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1일 수요일

신세계에서 1,2 - 기시 유스케

2008년 고단샤 (상,하)
2009년 우리말(시작, 1,2)

<신세계에서>는 그해 일본SF대상을 수상했다는 작품이지만 실제로는 SF보다는 판타지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한 설정과 스토리를 보여주는, 기시 유스케의 집대성에 가까운 작품이다. 페이지도 그만큼 방대한데 일본 원서는 대략 1,000 페이지가 넘었고, 우리말로도 9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어지간한 책 3-4권 분량을 담고 있다. 그래서 첫 시작은 미세하다.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독자에 따라서는 초반부가 좀 지루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신세계에서> 설정해놓은 세계관과 설정에 대한 잡다한 설명도 많아서 분명 이런데서 따분해할 사람도 있겠고 말이다. 물론 루즈한 초반부를 극복하고 서서히 궤도에 오리기 시작하면 상당히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스토리는 인터넷 서점이나 다른 서평 또는 리뷰나 독후감 보면 대략 나왔을테니 여기서는 패스하고, 이 작품을 미스터리로 볼 여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일단 당해년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제 5 위, 역시 같은해 <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10위에 랭크된 기록이 남아있다. 물론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에는 순위권 밖에조차 랭크인 하지 못했다. 여기서 간단하게 알 수 있는 건, 미스터리적 장치는 존재하지만 그건 퍼즐 같은 고전적인 의미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단순히 재미를 위해 쓰인 많은 소품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맞다는 걸 알 수 있다. <신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미스터리적 재미는 1권에서 깔아놓은 복선이 2권에서 회수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듯 나온 문장이 마지막에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미스터리적 재미와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다. 물론 모든 재미에는 '강도'라는 것이 있고, <신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미스터리적 '강도'는 낮다. 물론 <신세계에서>를 철저하게 미스터리로만 인식하고 읽는다는 건 좋은 독서방법이 아니다. 장르는 어디까지나 판타지SF 이며 여기에 미스터리 양념이 들어갔을 뿐이다.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내 머리로는 이 보다 더 적합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전체적인 재미는 어떨까? 개인적으로 기시 유스케의 책은 그다지 즐겨 읽은 편은 아니다. 다작 작가도 아니지만 기시 유스케 소설 중에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검은 집>이 아니라 <유리 망치>였다. 아무래도 판타지(호러)보다는 미스터리에 더 끌린 내 감성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세계에서>는 달랐다. 분명 추리보다는 환상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설임에도 읽으면서 느낀 건 작가의 집대성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1권에서 조사와 서서히 세계관이 밝혀져가는 모습은 <천사의 속삭임>이 떠올랐고, 1권에서 깔아놓은 복선을 2권에서 회수하는 장면은 <유리 망치>와 다를 바 없었고, 2권 후반부 추격전은 <검은 집>이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작가의 히트작에서 재미있는 요소를 잘 뽑아다가 균형있게 잘 버무린 녀석이 바로 <신세계에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성공적이었다. 아니,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남들이 뭐라고해도.

평점 7 / 10

2010년 3월 25일 목요일

절규성 살인사건 - 아리스가와 아리스

2001년 신초사
2004년 문고판
2009년 우리말 (북홀릭)

<절규성 살인사건>은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 중에 '드물게' '~ 살인사건'이란 제목이 들어간 단편집입니다. 총 6 개 단편이 수록되었는데요, 일단 결론부터 가자면, 제일 처음 수록된 '흑조정 살인사건'과 제일 끄트머리에 수록된 표제작 '절규성 살인사건' 이 두 단편을 가장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유는 전자는 아리스와 여자애가 '스무 고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고, 후자는 약간은 씁쓸한 듯한 여운이 길게 남아서였습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4편의 단편이 재미없는 건 아닙니다만, 앞의 2편이 제 취향에 잘 부합했다는 얘기입죠.

