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30일 목요일

도서관전쟁 - 아리카와 히로

2006년 미디어웍스
2008년 우리말

라이트노벨로 데뷔해서 '단행본'으로 팔리는 작가가 되버린 아리카와 히로의 최신 시리즈입니다. 미디어양화법이란 것을 골자로 검열로부터 책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도서관의 사투(?)를 그린 유쾌한 라이트 노벨입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되었고, 그 여파 때문인지 국내에 정식으로 우리말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도서관전쟁>은 가상미래라는 설정 때문에 SF라고 불리기도 하고 - 일본에 한정된 이야기이지만 성운상인가 받았다고도 하더군요 - 라노벨스런 캐릭터들 집합 떄문에 전형적인 라노벨로 인식하기도 하는 잡탕찌게 같은 소설입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라이트 노벨 부분을 더 부각시켰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미디어양화법이란 검열문화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같은 분위기가 강하기도 합니다. 스토리도 한권으로 끝나는 장편이 아니라 연작 단편집 형식으로 하면서 <도서관내란> 등의 속편까지 준비했지요. 작가 후기에서도 연속 드라마 같은 분위기로 집필하고 싶었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작가가 처음 의도한대로더군요. 캐릭터 드라마 분위기입니다. SF라고 생각하고 집어든 독자는 책을 벽에 던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읽을만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꽤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평점 6 / 10

하늘속 - 아리카와 히로

2004년 미디어웍스 (사진)
2008년 가도카와쇼텐 문고판
2007년 우리말

먼저 이 책을 읽을 독자라면 '문고판'으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문고판에는 단행본 최종장에 이은 '뒷' 이야기가 새롭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하늘속>을 '재밌게' 읽은 독자에게는 큰 선물이다. (상술이지만)

일단 본 장르는 SF 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다. 원래 단행본 출판사를 미루어 짐작하면 '라이트 노벨'로 출간예정이었던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토리를 곰곰이 보면 라이트노벨보다는 일반 소설로 출판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단행본'(비싸다!)으로 나왔다. 그래서 문고판도 미디어웍스의 라이트노벨브랜드 전격문고가 아닌, 같은 계열사 가도카와 서점에서 출간됐다.

이런 지엽적인 이야기는 제쳐두고 스토리는 간단하게 말하면 미확인생명체와의 교류를 그리고 있다. UMA와 접촉하는 캐릭터는 2 분류로 나뉜다. 주인공 소년, 소녀의 어린아이 시점, UMA와 대화를 시도하는 어른의 시점이 된다. 각각의 시점에는 우호와 대립이라는 관계가 들어가서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총 4가지 입장이 된다.

UMA는 소설에서는 [백경]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그 유명한(?) 백경을 연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다. 초반 어른의 대응은 백경은 인류에게 해악을 끼칠 존재이기 때문에 섬멸해야할 적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미사일 공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경은 '분열'되어 생존본능에 따라 인류를 공격한다.

하지만 지극히 일본입장에서 스토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일본 이외의 독자는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 그리고 어린이와 어른이란 이분법적 구분이 스토리와 잘 융합되었냐?고 묻는다면 '글쎄'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전자는 민간항공기 초음속 테스트로 참가한 자위대 비행사 2명이 원인불명의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스토리기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일본이 민간항공기 개발이 늦었는지에 대한 인식은 없고 늦었기 때문에 '따라잡아야 한다'는 의식만 팽배할 뿐이다. 이 부분은 어른 파트의 주인공 하루나와 다케다를 잇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흘려버릴 수 없는 부분이다.

후자는 자위대와 일본정부, 아니 전세계가 주목하는 세상을 들썩이는 사건 속에 과연 어린애가 어떻게 대응하고 성장해가느냐가 관건인데, 주인공 소년이 페이크(백경과 동족)를 데리고 지들 멋대로 백경 사냥을 하는 걸 방치하고, 백경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어른은 스토리 후반에나 가서야 그걸 막으려고 한다. 또한 이 사냥을 주도하는 소녀는, 테스트 비행중 사망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나섰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이런 유치한 부분이 라이트 노벨 답다면 라이트 노벨 답다고 할 수 있겠지만.

