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우우우우웅~ 요란한 소리에 찌부둥한 머리를 움켜잡고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며 콕콕 쑤신다. 머리를 털듯 좌우로 잠깐 흔들고 나서 베개 옆에 있던 안경을 썼다. 이제서야 초점이 제대로 잡히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 기분이 든다. 물론 기분 뿐이지만. 하지만 곧바로 나는 다시 우울해졌다. 왜냐하면 여전히 내 진짜 이름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XX 요양원이라고 한다. 진짜 요양원인지, 실험용 불법 시설인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나같은 정신병자-나는 내 이름과 과거가 기억나지 않을 뿐이지 결코 정신병자가 아니다! -를 수용해놓은 사실상 감옥같은 곳이라고 한다. 나를 찾아오는 면회객(가족)-한 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수상한 인물을 제외하고-도 없을 뿐더라 언제부터 이곳에 갇혀서 생활하고 있는지 그것조차 알지 못한다. 단 하나 내 뇌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나는 내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니!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쿡쿡......크크크....하하하하.....아, 언제나 꾸는 이상한 꿈이 있긴 하다. 무슨 꿈이냐고? 하하.
세면대에 위치한 거울을 쳐다보면서 오늘도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이른 아침에 일어난 얼굴이라 그래선지 평소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래도 많이 잡아야 30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깔끔하게 세수를 하고 단장을 한다면 20대 후반으로 까지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간단하게 세수를 끝마친 나는 아침 배식이 있기 전까지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서 다시 한 번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대체 나는 누구인가? 내 이름은 무엇인가? 그리고 항상 같은 꿈안에서 '나에게 살해당하는 여자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어여쁜 여자들의 뒷꽁무니를 기분나쁘게 쫓아다니다가 으슥한 곳으로 여자를 잡아채서 잭나이프로 사정없이 여자를 마구 찌르는, 질나쁜 꿈이다. 칼날이 고깃살을 비집고 들어갈 때의 묵직한 손맛, 칼을 뺄 때 내 손짓을 만류하는 듯한 주저하는 손맛, 목에서 고성능 물총으로 뿜은 듯이 솟구치는 비릿한 내음의 검붉은 액체 그 모든 것이 내 오감을 만족시킨다. 꿈 속이지만 그건 마치 현실, 내 눈 앞에서 바로 벌어진 듯 생생하다. 정신없이 여자를 찌른 후 개운하게 붉은 샤워를 한 다음에 고개를 들면 내 앞에는 거울 하나가 놓여있고, 그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지른 다음 꿈에서 깨어난다. 이것이 내 정해진 악몽 패턴이다. 온몸을 식은땀으로 사우나를 한 채 깨어난 다음 항상 하는 일은 세면대 거울을 보는 일이다. 왜냐하면, 꿈속에서 거울에 비친 얼굴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거울에 비친 얼굴 안에서도 내 얼굴이 '미소'를 짖고 있지 않은가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런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예전에 저질렀던 범죄가 꿈으로 나타난게아닌가 하는 사실 때문이다. 일종의 무의식적인 자기고발이라고 해야하는 걸까? 어떤 이유에서 난 자아를 잃어버렸지만, 쾌락에 빠져 저질렀던 살해에 관한 기억만은 뇌세포가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능적으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기억이라고 뇌는 판단하고 그런 사실을 남겨두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동시에 몹시 황홀하기까지 하다. 아아, 역시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지만 미치광이가 아니지만 정신병자이면서 미치광이 임에 분명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하다. 큭큭.....하하하하.
오늘은 면회객이 오는 날이다. 물론 내 가족은 아니다. 나에게는 가족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있다고 해도 가족들은 이런 나를 버린 자식 취급했음이 분명할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주기적인 면회객이 있지만 내 가족은 아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는 형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전에 벌어진 수도권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를 찾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내가 당시 유력용의자였다고 한다. 범행 수법이 내 꿈 내용과 몹시 닮았다고 하는데, 아마 범인은 나와 비슷한 부류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한테는 실제 저지른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나를 찾아온다.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물론 나는 결백하다. '그런' 꿈은 꾸고는 있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쿡쿡.....하하하..... 꿈과 현실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은 자여 그대의 이름은...........!! 하하.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한달만에 찾아온 그는 내 앞에서 인사도 없었다. 물론 나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말없이 내 앞에 책 한 권을 내밀 뿐이었다. 상,하로 나뉜 꽤 묵직한 책이다. 대체 무슨 책이지? 형사는 내 앞에 책을 내밀고 말없이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갔다. 아마 나보고 이 책을 읽어보라는 얘기인가 보다. 대체 무슨 책일까?
.......화면 점점 어두어짐
<정신병원에 수감중이던 환자, 자살>
금일 아침 7시경, 아침 식사 배달때문에 개인 병실을 돌던 직원 아무개 씨는 식사 배급에도 아무 반응 없던 7호실 병실을 의심스럽게 여겨 관찰구로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그 안에는 머리가 피투성이 된채로 쓰러진 입원 환자가 있어서 아무개 씨는 다급히 담당 의사를 불렀다고 한다. 부검 결과 7호실 환자는 두개골 함몰과 골절로 인한 대뇌출혈과 쇼크로 사망한 것이 밝혀졌다. 7호실에 입원하고 있던 吳XX 씨는 입원한지 2년이 지난 환자로, 극도의 정신착란과 심각한 이중인격을 앓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살에 쓰인 흉기는 당시 吳XX 씨 옆에 떨어져있던 피투성이 책 2권이었다고 하는데...................책 제목은......................<도구....................라>
........[화면 재차 어두어짐]
헉! 또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내가 자살을 했고, 신문에 실린 내 자살기사를 보는 내용이었다. 실로 유쾌하다. 꿈속에서라지만 자살한 내 모습을 내가 직접 볼 수 있다니, 몹시 유쾌하다. 낄낄낄....... 그런데......그건 정말로 꿈이었을까? 머리가 꺠질듯이 아프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시감? 흠, 모르겠다. 꿈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누구? 아 복잡하다. 그냥 꿈이었겠지. 아무렴 어때? 다시 잠이나 청하자. 쿨쿨. ......... 내일 다시 눈을 뜨면 이것 자체도 꿈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꿈이길 바란다...........부우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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