사실 이 작품이 가장 좋았던 점은 아리스와 히무라라는 캐릭터였습니다. 와트슨과 홈즈 역할이라는 전형적인 도식구조로 이룩한 두 친구의 관계가 그 전까지는 뭐랄까요, 틀에 박힌 듯한 느낌이었다면 <절규성> 부터 이제서야 캐릭터들 자기 자리를 확고히 잡고 개성을 마음껏 살리게 됐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튼 오래전에 읽은 걸 기억만을 끄집어내서 작성하려 하다보니 상당히 괴롭네요. 머리털을 쥐어 뽑아보지만, 그래도 기억이 남는 건 별로 없습니다. 이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요, 하나는 그 만큼 저한테 <절규성 살인사건>이 인상적이지 못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고, 다른 하나는 제 기억력이 '가카'만도 못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슬프네요. 과연 어디일까요?

그러고보니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도 소리소문 없이 꽤 나왔습니다. <46번째 밀실> <절규성 살인사건>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월광 게임> <외딴섬 퍼즐> 이렇게 다섯 권이나 나왔네요. 문제는 <학생 아리스 시리즈> 3번째인 <쌍두의 악마>가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는 거겠죠. 작년에는 나올거라 생각했는데 대체 왜 안 나오는 건지.....

여담) 두 번째 수록된 '호중암 살인사건'은 '대밀실'이란 앤솔로지에 수록됐었는데요, 여기에 같이 수록된 것 중 하나가 온다 리쿠 <도서실의 바다>에 수록된 '어느 영화의 기억'이란 단편이었습니다. 밀실 트릭 자체는 온다 리쿠 쪽이 더 좋았지만요;;;;;;;;;;

평점 6 / 10

2010년 3월 21일 일요일

소풍버스 납치사건 - 아비코 다케마루

1992년 고단샤
1995년 문고판
2009년 우리말(북홀릭)

<인형 탐정 시리즈>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 전작은 단편집이었는데, 어째선지 이번에는 장편으로 진화(?)했다. 진화 옆에 물음표를 붙인 이유는 이걸 정말 진화로 받아들여야할지, 퇴화로 해석해야할지 고민이 되서다.

전작은 적당히 유머스런 내용과 적당한 미스터리로 나름 즐겁게 읽긴 했는데, 그걸 그대로 장편으로 만들었을 경우에는 반응이 좀 달라질 거다. 얼마전 국내에 우리말로 나왔던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가 유사한 경우인데, 서점원이 탐정역으로 서점을 배경으로한 단편 미스터리였던 시리즈 첫 작은 꽤 호평을 받았다가, 시리즈 두 번째는 난데없는 장편으로 대략 난감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 비슷한 느낌이 드나보다.

어쨌든 간단한 스토리는 제목대로이다. 오무츠(기저귀;;)가 일하는 유치원에서 소풍을 가기로 하고, 여기에 마리오와 요시오가 합세한다. 하지만 소풍가는 버스가 총을 든 범인에게 납치당해서 이야기는 안드로메다로 간다. 알고보니 범인이 버스를 납치한 이유가 밀실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야 메인 미스터리는 밀실 사건이 된다. 고주망태였다가 깨어났더니 옆에서 자던 친구가 입에서 피를 뿜고 있고, 자기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다. 게다가 문과 창문에는 전부 자물쇠가 걸려있는 말그대로 밀실상태. 범인은 나 밖에 없다? 그런데 난 총을 쏘진 않았는데....대체 친구는 누가 죽인건가? 물론 범인은 무죄를 주장하고, 오무츠와 요시오는 범인의 이야기를 듣고 추리를 시작한다. (애들은 옆에서 도시락 까먹고;;;)

원래 유머 미스터리에 속하기 때문에 인질극임에도 별로 긴박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작중화자이자 여주인공은 납치범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범인은 좀 멍청하다. 납치당한 버스 안에서 맞선 이야기가 나오질 않나, 여러모로 긴장과는 거리가 먼 스토리다. 미스터리 자체는 매우 간단하면서 설득력도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 정도를 갖고 '장편'으로 늘린 것은 좀 무리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분량이 중편 정도만 됐어도 좋았을 것이다.

원제목은 <인형은 소풍가서 추리한다.>

여담) 이시모치 아사미의 <달의 문>과 소재면에서 비슷한데, 비교해서 읽어보면 재밌을 법 하다.

