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8일 금요일

따뜻한 손 - 이시모치 아사미



2007년 동경창원사

<따뜻한 손>은 짤막한 7개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 단편집입니다.

왜 피해자는 다른 사람의 흰가운을 입은채 살해당했는가?
어떻게 피해자는 자살한 이의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냈는가?
만원 전철안에서 치한이 살해당한 이유?
어째서 피해자 지갑에는 현금 50만엔이 들어있었는가?
휴게실 화장실에 간다고 해놓고 사라진 남성의 진의는?
돼지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한 여성이 거짓말을 한 이유는?

일단 6개 단편은 이렇게 살인사건부터 간단한 일상계열로 나뉘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은, 연작 단편의 완결편 적인 성격이 강해서 미스터리보다는 그냥 소설로서의 마무리에 가깝습니다. 물론 추리 비스무리한 구석은 있습니다만.....

가장 단순한 미스터리 연작 단편집일 뻔한 <따뜻한 손>을 독특한 풍미를 느끼게 해준 것은 다름아닌 캐릭터 설정입니다. 처음 시작은 '하타 히로코'라는 대학원에서 생물학 전공중인 여성이 화자로 등장합니다. 히로코는 한 남성과 동거중인데, 그 남성의 정체는 다름아닌 인간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사는 '미지의 생물'입니다. 물론 겉모습은 일반 남성과 같습니다. 에너지 흡수는 상대방의 손을 잡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죠. 그래서 히로코는 항상 칼로리를 오버해서 음식을 섭취하고 동거인이 손을 통해 히로코가 과다 섭취한 칼로리를 빨아들입니다. 그래서 히로코에게 미지의 생물은 다름아닌 다이어트 머신(....)이기도 합니다. 미지의 생물=긴짱(애칭)으로 불리는 남자는 히로코를 '먹이'로 택한 이유는 다름아니라 히로코의 '魂'이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혼이 깨끗해야 에너지도 맛있다는 설정이더군요. 그래서 히로코가 일하는 실험실에서 동료가 살해당했을 때 긴짱이 나서서 추리를 해 범인을 지목한 이유는 바로 히로코가 혼이 더렵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죠. 또한 범행현장-특히 살해당한 시체-에서 패닉을 일으키지 않도록 마이너스 에너지까지 빨아들여 주변사람들을 침착하게 해주는 역할도 담당합니다.

여기서 잠시 이시모치 아사미의 미스터리 특징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시모치 아사미는 시리즈물을 만들지 않는데 ( <문은 닫힌채>의 탐정역인 우스미 유카 시리즈가 있긴 합니다만....)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습니다. 경찰이 아닌 일반 학생이나 사회인이 계속해서 살인사건에 조우하는 것이야말로 리얼리티가 없다는 뉘앙스였습니다. 그래서 <달의 문>이란 작품안에서는 테러범에게 점령당한 비행기 안에서 일어난 밀실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탐정역 캐릭터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살인이 벌어진 화장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았다는 이유로 탐정역을 맡게 되죠. <따뜻한 손>에서 인간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사는 미지의 생물을 창조한 이유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일반인이 살인사건에 개입할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한 가공의 설정인 것이죠. 분량이 짧다보니 현장을 눈앞에 두고 패닉을 일으키는데 지면을 할애하기 벅차다보니 그런 것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한 설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과 두번째 단편은 이렇게 히로코와 긴짱이란 기묘한 동거인이 겪은 살인사건을 다뤘는데, 세번째 단편은 등장인물이 싹 바뀝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기타니시 다쿠미라는 남성이 화자로 등장하고 그와 동거중인 여성 '무짱'이 나옵니다. 여기선 다쿠미는 인간이고 무짱이 인간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사는, 인간의 탈을 쓴 생물이죠. 3,4번 단편은 기타니시와 무짱의 활약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5,6번은 두 팀이 번갈아 등장하다가 마지막 단편에서 두 커플(?)에 한데 모이면서 소설은 결말이 납니다.

짧은 분량의 단편을 모아놓았지만 미스터리는 본격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단편 첫 부분에서 포인트가 되는 부분을 찝어주고 사건을 진행시키는 공평함도 갖추고 있습니다. 단지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기가 꽤 쉽다는 사실이 단점이죠. 물론 그냥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들어서 맞추어야 페어한 독자가 되는 건 당연한 것이고요. 아무래도 단편 특징상 페어한 의외성을 갖추기란 꽤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면을 감안한다고 해도 <따뜻한 손>은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아는 분은 기묘한 두 커플의 로맨스를 그린 '애정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요. (호호)

평점 5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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