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4일 화요일

거대한 청중 - 나가이 스루미

2000년 신초사
2005년 창원추리문고 (사진)

<거대한 청중>은 우리나라에는 <카카오 80% 여름>이라는 아동 대상 미스터리로 이름을 알린 - 아마 알고 있는 분은 극히 적겠지만요 - '나가이 스루미'의 장편 미스터리입니다.

피아니스트 아즈미 카이. 삿포로 음악축제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려고 한 카이 앞에 한 통의 협박장이 도착합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B플랫 장조, 통칭 [함머클라이비어]로 알려진 악곡을 '완벽하게' 연주해라. 안그러면 네 약혼자 미카리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원래 계획된 악곡은 전부 변경하지만 첫 날 '함머클라이비어' 연주는 실패합니다. 사실 이 곡은 카이가 5년전, 지금은 죽은 딸을 위해 혼신의 연주를 했던 곡입니다. 딸 '아이리'는 신부전으로 카이의 신장이식을 받지만 합병증으로 결국 죽습니다. 딸이 죽은 이후 봉인했던 '함머클라이비어'. 하지만 약혼자인 미카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연주를 해야하는 부담감이 카이를 짓누르죠. 그리고 2번째, 3번째 콘서트날에도 연주는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리고 마지막 콘서트날 카이는......

일단 기본 소재는 클래식 음악 입니다. 주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가 언급되고, 등장인물 대부분도 음악관계 종사자입니다. 그래서 삿포로에서 일종의 탐정역을 맡는 '센도 무라사키'라는 여성은 카이와 대학시절 동창으로 피아노 전공을 했던 적이 있지만 현재는 삿포로에서 클래식 콘서트 기획 등의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카이의 약혼자 미카리가 실종된 런던에서 탐정역을 맡는 '에토 마사키'는 카이의 매니저입니다. 음악적 소양은 없지만 '돈'을 만드는데는 귀재인 그런 젊은이입니다. 이번 유괴사건을 통해 카이의 지명도를 다시 한 번 높이고 돈까지 벌 요량으로 동분서주압니다. 그리고 카이는 일종의 재능있는 피아니스트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약혼자인 미카리는 성악 전공입니다. 여기에 카이의 스승이자 미카리의 할아버지인 에이세이. 그리고 삿포로 콘서트에서 카이의 실패를 철저하게 비웃는 듯한 비평을 내린 음악평론가 칸자키까지. 대부분 음악 관련 캐릭터가 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베토벤 악곡이 등장하다 보니 관련 설명도 곁들어져 있습니다. 베토벤이 누구임? 왠 외국인? 이라는 사람부터, 아! 월광? 하고 감탄할 사람까지 굳이 베토벤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없더라도 <거대한 청중>을 읽는데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베토벤의 생애(어떻게 보면 중요한 요소입니다.)나 피아노 소나타 지식이 있다면 좀 더 재밌게 즐길 수가 있지요. 한 때 피아노를 배웠던 터라 저는 그저 즐거웠습니다.

미스터리 초점은 WHY와 WHO입니다. 왜 유괴를 했고, 왜 그런 요구를 했고, 대체 누가 그런 짓을 꾸몄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의 범인을 즐기는 독자한테 <거대한 청중>은 별로 재미는 없을 겁니다. 분량도 많아서 650페이지 가량 되는데 길게 끌어온 만큼 의외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동기면을 살펴보자면 이 역시 일반적인 동기와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거대한 청중>을 미스터리로만 접근하면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음악'에 미스터리 요소를 가미한 '드라마'로 읽는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접근방법에 따라 평이 확 갈릴 여지가 다분하지만 캐릭터 묘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탐정역부터 피해 당사지까지 전부 진짜 '사람다운 사람' 같은 캐릭터로 나옵니다. 탐정역이나 피해자역 그리고 범인까지 다들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으며 그로 인해 서로 충돌합니다. 소설이라면 당연 그런 캐릭터가 나와야하는 게 아닌가?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순수한 미스터리에만 집중하자면 그런 캐릭터 조형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둘 다 완벽하게 만족시킨다면 당연히 그쪽이 좋겠죠) 그래서 <거대한 청중>은 순수한 미스터리보다는 그냥 '소설'로 접근하고 그 안에 미스터리 요소가 있으니 좋군! 정도로 접근하는 걸 권하고 싶군요. 이런 살아있는 캐릭터는 소설 마지막 '너는 나게에 있어서 거대한 청중이야'라는 마무리와 그대로 일치합니다. 다시 제목을 곰곰이 되씹으면서 쓴웃음 짓게 하는 마무리였습니다.

여담이지만 소설은 프롤로그, 전4악장, 에필로그해서 6부분으로 나눠져있는데, 실질 내용은 전4악장 제명은 '함머클라이비어'의 순서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제1악장 알레그로
제2악장 스케르초 앗사이 비바체
제3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제4악장 라르고 - 알레그로 리졸트

그리고 소설에서도 각 악장의 설명이 간략하게 나옵니다만, 악장의 내용과 소설 내용이 거의 일치합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면서 2차 전개가 기다라고 있는데, 이는 초반의 유괴사건이 벌어지는 면과 유사하고, 2악장은 전 악장중 제일 짧은데 실제 소설도 제2악장이 분량이 제일 적습니다. 그리고 같은 리듬의 변주가 되풀이 되는데, 이는 소설 제1악장에서 무라사키가 탐정역을 맡는 것과 제2악장에서 에토 마사키가 다시등장하는 면과 일치하죠. 아마 작가가 일부러 노리고 그렇게 집필했을 것이고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 중퇴라는 작가 이력을 보면 뭐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평점 5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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