평점 4 / 10

2010년 3월 3일 수요일

46번째 밀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1992년 고단샤
1995년 문고판
2009년 우리말 (북홀릭)

'작가' 아리스와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콤비를 주인공으로 한, 통칭 <작가 아리스 시리즈> 첫 권이 벌써 1년 전에 나왔습니다. 이외에도 두 콤비가 등장하는 <절규성 살인사건>과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등이 나왔지만 이 두 권은 '단편집'이고 이번에 소개하는 [46번째 밀실]은 장편이죠. 게다가 제반사정으로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독자들도 있을텐데, 그런 독자에게, 특히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시리즈 대표작을 우리말로 보고 싶어하던 분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겁니다. (그나저나 <쌍두의 악마>는 언제 나올까요? 좀 두껍긴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는 듯.)

간단하게 내용을 소개하자면 유명 추리작가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된 아리스와 히무라가 별장에 방문하고, 거기서 밀실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리스와 히무라는 경찰과 함께 트릭을 밝히고 범인을 잡습니다. 끝~~~ 너무 간단한가요? 내용은 직접 읽어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거다보니 간략하게 소개했습니다.

사실 <46번째 밀실>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밀실'입니다. 추리소설에서 밀실이란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인 동시에 독자에게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책 말머리에 들어간 문구가 참 가슴을 칩니다.) 트릭이 아무리 기상천외하더라도 해결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주는 녀석들이 대부분인 밀실 트릭. 진정 놀랍고 경악스럽고 누구나가 감탄할 밀실 트릭을 꿈꾸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뭐 그래서 작중에서 한 줌의 재로 화한 46번째 밀실 트릭이 궁금해지는 거겠지요.

아무튼 제목대로 밀실을 다룬 소설인데, 밀실에 대한 접근법이 약간 다릅니다. 엘러리 퀸 스타일로 접근한 밀실이라는 것이죠.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다른 소설(우리말로 소개된 <월광게임> <외딴 섬 퍼즐>)을 읽어본 분이라면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추리소설가는 '엘러리 퀸'이고 작가 스스로 지향하는 목표도 '엘러리 퀸'입니다. 그런데 엘러리 퀸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밀실 하면 떠오르는 '딕슨 카' 스타일의 밀실을 접목시킨 시도가 나쁘지는 않더군요. 트릭 자체도 큰 무리없이 소화해서 적절한 복선 배분과 함께 설득력 있게 진행시킵니다. 군데 군데 고개가 좀 갸웃거리는 장면도 있습니다만, 중간 중간 추리소설 이야기나 밀실 이야기등을 보고 있으면 그런 단점은 그냥 잊혀지더군요. (호호) 동기나 기타 등등 좀 진부한 구석도 많습니다만 이 녀석은 1992년도에 나왔습니다. 시간 참 빨리 흐르는군요.

사실 <46번째 밀실>에서 제일 궁금한 것은 밝혀지지 않은 '46번째 트릭'이 어떤 내용인가? 하는 점일 겁니다. 그렇게 명확한 이야기 없이 끝나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게 아닐까 싶네요. 뭐 그런 점을 작가가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여담) '학생' 아리스를 주인공으로 한 <학생 아리스 시리즈>를 먼저 보신 분들, 또는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작가와 학생 양 시리즈를 같이 읽으면 색다른 느낌이 들지도 모릅니다.

평점 5 / 10

추락천사 - 로렌 케이트

2009년
2010년 우리말 (랜덤하우스)

스테프니 메이어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트와일라잇>이 성공적이었는지 '영어덜트' 로맨스 장르가 국내에서도 상업성이 있다는 판단하에선지 뱀파이어 학교를 배경으로한 학원로맨스판타지 모험물 소설이 나오는가 하면, 이번에는 '천사'를 소재로한 로맨스 소설이 나왔다. 제목도 그대로 <추락천사>. 영문제목은 [Fallen]

17살 루신다(루스) 프라이스. 검은 그림자 환영에 시달리던 루스는 결국 감화원에 들어오게 되고 그곳에서 운명의 소년을 만난다. 다니엘 그리고리. 하지만 다니엘은 루스에게 차가운 태도를 보인다. 그런 루스 앞에 다정다감한 캠이라는 소년이 나타나서 루스를 위로한다. 그럼에도 루스는 여전히 다니엘에게서 운명(.....)적은 느낌을 느끼는데....... 사실은 캠이 진짜 천사고 다니엘이 페이크였다라면 재밌었을지도 모른 전개였지만, 그런 전개는 보여주질 않는다.

