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6일 월요일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 시마다 소지

1982년 고단샤
2009년 우리말 출간중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는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미타라이 기요시를 탐정으로, 이시오카 가즈미를 와트슨 역으로 한 시리즈 두번째이다. 그리고 <점성술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16년이 흐른 2008년 완전개정판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다. 우리말로 먼저 소개된 <점성술 살인사건>은 개정판을 번역했다고 하는데,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는 그런 이야기가 없는 걸로 보아서는 좀 의심이 간다. 지금 수중에 82년도와 08년도 일본어 판본이 있어서 우리말 판본과 비교해 본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비교는 할 수가 없다. 다음에 우리말 소개예정으로 잡혀있다고 하는 <이방의 기사>(역시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중 하나이다. 그 사이에는 단편집 하나가 있는데 이건 출간예정에 없나 보다. 아쉽다.)
도 완전개정판이 있는데 - 88년 고단샤, 개정판은 97년 하라쇼보에서 발간 - 번역 텍스트를 개정판으로 삼았다면 삼았다고 확실하게 밝혀주는 편이 독자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리라 생각한다. (뭐 개정판이라고 해봤자 범인이 엉뚱하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초판보다는 개정판이 낫지 않을까?)

아무튼 다시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번에도 작가 특유의 고집이 보이는 물리 트릭을 들고 독자와 한판 승부를 보인다. 종반에는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도 들어있으니 작가와의 대결이라는 곳에서 매력을 느끼는 추리 독자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이런 물리 트릭에 집착하는 작가의 고집을 보고 있으면 - 후기에 속하는, 와룡정 시리즈, 마천루의 유령, 마신유희등도 다 비슷하다 - 트릭을 위한, 트릭에 의한 소설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단점이 도사리고 있다. 트릭을 먼저 구상하고, 그 트릭을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한 플롯을 제작하고, 캐릭터를 배치하고, 그리고 복선과 단서의 배분에 힘을 쓴다. 이런 집필 순서가 머리에 떠오른다. (실제 그렇게 집필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만큼 트릭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캐릭터의 성격을 규정하고 창조한 다음,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플롯을 작성하고, 여기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트릭을 첨가하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냐는 얘기를 꺼내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전자의 경우는 트릭의 퀄리티에 따라 소설의 재미가 극과 극을 오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실패작으로 치는 작품은 <와룡정 사건>이다. (미타라이 기요시 등장이 거의 없어서 점수를 짜게 주는 게 아니다!!) 반대로 완벽한 성공작은 작가의 데뷔작 <점성술 살인사건>이다. (김전일의 손자가 트릭을 훔쳤던 일화로, 물 건너 추리팬들의 공분을 산 적도 있다고는 하는데, 관련 내용의 글을 보고 나니 시마다 소지는 뭐 대인배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는 어느쪽에 속할까? 나는 주저않고 성공작이라는데 한 손을 들어준다. 이유는 트릭을 위해 모든 것이 집중된 '장인정신'에 감복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트릭 하나를 제대로 살리기위해 모든 걸 창조했고, 그 창조된 것들은 따로 노는게 아니라 트릭과 유기적으로 잘 융합해서 분위기를 살리는데 일조를 하기 때문이다. 캐릭터 전부가 트릭에 매몰되었다면 이건 치명적인 단점으로 들어갔겠지만, 거대한 트릭 속에서도 캐릭터들은 각자 맡은 바 사명을 제대로 하고 있다. 단지 몇몇 캐릭터의 비중이 없어서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판단해볼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꼭 걸고 넘어지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그건 범행동기이다. '그냥 죽였어!'라는 것이 더 설득력있기 다가왔을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마지막에 밝혀지는 동기는 '그건 좀 아니거든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 개인 취향에 따른 부분이니 독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감점! 화장실 군이 너무 늦게 나와서도 감점!! T.T 언제쯤 나오려나 독자를 안달나게 하는 청소부(?) 아저씨가 괘씸해서 감점을 줬다(...)

트릭에 고집하는 추리소설은 후에 <클록(시계)성 살인사건>으로 데뷔한 기타야마 다케쿠니에게 이어진 면도 있지 않나 싶다. (이 데뷔작은 국내에 소개예정이라고 한다.) 후속작 <유리성 살인사건> 역시 뜨악한(?) 물리 트릭으로 승부한 소설이었다.

평점 6(7)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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