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고단샤 노블즈
<차가운 학교의 사간은 멈춘다>로 데뷔한 작가의 세번째 장편 소설입니다. 데뷔작은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까지 첨부한 고교생들의 청춘 미스터리였고, 후속작 <밤과 노는 아이들>은 대학교를 배경으로 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였습니다.
하지만 세번째 소설 <얼어붙은 고래>는 딱잘라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물론 마지막에 세계관과 연결되는 '반전'이 들어가있긴 하지만 과연 그것만 가지고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죠. 그래도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캐릭터들의 '성장'이란 요소를 극대화하고 '미스터리' 강도를 상당부분 낮게 책정했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충분히 미스터리로 읽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인공 아시자와 미호코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입니다. 사진작가였던 아버지는 실종 상태고, 그 후에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미코호지만, 어머니마저 암판정을 받고 투병중입니다. 이런 고독한 미호코를 지탱하는 원동력은 아버지의 추억이기도 한 <도라에몽>입니다. 일본에서 도라에몽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불러도 좋을 겁니다. 그만큼 유명한 만화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아기공룡 둘리>정도의 위치를 갖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얼어붙은 고래>는 <도라에몽>에 등장하는 유명한 아이템들을 일부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 말미 참고문헌에는 당당하게 <도라에몽>이 들어가있을 정도죠. (도라에몽이 대체 뭐냐? 하는 분은 검색사이트에서 도라에몽으로 검색해보세요.)
아무튼 어릴적 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미호코는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바보취급합니다. (물론 속으로죠) 이 대목은 은연중 뜨끔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학창시절 책벌레라는 소리를 들을정도로 문학,학술서를 미치도록 탐독하던 과거의 내가 꼭 그랬으니까 말이죠.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홀로 남겨진 느낌. 미호코의 그런 느낌이 절절하게 와닿습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속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비치면 '손해' 보는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래서 미호코는 일종의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철한 그런 소녀죠. 상대방의 수준에 따라 거기에 맞춰서 겉모습을 바꾸는 카멜레온 같은 생활을 합니다.
이런 미호코가 학교 도서실에서 아키라라는 남학생을 만나면서 변해갑니다. 일면식 없는 아키라는 미호코에게 자신의 사진 모델이 되달라고 부탁합니다. 물론 미호코는 거절하지만 그 후에 아키라는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선물할 목걸이를 사는데 같이 가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키라와 미호코의 교류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미호코에겐 헤어진 남친이 있습니다. 와카오라는 법대생으로 '요즘 젊은이 중에 쓰레기의 전형'같은 캐릭터입니다.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지만 그 꿈을 위해선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실패를 하면 모든 걸 주변탓으로 돌리는 그런 인물입니다. 철저한 자기중심 캐릭터죠. 지금은 헤어졌지만 와카오는 게속해서 미호코를 치근대고 미호코도 그런 와카오를 내버려둡니다. 하지만 미호코가 변해가면서 와카오와의 관계도 착실하게 바뀌어갑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사이코'(아니 스스로는 정상이라고 하겠지만)로 변해가는 와카오. 아키라와의 만남, 이쿠야라는 소년, 주변 친구의 응원으로 성장하는 미호코는 와카오와 관계 청산을 시도합니다만, 와카오가 그걸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죠. 혹시 지금 사귀고 있는 애인이 있다면 고민은 한 번씩 해봅시다. 헤어지고 나서도 뒷끝이 없는 사람일지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에서 <도라에몽>과 오버랩되는 반전으로 미호코는 슬픈 행복을 손에 거머쥡니다. 떠날 자는 떠나고 남은 자는 남은 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래서 테마는 <가족愛>가 됩니다. 이렇게 보니 역시 미스터리보다는 일반 성장소설로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낫다 싶기도 하네요. 이런 스타일은 후속 소설에서도 변함없는 걸 보면 작가는 미스터리가 가미된 성장 소설로 낙찰을 본 듯 싶습니다.
평점 6 / 10
소설 속에 '후미'라는 소녀가 카메오로 나오는데 <나의 메저스푼>의 그 '후미'가 맞습니다.
같은 세계관을 갖는 소설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밤과 노는 아이들> -> <얼어붙은 고래> = <나의 메저스푼> -> <방과후 이름찾기>
가 되겠네요. 고래와 스푼은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서로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도 됩니다만 나머지는 되도록이면 순서대로 보는 걸 추천합니다. (아 물론 따로 읽어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이왕이면 순서대로 읽는 편이 더 재밌습니다. 그러고보니 국내에는 <밤과 노는 아이들> 이후로는 정식으로 간행될 기미가 보이질 않네요.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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