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30일 화요일

허수아비 ~ 사막의 망자들 - 마이클 코넬리

2009년
2010년 우리말 (랜덤하우스)

<시인>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를 사로잡았을 사건기자 잭 매커보이가 부활(?)했습니다. <허수아비>는 전작에서 무려 12년이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LA타임즈 기자지만 정리해고 대상으로 잘려버린 중년 남성이 되버린 잭 매커보이가 신문사를 나가기 전에 한 껀 터트리게 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완전 퇴직까지 2주간의 유예기간을 받은 잭은 후임자인 미모의 젊은 여기자-연봉은 잭보다 한참 낮은- 안젤라와 인수인계를 합니다. 그러던 중에 청소년이 살인범으로 자백했다는 한 사건을 주목하게 되고 여기서 뭔가 냄새를 맡게 되죠. 해서 파고들다 '대어'를 낚게 됩니다. 하지만 범인은 디지털의 '제왕'이었습니다. 아날로그 세대인 잭은 순식간에 포도 떼이고 차도 떼이는 그런 형국에 처하고 말죠. 그러나 잭에게는 든든한 아군 '퀸'이 있었죠.

뭐 마이클 코넬리 소설 답게 술술 잘 읽힙니다. 빠르게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구글 스트리트 뷰와 사생활 침해 논란이었습니다. 소설 내에서도 범인이 피해자를 감시(?)하는 부분에서 보면 비슷합니다. 현대사회는 무척 편해지긴 했지만 의외로 사생활 보호에 있어서는 무척 취약하다는 것과 일맥 상통하더군요. 단일 생활권이네 인터넷이네 편하긴 합니다만, 내 행동이 전부 데이터베이스화 되어서 어딘 가에 저장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심기가 불편해지죠. 그래서 어떤 이들은 무슨 무슨 회원카드네, 신용카드네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현금만 사용한다고도 합니다. 한 집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만 잘 조사해도그 집의 생활패턴이나 사는 사람들의 성격까지 유추가 가능하다고도 하는데, 신용카드 구매내역만 잘 조사해도 소비패턴을 잘 알 수가 있을테니까요.참 무서운 사회입니다.얘기하다보니 엉뚱한 곳으로 빠지긴 했는데, 아무튼 <허수아비>의 범인은 디지털입니다.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킵니다. 반면에 잭은 취재를 위해 이리 저리 발품을 팔아야하는 아날로그입니다.

범인의 정체는 초반에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류 미스터리에서 항상 예상하 듯이 독자들도 이런 저런플롯을 예측해보곤 하는데, 아마 그런 예측이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겁니다. 안 좋은 의미로 말이죠. 더 이상 말하면 재미를 갉아 먹을 것 같아서 입방아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플롯 자체는 긴장감과 속도감이 어우러져 읽는 재미는 분명 있습니다. 다만, 마무리 한방이 부족합니다. 다 좋았는데 마무리가 느슨합니다. 반전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실망스러울 겁니다. 대신 과정이 재밌기에 그 부분에 집중한다면 재미를 해치지는 않을 겁니다.

평점 6 / 10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 와카타케 나나미

1999년 고분샤
2002년 문고판
2010년 우리말 (작가정신)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 무척 인상적이었전 작가 와카타네 나나마의 색다른 시리즈가 우리말로 나왔습니다. 일본식 코지 미스터리인데, 하자키라는 가상의 무대를 배경으로 거기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1탄이 이번에 소개하는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입니다.

 한적한 주택단지내 3호실에서 신원불명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덕분에 인근 주민들이 술렁이는데, 형사들은 사건을 살인으로 보고 탐문수사를 합니다. 그러면서 인근 주민들이 숨기고 있던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결국 두번째 사건도 벌어지고 말죠.뭐 그런 내용입니다.

생각보다 페이지 수가 되긴 하는데, 활자 크기가 무척 큰 편이라 실제로는 400페이지도 안 되는 그리 두꺼운 녀석은 아닙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유머가 깔려 있어서 부드럽게 술술 책 장이 넘어가기도 하고요. 사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건 누가 '탐정'역할이냐? 였습니다.초반에보면 이 캐릭터는 반드시 죽겠구나 감이 오는데,예상대로 죽어주어서(......) 사건의 재미(?)를 살리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대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묵념 삼초를 했습니다.아무튼 형사와 탐정 범인을 생각하면서 마지막까지 보면 은근히 신경 써서 플롯을 작성한 것이 눈에 띕니다. 게다가 와카타케 나나미 하면 읽고 나서 뭔가 모르게 씁쓸한 듯 하면서 오싹한 느낌을 위해서인지, 작가의 래퍼토리인지 아무튼 큰 기대는 가지면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 기대해봄직한 결말도 보여줍니다.몹시 재밌어서 여기 저기 추천하고픈 녀석은 아니지만 입문용 미스터리로서는 손색 없습니다. 살인이 나오지만 심각하지 않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미스터리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을 추천해 봅니다.

평점 6 / 10


일본 위키 정보에 따르자면 '하자키' 시를 무대로 한 시리즈는 전부 5편입니다.

1999년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2000년 고서점 어제일리어의 시체
2000년 쿨 캔디 (중편) (쇼덴샤)
2006년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
2008년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자이브)

빌라, 고서점, 네코지마는 전부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고(우리말도 전부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 나머지 두 편은 곁다리 같은 녀석인 듯 합니다. 쿨 캔디는 중편 성격상 제대로 우리말로 나오기는 어려워 보이고,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는 모르겠네요.

