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창원추리문고
<먼 약속>은 우리나라에는 <열여덟의 여름>이란 미스터리 단편집이 작년에 소개된 적이 있는 '미쓰하라 유리'의 실질적인 데뷔작입니다. 총 6 개의 단편이 수록되었고, 이 중에 3개 단편은 '먼 약속 I, II, III' 형식으로 중간에 다른 단편이 막간극 형식으로 들어갔습니다. 실제로는 연작 단편집이라고 보는 편이 좋겠죠. 뭐 그냥 장편으로 인식해도 괜찮습니다.
나니와 대학 문학부에 입학한 사쿠라코. 어릴적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그녀는 대학교 추리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데, 때마침 동아리 신입부원 모집광고지를 보고 미스터리 연구회에 가입합니다. 그곳은 선배 3명이 회원 전부인 조그마한 동아리였죠. 세 명의 남자 선배는 삼인삼색입니다. 쿨하면서 톡 쏘는 논리성을 중요하는 와카오 선배. 분위기 메이커이자 - 사실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싶은 - 구로타 선배. 그리고 같은 문학부 소속이자 섬세하며 자상한 시미즈 선배. 사쿠라코는 이제는 입이 아플 정도인 '전형적인' 와트슨 역입니다. 물론 홈즈는 선배 3명입니다.
사쿠라코는 11년 전에 외가쪽 친척 할아버지랑 나눴던 '작은' 약속이 있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할아버지랑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중에는 '엘러리 퀸' 처럼 둘이서 합작해서 추리소설을 쓰자는 약속이었죠. 하지만 사쿠라코가 글 쓰기를 결심하기 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유언장이 발표되어야 하지만 유언장의 장소는 '암호'로 숨겨 놓았습니다. 이 유언장의 장소를 찾는 암호풀이가 단편 '먼 약속 1,2,3'의 주요 내용입니다. 그래서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암호 미스터리'로 들어가겠습니다. 특히 주요 암호는 '엘러리 퀸'가 밀접한 관계가있기 때문에 퀸 팬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정도 까지는 아니겠지만- 꽤 재밌는 전체상을 보여줍니다. '퀸 마니아'라면 해답을 즉석에서 맞출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먼 약속>은 독특하게 홈즈 역이 3명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말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탐정역을 맡은 3명의 캐릭터 분담이 절묘하기 떄문이죠. 논리, 감정과 동기, 분위기 메이커 이렇게 딱 3명이 각각의 포지션에 위치해서 협력하는 모습이 밸런스 좋게 그려져있습니다.
'구로타가 일부러 말도 안되는 추리를 해준 덕분에 우리의 추리가 더 쉽게 받아들여졌다'
'난 여기까지. 동기나 감정 쪽은 시미즈한테 바통 터치다.'
각각의 단점을 서로 커버하는 형식이죠.
그리고 이 모든 건 사쿠라코 시점에서 기록됩니다. 하지만 <먼 약속>의 '치명적인' 단점도 이 부분에서 발생합니다. 소설의 키워드인 '약속'과 실제 사쿠라코가 11년전에 했던 '약속'이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인데 정작 중요한 주인공은 그저 '방관자'입장에 있을 뿐입니다. 실제 마지막 암호는 주인공이 풀어야 하는 부분인데 정작 사쿠라코는 탐정 선배들의 암호풀이를 듣고 있을 뿐이죠. 그 부분이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마지막 암호는, 선배들은 단서를 암시하고-다른 단편에서- 마지막에 사쿠라코가 직접 암호풀이를 했더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랬다면 점수+1은 더 줬을 겁니다.
아쉬운 면이 확실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역시 미쓰하라 유리 답다고 해야겠죠. 일상미스터리 계열인 듯 하면서 실제로는 본격 테이스트의 암호 미스터리였고, 캐릭터 조형이나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작가 성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뭐 암호 풀이에서 작위적인 곳이 있긴 합니다만, '에라이 그럼 그렇지'라는 감상보다는 '뭐 그정도 쯤이야' 정도로 독자가 흔쾌히 넘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작가의 힘이 아닐까 싶군요.
여담이지만 표지와 삽화는 '노마 미유키'가 담당했습니다.
평점 6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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