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2일 금요일

물총새 숲에서 - 아시하라 스나오



2007년 리론샤 (미스터리 야!)

제목은 뭔가 문학적(?) 내음을 풍기는데, 실제 내용은 정통 미스터리에 가까운 '연쇄 살인 사건'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구와야마 미라'는 여고생입니다. 딴 여자와 눈이 맞아 아내와 딸을 버리고 도망간 남편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 엄마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엄마가 원하는 사립여고에 진학한 구와야마 미라. 길었던 머리도 숏컷으로 자르고 육상부에 들어가서 장거리 달리기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라는 학교 운동장에서, 근처에 인접한 다른 여고에 다니는 '미야마 사기리'라는 소녀와 만나면서 이야기는 출발합니다.

사기리는 미야마 재벌의 총수의 외동딸로 한마디로 양가집 아가씨 같은 캐릭터입니다. 말투도 그렇고 외모도 그렇죠. 그러나 이런 사기리의 행동을 싫어하는 불량그룹이 그녀를 체육관 뒷공터로 불러서 괴롭히려고 하지만, 사기리는 '뜻밖의' 행동으로 불량그룹을 전원 두들겨 패버립니다. 알고보니 사기리는 이중인격자였던 겁니다. 원래 사기리는 쌍둥이였는데, 태어나면서 오빠인 메구루는 죽었고, 어머니는 과다출혈로 사망합니다. 그걸 그녀는 전부 자기 탓으로 돌렸고, 그후로 메구루가 사기리에게 빙의하는 경우가 생겼다고 하죠.

사기리의 뜻밖의 면모를 본 미라는 놀라지만 그녀가 걱정되서 집까지 바래다 주게 되고, 자연스레 미야마 집안 사람과 면식을 틉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여름방학. 사기리의 초대로 미야마 집안 별장에 미라도 놀러가는데, 거기서 괴이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340페이지 정도의 적당한 분량인데, 실제 사건은 230페이지 부터 시작입니다. 분위기에 비해 실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지만 주인공 캐릭터가 꽤 재밌습니다. 미스터리지만 유머 미스터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읽는 맛이 있어서 실제 사건이 늦게 등장해도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늦게 일어나는 만큼, 주인공 미라의 말대로 '제트 코스터' 같은 빠른 진행을 보여줘서 후반부는 쾌속질주합니다. 그리고 별장에서 벌어진 사건을 조사하러온 형사 중에 아빠의 동창생이 있어서 미라는 자연스레 사건에 개입합니다.

원래 구와야마 미라, 이 캐릭터는 아시하라 스나오가 기존에 발표한 다른 소설의 주인공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미스터리 야!' 브랜드로 소설을 집필하면서 당시 캐릭터의 학창시절을 배경으로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 나온 것이 본서 <물총새 숲에서>라네요.

미스터리 얘기를 하자면, 기본 베이스는 '애드거 앨런 포'를 모티브로 하고 있고, 내용은 별장을 배경으로 한 클로즈드 서클입니다. 주인공 미라도 포를 좋아하고, 시가리의 엄마 '니노코'라는 여성이 등장하는데, 대학교 교수이면서 미국문학을 가르치는데 '애드거 앨런 포' 전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둘이 만나서 포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무척 재밌게 그려지죠. 그리고 별장안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하와 같습니다.

세탁기 안에 머리부터 쳐박혀 죽은 시체
의치 하나 하나를 다 뽑힌채 목졸려 죽은 시체
목마에 탄채 불 타 죽은 시체
빨간 풍선이 달린 리본에 목이 졸려 죽은 시체
etc....

'미스터리 야!'가 아동용 - 초등학생 6학년 이상 - 을 대상으로 한 미스터리인데, 상당히 기분나쁜(?) 상황의 살인사건이 등장하더군요. (저한테는 딱이었지만요.) 이 밖에도 사건이 더 있지만, 여기서는 이정도까지만 말하렵니다. 아무튼 약간은 엽기적인 분위기까지 풍깁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은 천천히 벌어지는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납니다. 경찰이 개입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건은 '계획'대로 벌어지죠. 그 속에서는 사건+1을 위해 등장한 캐릭터와, 추리소설 작가라고 나대면서 '황당한' 프로파일링을 만드는 캐릭터까지, 사건 자체만 보면 섬뜩하지만 실제로는 웃깁니다. 어쨌든 기본적인 사건의 얼개는 전부 밝혀집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도 남는 의문점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남는 의문점은 독자가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솔직히 복선의 배분과 논리적 해답의 카타르시스라는 면만 보자면 그리 뛰어난 미스터리는 아닙니다.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지만, 차라리 초반부 진행과 마지막 사건 진행속도를 잘 믹싱 했더라면 어땠을까? 합니다. 그냥 적당한 완성도의 미스터리에 은근히 웃긴 유머스런 면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즐겁게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미스터리 야!'로 나온 미스터리 중에 <카카오 80%>와 함께 가장 마음에 든 소설입니다.

여담) 제목의 '물총새'는 주인공 구와야마 미라가 좋아하는 새입니다. 어릴적 아빠가 사다준 새도감을 보고 그 안에서 물총새를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어린 소녀. 하지만 아빠는 소녀에게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죠.

평점 6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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