2010년 11월 27일 토요일

헤이디스 바이러스(Covert One: The Hades Factor)

2006년

에볼라 바이러스의 변종인 헤이디스 바이러스가 미국을 위협하고 거기에 맞서는 주인공의 눈물겨운 싸움을 그린 영화. 심심하면 등장하는 아프가니스탄에 세균전에 거기에 이슬람 테러리스트까지 이제는 너무 식상해서 뻔한 소재를 갖다가 있을 법하게 미국식 자본주의를 거들먹 거리며 포장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영화가 너무 길다. 이렇게 길 이유가 없는데, 길다. 극장용 보다는 그냥 TV 방영용 특집극 수준인 듯 한데, 그래서 긴 건가? 아무튼 내용에 비해 쓸데없이 긴 것이 가장 큰 감점 포인트.

그 외에는 적인지 아군인지 첩보 비스무리한 흉내를 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오밀조밀 짜임새 있게 잘 짠 머플러가 아니라 초보자가 그냥 메뉴얼 보고 흉내내 듯이 짠 목도리인 듯 해서 목에 둘러도 전혀 따뜻하지가 않다. 흐름은 계속해서 끊기고, 사건의 아귀는 눈감고 맞춘, 이건 아무리 봐도 제작 단계에서 생긴 불량품이다. 특히 마무리 처리는 그야말로 허무. 정말 허무하다.

'난 남아 도는 게 금이야~' 하는 사람들한테나 추천하고 싶다. 그래도 초반에는 좋았다. 초반만에만..........

평점 2 / 10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검은 목의 교실, 친구를 부른다 - 김근우

2010년 이타카

진산의 <바리전쟁>, 오트슨의 <괴담갑>과 함께 이타카에서 선보인 신괴담문학 브랜드로 나온 녀석으로 '산군실록 시리즈 01'이란 타이틀도 함께 붙은 녀석이다. 일단 작가 김근우 하면 하이텔과 나우누리 천리안으로 대표되는 모뎀 시절 PC통신 커뮤니티, 그중에서도 하이텔 판타지동호회(정확하진 않지만)였나 아무튼 거기서 연재되던 '바람의 마도사'가 김근우의 데뷔작으로 알고 있다. 주인공 라니안의 세심한 감정묘사가 일품이었던 - 때로는 너무 찌질스럽기도 했다만 - 우리나라 초창기 판타지 소설이었는데, 김근우는 다작 작가는 아니었다. 후속작 <광검>은 <바람의 마도사> 외전 격이었고, <흑기사>는 속편보다는 그냥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다른 녀석에 가까웠다. 여기까지는 전부 하이텔 시절 실시간 연재로 봤던 것 같은데, 이때까지는 서양 세계관을 차용한 판타지였다면 그 후에나온 <위령> <피리새>는 동양적 세계관을 사용한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등장한 <검은 목의 교실, 친구를 부른다>는 후자에 속하는 녀석이다.

처음 책을 집어들면 분량이 생각보다 꽤 된다. 한페이지당 26줄이 들어간 활자량 하며, 페이지는 무려 430페이지. 두껍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괴담갑>이 볼품없어 보일 정도다. 특이했던 점은 소설은 1부와 2부로 편의상 나뉘어져있는데, 이 중에 1부가 웹상에서 연재됐다는 것이다. 아마 김근우를 잘 모르는 요즘 독자들을 끌여들이기 위한 일종의 낚시(?)였지 않나 싶긴 한데, 아무튼 1부는 꽤 밀도있는 긴장감과 사건을 서서히 진행시키는 수법하며 호러에 걸맞는 내용을 재밌게 보여준다. 3년전 사건 이후로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이서영. 그래서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새친구와 사귀기 보다는 스스로 남들과의 인연을 끊으려고 노력하는 그녀에게, 과거 악몽(?)이 스물스물 다시 찾아오는데......해서 서연이가 겪는 일을 1부에서 주로 다루고 있다.

 1부까지는 상당히 흥미진진한 내용을 보여준다. 일단 광고 문구도 호러 미스터리라고 했으니, 미스터리쪽도 내심 기대가 되기도 하고, 과연 어떤 전개를 보여줄지 두근거리는 마음에 펼쳐든 2부. 하지만 2부에서 성질이 확 바뀐다. 1부에서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주인공이 처에있는 상황에서 오는 긴장이 주는 재미가 1부의 핵심이었다면, 2부는 정반대다. 자세히 말하면 헤살이 되버리니 뭐라 더 말하기 껄끄러운데 아무튼 아마 2부에서 실망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면 캐릭터 소개에 가까운 '프롤로그' 같다는 느낌이 딱 들어서 딱히 나쁜 느낌은 아니지만, 모처럼 달아올랐던 몸이 곧바로 식어버려서 그게 아쉽다.  연재당시에 1부가 문제편이란 말만 없었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충격적인 미스터리가 전혀 없다. 전혀~~. 그게 제일 아쉬웠다. 최소한 <해한가> 2, 3권 정도만 됐어도....하는 아쉬움이 크다. (해한가도 딱히 미스터리까지는 아니다.)

미스터리는 실망스럽지만 아직은 더 두고볼 여지가 큰 시리즈이다. 어쨌든 1권은 캐릭터 소개에 가까운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서영이 앞으로 만나게 될 사건이 기대된다. 그때는 좀 더 미스터리 에센스를 '듬뿍' 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참 1부는 지금도 이타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평점 6 / 10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괴담갑 1면 - 오트슨

2010년 이타카

이타카라고 하지만 시드 노벨 발간하던 디앤씨미디어에서 브랜드명을 새롭게 만들어서 판타지 소설을 출간하는 듯하더니만, 그 안에서 다시 신 괴담 문학이란 광고를 하더니 첫 타자가 진산의 <바리전쟁>이었습니다. 진산하면 무협작가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어! 진산이!! 이런 반응이 먼저 느껴졌는데,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 초창기에 유명한 <바람의 마도사>의 작가 김근우 작품도 들어가더니만 (산군실록 시리즈) <미얄 시리즈> 신간은 어디 가출했는지 소식 없던 오트슨의 신작이 3탄으로 나왔습니다. 제목은 괴담 匣.