백경과의 대화, 주인공의 성장. 소설이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은 딱 이 2가지다. 그럴려면 차라리 ET 스타일을 취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어설프게 자위대에 정부가 어쩌구 끌어들여서 손해보는 건 작가고 그걸 읽으면서 고통스러운 건 독자다. WIN-WIN이 아니라 둘 다 LOSE-LOSE가 되버린다.

평점 4 / 10

2008년 10월 24일 금요일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 츠지무라 미즈키

2004년 고단샤 노블즈 (전3권)(31회 메피스토상 수상)
2007년 문고판 (전2권)
2006년 손안의책 (전3권) 우리말

눈과 잘 어울리는 청춘 미스터리를 대충 꼽아보자면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가 먼저 떠오릅니다. 8명의 고등학생 남녀가 눈이 내리는 날, 학교 건물에 갇혀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기까지는 판타지 같은 설정이지만 8명 중에 한 명은 이미 자살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자살한 애는 '누구?'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몇 년전에 일본에서 발매한 <크로스 채널>이란 성인용 게임이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이 동아리 회원간 화목을 위해 추진했던 합숙에서 돌아오는 도중, 현실도피 목적으로 친구들을 자신의 의식세계로 가두어 버립니다. 루프 월드. 리셋 월드. 정해진 결말을 겪어가며 수 천번, 수만번의 시행착오 끝에 친구들을 전부 현실세계로 돌려 보내고 혼자 아무도 없는 의식세계에 남는 다는 내용입니다. (비공식 우리말 패치도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몰래' 구해서 해보시길 바랍니다.)

학원물 + 의식세계속의 갇힌 설정 정도가 두 작품간 커다란 공통점으로 스토리의 근간을 이루는 소재가 제법 유사하죠. 물론 소설과 게임 사이에는 캐릭터들의 고민과 갈등과 해결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문제삼을 부분은 없습니다.

아무튼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에서 미스터리 포인트는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자살한 친구는 누구?
2. 의식세계로 친구들을 가둔 이는 누구?
3. 사진에는 없는 불청객은 누구?

3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비하면 궁금증을 유발하는 곳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범인(?)의 정체가 전부 밝혀지는 결말까지 읽고 나면 추리소설 보다는 캐릭터들의 고민과 해결을 통해 성정하는 일종의 '청춘소설'에 더 가깝다고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분량에 비해 미스터리 강도가 낮은 이유에도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추리 부분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보조바퀴에 불과할 뿐이죠. 그럼에도 3권 중반 넘어서 등장하는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은 제법 그럴싸합니다. 분량이 약간 많아서 그렇지 1,2번을 추리하는 건 쉬운 편입니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는 본격적인 추리+학원물 같은 분위기를 기대한 독자한테는, 기대밖의 소설일지도 모릅니다. 마네킹을 이용해, 일반적 추리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살해당한 시체를 표현하는 방식은 의식세계에서의 퇴출=현실세계로의 복귀라는 방식으로, 시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살인사건'이 나와야 추리소설 답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게는 밋밋한 느낌도 들겁니다. 하지만 학창시절 이런 저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는 독자나 또는 현재 고민중인 분들에게는 한 번정도 읽어도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평점 6 / 10

2008년 10월 23일 목요일

나전미궁 - 가이도 다케루

2006년 가도카와쇼텐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나이팅게일의 침묵> <제너럴 루즈의 개선>에서 이어지는 시라토리가 등장해서 활약하는 시리즈 4탄-으로 봐도 무방한- <나전미궁>입니다. 시간대도 책 순서대로 이어집니다. 단, 나이팅게일과 제너럴 루즈는 한 세트로 생각해야겠지만요.

