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우리말
최근 몇 년 사이에 일본 소설 번역 러시가 이루어졌고 그 중에서 미스터리 쪽이 괄목하 만한 성장을 보여줬는데, 시장성이 있다는 판단이 있어선지 하라 료 작품도 드디어 우리말로 정식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하라 료의 데뷔작 <내가 죽인 소녀>는 아주 오래 전에 국내에 무판권으로 번역되서 미스터리 마니아들 사이에 회자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모 출판사에서 정식계약을 맺고 '사와자키'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하라 료의 작품을 전부 소개한다고 한다. 상당히 고무적인 소식이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는 미스터리 중에서 정확하게는 '하드 보일드'에 해당한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향내가 짙게 배어난 소설로 '오마쥬'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원작을 뛰어넘는 것 아닌가 하는 '주제넘은(?)'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완성도 또한 높다.
하드 보일드 미스터리하면 일단 의외성에서는 많은 점수를 깎아 먹고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플롯 상 A를 만나고 여기서 단서를 얻어서 B를 만나고 실마리를 포착해서 C를 만나고, 그러다가 마지막에 그냥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끝나버린다. 이런 플롯은 하드 보일드 뿐만 아니라 판타지, 무협, 이른바 어드벤처물 등 여러 유형에서 발견되는 공통사항인데 이런 정형적인 구조에 큰 틀의 변화없이 악센트를 준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그런데 하라 료의 사와자키 시리즈는 그걸 해냈다. 그래서 비평, 독자 양쪽으로부터 호평을 이끌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도 주인공 사와자키가 의문의 외뢰인(?)을 만나면서 사건은 시작한다. 자신을 가이후라고 칭하는 한 남성으로부터 시작한 사건은 사에키 나오키라는 르포라이터의 실종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다시 얼마전 있었던 도쿄 도지사 후보 저격사건과 괴문서 사건으로 연결된다. 물론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건의 전모가 백일하게 드러나면서 끝을 마무리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위에서 언급한 정형적 구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솔직히 그렇게 보여야 하는게 당연하다. 이렇게 개략적인 줄거리만봐서는 흔하디 흔한 또 다른 하드 보일드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450페이지가 넘는 - 약간은 두툼한 -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런 선입견을 싹 날아갈 것이다. 거의 막바지까지 단순학데 보였던 플롯은 마지막에 뒤집어지고 마지막에 미워도 다시 한번!이란 심정으로 회심의 직구로 진실을 밝힌다. 이래서 일직선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 별 다른 추리할 필요도 없이 - 저절로 구조가 밝혀지는 시덥잖은 하드 보일드 스타일의 미스터리와의 차별화에 성공한다. 시종일관 무게감 있는 듯 한 분위기부터 애잔함을 거쳐서 입가가 씰룩거릴만한 유머스런 요소까지 잘 짜인 플롯과 진한 스파이스가 독서를 감칠맛 나게 한다. 필립 말로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필립 말로? 그게 누구야? 말보로? 라는 독자가 있다면 그런 독자라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결론은..........추천작이란 소리다.
다음 작은 <내가 죽인 소녀>인데 하루 빨리 다시 우리나라 미스터리 독자앞에 제대로 선보였으면 한다.
평점 7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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