 신 괴담 문학이라고 하니 괴담이 주가 되는 것일 텐데, 아무튼 미얄 시리즈를 재밌게 읽었으니  당연히 읽었습니다. 일단 1권까지만 맛만 봤는데 (현재 기준으로 겨우 2권까지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일단은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아직 1권에서는 눈에 띄게 재밌다! 흥분된다! 병신같지만 무서워! 같은 반응은 나오지는 않지만, 다음 권이 기대된다! 정도로 재밌습니다.

 안에는 붉은 메뚜기와 냉동 사탕 두 가지 이야기가 수록됐습니다.

 전자는 단편, 후자는 장편입니다. 물론 주인공은 작중화자 '나'입니다. 나라는 여자가 좀 특이한 구석이 있는데, 우연히 만난 한 남성과의 겪은 무서운(?) 이야기가 붉은 메뚜기이고, 어쩌다 보니(?) 학교 선생이 되어서 겪게 된 '오싹한' 이야기가 냉동 사탕입니다.

 일단 기본 페이스는 공포입니다. 상자 안에 가두어놓은 메뚜기들이 서로 잡아먹으면서 점점 붉게 바뀐다는 이야기는 단순하면서 자극적인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판도라 상자와 푸른 수염식 구성으로 허를 찌르는 마지막 결말처리는 공포라는 기본재료에 미스터리라는 향신료를 곁들인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구성은 냉동 사탕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더군요. 그래서 신 괴담 문학이라고 광고는 하지만 광의의 미스터리로 접근해도 지장은 없습니다. (같은 브랜드로 출간된, 김근우의 <검은 목의 교실.......>은 아예 호러 미스터리로 광고하더군요. )

 미얄 시리즈와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미얄은 아무래도 개그와 만화 같은 구석이 다분히 포진해있는 녀석인지라, 그런 쪽 코드를 아는 독자들에게 더 잘 맞았던 반면에, <괴담갑>은 좀 더 대중적인 이미지를 노린 듯합니다. 아직 1면은 오트슨의 장기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서 더 지켜봐야겠다는 태도지만, 독자들 뒤통수를 확실하게 때려주는 내용으로 나온다면 뜻밖에 미얄보다 더 인기를 끌 수 있는 시리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자면, 책 가격에서 출판사의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일반 단행본 스타일이지만 정가는 9천 원입니다. 요즘 보통 책 가격이 기본 만원에서 만원 초반대인걸 고려하면 비교적 저렴합니다. 라이트 노벨이 주 소비층인 독자를 슬며시 끌어올리는 효과를 노린 듯도 합니다만, 아무튼 잘 돼서 작가와 독자 둘 다 웃을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평점 6 / 10

 여담) 표지와 일러스트를 잘 뽑아냈더군요.

 여담2) 미얄 시리즈에서 목에걸린 생선가시마냥 부분적으로 거슬리던 문장이, 괴담갑에서는 거의 찾기 힘들정도로 잘 다듬어졌습니다. 일반 단행본이라고 좀 더 신경을 쓴 것일까요? 아무튼 좋은 현상입니다.

문학소녀 견습생의 첫사랑 - 노무라 미즈키





2009년 패미통문고
2010년 우리말(학산X노벨)

본편 시리즈 완결편이 우리말로 나온 후에 단편집과 외전(사진)도 우리말로 발간 예정이라고 해서 계속 기대하고 있었던 터라, 늦게나마 본작품이 정식발간 된 것이 무척 기쁘다. 일단 문학소녀 신 시리즈는 외전 꼭지를 달고 있고, '견습생'이란 부제가 달라붙는다. 사실 수습생이란 말이 더 맞는 것일 테지만, 뭐 이미 견습생으로 출간됐으니 좀 아쉽다. 아무튼 견습생 소녀 히노사카 나노가 주인공인데, 첫눈에 이노우에 코노하에게 반해 속공 대시로 그에게 접근해 이런 저런 만담(?)을 나누는 장면이 상당히 코믹하게 그려진다. 소설 안에서는 상당히 평범한 외양이고, 머리가 짧으면 소년으로 착각할 정도라고는 하는데, 일러스트만 봐서는 무척 귀엽고 이쁘다. (일러스트 담당 다케오마 미호 그림때문이겠지만)

내용은 동반자살이 주제이다보니 자살을 두고 개개인의 생각여하에 따라 이번 내용은 웃길 수도 있고, 심각할 수도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라는건 결국 자살하는 당사자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외부인은 거기에다 동기가 뭐네 저네 소리나게 떠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 지론이다. 단지 <문학......첫사랑>에서 아쉬운 대목은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까지 그 사이의 플롯 진행이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초반부 캐릭터 소개에 페이지 수를 제법 할애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런 부분을 제외한다면 전형적인 문학소녀 스타일이다. 이제는 졸업하고 없는 전대 문예부장의 뒤를 이어 이야기 속에 숨은 진실을 '상상'하는 역할을 코노하가 잘 맡아서 하고 있는 걸 보면 감개무량하다고 해야할지, 뭐라 해야할지. 뭐 여전히 찌질스런 부분은 엿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 시리즈가 주목되는 이유는 결말이 뻔하다는 것이다. 뻔한 결과는 독자도 알고 작가도 알고 편집자도 알고, 아무튼 다 아는 데도 기대되는 건 역시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과정 속에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한소녀의 첫사랑이 안타깝지만 기운차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리라. 사랑하는 소녀는 강하다.