제너럴 루즈 막바지에 히메미야-얼음공주-의 잠입조사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나전 미궁>에서 얼음공주는 간호사로 분장(?)해서 사쿠라미야 병원에 위장잠입해서 병원의 정보를 캡니다. 하지만 의도적인지 청성인지 실수연발로 '터미네이터' '미스 도미노' 등의 별명을 얻기도 합니다. 그리고시라토리는 '피부과 의사(?)'로 부임합니다. 환자와 의사(시라토리)가 치료방법을 의논하고 서로 합의하에 처방을 하는 모습은 웃기다고 해야할지, 뭐라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이번작의 테마는 [죽음]입니다. 말기환자의 죽음, 자살하려는 자의 죽음 등, 여러 형태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병원이란 곳 만큼 죽음과 삶이란 동전의 양면 같은 곳도 드물 겁니다. 기존 시리즈도 의료시스템의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을 부각시켰 듯이 이번에도 소재 자체는 어둡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 의대 낙제생인 '덴마 다이키치' (천마 대길 = 럭키 페가수스)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이름과 달리 '언럭키 토네이도'에 연신 당하는 모습이 꽤 웃깁니다. 병원에 자원봉사 갔다가 봉사는 하지도 못하고, 팔이 부러져 깁스하고 얼굴은 베여서 꼬매고, 화상까지 입죠. 여기에 히메미야의 미스 연발과 말기환자 3인방(주인공은 이들을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에 비유하죠.)의 입담이 유머의 핵심입니다. 아, 사쿠라미야 병원장의 입담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마지막에 시라토리가 '완패선언'을 하는 곳도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죠.

변함없이(?) 미스터리 구조는 대단히 취약합니다. 의료시스템에 관한 지식이 없더라도 - 특정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사건의 얼개는 간단합니다. 이런 간략한 미스터리를 캐릭터와 소재로 메꾸고 있는데, 무리해서 미스터리를 강조하기 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끊는 면이 좋더군요. 마니아들에게는 설익은 보리밥 같은 느낌이겠지만요. 이미 전작을 읽어 본 분들은 이 시리즈의 노선이 어떨 것이란 걸 다들 아실거고,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는 독자라면 미스터리조차 포괄하는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이면 괜찮을 듯 싶군요. 그래서 그런지 책 띠지는 '메디컬 엔터테인먼트'라는 문구가 유달리 눈에 띕니다. 사실은 얼음공주 드디어 등장!! 이란 광고문구에 눈이 더 가긴 하지만요.

평점 6 / 10

2008년 10월 18일 토요일

창고의 신 - 오노 후유미

2003년 고단샤 (미스터리 랜드)

2003년도에 고단샤에서 어린이와 어른을 동시에 공략하는 미스터리 동화책 브랜드 '미스터리 랜드'를 처음 선보였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발행한 3권 중 한 권이, 이번에 소개하는 오노 후유미의 <창고의 신>입니다. (같이 발행한 책의 작가는 시마다 소지, 슈노 마사유키가 있습니다. 둘 다 우리나라에는 <점성술 살인사건> <가위남> 등이 우리말로 소개된 적이 있죠.)

오노 후유미 하면 <십이국기>를 대표작으로 호러풍의 라이트노벨, 그것도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작가로 알고 있는 분들도 많겠지만 실은 학창시절 교토대학교 미스터리 서클에 가입한 전력도 있고 신본격 미스터리의 효시라고 불리는 <십각관의 살인>의 핵심 아이디어를 아야츠지 유키토에게 제공한 사람이 바로 오노 후유미라고도 합니다. 나중에는 <흑사의 섬>이란 인습으로 묶인 섬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본격 미스터리도 선 보였습니다. 그리고 <창고의 신>은 호러 테이스트를 살짝 가미한 추리소설입니다. 기본 스토리 라인은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일어난 다툼을 어린아이들 시점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병에 걸려 오늘 내일 하는 할아버지 집에 찾아온 손자 손녀 4명이 창고에 들어가서 놀이-4인게임-를 하는데, 그 놀이는 어두운 창고 안에서 한 명이 다른 아이의 어깨를 건드리면 지적된 아이는 다시 다른 아이를 찾아 어깨를 치면서 한 바퀴 돌아가는 놀이입니다. 하지만 놀이를 끝내고 밖에 나온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합니다. 어느새 인원이 '5명'으로 늘어나 있습니다. 대체 누가 불청객일까요? 아이들은 조목조목 얘기해보지만 전부 처음부터 있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누구인지 밝혀내려고 하기도 전에 아이들의 부모에게 이변이 일어납니다. 독초를 먹고 구토하고 발작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다행히 죽은 이는 없지만 사건은 의도적인 냄새가 풀풀 나죠. 그리고 아이들은 소년소녀 탐정단(?)을 결성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게 됩니다.