디즈니 사에 벌써 판권이 팔렸다고 하는데,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트와일라잇>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데, 그 영화 솔직히 재밌나? 남자 배우 마스크로 밀고 나가는 거지 내용자체는 솔직히 그냥 원작 소설 읽는 편이 더 낫지 않았나? 그런 영화에 버금가게 만들겠다는 얘기는....뭐 안봐도 비디오지.

원작 소설 자체도 사실 몹시 흔해 빠진 이야기다. 불행에 빠진 소녀와 그녀와 사랑에 빠진 불노불사 소년. 여기서 소년의 입장에서 전개하면 이건 남자를 위한 판타지 어드벤처가 되고, 소녀의 입장에서 전개되면 여자를 위한 판타지 로맨스가 된다. 시점의 차이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추락천사>도 아직은 그 안에서만 맴도는 내용을 보여줄 뿐이다. 총 4 부작 기획이라는데, 앞으로 어떤 전개를 보여줄지 그다지 기대는 되지 않다만, 우리말로 나온다면 언젠가는 전부 읽어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여담으로 외국에는 '영어덜트'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일본에서 말하는 '라이트노벨'과 비슷한 장르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흔히 볼 수 있는 무협지 또는 판타지와 비슷하겠고 말이다.

사족)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가 '펜'이라는 소녀였는데...................

평점 3 / 10

리피트 - 이누이 구루미


2004년 문예춘추
2007년 문고판
2009년 우리말 (북스피어)

컴퓨터 게임. 직접 즐겨본 적은 없다고 해도 다들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단어일 것이다. 컴퓨터 게임의 특징은 딱 잘라 '세이브'와 '로드'이다. 물론 초창기 이런 류 게임은 '저장'과 '불어오기' 기능이 없었고 게임 오버는 그대로 게임 '끝'이었다. 이건 우리네 인생과 완벽하게 같은 이치다. 과거 고등학교 2학년 모월 모일에 '저장'을 해두고 언제든지 그 시점을 다시 '불러오기' 같은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게임도 발전해서 저장하기와 다시 불러오기가 등장하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이건 그대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후회)과 반복을 통한 학습효과를 응용한 대발견에 가까운 기능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꾸준히 발전하여 그 자체를 아예 '게임화' 하는데 성공하는데 한 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선풍전인 인기를 끈 '어드벤처' 장르다. 일관된 스토리가 있고 중간 중간 분기점이 있으며 분기점에 따라서 해피엔딩과 배드 엔딩이 나뉜다. 처음에는 어느 분기점이 해피엔딩인지 알 수 없지만 플레이어는 하나 하나 경험하다보면 어느 분기점이 '정답'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구조이다. 그리고 시행착오가 싫은 사람은 이미 '경험'해 본 사람의 '조언'(공략)을 보고 처음부터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갈 수도 있다. <리피트>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아니, 비슷한 장르의 소설이나 영화를 읽거나 본 사람이라면 매우 비슷한 구성이란 걸 이미 눈치챈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제 슬슬 소설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이누이 구루미의 <리피트>는 모리 게이스케(작중화자)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앞으로 며칠 후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하고 그걸 정확히 예언하고 맞춘다. 그리고 남자는 게이스케에게 자신은 '리피터'라고 소개하며 게이스케를 10달 전 과거로 되돌려 줄 수 있다고 한다. 10년 20년도 아니고 불과 열 달. 주인공도 딱히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맹렬하게 소망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가 그런 데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면서.

그렇게 해서 리피터라고 하는 남자가 말한 장소로 나간 곳에서 게이스케는자신과 같은 처치에 처한 동료를 만난다. 그리고 게이스케는 다른 이들과 함께 가마자의 안내를 받아 과거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리피트를 경험한 동료가 하나 둘 하나 둘 죽으면서 게이스케는 불안헤 휩싸이는데.............