여담1) 마지막에 실린 쇼트쇼트는 솔직히 불필요한 녀석이었다. 1권의 마지막을 코노하의 회심의 대사로 멋지게 끝냈는데, 막판에 뚱딴지 같은내용이 나와서 온도가 급감하고 말았다.

여담2) 처음 원서로 읽을 적에는 별로 주목하지 못했는데, 재독하면서 눈에 띈 캐릭터는 나노의 친구 '후유시바 히토미'다.  나노와 히토미 사이의 에피소드가 나온다면 왠지 재밌을 법한 녀석이 많을 것 같아서 그런 쪽 단편도 기대해봄직 하다.

문학소녀와 사랑하는 삽화집 1 - 노무라 미즈키


2009년 패미통문고
2010년 우리말 (학산X노벨)

문학소녀 시리즈 본편을 즐겁게 읽은 독자들들을 위한 단편과 짤막한 에피소드 모음집이다. 본편에서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던 소재나 이야기를 단편을 이용해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본편과 단편을 링크시키는 재미가 있는데, 물론 본편을 전부 읽어야 하는 전제가 깔려있긴 하다. 그 외에도 시간대 순서가 본편 보다 더 전의 이야기이거나 (히메쿠라 마키 이야기), 본편과 병행해서 벌어지는 이야기 (대표적으로 류우토 이야기), 본편의 후일담 이야기(아쿠타가와 이야기 등) 등가 있다.

 처음 원서로 집었을 때는 아쿠타가와 에피소드가 괜찮았는데, 이번에 우리말로 다시 읽으면서 병약한 소녀 에피소드가 의외로 와닿았다. 둘이 잘 됐을지 안됐을지 명기하지 않고 작중 소재로 삼은 이야기를 빗대어 암시하는 걸로 끝내는 구성이 소녀틱한 것이 무척 맘에 들었기 때문이리라. 

 참, 고토부키 이야기는 삽화집 2권에서 나온다. 아마 그걸 기대했던 독자라면 좀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전뇌코일 전 26 화 (2007)

왼쪽부터 이사코, 교코, 덴스케(개), 후미에, 야사코

2007년 NHK 전 26 화

<전뇌코일>이 완결난 지 벌써 3년 정도 흘렀습니다. 당시에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이 흥했을 때라 NHK에서 방영한 교육 애니메이션 일환이었던 - 실제로는 교육이라 보기에는 좀 애매합니다만 - <전뇌코일>은 입소문은 탔을 지언정 큰 인기를 끌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캐릭터 디자인이 마니아들의 '지갑'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의 주인공 나노하도 <전뇌코일>의 주인공들고 마찬가지로 초등생이었지만 나노하는 마니아의 욕구를 자극하는 요소가 많았던 반면에 전뇌코일은 마니아가 아니라 남녀노소에게 부담없이 받아들여질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첫인상은 <전뇌코일>은 작금의 일본 애니메이션 그림체와는 동떨어져있습니다. 동서양 불문하고 무난하게 받아들여질만한 디자인입니다. 그런데도 <전뇌코일>이 주목 받았던 이유는 다름아닌 '스토리'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촘촘하게 손수 짠 머플러 같이 따뜻한 내용이거든요. 일단 장르는 SF입니다. 전뇌 안경이란 디바이스를 통해 가상과 현실의 접목을 이용한 내용인데, 이게 처음에는 아이들이 버추얼 리얼리티를 통해 겪는 일상물 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첫 화는 주인공 오코노기 유코가 아빠 전근 따라 새도시로 이사오면서 여동생 교코와 전뇌펫(가상펫) 덴스케가 미아가 되서 찾는 내용입니다.  초반에는 이렇게 일상 이야기 같은 내용을 보여주면서 이것 들이 전부 하나로 이어집니다. 떡밥을 하나 둘 씩 뿌리거든요. 수상한 기술을 쓰는 여자애의 등장.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틈바구니에 얽힌 비밀 등등. 이야기는 계속해서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진행된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 깔끔하게 끝나죠. 다만, 지극히 일본적인 결말이다보니 그 부분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 않나 싶긴 합니다만, 뭐 아이들도 보는 건데 배드 엔딩으로 끝내면 항의 좀 들어올 듯도 합니다. (.....)

처음에는 단순히 초등생들 나와서 왁자지껄 하는 내용의 단순한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지만 보면 볼 수록 내용 전개에 감탄하면서 처음 가졌던 선입견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어른들이 봐도 충분히 재밌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오히려 너무 어린애들은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못 할 지도 모를 정도로 세계관을 형성하는 기술이 상당히 근미래 지향적이거든요. 플롯을 진행시키는 수법도 훌륭합니다. 매회를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적절하게 꾸며놓은 구조가 인상 깊습니다. 게다가 전반에 걸쳐 깔리는 복선과 그걸 적절하게 회수하는 건, <전뇌코일>을  SF 미스터리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정도입니다. 미스터리로 생각하고 접근해도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수작 중의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제28회 일본SF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가끔 벙찌는 작품이 수상해서 황당한 상이긴 합니다만 <전뇌코일>은 당연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수상결과였습니다.

3년전 글을 다시 올린 이유는 소설판 <전뇌코일>이 이번에 전 13 권으로 완결났기 때문입니다. 소설판도 시간 되면 읽어보곤 싶긴 한데, 이놈의 환율.....OTL 참고로 소설은 애니와는 스토리가 다르다고 합니다.

평점 7 / 10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라디언트 히스토리아 - 아틀라스

 http://www.amazon.co.jp/exec/obidos/ASIN/B003YXYU92/mmostation-22/ref=nosim

2010년 아틀라스 (NDS)

NDS로 오랜만에 나온 '수작' RPG입니다.
<여신전생> <페르소나>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역시라는 말이 나오긴 합니다만, 아무튼 최근에 나온 일본식 RPG중에 <라디언트 히스토리아>는 플레이 해 볼 가치가 있는 녀석이
라는 것이 중요하겠죠. 게다가 재밌기도 하거든요.