미스터리 부분은 확실하게 존재합니다. 일단 처음에는 한 명 늘어난 아이의 정체, 자시키와라시를 찾는 것이고, 다음은 독초를 넣은 범인을 잡는 것입니다. 언뜻 이 두가지는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두 사건은 하나로 합쳐지죠. 알리바이 조사, 망보기 등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려 노력합니다. 아니 여름방학을 맞이해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서 '모험'을 즐긴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에 '자시키와라시'의 정체가 들어나고 독초(행자 죽이기)를 음식에 넣은 범인도 잡습니다.

주요 소재만 보자면 이건 도저히 아동용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나온 독초는 행자 죽이기라는 독초인데 (촌장 죽이기라는 독초는 들어 본 분들 계실 듯)이 독초의 유래나, 자시키와라시 등의 소재는 잘못 건드리면 정말 피가 피를 부르는 대량학살 미스터리로 만들 수도 있을 소재입니다. 그런데 <창고의 신>은 이런 소재를 - 그것도 오노 후유미가 사용했으면서 '아동용'에 걸맞는 레벨로 잘 버무렸습니다. 그래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입니다.

(여담)
얼마 전에 <명탐정 유메미즈 기요시로의 사건 노트 시리즈> 1권이 우리말로 정식으로 발간 됐더군요. 이 시리즈는 원래 초등학교 저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한 아동용 추리소설입니다. 이게 정식으로 소개됐다는 건, <미스터리 랜드 시리즈>도 우리말로 소개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겠죠. 특히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최신작 <깜짝관의 살인>이 '미스터리 랜드'로 나왔는데 이 책이 과연 우리말로 나올지 궁금합니다.

평점 6 / 10

2008년 10월 17일 금요일

백만의 마르코 폴로 - 야나기 고지

2007년 도쿄소겐샤 문고판

13편의 짧은 분량의 단편이 수록되었는데요, 마르코 폴로가 문제를 내고, 같은 감옥안에 있는 죄수들이 문제를 풀려고 하지만 결국 풀지 못하고, 문제출제자인 마르코 폴로가 해답까지 제시하는 구성입니다. 모 소설과 흡사한 스타일입니다.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이 있는 곳에 신출이 들어옵니다. 들어온 사람이 바로 마르코 폴로죠. 감옥에 갇혀 따분해하는 죄수들에게 '여기서 나가게 해주마' 라면서 마르코 폴로는 자기가 겪었던 경험담을 얘기합니다. 나 마르코 폴로가 아버지를 따라 거시기에 갔다가 난관에 봉착한다. 하지만 거시기해서 황금 백관을 받아왔다. 경사로세, 경사로세~ 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며 미스터리 포인트는 어려움에 빠졌는데 어떤 행동을 했길래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냐를 맞추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스터리보다는 수수께끼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싶을 정도의 수준입니다. 힌트는 반드시 들어가 있어서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해답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난이도는 어려운 편은 아닙니다.

