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9일 금요일

인형, 탐정이 되다 - 아비코 타케마루

1990년 고단샤
1995년 문고판
2009년 우리말 (북홀릭)

복화술사 토모나가 요시오가 조종하는 인형 '마리오'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 사실 요시오=마리오이지만 - <인형 탐정 시리즈> 첫번째 단편집이 우리말로 나왔다. 사실 의외였다. 워낙 오래된(?) 작품인지라 이 녀석이 과연 우리말로 나올 수 있을까? 상당히 회의적이었는데 떡하니 나왔으니 말이다. 또 놀랬던 점은 이 시리즈는 재미는 그럭저럭 있지만 미스터리 자체만 놓고 보면 그리 주목할만한 녀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완성도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 오래전에 출간된 녀석이 우리말로 등장했으니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

아무튼 아비코 다케마루 하면 국내에는 역시 <카마이타치의 밤>(게임)과 잔혹한 묘사로 19세미만 구독불가의 압박을 이겨내고 국내에 상륙한 <살육에 이르는 병> 그리고 별로 재미를 못 본 <미륵의 손바닥> 정도가 떠오르지 않을까? 뭐 일본어 하는 사람이라면 그 밖에도 데뷔작인 '8의 살인'으로 시작한 <하야미 형제 시리즈>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 유머 전부 이 쪽이 인형 시리즈보다 좋았다.) 와 SF풍의 <부식 시리즈> 등등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탐정이 되기 위한 893가지 방법이란 쓰레기에 가까운 만화도 한켠으로 지나갔다;;;)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졌는데 이쯤에서 커트하고, <인형 탐정 시리즈> 첫작품인 <인형, 탐정이 되다>는 총 4 편의 단편이 실렸다. 제1화 '인형은 코타츠에서 추리한다' (원래 본서의 제목은 단편 1화의 제목과 같다. 아마도 코타츠라는 일본어가 들어가고 독자에게 인형=탐정으로 호기심을 끌어내기 위해 우리말 제목으로 변경된 듯 한데, 바뀐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는 미스터리는 별로 볼 것 없고 그냥 주인공 요시오와 마리오 콤비 그리고 작중화자인 '세노오 무츠키' 등 캐릭터 소개편에 가까워서 특기할만한 사항은 없다. (미스터리 사건과 진상 자체가 너무 단순하다.)

2화 인형은 텐트에서 추리한다는 사건 자체도 제법 괜찮고 진상도 의외성(?)이란 면에서 나쁘지 않은 구성을 보여준다. 3화 인형은 극장에서 추리한다, 역시 2화의 연장선 비슷하게 나쁘지 않은 플롯과 구성을 보여준다. 역시 특별한 구석은 없다. 마지막 4화는 1화와 비슷하게 미스터리 요소는 시덥지 않다.

전체적으로 미스터리는 좀 기대이하. 유머요소가 강하냐? 하면 그게 또 독자에 따라 반응이 엇갈릴 듯 하다. 시간 나는 분들이 있다면 큰 기대하지 말고 읽어보시길 바란다. 별 기대 없이 읽으면 의외로 재밌는, 라이트하지만 적당히 부드럽고 웃음을 주는 미스터리 단편집을 접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평점 5 / 10

2010년 2월 15일 월요일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노리즈키 린타로


2004년 각천서점
2007년 문고판 (사진)
2010년 우리말 (비채)

연재 <가도카와 미스터리> 2002년 ~ 2003년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2005년도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제1위에 랭크인한 본격 미스터리이다.

1988년도 <밀폐교실>로 데뷔한지 거의 20년 가까이 되는 신본격 미스터리의 기수에 속하는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 이 작가의 책은 세번째 장편 <황혼>을 처음으로 읽었다. 작가 이름 = 작중 주인공 = 탐정 역의 공식은 다분히 '엘러리 퀸'을 의식한 구성이며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도 주인공=작가 이름까지는 마찬가지 구성이지만 탐정역은 따로 있다),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은 없지만 스토리의 구성이나 지향점은 역시 '엘러리 퀸'를 떠오르게 한다. <황혼>의 경우는 주인공의 미스 디렉션이 너무나 작위적으로 느껴져서 금새 짜증이 나, 이 작가 책은 그냥 읽지 말아야겠다 느꼈을 정도로 별 재미를 못 봤던 안 좋은 기억이 있다.