재미의 핵심은 씨줄과 날줄로 얽힌 스토리입니다. 일단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엮입니다. 정사와 야사로 생각하면 되겠네요. (게임에서는 정통과 이전으로 구분합니다.)  주인공 스톡(남)은 아리스텔 왕국 정보부 소속의 군인입니다. 정보부장 하이스의 밀명을 받아 새로 들어온 부하를 데리고 임무를 수행하러 갑니다. 하지만 스톡 일행은  적국의 매복에 걸려 새부하들은 죽고 스톡 또한 절체절명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그때 하이스가 스톡에게 건네준 '백시록'이란 책이 반짝이면서 <라디언트 히스토리아>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책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설정된 포인트에 한해서 자유롭게 이동해서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시스템입니다. 정사 루트에서 어떤 사항 때문에 더 이상 스토리 진행이 곤란하다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 야사 루트로 건너가고 거기서 실마리를 찾아다가 정사로 돌아와서 다시 진행.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스토리가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주인공의 동료와 주인공을 도와주는 다른 캐릭터들의 사이드 스토리가 엮입니다. 이 사이드 스토리들을 얼마나 열심히 완수하느냐에 따라서 마지막 엔딩이 조금 달라집니다. 기본적인 엔딩은 같지만 '에필로그'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의 후일담이 바뀌게 되죠. 그래서 열심히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스토리를 완성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합니다. 특히 마지막 에필로그가 충실하게 나오니까 대충 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클리어하는 걸 추천합니다.

전투는 민첩에 의존한 턴제 시스템입니다. 일본식 RPG에서 아직까지도 흔하게 보이는 시스템입니다만,몬스터들은 그리드라는 3x3 공간 안에 배치 됩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에 가까운 곳 부터 해서 전열, 중열, 후열로 구분되고 전열에 몬스터가 있을 수록 공격력이 강해서 아군에게 피해를 많이 줍니다. 대신 아군도 몬스터에게 피해를 많이 줄 수 있죠. 그러다가 중열, 후열로 갈수록 그 수치가 떨어집니다. 일종의 거리감을 이용한 공수 설정이겠죠. 물론 이런 거리와 무방하게 대미지를 일정하게 줄 수 있는 마법이나 원거리 공격 또는 설치형 공격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핵심사항은 몹들의 위치를 전후좌우로 바꿀 수 있는 '스킬'입니다. 가령 몹이 전열에 1마리씩 총 3마리가 있다면 가장 좌측 몹을 우측으로 한 칸 옮기고, 가장 우측 몹을 좌측으로한칸 옮기면 전열 가운데에 3마리가 모이는데 이렇게 되면한 번의 공격으로 동시에 3마리를 공격할 수가 있거든요.아군이 턴을 갖고 있는 동안에는 이렇게 몹을 효율적으로 몰아다가 단숨에 공격하는 것이 <라디언트 히스토리아>의 전투 핵심이죠. 공중에 띄워서 콤보 연결하고 낙하시켜서 대미지를 추가하는 것도 있고, 트립을 설치해놓고 좌우 몰아다가 트랩으로 몰아넣어서 순살시키는 것도 있고, 몹몰아 죽이는 건 몇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투도 단순 턴제로 지루하지 않고 어느 정도 즐겁게 즐길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는 트랩이 워낙 사기적이라 밸런스가 무너집니다만.......)

초중반가지 스토리가 하나둘 밝혀져가는 과정도 즐겁고, 스토리 보드를 하나하나 메꾸어 가는 재미도 있고, 전투도 아기자기하니 즐길만합니다. NDS로 나온 RPG중에 손가락으로 꼽을 완성도를 갖춘 녀석이 아닐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드래곤 퀘스트9>보다 <라디언트 히스토리아>가 더 재밌었습니다.

평점 7 / 10

떨어지는 녹색 - 다나카 히로후미


2005년 동경창원사
2008년 문고판

1993년 고분샤 <아유카와 데쓰야의 본격추리>에 응모해서 단편부분 입선을 해서 작가 데뷔했다고 하는 다나카 히로후미. 당시 입선한 단편이 이번에소개하는 '떨어지는 녹색'입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아유카와 데쓰야도 칭찬(?)했다고도 하던데, 어째선지 다나카 히로후미는 SF판타지,호러류 소설을 집필하게 됩니다. 미스터리와는 많이 동떨어진 세계에서 놀다가 동경창원사의 요청으로 부활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93년도 단편이 2005년도 단행본에 실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동경창원사측의 요청사항은 말장난도 없고, 개그도 없는 제대로된 미스터리였다고 하더군요. 물론 실제 그런 내용의 단편 미스터리가 됐느냐?는 별개의 문제겠지만요.

