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3일 금요일

두 명의 신데렐라 - 구지라 도이치로

2002년 하라쇼보(미스터리 리그) (右) (출처 www.bk1.co.jp)
2005년 고문샤 문고판 (사진) (左)

구지라 도이치로의 13번째 작품이자, 하라쇼보(원서방)에서 발간하는 '미스터리 리그' 중의 하나로 나온 <두 명의 신데렐라>는 유니크한 설정의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나는 이 사건의 증인입니다.
동시에 범인입니다.
그리고 희생자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탐적역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와트슨 역도 맡고 있습니다.
물론 기록자이기도 합니다.
또한 누명을 쓰는 용의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범자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물론 나는 복수의 사람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사람입니다. 어찌하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지금부터는 나는 그 사건을 기록한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1인칭으로 기술한 수기 속의 '나'는 물론 저 자신을 말합니다. 수기 외에 3인칭 시점으로 기술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편이 사건의 전모를 설명하기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타이틀은 <두 명의 신데렐라>로 하겠습니다.

소설의 프롤로그를 그대로 (물론 대충) 번역해봤습니다. 초반 문장 몇개만 봐도 딱 감이 올 독자들이 있을 겁니다. 프랑스산 유명 미스터리 <신데렐라의 함정>을 떠올리셨다면 100점 만점입니다. <두 명의 신데렐라>는 딱 봐도 <신데렐라의 함정>을 차용한 미스터리가 맞습니다. 단 <신데렐라의 함정>은 1인 4역의 서스펜스물에 가까웠다면, <두 명의 신데렐라>는 1인 8역을 다루고 있으면서 본격 미스터리에 더 가깝다는 것이겠죠. 두 소설 전부 기본적인 소재 화재, 기억상실, 살인 등의 이야기는 동일하게 나오지만 풀어가는 방식이 많이 다릅니다. (<신데렐라 함정>은 추천작이니 읽어보시길...)

소설은 쿠니토모 히로시가 스폰서를 맡고 있는 극단 '오로치' 배우 전원 9명이 스폰서의 별장이 있는 외딴섬에 모여서 신작 연극 '두 명의 신데렐라'를 위한 연습을 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소설안에서 1인칭 '나=아마노가와 유카'는 조만간 TV로 메이저 데뷔가 결정난 미모의 여배우입니다. 유카는 극단에서 하는 마지막 연극의 주역을 라이벌 '나쓰무라 메이'와 경합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전부 주역은 유카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연출가 사카야마는 메이를 주역으로 정합니다. 그리고 그 날 새벽 섬 한 컨에 위치한 병원시설에서 불이 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극단원은 사람들을 전부 깨워서 병동으로 달려가지만 메이는 불에 타 죽고, 유카는 기억상실, 유카의 남편인 케이스케는 실종입니다. 메이를 살해한 범인은 실종된 케이스케가 아닌가 싶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유카는 뭔가 찜찜하죠.

일단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은 외딴섬+한정된 인원의 클로즈드 서클입니다. (이 부분이 원작 <신데렐라의 함정>과 많이 다른 부분이죠.) 여기에 작중작(연극대본) '두 명의 신데렐라'가 들어가있습니다. 어찌보면 본편보다 작중작이 더 흥미진진한 경우도 있는데, 이 극본 내용 자체도 유니크한 SF 미스터리입니다. 우연히 살해당한 여자 시체를 보고 경찰에 신고하는 주인공. 경찰과 사건 현장에 와보니 오잉?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져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죽은 그 여자와 똑닮은 여성이 대낮에 활보하는 걸 목격한 주인공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1인 8역의 신데렐라가 등장하게 됩니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하는 대본인데 이게 꽤 재밌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 본편과 관련한 복선이 슬쩍 숨겨져있지요. 이런 복선은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데, 이게 대체 어디서 필요할 것인가 고개를 갸웃할 독자가 있겠지만 마지막 결말을 보고 나면 충분한 단서라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다. 그리고 중후반부에는 아직도 감을 잡지 못한 독자에게 대형 단서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몰랐다면 마지막에 헉!하고 놀라거나 화를 내면 되겠고, 마지막 단서에서 사건의 전모를 맞췄다면 그럼 그렇지(?) 하고 벽에다가 책을 던져주거나 헉(!!!)하고 놀라면 되겠습니다.

복선도 잘 배분했고, 설정도 깨는 것이 참 괜찮을 법한데 막상 결말을 보고나면 무척 재밌다!라는 느낌보다는 나쁘지 않다라는 기분이 더 강하게 듭니다. 1인 8역이란 무리한 설정때문일 겁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설정인데 과연 그걸 얼마나 논리적으로 잘 포장했느냐하는 기대감과 소설에서 실제 보여주는 해답을보고 느끼는 독자의 감상과의 갭이 재미에 대한 편차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나쁘지 않다'라는 애매모호한 문장으로 대치합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놀랍지도 실망스럽지도 않은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아무래도 문장이 '아카가와 지로'스럽다보니 너무 가벼워서 깃털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작중작으로 들어간 연극 대본 내용이 구지라 도이치로 다운 내용이었던 듯 하네요. SF 미스터리로 참 깨는 내용이었는데, 이쪽이 더 재밌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문고판 표지는 영 아니올시다입니다. 단행본 표지가 딱 소설 분위기와 어울리던데 말이죠. 망할 고분샤.....

평점 5 / 10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