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이니시에이션 러브 - 이누이 구루미



2004년 하라쇼보
2007년 문예춘추 문고판
2009년 우리말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연애소설'이다. 그런데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내용일까? 참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클로즈드 서클 안에서 벌어지는 스릴 넘치는 연애질 이야기일까? 혹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진범? 이러면서? (정말 이렇게 나왔다면 유치가 피박쓰고 가출할 설정이다...)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처음 읽을 경우는 단순한 연애소설로 받아들이기 쉽다. 아니 그냥 연애소설이 맞다. 첫 미팅에 나갔다가 마음에 쏙 드는 여자애를 만나고, 서로 데이트를 하다가 사랑을 고백하고 첫 경험도 하면서 애인사이가 된다. 하지만 남자가 취직하면서 둘은 원거리 연애를 하게 되는데 남자는 직장 동료 여성과 바람이 나서 결국 그쪽으로 갈아탄다는 그런 내용으로 말이다. 이 얼마나 흔해빠진 이야기인가?

그런데 마지막 대사 한 마디 - 정확히는 십 몇 줄 전부터이지만 - 로 세계가 확 바뀐다.
어? 어?
그동안 독자가 인식해왔던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일그러진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캐릭터는 뭐지?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 작가가 어디서 '미스터리적 효과'를 노렸는지, 그 노림수를 독자들도 그제서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전에 이미 다 간파했다고 작가를 비웃었을 독자들도 있겠고, 복선을 엄청나게 깔았기 때문에 비웃어야할 독자가 반드시 나와야 정상이다.)

그렇다고 해도 독자에 따라서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생각보다는 '분노'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뭐 이딴 소설이 다 있어? 하면서 말이다. 아니면 별 같잖은 것 가지고 독자를 우롱하면 다냐!! 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 소설 안에 쓰인 복선을 전부 회수한 사람이 있을까? 물론 여기는 한국이니까, 일본사정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해도 지난의 업이었을 것이고 네이티브 일본인이었다고 해도 80년대 후반의 일본을 모르는 일본애들한테는 먼 나라 이야기였을 거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요즘 청소년들보고 80년대 대한민국 어쩌구 하면 대화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뭐 우리나라 독자보다는 조금은 유리 했겠지만 말이다.

이런 짜증날정도로 복선을 마구 마구 뿌리는 습성은 '이누이 구루미'의 특징 중 하나다. (물론 작가의 모든 소설이 그런 스타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 1999년 독자에게 묻매를 맞았다고 알려진 <탑의 단장>이 그런 스타일의 대표작인데, 오죽하면 문고판 해설은 작가 이누이 구루미가 직접 맡아서 '나는 이렇게 이런 식으로 단서와 복선을 배분했는데, 이게 단서인지 복선인지 구분도 못하면서 단순히 찍어서 맞췄다고 독자들의 욕을 얻어먹는 것에 유감스럽다'(본인이 대충 기억나는대로 쓴 거라 작가 원래 의도와 반하는 내용일지도 모름, 감안해서 봐주시길 바람) 라는 변명을 곁들이고 있다.

<탑의 단장>도 <이니시에이션 러브>와 같이 서술트릭을 사용한 미스터리다.
소설 초반부는 탑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여성을 묘사한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서술 트릭을 채용하고 있다. <탑의 단장> 쓰인 트릭을 간파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소설 프롤로그에서 등장하는데, 작가는 무척 대담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문제는 시간을 나타내는 소품으로 쓰인 것이 'ㄷ의 XXX'였다는 점이다. 마니악하다면 마니악한 단서였다는 것이 문제.

나는 <탑의 단장>을 꽤 흥미롭게 읽었지만, 일반적인 미스터리 독자들의 성향에는 맞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5년 후 탄생한 것이 아마 <이니시에이션 러브>가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 대사 한 마디로 세계가 무너지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이미지가 바뀌는 캐릭터, 나는 여기에 <이니시에이션 러브>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본다. 그걸 나타내기 위해 이래도 모르겠냐? 이래도 모르겠어? 이 복선을 전부 찾아낼 수 있겠어?라는 작가의 도전장을 받는 기분이 들 정도로 잡동사니를 다 끌어다가 사용하고 있다. 역시 경우 가장 알기 쉬운 복선은 <십각관의 살인>이지 않을까 싶은데, 뭐 독자에 따라서 다 다르겠지만....

여담) 우리말 쪽이 표지와 소제목에 딸린 노래 가사 등등 원서보다 단서를 더 제공한다.

여담2) <이니시에이션 러브> 성공 후에 나온 녀석이 <리피트>이다. 재밌는 점은 <리피트>에도 시간 묘사가 <이니시에이션 러브>과 똑닮아있다. 그래서 독자 중에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거시기했을 법한데 결과는..........?

평점 8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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