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신초사
2009년 우리말
사실 사사키 조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제복수사>였습니다. 주재경관(<경관의 피>에서도 끊임없이 나오죠)이 주인공인 단편 미스터리인데, 아는 분이 선물로 줬지만 생각보다 시시해서 도중에 포기하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겨우 다 읽었던 작품인데, 그 덕분에 사사키 조 소설은 솔직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 이 사람 소설은 나한테는 질적으로 맞지 않는구나!'라고 확신했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경관의 피>를 집어든 이유는 한 소설 때문이었습니다.
친절하게 시간 연대순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는 스토리는 얼마전 국내에서 소개되었던 '사쿠라바 가즈키'의 <아카쿠치바 전설>과 상당히 유사한 방식입니다. (뭐 이런 방식 자체가 사쿠라바 가즈키의 독특함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굳이 비슷한 소설을 찾는다는 가정하에서 예를 들었습니다.) 이유는 삼대에 걸친 이야기면서 서로 대극인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그 속에는 약간의 미스터리 장치를 했다는 점 정도겠네요. 차이점이라면 <경관의 피>쪽이 <아카구치바 전설>에 비해 미스터리 강도가 약간 더 강하고 캐릭터 조형이 전형적이라고 봐야겠죠. <아카쿠치바 전설>도 연대기 식이지만 캐릭터 조형이나 분위기 때문에 '만화'같은 분위기를 많이 풍기죠.
아무튼, 2008년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1위에 랭크인 한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는 3대에 걸쳐 경찰이 된 세 명의 남자 이야기입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90년대 초까지 삼대에 걸친 긴 이야기는 두 권이란 분량과 함께 경찰이란 입장에서 바라 본 일본 현대사가 함께 녹아든 내용입니다.
세이지 - 다미오 - 가즈야 로 이어지는 할아버지에서 손자에 걸친 이야기는 분량 - 대략 900 페이지 정도임에도 불과하고 대단히 빠른 속도의 전개를 보여줍니다. 결혼을 한 세이지가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 때마침 있던 대량 경찰 공채 시험에 응시해서 순경이 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상권 도입부부터 화재장소에서 갑작스레 사라진 후에 시체로 발견된 다미오의 최후 모습까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이런 방식은 다미오, 가즈야의 이야기도 마찬가집니다.
다미오는 아버지 세이지의 불명예스런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한을 풀어주기 위해 경찰관이 되지만 실제로는 공안 소속이 되어 스파이 짓이나 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로 병까지 앓습니다. 결국 꿈에 그리던 주재 경관이 되지만 아버지 죽음의 진상을 알게 된 후 큰 충격이 휩쌓이죠.
마지막 주인공인 가즈야 역시 '운명'에 이끌리 듯이 경찰이 됩니다. 그리고 맡은 직책도 아버지인 다미오와 비슷하죠. 일종의 내부 고발자가 되는 업무를 맡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죽음의 진상과 아버지에게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역할은 손자인 가즈야의 몫이 됩니다.
하지만 미스터리만 보자면 실망스럽습니다. 무슨 미스터리 순위 1위했다면서? 라고 묻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순위는 어디까지나 '광의'의 미스터리 개념으로 매기는 순위입니다. '협의'의 미스터리 순위를 매겨보자면 <경관의 피>는 랭크인은 커녕 명함도 못 내밀겠죠. 사실 비슷한 본격 미스터리 순위에서 1위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여왕국의 성>이었습니다. <경관의 피>는 20위권 내에는 들지도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해 최고의 일본산 미스터리는 '미쓰다 신조'의 <잘린 머리와 같은 불길한 것>이었습니다. 최고였습니다. 요즘 제가 주는 점수로 따지면 9/10 짜리죠.)
각설하고 세이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일단 일차적인 미스터리의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이쪽은 아마 대부분의 독자는 진범(?)이 누군지 알아차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미오 쪽에서 나오는 사건 역시 좀 뻔한 구석이 많습니다. 그래서 미스터리 보다는 그냥 삼대에 걸쳐 경찰이 된 남자 3명 정도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편이 독서하기 더 좋을 겁니다. 단 마지막 가즈야의 활약(?)이 생각보다 유쾌하다면 유쾌했습니다. 피는 이어받았지만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으니까요.
<제복수사> 때 느꼈던 실망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습니다. 뭐 <경관의 피>는 도중에 표지를 덮거나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으니 재미없는 소설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사키 조'의 다른 소설을 찾아보고픈 마음이 들지는 않지만요. 미스터리보다는 그냥 일반 소설로 읽는 편이 더 재밌을 겁니다.
평점 5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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