여성과 볼테르의 관계. 시간 여행에서 볼테르를 도와주는 쉴리. 그리고 시간 여행 도구를 볼테르에게 준 수수께끼의 마법사의 정체까지. 뭐 중간에는 '암호'를 푸는 내용과 사건 해결을 위해 이리 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과 '변론'하는 장면 등은 어느 정도 미스터리 소품을 활용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노파심에서 말씀 드리지만, 미스터리 색채는 약간 있을 뿐, 전체적인 구성은 그저 실제 인물을 이용한 '판타지'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 플롯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더라면 매우 멋진 판타지 미스터리가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떠오른 것은, 야나기 고지의 추리소설 두 권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말을 이용한 잘 짜여진 가상 역사 본격 미스터리 <향연>과 찰스 다윈과 '종의 기원'을 이용한 클로즈드 서클을 이용한 본격 미스터리 <시작의 섬>. 두 책은 <볼테르의 시계>와 접근 의도는 비슷합니다만, 결과물은 서로 큰 차이가 나죠. 어떤 장르의 소설이던 무조건 '미스터리'와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버릇은 잘못됐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제 본능(바람)에 가까운 것이다보니 저로서는 통제가 불가능하네요.

평점 5 / 10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 낸시 피커드

2006년
2009년 우리말 (영림 카디널 블랙캣)

1987년 1월, 작은 시골 마을 스몰 플레인스에서 신원불명의 10대 소녀 시체가 알몸인채로 발견됩니다. 하지만 소녀의 죽음은 그대로 묻히고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라고 추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을에서 쫓겨나야만 했던 미치 뉴퀴스트(男)은 17년이 흘러 고향으로 돌아오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소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게 됩니다.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의 기본 줄거리는 위와 같습니다. 여기에 사건 당시 미치의 여친이었던 애비와 그녀의 친구였던 랙스, 그리고 미치 이렇게 크게 3가지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되죠. 그러면서 사건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마지막에 밝혀집니다.

간단한 소개만 봐서는 서서히 진실이 드러나는 양파같은 내용의 미스터리라는 짐작이 가능한데요,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맞는데, 문제는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는 미스터리보다는 드라마적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이죠. 책 뒤표지의 문구를 고지식하게 전부 믿는 미스터리 독자는 아마 없겠지만, 이번에는 좀 너무했습니다. 숨 막히는 작품, 위대한 소설,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작품 등등 미사여구를 동원했는데, 사실 이것과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속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꼭꼭 숨겨놨던 진실이란 한줌 밖에 안되는 것일 정도로 초라합니다. 아니 초라한 진실이라고 해도 포장기술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멋진 내용이 될 수 있을테지만, 교차하는 시점과 캐릭터 묘사와 중간 중간 벌어지는 남녀상열지사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아마도 작가는 처음부터 미스터리보다는 드라마를 우선시 했고, 미스터리는 단지 드라마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무대 소품에 불과한 거죠.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에서 제일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그런 점입니다.

처음 설정만 봤을 때는 캐드펠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인 <얼음 속의 처녀>를 떠올렸습니다. 비슷하게 출발하기는 하는데, 드라마, 미스터리 둘 다 저는 캐드펠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군요.

평점 4 / 10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상징(Marked) - P.C.캐스트, 크리스틴 캐스트

2007년
2009년 우리말 (북에이드)

<트와일라잇>이 국내에서도 제법 팔렸는지, 인기를 끌었는지까지는 모르겠다만, 10대 뱀파이어 소년,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하우스 오브 나이트 시리즈> 1권이 얼마전에 우리말로 정식 출간됐다.

이 시리즈 역시 10살 중반의 여주인공 조이버드를 주인공으로, 원래는 인간이었다가 서서히 뱀파이어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단지 기존의 뱀파이어를 소재로한 판타지들과 다른 점이라면 <하우스 오브 나이트 시리즈>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성장물이라는 점이다. 사실 1권만 읽고 든 생각은 <트와일라잇>(에릭 나이트-이름부터 참-라는 미소년 뱀파이어에 끌리는 부분 등등) 플러스 <해리 포터>(이마에 새겨진 표식으로 닉스 여신의 어쩌구 저꺼구 하는 대목은 아무리 봐도 해리 포터에서 따온 것이겠지만) 겠지만, 양자의 가운데를 점하려고 하는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로맨스를 다루기는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발랄하게 까진 십대들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기본구도는 여주인공 조이버드가 '뱀파이어 교양학교'라는 곳에 입학하게 되고, 여기서 친구들과 함께 우정과 사랑을 하면서 함께 성장해가는 내용이다.

여족장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뱀파이어 세계라거나, 나름 역사와 신화를 바탕으로 개성있는 뱀파이어 관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한데, 그게 재미로 잘 이어졌는지 여부까지는 모르겠다. 번역도 허접하고 - 중간 중간 무슨 뜻인지 못 알아먹는 곳도 있었고 - 극적 긴장감 역시 아직은 너무 부족하다. 일단 2권에 해당하는 떡밥을 1권 후반에 던져놓고 있기는 하다만, 앞으로도 이 시리즈와 어울릴지 어떨지는 그 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참, 그냥 '라이트노벨'로 나왔다면 좋았을 것이다. 일반 소설로 보기에는 가격대 성능비가 매우 떨어지니, 그런 점을 감안하길 바란다. 추가로 문장력과 흡입력은 차라리 <트와일라잇> 쪽이 더 낫다. 이쪽은 이쪽대로 자주 까이기는 하지만........ 하나 더, 번역 좀 더 깔끔하게 잘 다듬어 줄 수 없을까? 우리식 비속어로 번역했다가, 어떨 때는 전형적인 영어문장 직역이다가, 갈피를 못 잡겠다. 영 거슬린다.

평점 3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