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문예춘추
우리말 출간중
구시리노(腐野) 준고. 구시리노 하나(花)
아버지와 딸의 이름을 보면 의미심장하다. 썩을 부, 들녘 노 자에 딸의 이름에는 '꽃'이란 이름을 쓰고 있다. 썩은 들판의 꽃. 이름 자체가 부녀간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금단의 로맨스를 그린 <내 남자>.
라이트노벨 작가 출신인 사쿠라바 가즈키가 일약 신데렐라가 되는 계기가 된 소설 <내 남자>. <내 남자>로 나오키 상을 거머쥐면서 우리말로도 무사히(?) 출간 되었다. 일단 이 소설의 기본 소재는 '근친상간'이다. 근친에도 부녀,모자,남매 등 여러 관계가 있겠지만, <내 남자>에서는 부녀상간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앞서 소개된 <고식 시리즈> 를 읽고 '사쿠라바 가즈키'의 팬이 된 독자에게 <내 남자>는 상당히 이질적인 작품일 것이다.
단순한(?) 내용의 소설에 읽는 맛을 더하기 위해서 <내 남자>는 시간의 역전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총 6 장으로 구성된 챕터는 2008년 6월을 첫 장으로 해서 마지막 6장은 1993년7월로 끝을 맺고 있다. 그래서 1장에서 독자가 어렴풋이 느끼는 괴리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의문이 해소되는 과정을 통해 부녀간의 관계의 원점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면서 해소된다. 물론 일반 미스터리적 쾌감을 동반한 해소가 아니라 답이 없는 답답한 해소이기 때문에 가슴 언저리가 묵직해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해답은 1장에 나와있고, 마지막 장은 그렇기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반적인 미스터리 접근은 <내 남자>를 읽는 좋은 방법은 아니다. 약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은 분명 존재하는 소설이지만 '약간'이라는 레벨에서 끝나기 때문이 많은 기대는 금물이다. 역전식 구성으로 어느정도 독자의 호기심읗 해소해주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발생하는 의문점이 있다. 하나와 요시로의 관계가 대표적인데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정도로 독자에게 바통터치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 내에서 묘사가 부족한 부분은 독자들이 알아서 상상을 해야하는데, 하나와 준고라는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 독자라면 그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독자에 따라 혐오감을 부를 소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호불호도 확실하게 갈릴만한 소설인데, 바로 그 감정이입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쿠라바 가즈키 음습하며 퇴폐적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굳이 캐릭터 입장이 아닌 방관자적 입장이라도 분위기는 맘껏 즐길 수가 있다. 일종의 엿보기 취미로 말이다.
사실 사쿠라바 가즈키는 캐릭터 이름을 빌려 스토리를 말하는 구성을 다른 소설에서도 취한 바 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힐만한 <사탕과자는 뚫을 수 없어>에서 등장한 '우미노 모쿠즈'라는 소녀가 있는데, 일본어 발음으로 읽으면 아무 의미없는 발음 그대로 우미노 모쿠즈겠지만, 속 뜻은 바다의 쓰레기 라는 뜻이 된다. 구시라노 하나가 썩은 들판의 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부녀상간이란 소재, 즉 금단의 사랑은 이미 패미통 문고로 나온 <황야의 사랑> 삼부작 (문고판으로는 2부까지만 나왔고 1-3부를 합쳐서 <황야>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재출간됐다.)에서 이미 시도하기도 했다. <황야의 사랑>에서 <소녀 나나카마도와 일곱 명의 불쌍한 어른>을 거쳐 <내 남자>로 이어지는 순서도 있지만, 병행해서 <추정소녀> <사탕과자>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 <소녀 나나카마도.........>로 이어지는 계보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작가는 같은 소재를 여러번 변주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좋아한다. (혹평하자면 축소재생산의 반복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작품으로는 연대기식 구성을 사용한 <사쿠라바가의 전설>이 나중에 <청년을 위한 독서클럽>으로 이어지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쿠라바가의 전설 제목은 사사키 마루미의 '~~가의 전설'에서 따온 제명이라고 한다. 소녀소설에 미스터리 터치르 곁들인 작풍을 보인 사사키 마루미 소설을 보면 사쿠라바 가즈키의 원점이 거기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작가 인터뷰를 보니 <고식 시리즈> 빼고는 라이트노벨에서는 이제 손을 뗄 것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걱정도 많이 든다. 이런 식으로 축소재생산 (어느 의미에서는 온다 리쿠와 비슷한 경우라고도 볼 수 있다.)만 해댄다면 사쿠라바 가즈키의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묘사력은 갈수록 안정되가고 있긴 하지만 그 뿐이다. 기존의 작풍의 연결선상에 위치한 소설이 아니라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여담) 원서에서 하나가 준고를 부르는 '아빠'라는 말이 뉘앙스가 좀 다른데, 우리말로는 그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해서 아쉽다. 일본어 하는 사람이라면 원서로 읽는 걸 추천한다.
평점 7 / 10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