<시작의 섬> 읽고 나서 느낀 쾌감 덕분에 이 작가 소설도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고, 역사 미스터리지만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섞어서 미스터리어스한 재미를 느끼게 해준 단편집입니다. 진실 2에 허구 8 정도로 기존 장편보다는 허구 쪽이 더 강합니다. 다만 단순히 마르코 폴로하면 <동방견문록>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실8 허구2 정도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경계선을 애매하게 만들어서 독자를 헷갈리게 유도합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고처음부터 문고판 오리지널로 나왔는데, 아마도 미스터리적 쾌감이 적은 편이라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담) 제목의 '백만'의 의미
표지 한자 보면 백만은 숫자 백만을 의미합니다. 백만장자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영어로는 million이고, 이탈리아어로는 milione 밀리오네입니다. 근데 이 이탈리어 밀리오네는 속어로 '허풍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실제로 마르코 폴로가 동방에서 귀국해서 툭하면 황금 백관이 어쩌구 저쩌구 하다보니 '백만장자' 마르코 폴로라고도 불리웠고 또한 그의 얘기가 허황되게 들려서 '허풍쟁이'라는 뜻으로도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밀리오네=허풍쟁이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 소설 구성도 딱 그런 사실과 부합되게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평점 5 / 10

2008년 10월 15일 수요일

아케치 고고로 대 긴다이치 고스케 - 아시베 다쿠

2002년 하라쇼보 (미스터리 리그)
2007년 도쿄소겐샤 문고판 (사진)

명탐정 박람회II 입니다. ( I 제목은 <진설 뤼팽 VS 홈즈>)

동서(라고 해봤자 어차피 황금기 영미권과 일본이지만) 명탐정을 기용해 아시베 다쿠가 쓴 일종의 팬픽(?)에 가까운 본격 미스터리 단편집입니다. 아시베 다쿠는 이런 쪽에도 조예가 깊던데 ( <그랑 기뇰 성> <홍루몽 살인사건> 등) 이 단편집도 단순한 팬의 입장이 아니라 추리작가+팬 양쪽입장을 동시에 충족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단 표제작 <아케치 고고로 대 긴다이치 고스케>를 들여다보죠. 오사카를 무대로 <혼진 살인사건>을 맡기 전의 긴다이치 고스케와 대륙에서 일본으로 귀향해 도쿄로 가는 도중에 아케치 고고로가 하나의 사건을 갖고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목만 보자면 두 탐정이 추리 대결을 벌일 거라고 섣부른 짐작이 가능한데 실상은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좋은 의미에서 독자의 기대를 바로 저버립니다. <혼진 살인사건>으로 긴다이치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기 전이라는 설정이라 아직은 어리바리한 고스케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변함없이 머리를 벅벅 긁어 대서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건 변함없지만요. 그리고 아케치는 그런 긴다이치 미숙한 추리 덕분에 사건을 해결합니다. 긴다이치 열성팬들에게는 좀 인상이 찌푸려질 수도 있을 법한 내용이지만 저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약재상으로 대립중인 두 집안 중에 본가 소속인 여성 하츠네의 부탁으로 사건을 맡은 긴다이치 고스케는 건너편에 위치한 본가 약재상 2층에서 2명의 괴한이 그 집 남자를 폭행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합니다. 하지만 경찰과 함께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범인과 피해자는 행방불명. 그리고 얼마 후에 피해자는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됩니다. 긴다이치는 바로 사건의 전모를 추리해 보지만 여지없이 빗나가고 맙니다.........이렇게 사건은 이리 저리 바뀝니다. 그래서 중편 분량이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애거서 여사 빠순이로 빼놓을 수 없는 단편인 <그리고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서 사람들은 전부 사라졌다> 입니다. 추리소설 팬이라면 설마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읽어보지 않은 분은 없을 거라 봅니다. (아직도 안 읽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읽어보세요.) 그런 유명한 소설의 뒷이야기, 그것도 비판적 의미의 뒷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편입니다. 오리엔트 특급 열차 안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포와로(푸와로)는 범인은 외부인이 침입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도주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경찰관들은 명탐정의 설명의 외압으로 결국 열차 안의 손님을 제대로 취조조차 못하고 보내주죠. 하지만 ‘명탐정’은 추리를 합니다. 혹시 사건은 이러지는 않았을까? 열차 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결말’이 아니라 사건의 ‘시작’에 불과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마무리에서 포와로는 익숙한 멜로디를 들으며 꿈속에 빠집니다.