아무튼 총 7 개 단편이 수록됐습니다. 1개는 표제작이자 데뷔작이고, 5개는 동경창원사의 미스터리 잡지에 연재됐던 것이고, 나머지 1개는 단행본 발간에 맞추어 새롭게 쓴 신작 단편입니다. 해서 7편. 제목에는 전부 '색깔'이 들어갔습니다. 녹색,노란색, 검정색, 푸른색, 빨간색, 핑크, 갈색 그런 식입니다. 색상이 선명하니 일단 이미지가 확 머릿속으로 들어오는데, 재밌는 건 이 단편 미스터리들은 전부 '재즈'가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제목은 시작인데, 실제 내용은 청각이 주가 되니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실제 탐정역 주인공인 나가미 히타로는 작중 화자인 나=가라시마가 이끄는 가라시마 퀀텟에서 테너 파트를 담당하는 뮤지션입니다. 천재적인 재능과 자기만의 자유로운 음악성을 갖고 있는 캐릭터로 자기가 관심있는 음악 이외에는 좀 무지합니다. 그런 설정의 캐릭터가 음악고 관련된 이런 저런 사건을 만나고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장르는 본격 쪽보다는 '일상' 계열에 가깝습니다. 걔중에는 본격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녀석도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미스터리보다는 재즈 쪽 비중이 더 크게 느껴지거든요. 이렇게 느낀 이유는 각 단편의 뒤에는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작가가 사족 비슷하게 라 창작노트를 달아 놓았는데요, 거기에서 재즈 음반 소개가 나오는데, 이게 '진국(?)'입니다. 미스터리 단편은 졸지에 부가 되고 사족 비슷하게 들어간 녀석이 주인 행세를 하더군요. 뭐 그렇다고 저는 재즈 마니아도 아닐 뿐더러 재즈는 그냥 수 많은 음악 중에 하나로 특별히 재즈가 좋다!는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음악 자체는 좋아하다보니 아무래도 눈길이 그리로 끌리더군요.

 미스터리 완성도는 솔직히 좋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이 꽤 맘에 들었습니다. 일종의 밀실물인데, 탐정이 사건의 진행을 보고 범인의 성격을 유추합니다. 그리고 한한정된 용의자와 함께 연주를 하는데, 각 파트의 솔로 연주 부분에서 돌발상황을 연출해서 용의자의 성격을 알아보고 범인인지 아닌지를 따지게 되는데, 돌발행동이 꽤 신명(?)나게 그려집니다. 그런 부분은 다른 단편에서도 꽤 나오는데 문자로 되어있는데 귓속 어딘가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분 좋은 묘사가 인상 깊습니다. 그래서 미스터리만 놓고 보면 썩 맘에 들진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밌게 잘 읽은 단편집입니다. 후속편도 있다는데 기회가 되면 계속 읽고 싶네요.

평점 6 / 10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인체모형의 밤 - 나카지마 라모

1991년 집영사
1995년 문고판
2009년 우리말 (북스피어)

출판사중에 개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북스피어'에서 야심차게(까지는 모르겠지만) 출간한 나카지마 라모의 대표작 중 하나 <인체모형의 밤>은 이색적인 단편집입니다. 책 제목과 같은 단편은 들어있지 않고, 단편 제목을 잘 보면 눈, 코, 귀, 무릎, 배꼽, 위, 팔 등 '신체부위'가 꼭 들어가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그걸 그대로 제목가 연결 지어서 생각해보면 아하! 하게 됩니다.

각 단편의 내용은 직접 읽어보면 알 것 들이니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하고, 장르 이야기나 좀 해야겠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미스터리 카테고리에 넣어도 괜찮겠습니다만, 그 앞에 넓은 의미라는 말이 '반드시' 붙어야 합니다. 여기에 호러 맛을 내는 양념이 첨가되었는데, 그 맛이 진하게 남는 단편과 그렇지 않은 단편이 혼재해 있고요. 아니면 그냥 괴담 같은 내용으로 끝나는 단편도 있습니다. 여기에 오컬트 같은 내용도 등장하는 등 ( <가다라의 돼지>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탁!하고 무릎을 치겠네요.) '기묘한 이야기'라는 말로 갈음할 수 있을 정도로, 딱 잘라 이거다라고 장르적 목사리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약간은 으스스한 기묘한 이야기 정도가 어울립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내용의 단편들을 갖다가 짤막한 TV드라마로 방영하곤 하더군요. 그 드라마 시리즈를 전부 보진 못했지만 -이마무라 아야의 단편이 드라마 원작으로 쓰인 건 봤습니다. - 아마 나카지마 라모의 단편도 몇 개 쓰였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무릎', '날개와 성기'가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무릎 경우는 연극으로 마지막 장면까지 재현했다던데 도대체 연극으로 어떻게 상영했을지 상상이 가질 않네요.^^ 날개와 성기는 약간은 엽기적인 이미지의 단편이긴 한데, 여기에 폭력과 피를 첨가하면 히라야마 유메아키 이미지가 떠오르더군요. 이쪽도 연결 지으면 그런 식으로 고리가 이어질 듯 합니다만 그냥 개인 감에 의존한 거다보니 신뢰도 빵점이니 그냥 신경 쓰지 마시길....

아무튼 <가다라의 돼지>를 이미 읽어본 사람이라면 망설일 것 없이 <인체모형의 밤>도 집 책장에다가 소중하게 꼽아놓으면 되겠습니다. <인체모형의 밤>을 먼저 읽고 재밌었는데, <가다라의 돼지>는 아직이라면 뭘 망설이시나요? 바로 휴가내고 책 읽으세요. ㅋㅋ 아직 나카지마 라모와 신경전 중이거나 탐색전 중이신 분은 미친 척 읽어보길 권합니다. 미치면, 아니 정신줄을 '포기'하면 편하죠.

평점 6 / 10

2010년 11월 1일 월요일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 아카가와 지로

1981년 각천서점
2010년 우리말 (살림)

아카가와 지로 초기작품이면서 역시 의외로 우리말로 나와서 놀랐던 녀석입니다.  이미 <마리오네트의 덫> 우리말 출간으로 깜짝 놀라긴 했지만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마저 나올 줄은 미처 상상도 못 했거든요. 최근 <삼색 고양이 시리즈 - 구판에서는 얼룩 고양이 시리즈로 번역>도 속속 재간되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롭더군요.

