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2일 금요일

섬머 아포칼립스 - 가사이 기요시

1981년
1996년 도쿄고센샤 문고판 (사진)

<섬머 아포칼립스>는 현상학 탐정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 중의 하나이자, 평론가로 더 유명한 가사이 기요시의 본격 미스터리 대표작입니다. 야부키 가케루 시리즈는 <바이 바이 엔젤>을 시작으로 <섬머 아포칼립스> <장미의 여자> <철학자의 밀실> <오이디푸스 증후군>까지 나왔습니다.

이 시리즈를 읽기 전에 먼저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상학하면 '후설'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겁니다. 겉으로 드러난 외면을 중시한 실증주의적 접근방법에 대한 비판을 타고 나온 현상학적 접근방법이란, 외면 보다는 내재된 '내면'을 중시한다고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정황은 살인이라고 해보죠.
살해당한 피해자를 통해 알 수 있는 표출된 행위(지문채취, 증거, 살해당한 시간 등등). 이 표출된 행위를 중시하는 것이 실증주의라면, 살해당한 피해자를 통해 범인이 의도한 행위를 중시하는 것이 현상학입니다. 그래서 본격 미스터리와 현상학을 겹쳐서 생각해보면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섬머 아포칼립스>에서 나오는 4건의 사건도 마찬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제1사건은 밀실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인데, 피해자는 '2번' 살해당합니다. 머리를 쳐서 죽여놓고 어째서 범인은 '화살'로 피해자를 2번 죽였을까? 사건이 있기 전에 등장한 '성경의 묵시록을 인용한 경고장'의 의도는? 요한 묵시록에 나온 4기사에 얽힌 내용대로 차례차례 살해당하는 피해자.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중시한다면 꽤 '세기말'스런 상황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왜' 범인은 이런 '결과'를 원한 것일까?라는 접근방법을 취하면 의외로 미스터리 얽개는 단순명료해 집니다. <여름의 묵시록>은 이런 미스터리 상황을 잘 잡았습니다. 소설에서 와트슨 역할을 맡고 있는 나디아 모갈은 전형적인 실증주의적 접근방법으로 사건을 추리하는 캐릭터입니다. 사건 당시 일어났던 '깨어진 창문'에 초점을 맞추고 이리저리 추리를 해보지만 전부 꽝이죠. 그에비해 홈즈역 야부키 가케루는 첫번째 사건이 일어나고 바로 범인이 누군지 맞춥니다.

일단 커다란 줄기는 위의 미스터리가 되겠고 두 번째 줄기는 야부키 가케루와 시몬느라는 여성과의 사상대결입니다. 선과 악. 악과 악. 선과 선. 사상대결은 이 시리즈의 공통사항입니다. 게다가 이번 작에서 주인공은 아예 '미스터리' 해결보다는 '사상대결' 쪽에 관심을 더 두고 있죠. 오히려 '미스터리'를 사상대결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합니다. 탐정은 범인이 살인을 저지르건 말건 알 바 아닌거죠. 주인공 야부키 가케루는 이미 첫번째 사건이 일어나고 '진범'의 정체를 다 파악합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범인을 (일부러) 내버려두고, 시몬느와의 사상대결을 위한 도구로 활용할 뿐입니다. 진실을 파헤치기 휘해 고군분투하는 일반적인 명탐정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야부키 가케루는 '루시퍼'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꽤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미스터리와 사상대결을 감싸는 큰 줄기는 카톨릭 이단 '카탈리파'의 재보를 찾는 탐정 야부키 가케루와 와트슨 나디아 모갈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중세 유럽의 어두운 역사부터 시작해서 나치와 테러리즘 까지 벼라별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그래서 페이지 수가 늘어났다고 생각합니다만 후속작의 페이지 수를 보면 <섬머 아포칼립스>는 '양반'이겠죠. (<철학자의 밀실> 문고판-1권짜리-가 대략 1,600페이지 정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본격 미스터리 본연의 재미 + 사상대결의 재미 + 소설 자체의 재미. 3요소가 균형있게 잘 맞아들어간 잘 쓰여진 추리소설입니다. 시리즈 전부를 읽을 생각이 없다고해도 <섬머 아포칼립스> 정도는 추천합니다.

평점 7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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