그러던 내가 이 소설을 읽은 이유는, 아는 사람에게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 돈 주고 사라고 했다면, 띠지에 인쇄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제1위 라는 광고문구를 보았다고 해도 선뜻 지갑을 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황혼>을 읽고 대단히 실망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읽었는데, 대강의 내용은........

후배의 사진전에 참석한 '노리즈키 린타로'는 그곳에서 한 여대생과 우연히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가와시마 에치카' (에티카는 라틴어로 논리라고도 하는데, 본인은 라틴어를 모르니) 알고보니 그녀는 린타로가 알고 있는 하드 보일드 번역가로 유명한 '가와시마 아츠시'의 조카였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석고조각으로 유명한 예술가 '가와시마 이사쿠'였다. 이사쿠는 위암 수술을 받고 혼신을 다해 창작활동을 재개하고, 그 모델은 바로 그의 딸 에치카다. 아츠시,에치카는 린타로와 함께 찻집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이사쿠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후 아츠시로 부터 이사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린타로는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아츠시로부터 상담을 했으면 하는 언질을 받는다.

상담의 내용은, 이사쿠가 마지막으로 창작열을 태우던 전신 석고상의 두부가 누군가에 의해 잘려져, 그 머리 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발전하면서 사라진 석고상의 머리와 실제 사람의 잘린 머리가 이어지는 본격 미스터리가 된다.

일단 기본적인 구성은 <황혼>처럼 유머도 없고, 로망도 없는 순수한 로직(논리)으로 무장된 미스터리이다. 초반부터 후반까지 꼼꼼하게 등장하는 미스 디렉션과 복선은 불만을 토로할 구석을 찾기가 좀처럼 힘들 정도로 탄탄한 구성력을 갖추고 있다. 마지막에서는 퍼즐 조각 하나 하나가 전부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맛까지 있으니, 작가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생각을 말끔히 날려준 멋진 작품이다. 간만에 재대로된 본격 미스터리를 읽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유머가 전무하면서 비교적 두툼한 분량임에도 꾸준히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흡입력 좋았고, 작품내 의문점을 하나 하나 전부 설명하는 해설편은 감동적이다.

단점을 굳이 꼽자면 별거 아닌 사건(?)으로 이렇게 많은 페이지 수를 잡아먹어야 하는 의문점?과 복선의 배분과 회수가 워낙 꼼꼼하다보니 여기서 파생할 수 밖에 없는 막판 독자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치는 무게감이 적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어쨌든 순수하게 '퍼즐'다운 '논리성'을 중시하는 독자한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설이다. 본인 역시 모처럼 제대로된 본격 미스터리라서 평이 더 좋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런 걸 염두해두더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평점 8 / 10

2010년 2월 4일 목요일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 - 쓰하라 야스미

2007년 동경창원사
2009년 우리말 (북홀릭)

전작 <루피너스 탐정단의 당혹>에 이은 시리즈 마지막(아마도?)은 <~~의 우수>는 말그대로 우수를 남기는 단편집이다. 총 4 개 단편이 실렸는데, 첫 단편은 충격적이게 전작에서 예쁘지만 멍청한(?) 캐릭터였던 마야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대체 발랄하고 명랑해 보였던 그네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라는 의문을 품으면서 이어지는 단편은 주인공들의 대학생 시절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은 졸업식을 앞두고 벌어진 내용으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 느꼈을 의문을 풀어주는 대목은 없다. 앗! 하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향수와 애잔함을 느꼈다면 그걸로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의 제할 일을 다하지 않았을까?

여고생이 탐정으로 나온다고 해서 아마 학산문화사에서 이 책을 '찍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해보지만 어쨌든 주인공 연령이 어리다고 이 시리즈를 얏보면 곤란하다. 물론 쓰하라 야스미는 10대 소녀들이나 좋아서 읽을 소녀소설을 쓰던 과거를 갖고 있지만 현재 그런 면모는 사실 볼 수 없다. 국내에 소개된 <이시야 가의 전설>과 <붉은 수금> 그리고 본 시리즈만 봐도 명백하다. 여기에 미스터리 완성도도 나쁘지 않다. 적잘한 유머도 있고, 미스터리도 괜찮은 편이고, 캐릭터들도 나쁘지 않으니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반대로 그 세가지 요소가 매우 뛰어나다고 평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뭐 그게 <루피너스 탐정단 시리즈>의 단점이겠지만.

