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2일 월요일

키리사키 - 타시로 히로히코



2005년후지미 미스터리 문고
2007년 우리말

나는 죽습니다.
죽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내인'이란 사람(?)이 나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려줍니다.
원래 '나'의 수명은 더 길었을거라면서 더 살고 싶으면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줄 수 있다고 하죠. 그래서 나는 현실로 돌아오지만, 눈을 떠 보니 '키리사키 이즈미'라는 여학생 몸에 들어와 있습니다.
게다가 이즈미라는 여자애는 알고보니 자살미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즈미의 몸을 지배하는 것은 '나'라는 남자죠.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기억상실을 핑계로 이즈미 행세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즈미가 자살한 것은 학교에서 일어났던 '왕따' 때문입니다. 결국 이즈미의 탈을 쓴 나는 다시 왕따의 표적이 되고,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위해 조신하게 지내려던 나의 계획은 틀어집니다.

이즈미를 괴롭히던 주인공은 같은 반 여학생 '리에'입니다. 나는 리에와 일당을 협박해서 일단 괴롭힘 사건은 끝나는 듯 보이지만, 리에가 '연쇄살인마' 키리사키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나는 경악하죠. 왜냐하면 키리사키는 '나'거든요.

자세한 사건의 내막을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미스터리 풍이지만 일단 기본 베이스는 '판타지'입니다. 여기에 미스터리 보다는 '서스펜스' 색채를 덧입힌 것인데, 그게 그다지 효과적이고 재밌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군요. 가지치기를 좀 더 세세하게 했더라면 완성도 높은 라노벨 미스터리 - 그것도 단권으로 완결나는 멋진 작품이 탄생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키리사키>는 덜 정리된 미스터리입니다. 아무래도 작가의 데뷔작이 '후지미 미스터리 문고'라는 라이트노벨 미스터리를 표방한 브랜드에서 나왔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라노벨 미스터리 중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니까요. (개인적으로 라노벨 미스터리 1위는 <문학소녀 시리즈>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브랜드로 나온 소설들은 미스터리가 색채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니아들이 좋아할만한 라노벨 요소가 많은 것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이미지 때문에 현재는 거의 유명무실합니다. 사쿠라바 가즈키의 <고식 시리즈> 정도가 미스터리 탈(?)을 쓰고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쿠라바 가즈키 曰 고식 빼고는 라노벨 쓸 예정에는 없다고 하더군요.)그래서 그쪽 계열 출신의 작가인 타시로 히로히코의 <키리사키> 역시 미스터리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수는 있겠지만, 논리적이고 질서정연한 내용은 아닙니다. 아니 분명 이야기를 하나로 수렴(?)하는 논리(복선도 앞서 나옵니다만)는 존재 하지만 그 과정 속에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버렸다는 게 흠이죠.뭐 슈노 마사유키의 <검은 부처>라는 황당한(?) 미스터리를 생각해보자면 <키리사키>는 어린애가 그냥 칭얼(?)거리는 수준밖에 안 되겠습니다만...... 아무튼 다양한 미스 디렉션 - 서술 트릭의 기초를 응용한 - 이 등장합니다만, 별로 효과적으로 작용하지는 못 합니다. 마지막 한 문장 역시 놀라움 보다는 좀 억지스런 구성입니다. 앞서 내용을 아무리 살펴봐도 그 부분과 관련한 주인공의 인식이 누락되어있는 걸 알 수 있죠.

비슷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 깨어보니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몸이라는 스토리 - 이야기는 제법 많습니다. 보통 SF나 그냥 판타지 쪽으로 분류할 만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걸 미스터리로 만든 소설 중에서 라이트 노벨 쪽에서는 다카하라 교이치로의 <더블 캐스트>가 그럭저럭 읽을만 했고, 최근에 읽은 이누이 구루미의 <마리오네트 증후군>(상당히 깨는 내용입니다.) 정도가 괜찮았습니다.

아무튼 정말 시간이 남거나 라이트노벨 미스터리 쪽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읽어보세요.

여담) 그러고보니 '살인마'가 주인공이다보니 그런 쪽에서 거부감을 일으킬 독자들도 있겠군요. 결말까지 포함해서요.

여담) 제목 키리사키(찢어발기다)는 중측적 의미를 갖습니다. 주인공이 들어간 여자애의 이름이 '키리사키 이즈미'이며 (물론 동음이의어) 연쇄살인범 '키리사키'는 제목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이 키리사키는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잭 더 리퍼'라는 영국의 연쇄살인범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일본어로는 '키리사키 잭'이라고 합니다. 더 있긴 하지만 그냥 핵심 내용과 관련있다보니 이쯤에서.....

평점 3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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