책 내용은 4명의 유부남이 팀을 이룬 창작 집단에서 각자 '마누라를 죽이는' 내용의 소설을 쓰기로 합니다. 각자 특색이 맞게 일반소설, 시나리오, 인터뷰, 문학소설 분위기를 내면서마누라 죽이기 소설을 집필하는데, 현실에서 소설 속 내용이 실제로 벌어지고 맙니다. 당황한 남편들은...............

4명의 현실 이야기와 4개의 가상 이야기가 서로 겹치면서 이루어지는 미스터리입니다만, 뭐 미스터리 보다는 그냥 서스펜스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고, 그 앞에 '가벼운'이란 수식어를 하나 더 달아주면 적절합니다. 그래서 대강의 줄거리만 보고 너무 기대를 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원래 아카가와 지로의 작풍이 이런 스타일이니까요. (작품중에는 찾아보면 이런 가볍고 유머스러운 내용과는 동떨어진 녀석들도 있긴 합니다만 초기작 중에 한하고 나중에는 아예 찾아보기도 힘들어집니다.)

분량도 무척 얇고 진행은 빠르고 문장은 거침없이 술술 읽힙니다. 작가의 중후기에서 보이는, 심각한 페이지 문자 결핍도 보이지 않아서 뭔가 소설 다운 소설 느낌도 들고요. 네 작가가 창작한 네 가지 이야기도 패턴별로 등장해서 뷔페같은 기분도 들어서 좋죠. 그리고 각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도 됩니다. 본격 작가들이 썼다면 심각한 내용이 됐을지 모르는데, 작가 덕분인지 시종일관 개구쟁이들의 장난 같은 분위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더군요. 때문에 깊이가 없는게 흠인데, 작가의 작풍이 그런걸 어쩌겠습니까? 독자가 알아서 골라야죠. 아무튼 짓궂은 내용이지만 가볍고 말랑하고 달콤한 솜사탕 같은 미스터리風 소설을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은 괜찮은 선택이 될 겁니다.

평점 6 / 10

유령열차 - 아카가와 지로


1978년 문예춘추
1981년 문고판 (사진)

표제작인 <유령열차>을 포함,총 5편의 단편이 들어간 '아카가와 지로'의 데뷔작입니다.

 경시청 조사1과의 오니경부(귀신도 잡는 형사)라고 불리우는 - 외모는 정반대지만 - 주인공인 내가, 온천 마을에서 벌어지는 열차 내 승객 집단 소실 사건, 속칭 유령열차 사건의 조사를 위해 휴가를 위장해 수사에 착수한다. 여관에서 나는 탈의실 해프닝으로 여대생 '나가이 유코'와 알게 된다. 그녀도 유령열차 사건에 흥미를 갖고 찾아왔다고 하는데, 대체 사라진 8명의 승객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 단편으로 작가는 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했습니다.  처녀장편인 <마리오네트의 덫>이나 <사자(죽은자)의 학원제>등에도 관심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유령 시리즈>를 전부터 꼭 읽고 싶었습니다. 그런 소원을 이제서야 달성했습니다. 실은 <얼룩고양이 홈즈>시리즈를 읽으면서 그때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니 꽤 오래된 소원이기도 하네요.

 아무튼 작가후기에서도 밝혔듯이, 당시에는 드문, 가벼운 분위기와 간단한 트릭과 추리로 호평을 받았던 단편이라는 점을 떠올리고 읽는다면 꽤 재밌게 읽을 수 있더군요. 이 단편이 나온 78년도에는 일본에는 사회파 추리소설 들이 주로 대세를 이루던 시절임을 감안한다면 '아카가와 지로' 스타일의 가벼운 추리 소설은 신선한 맛이 강했을 것이다. 이렇게 시대조류와 빗겨나가는 녀석은 언제나 환영이죠.  하지만 표제작 <유령열차> 보다는 두번째 단편인 <배신당한 유괴>가 플롯이나 완성도가 더 좋더군요. 


 어느 실업가의 딸이 유괴당하고, 경시청총감이 직접 거론해 은밀하게 수사에 착수하는 주인공.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유괴된 소녀의 가정교사를 맡고 있던 '나가이 유코'와 재회하게 된다. 표면적인 사건 그리고 숨어있는 사건의 구조를 짧은 단편안에 밀도 있게 잘 그려넣은 단편입니다. 전편에서 후속편을 암시하는 내용대로 젊은 여대생에게 휘둘리는 중년 형사라는 유령시리즈의 기본 구도도 여기서 확립됩니다.

 진지하게 추리 소설을 대하는 분들에게는 너무 가벼운 소설입니다. 하지만 본인 처럼 가벼운 소설이나 무거운 소설이나 보통은 잘 가리지 않고 - 무거운 소설은 아무래도 뒷끝이 안좋아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기도 하지만 - 읽는 분들에게는 일독을 해도 후회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 되기에는 아마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자비심(?) 넘치는 출판사가 나타나서 <유령열차>와 <마리오네트의 덫> 그리고 <사자의 학원제> 정도는 정식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거의 팔리기는 힘들겠자만요. (여담. 마리오네트의 덫은 2010년도에 우리말로 정식 간행되었습니다. 소만문 작성 시기는 2007년도)

평점 7 / 10

살인이여, 안녕? - 아카가와 지로


1984년 가도카와쇼텐 (사진은 나중에 재간된 신장판)

 오늘 아빠가 죽었다. 어제일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런 일이야 어찌됐든 나랑은 상관없다. 그게 아빠는 언제나 일, 일, 일 이라고 외치면서 1년의 반 이상을 해외출장을 나간다. 그런 아빠를 아이답게 사랑하라고 해도 나한텐 무리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빠를 죽인 사람은 엄마라는 사실을.....