소설 <리피트>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위와 같다. 세이브와 로드 시점은 정해져있고, 정해진대로 로드에 성공은 하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게임은 정해진 수순대로 행하는 반복이기 때문에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신'이 될 수 있지만, 현실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도 <리피트>에서 게이스케가 겪는 열 달이라는 긴 시간이라면 말이다. (영화 <그라운드혹 데이>(국내에는 '사랑의 블랙홀'이란 제목으로 알려짐)는 주인공이 24시간 반복이기 때문에 변인통제가 가능했을지는 모르지만)

동료들이 하나 둘 사고(또는 살인?)을 겪고 남은 리피터들은 의심에 빠진다. 혹시 우리 안에 '범인'이 있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런 구성은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인 동시에 한 명 한 명 사라져가는 공포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일맥상통한다. 물론 기본 설정은 SF같기 때문에 전통적인 느낌의 미스터리로 접근하면 물론 아웃이다. 약 500 페이지의 소설인데 반 정도가 '리피트'하는 얘기로 채워졌으니까 말이다. 미스터리에만 이끌려서 집어든 독자라면 뭐여 시방!! 이럴지도 모르니 주의를 요한다. 뭐 나중에 실제 사건이 터진다고 해도 진상 등은 그리 중요한 비중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여기에 게이스케는 '연애' 문제도 겪고 있다. 리피트 前에 사귀던 '유코'라는 여자와는 안좋은 기억을 갖고 채였다. 그러나 리피트 동료 중에 '시노자키 아유미'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리피트 後에 게이스케는 '유코'와 사귀고 있는 상태이다. 결국 새로 시작한 세계에서는 유코를 차버리고 시노자키와 사귀지만, 연애의 행방은 물론 카오스다. 문고판 해설에서는 2005년도 오버 플로우에서 발매한 <스쿨 데이즈>라는 막장(?) 18금 미소녀 연애 게임을 예로 들긴 하는데, 비슷한 면모가 보인다면 그건 사실이다. 어차피 연애 어드벤처 자체의 모태는 서양의 어드벤처이기 때문. 18금 연애 어드벤처는 거기다가 연애+섹스의 비중을 높인 것 뿐이니까 말이다. 뭐 이런 연애 어드벤처도 얼마전에 나온 <러브 플러스>(닌텐도DS로 발매)라는 리얼리티를 적극 활용한 녀석의 등장으로 새로운 발전을 맞이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리피트>는 시간반복 + 살인사건 + 연애요소 등이 한데 합쳐진 게임같은 소설이다. 재밌는 요소를 잘 버무리긴 했지만, 문제는 페이지 수 한정과 작가 특유의 여성관(좀 부정적이다) 때문에 깊이 있는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 소설의 단점이다. 어쨌든 다 읽고 나면 좀 기대에 '어긋'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크게 실망할 것도 없는 그런대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녀석이다. 큰 기대는 하지 말고 보길 권하고 싶다. 원래는 재작년에 썼던 게시물인데 이것 저것 넣고 수정하다보니 이상한(?) 얘기가 잔뜩 들어갔는데.......그냥 넘어가 주시면 고맙겠다.

참고로 <카마이타치의 밤> GBA 버전이 한글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리피트 감각을 맛보고 싶은 분들은 꼭 해보시길 바란다. 일본어 공부중이거나 할 줄 아는 분이라면 <쓰르라미 울 적에>와 이란 어드벤처 게임도 추천~~ (둘 다 플레이스테이션2로 발매~)

참고로 이누이 구루미는 다른 명의로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본격 미스터리 평론가'로도 활동중인데, 그에 비해 소설은 본격 미스터리와는 좀 동떨어진 녀석을 쓰고 있으니 뭔가 아니러니한 기분이다. (노리즈키 린타로와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흠.....)


여담으로 <리피트>의 부제는 wheel of fortune이다. 운명의 수레바퀴. 물론 이 소설도 이누이 구루미가 기획중인 '타로트 카드 시리즈'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붙은 '부제이지만, 소설을 다 읽고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단어를 음미해보면 좀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면 딱 제목대로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평점 6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