Ten Little Indian Boys Went Out To Dine…….

Nine Little Indian..........

One..............

And...................

주인공은 유고슬라비아의 이름 없는 명탐정입니다. 어느 나라건 추리소설은 있을 것이고 그 나라를 대표하는 명탐정도 분명 존재 할 겁니다. 20페이지 정도로 매우 짧은 분량이지만 팬픽이지만 아시베 다쿠의 개성을 잘 보여준 단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스터리보다는 ‘호러’ 쪽에 더 가까운 내용이긴 했지만요.

아시베 다쿠는 원작의 캐릭터나 내용을 모르더라도 ‘독립적’으로 구성했기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원전을 알고 봐야 재미를 125%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단점이라면 미스터리 팬을 위한 미스터리라는 것이겠죠. 브라운 신부가 누구셈? 오리엔트 특급이 뭣임? 아케치 뭐시기 어쨌다고? 긴다이치는 대체 누구심? 김전일은 아는데 ㅎㅎ 이런 독자한테 이 단편집은 재미없는 소설일 뿐입니다.



평점 7 / 10

남의 일 - 히라야마 유메아키

2007년 슈에이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이하 유니버설 지도)>이 국내에도 정식으로 소개되면서 이름을 알린 ‘히라야먀 유메아키’의 또 다른 ‘엽기’ 단편 묶음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1위를 수상했던 단편집 말고도 후속작 (내용 연관은 없음) <밀키 맨>이 환상+공상적인 구석이 많았다면 이번에 소개하는 단편집 <남의 일>은 전작 단편들 보다는 현실적이면서 좀 더 무서운 분위기와 업그레이드된 구체적인 폭력으로 독자를 압박합니다.

총 14 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는데, 표제작이자 첫머리를 장식하는 ‘남의 일’ 단편부터 독자를 압박합니다. 자동차 사고로 벼랑 끝으로 추락하기 직전인 삼인가족을 묘사한 단편입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딸이 있고 사고 후에 딸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부부만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때 지나가던 남자가 접근합니다. 그리고 벌어지는 ‘남의 일’은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라는 걸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딸내미가 복부를 다쳐 내장을 질질 흘리는 걸 그대로 ‘솔직하게’ 부모에게 알려주는 남자.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애원하는 부모에게 ‘내가 왜? 어째서 그래야 되는데?’로 일관하는 남자. 여기에 모든 의식이 집약된 단편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가며 읽었던 폭소 연발 단편 ‘아들 해체’가 이어집니다. 제목대로 ‘아들’을 해체할 수밖에 없는 ‘부모’를 그리고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된 아들은 부모한테 폭력을 일삼고 여기게 견디지 못한 부모는 공모해서 아들을 살해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전동톱’ 카탈로그를 훑어보면서 ‘가격대 성능비’ 좋은 톱을 구매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톱으로 썬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한 대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

세 번째는 ‘단 한 입으로’ 라는 단편으로 유명한 요리평론가의 딸이 유괴됩니다. 유괴범은 집으로 찾아와 아내한테 자신이 만든 요리를 남편이 먹어보고 올바른 평가를 내린다면 딸을 돌려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론가인 남편은 유괴범이 요리한 요리를 먹어 보고 외치죠. ‘이 자식 내 딸을!!’ 예, 그런 단편입니다.

이 밖에도 ‘새끼 고양이와 천연가스’에서 보여준 젊은이들의 이유 없는 폭력, 이에 저항도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노인, ‘정년기념’에서 보여주는 현대 남성의 말로, ‘쉬어 꼬부라진 바비큐’는 모처럼 가족이 산으로 바비큐 파티를 하러 갔다가 시체를 발견하지만, 남의 일로 치부하며 무시하다가 당하는 가족의 말로, ‘레자레는 무섭다‘는 업무일지, 메모, 편지, 인터넷 게시판, 전화통화 등이 끝말 잇기 식으로 이어지는 내용으로 직접적인 폭력보다 더 무서운 간접적인 폭력의 말로를 보여줍니다.(가장 미스터리적인 단편입니다.)

