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원래 처음 출간예정표에서는 '악의 유희'라는 제목이 아니라 '카오스의 비밀'로 되어있었는데 (아마 이게 원제목과 일치할 듯 합니다.) 실제 출간하면서 '惡' 시리즈를 연상하는 제명으로 개명되었더군요. 아마 이유는 <악 삼부작>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상술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실제 소설을 읽고 나니 그리 동떨어진 개명은 아니더군요. (그렇다고 해도 원제목을 충실하게 해줬으면 싶지만요.)
야엘 말랑은 매우 평범한 20대 여성입니다. 어느날 초자연적 현상 - 그림자들이 나와서 야엘에게 이상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지극히 평범한 프랑스 여성의 일상이 어떻게 파괴되어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 <악의 유희>입니다. 그림자들이 야엘에게 말하고자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서 미국 뉴욕까지 이어지는 논스톱 스릴러입죠. 야엘의 옆에는 우연찮게 사건에 휘말린 토마스라는 청년이 함께 합니다.
사실 <악의 유희>에 쓰인 소재는 '컨스피러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영화면 영화, 소설이면 소설에서 하도 쓰여서 이제는 식상한 소재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제 이야기를 하자면 얼치기이긴 하지만, 저는 한때 역사를 전공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진실'이란게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기록으로의 역사에 대한 맹신, 승자를 위한 역사 등등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역사란 것이 모래성과 비슷하다는 것을 말이죠. 뭐 그래서 역사를 때려쳤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역사학계 자체야말로 철저하게 권위라는 철옹성에 틀어박힌 난공불락의 요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새 공략에 실패한 비주류는 '음모론'이라는 계란으로 요새를 쳐보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죠.(아니면 철옹성의 충실한 주구가 되던가...) 어쨌든 <악의 유희>는 소위 말하는 음모론을 기본 소재로 쓰고 있습니다만,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자는 것은 항상 '생각하고 의심'하자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는 순간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되고 그저 거대한 매스 미디어 공장에 의해 사육되는 가축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이런 고전적인 주제를 짜임새 있는 플롯으로 흥미롭게 엮은 내용을 보면, 역시 막심 샤탕은 대단한 작가입니다. 재미와 주제의식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신문은 '준비된' 죽창이라고 연신 까댑니다.
어느 신문은 전경에게 마구잡이로 구타당하는 시위자를 부각합니다.
자 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요즘 돌아가는 우리나라 모습만 보더라도 <악의 유희>를 소설속 공상이라고 치부하기는 힘들 겁니다.
평점 7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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