평점 5 / 10

의뢰인은 죽었다 - 와카타케 나나미

2000년 문예춘추
2007년 우리말 (북폴리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로 이번에도 단편집이다. 총 9 개 단편이 실렸고, 내용은 전작과 유사하게 '惡意'가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 주류다. 이런 악의 속에서도 주인공 아키라는 집요하게 흑백을 가리는 탐정역을 맡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이번에는 짙은 감색의 악마(?)가 아키라의 상대역(?)이다.

단편 내용은 여기서 따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상당히 어이없지만 묘하게 납득이 가는 그런 내용의 단편이 대부분이었다는 말로 갈음한다. 요는 재밌다는 얘기다.^^

와카타케 나나미 소설을 제일 처음 접한 것은 역시 - 아마 대부분의 독자도 나와 비슷하겠지만 -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란 연작 단편집이다. 잡지 편집역을 맡은 주인공이 겪는 일상 미스터리 계열의 단편집이 마지막에 하나로 귀결되고 거기서 피어나는 '악의'가 묘하게 섬뜩했던 내용으로 뇌리게 깊게 박혀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에서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항이다.

깔끔하고 상쾌한 민트향 나는 추리소설(그런 추리소설이 좀 드물긴하겠지만)을 원하는 분들은 와카타케 나나미 소설은 피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박하향 나는 상쾌함 속에 하바네로가 숨어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으으으~~~ 아, 물론 하바네로가 나올 걸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소설일 것이다. 무흣~

평점 6 / 10

고백 - 미나토 가나에

2007년 후타바샤
2009년 우리말 (비채)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이자 화제작이던 <고백>의 우리말 출간은 대단히 경사스런 일이다. 뭐 그만한 화제성을 갖고 있는 책이기에 출판사측은 '판매량'에 기대하는 마음도 분명 있었겠지만 말이다. 소문과 판매량이 입증하듯이 <고백>은 대단히 흡입력 있게 술술 읽히는 재밌는(?) 책이다. 재미라는 것은 독자에 따라 다르게 느끼겠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붙들게 만들고, 자꾸 다음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나는 그걸 '재밌는' 책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고백>은 재밌는 미스터리이다.

소설은 총 6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의 화자는 다르다. (공통화자가 있긴 하지만.....)
도입부는 한 중학교 선생의 시점으로,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자기가 맡은 반학생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법의 힘이 아닌 스스로 범인에게 복수를 한다는 꽤 충격적인 스토리 전개를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장부터는 그렇게 벌어진 단죄의 고백 이후로 사건과 연루되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그런 과정을 서로 다른 시점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고백>을 보고 있으면 온다 리쿠와 미야베 미유키의 장점만을 살짝 버무린 듯한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고백체와 캐릭터 특징은 온다 리쿠, 소년 범죄와 복수는 미야베 미유키, 뭐 그런 느낌이다. 물론 이건 그냥 인상일 뿐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일단 <고백>은 미스터리 장르에 들어가겠지만, 의외의 범인이라거나 의외의 동기라거나 멋드러진 범행트릭 같은 걸 기대하고 읽으면 뒷통수를 맞게 될 것이다. <고백>은 그런 왜? 누구? 어떻게?와는 별 상관없이 사건과 사건 사이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캐릭터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그리고 있는 연작 단편집이다. 따라서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은 재밌게(?) 읽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물론 '완성도' 면에서는 <심플 플랜>이 훨씬 뛰어나다.

<고백>은 분명 재밌는 책이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일단 제 1 장이 가장 흥미롭고 뒤로 갈수록 재미의 밀도가 옅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이유로는 아마 처음부터 이렇게 연작형식이 아니라 단순한 단편으로 끝날 것을 억지로(?) 이어 붙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릭터들의 심리와 행동 변화가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스토리를 위해 태어난 맞춤인형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 때문에 <심플 플랜>에 비해서 부족하다. 그래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보니 기회가 되는 분들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평점 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