그리고 막판에 등장하는 ‘인간실격’ 자살하려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먼저 자살할 테니 네가 양보해라 옥신각신 다투는 내용인데, 이게 또 걸작으로 웃깁니다. 물론 마지막은 ‘남의 일’이란 제목에 딱 맞는 내용으로 마무리를 짓지요.

어차피 남의 일. 남이야~ 뒈지던 말든 치부하던 그런 생각을 소설로 극대화 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별 생각 없이 뱉은 말이 실제로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는 직접 겪어보면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겁니다.

아무튼 맛보기(?) 첫 단편부터 독자는 반 이상은 나가 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유니버설 지도>를 이미 읽어본 독자라면 어떤 내용이 기다리고 있을지 반 정도는 추측가능할 겁니다. <유니버설 지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 역시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독자를 선택합니다.

평점 7 / 10

2008년 10월 4일 토요일

[시계성] 살인사건 - 기타야마 다케쿠니



2002년 고단샤 노블즈 (제24회 메피스토상 수상)
2007년 문고판 (사진)

기타야마 다케쿠니의 데뷔작입니다. 메피스토 상 수상을 했다고 해서 오히려 경원시 했던 소설인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다 읽게 되었습니다. 읽고 나서 땅을 쳤습니다. '진즉에' 읽을 걸! 하고 말이죠.

미나미 미키. 한 손에 보우건을 들고 유령퇴지를 하는 탐정입니다. 때는 1999년. 세계는 멸망을 향하고 있다는 암울한 설정은 판타지입니다. 이런 미키 앞에 '쿠로쿠 루카'라는 소녀가 찾아와 자기가 사는 클록성에 나오는 '스킵 맨'이란 유령을 퇴치해달라고 합니다. 루카와 미키, 미키의 파트너 나미는 클록성으로 향하고 그곳에서는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제목만 보면 전형적인 '미스터리 제목'입니다. 하지만 소설 도입부를 읽고 '역시' 메피스토 상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설의 본 사건이 벌어지고 결말까지 읽고 나니 '정통 본격 미스터리'였습니다. 세기말 판타지 설정입니다만, 실제 사건의 트릭과 진실은 '유령' 같은 보이지 않는 힘이 개입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세개의 커다란 시계탑 같은 폐쇠된 관 안에서 벌어진 불가능한 살인사건. 범인이 시체의 목을 잘라간 이유? 잘라간 목을 다시 진열한 이유? 범인은 누가? 범인은 어떻게 불가능 범죄를 실현했을까?

근본이 되는 것은 물리 트릭입니다. 사용한 물리트릭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트릭을 위한 트릭이 아닙니다. 실로 간단하면서도 맹점을 찌르는 트릭입니다. 이 트릭은 아마 알아차리는 분은 금새 알아차릴 것이고, 모르는 독자라면 나중에 트릭해설 그림을 보고 무릎을 탁 치게 될 겁니다. 안타깝게도 전 초반 설정을 보자마자 바로 트릭을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클록성 살인사건>은 물리트릭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지만, 실제로는 트릭이 밝혀지고 나서 벌어지는, 탐정이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가 재미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나중에 이 책을 읽을 분들 중에 혹시 트릭이 생각보다 싱거운데? 라고 안심한다면 당할겁니다. 참고로 이 소설에 서술트릭은 없습니다.

왜 배경을 판타스틱한 세기말로 했을까? 음울한 사건과 진실 그리고 결말을 세기말이란 키워드에 겹쳐보면 어느정도 납득이 갑니다. 하지만 그런 설정을 싹 빼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소설 안에서 배경설정과 관련한 밝히지 않은 '비밀'이 남아서 뒷끝이 좀 좋지 못합니다. 후속작을 의식해서인지 실제 유리성 살인사건, 앨리스 미러 살인사건 등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엿보이는 소설입니다. 기대이상(?)으로 괜찮았기에 다른 소설도 기회가 되면 읽어볼 예정입니다. 밀린 책이 하도 많아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평점 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