 2학년 여중생 '유키코'가 작중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리소설입니다. 세부적으로는 본격보다는 서스펜스 쪽에 가깝겠네요. 시니컬한 유키코의 말투와 대사가 소설 전체를 장식하고 있어서 읽는데 어려움은 전혀 없습니다.  무척 스피디하고 깔끔하게 잘 읽히죠. 90년대 이후의 아카가와 지로 소설처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같은 수준도 아니라서 토막난 문장 보는 괴로운 맛도 거의 없고요.

 제목 <살인이여 안녕>은 아무리봐도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의 오마쥬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빠를 죽인 엄마와 함께 여름방학을 맞이해 바닷가 별장으로 놀러간 유키코.  그런 유키코 앞에 엄마의 재혼상대인 젊은 남자가 등장하는 등, 전체적인 분위기가 꽤 비슷하게 흘러가죠. 이밖에도 아카가와 지로의 첫 장편소설 <마리오네트의 덫>은 프랑스 추리소설 고전인 세바스티앙 자크의 <신데렐라의 함정>과 유사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가는 초창기에는 프랑스쪽 소설에서 모티브를 꽤 따온게 아닌가 싶죠.  (여담이지만, 일본에서는 <마리오네트의 덫>이 꽤 호평을 받는 고전격이지만 본인의 감상으로는 <신데렐라의 함정>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신데렐라 함정>도 닳고 닳은 마니아가 지금 읽는다면 재미가 좀 떨어질지 모르지만, 제가 처음 읽었을때는 꽤 충격적인 전개였습니다. 범인=피해자=탐정 이란 공식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지금이라도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나중에 구지라 도이치로는 이걸 응용해서 <두 명의 신데렐라>라는 엎치락 뒤치락 미스터리를 발표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살인이여 안녕>은 별장에 놀러간 날 한 여자가 살해당하고, 유키코는 바닷가에서 누군가의 공격을 받아 익사당할 뻔한 일이 벌어지면서 유산을 둘러싼 싸움이 엄마의 재혼문제가 얽히면서 미스터리 플롯을 만듭니다.  일단은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알리바이 트릭도 나오지만 범인의 정체는 꽤 싱겁더군요. 범인의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고 하지만 보고 있으면 그게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쉽습니다. 단지  주목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마지막 결말처리입니다. 소설 초반부의 복선과 연결된 결말 처리가 깔끔하더군요. 추리하는 잔재미는 없지만 여주인공과 돌발적인 결말 등 전체적으로는 읽을만한 소설입니다.

 찾아보니 후속작도 있더군요. 제목은 <살인이여, 안녕~>입니다다. 여기서 소개한 안녕은 '안녕하세요'의 인삿말 안녕이고, 후속작의 안녕은 헤어질때 인삿말 '안녕히가세요'의 안녕입니다.

평점 5 / 10

마리오네트의 덫 - 아카가와 지로


1981년 문예춘추 (사진은 나중에 재간된 '신장판')
2010년 우리말

'유령열차' '얼룩고양이 홈즈의 추리' '세자매탐정단' 등의 여러 시리즈로 엄청난 다작 작가로 유명한 아카가와 지로의 처녀장편소설이다. '사자와 학원제'가 먼저 출판됐지만 탈고는 '마리오넷의 함정'이 더 빠르다고는 하면서 서로 처녀작이네 뭐네 싸우는 건 그 쪽 사정이고 우리는  세세한 것까지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작가의 초기 장편소설 정도로 인식하면 충분하다.

 일단 <마리오네트의 덫>이 보여주는 감성은, 80년대 후반을 넘어 90년대와 2000년대의 아카가와 지로 작풍과는 많이 다르다. 초창기 그의 소설을 보면 미스터리스런 플롯의 강도가 훨씬 강하고, 상황이나 묘사 관련 부분도 많고 분량도 어느 정도 되는 편인데 이런 것들이 뒤로 갈수록 줄어들고 순수 대사 위주로만 플롯이 진행되면서 갈수록 읽는 맛이 떨어져간다. 나중에 모 인터뷰에서 결말을 살정하지 않고 쓴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고도 하던데 - 온다 리쿠 아줌마도 같은 스타일 - 그럼에도 아카가와 지로의 초기작 중에는 괜찮은 작품들이 꽤 많다. 아무튼 데뷔 후 지금까지 거의 500권 가까운 소설을 썼다는데 지금은 과거의 참신함은 전부 사라져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아...지금도 '여고생'들이 자주 나오는 걸 보면 그떄나 지금이나 그건 비슷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마리오네트의 덫>은 작가 초기작으로 특기사항으로는 '여고생'이 일절 나오지 않는다. 등장하는 여성 연령대도 대부분 20대 이상이다보니 묘한 이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  내용은 추리소설쪽 보다는 그냥 한 편의 '헐리우드 영화'를 적당히 즐겁게 보는 느낌의 가벼운 서스펜스 물 정도로 보면 좋겠다.  감이 좋은 독자분들은 이번에도 바로 배후의 주동자를 색출할 수 있을 것이다.  '억 소리나는 반전' 같은 건 없으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라. 하긴 해설의 오버스러움은 - 해설대로라면 개나 소나 다 양질 소설이니 - 여기서는 그냥 무시하고 본인은 그냥 '평작' 정도로 점수를 주고 싶다.

평점 4 / 10

(추가)
어느새 우리말로 이 작품이 나왔더군요. <유령열차>가 더 먼저 나오지 않을까 예상은 했었는데, 의외로 이 녀석이 나와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아카가와 지로의 초기작에는 '프랑스풍'이란 말이 어울리는 단어가 생각날 정도로 그 쪽을 의식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마리오네트의 덫>은 제목부터가 그렇습니다. 초판이 나온 시기를 감안한다면 그럭저럭 읽을만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