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4일 월요일
해한가2~거미집 - 나승규
2008년 시드노벨
1권을 보고 미묘한 느낌 때문에 2권은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해한가> 1권은 확실히 일반적인 라이트노벨치고는 소재와 접근 방식이 약간 다르긴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뿐이고 별 다른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이 본편보다 더 괜찮아서 역으로 기대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한거죠. 망설임이 들 때는 눈 딱 감고 질러! 라고 누군가 귓가에 속삭여준 듯한 기분이 들어서 3권까지 업어왔습니다. (진짜 업어온 건 아닙니다.)
그리고 방금 2권을 다 읽었습니다. 300페이지 정도로 1권보다 약 40페이지 정도 줄었습니다. 1권도 본편은 25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다보니 실제 내용은 더 늘었다고 해야겠죠. 아무튼 내용은 나비 같은 네 소녀가 거미줄에 걸려 '거미'에게 잡아먹히는 내용입니다.
소심하고 안경을 쓰고 다니는 모범형 A
성격이 급하고 반항적인 불량아 B
운동을 좋아하고 덜렁대는 육상부 O
치밀하고 계산적이며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AB
이렇게 4명의 소녀가 등장합니다. 같은 여학교에 다니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 네소녀는 비밀 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런 저런 비밀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이용해 안 좋은 일도 해버리죠. 하지만 이런 네 명의 소녀 앞에 한 명의 여선생이 등장하고 선생은 소녀들에게 구원의 밧줄을 건네지만, 네 소녀의 눈 앞에서 밧줄은 끊어집니다. 여선생의 비밀을 누설하고 선생은 그때문에 죽고 맙니다. 그리고 게시판을 폐쇄한지 1년이 지난 어느날 AB는 우연찮게 다시 비밀 게시판에 접속하는데, 그곳에 사라졌던 '거미'가 올린 글이 올라옵니다.
<거미는 거미집에 먹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혼비백산한 AB는 나머지 세 명에게 연락을 하고 1년만에 한 데 모인 네 소녀. 그리고 AB를 시작으로 한 명식 거미에게 먹힙니다. 그런데 AB는 먹히기 전에 B에게 '구원'을 얘기합니다. 거미는 우리 네 명 중에 있다고 하면서 말이죠...............................
사실 2권이 먼저 나오고 1권 내용은 나중에 나오는 것이 더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해한가'와 주변인물에 서서히 초점을 두다가-아 이 캐릭터 뭔가 있을 것 같은데?라면서 주변인물에 해당하는 내용을 좀 더 뒤에 내보였으면 하는 것이죠. 그런데 1권은 그 주변인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2권같이 해한가와 주변인물(심지어 이름만 언급되는 캐릭터도 있습니다.)은 조금씩 보여주다가 주변인물의 한(恨)부터 정리하고 그 다음에 해한가와 관련된 비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세련된 구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건 전형적인 독자- 그 중에서도 나만의 입장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독자는 작가를 배반하는 존재입니다. 작가는, 나는 이렇게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쓴 것인데, 딱히 미스터리를 고려하고 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독자는 멋대로 미스터리가 부족해서 재미가 없다고 작가를 비난한다거나, 구성을 바꾸라고 요구 합니다. 그럴 때 작가는 당혹스러울 겁니다. 난 원래 그걸 노리고 쓴 게 아니라 순수하게 내 글을 보고 나와 공감해줄 독자가 독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만족하는데.....왜 내 기대와는 어긋나는 '반응'이 오는 것일까? 하고 말이죠. 저는 '이기적인' 독자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팔짝팔짝 뛸 정도로 좋아하고 맘에 들지 않는 책을 만나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비난을 합니다. (비평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없고요.) 그런 면에서 <해한가-거미집>은 잘 만들어진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면서 근본적인 '自我'에 관한 메인디쉬에 미스터리 디저트를 곁들인, 요리사가 만들고 싶은 요리와 음식을 먹을 손님이 느낄 풍미를 저울에 놓고 잘 조율한 먹음직스런 요리입니다.
여기서 쓰인 미스터리는 전형적인 서술트릭입니다. 물론 멋들어진 트릭이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소재 자체가 많이 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네 소녀의 별명인 혈액형에서 이미 진저리를 쳤을지도 모를 독자도 있을 겁니다. 또 혈액형 타령이야!! 라면서 말이죠. (호호) .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가면 왜 그런 구성을 취했는지 독자도 충분히 납득할 겁니다. 특히 마지막 해결파트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의 글과 그림을 적절히 이용한 연출은 제법 임팩트 있는 좋은 구성입니다. 아무리 뻔한 - 수도없이 반복된 - 소재라도 포장을 적절히 잘만하면 충분히 '신품'급으로 통하는 것이죠. 1권과 마찬가지로 해한가가 해답을 제시해주는 것은 분명 같지만 구성을 바꾸면 이렇게 반응도 확연히 달라지죠. 비슷한 '구원'을 논하는 <문학소녀 시리즈>가 어째서 호평을 얻는지 연구해보면 작가 나승규는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명심해야할 것은 모든 독자를 만족시켜줄 책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설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오타. 그리고 비문들이 영 거슬립니다. 이건 1차적인 책임은 작가에게 있겠지만 그걸 교정해주는 것이 편집부의 역할인데,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미얄의 추천>에서도 오타와 비문이 엄청 거슬렸는데, <해한가>도 이 굴레를 벗어나질 못했더군요. 그냥 라이트노벨 독자층에게 고만고만하게 팔고 말 것이라면 그냥 이대로 가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좀 더 많은 독자에게 받아들여지고 싶다면 철저한 교정과 감수를 거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시 라이트노벨이 그러면 그렇지. 캐릭터 이름만 우리나라 사람으로 바꾼 일본산 라이트노벨이라는 비아냥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거미집' 정도의 완성도만 유지해도 이 시리즈는 분명 성공할 겁니다. 1권에서 떨어져나간 독자가 있다면 2권까지는 읽어보고 판단해보세요. 2권까지 읽고도 별로 재미가 없다면 그냥 머릿속에서 지우면 되는 겁니다. 페이지 수가 많은 편도 아니고 가격도 비싸지 않습니다. 시간적 금전적 부담도 크지 않습니다. 산모 입장에서는 산고 끝에 낳은 첫애가 더 애착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산파입장에서는 둘째애가 더 이쁘고 귀여워 보이네요. 뭐 저는 일개 독자에 불과하니까요. 그리고 이기적인 독자이니까요.
평점 6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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