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8일 목요일

내 남자 - 사쿠라바 가즈키

2007년 문예춘추
우리말 출간중

구시리노(腐野) 준고. 구시리노 하나(花)
아버지와 딸의 이름을 보면 의미심장하다. 썩을 부, 들녘 노 자에 딸의 이름에는 '꽃'이란 이름을 쓰고 있다. 썩은 들판의 꽃. 이름 자체가 부녀간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금단의 로맨스를 그린 <내 남자>.

라이트노벨 작가 출신인 사쿠라바 가즈키가 일약 신데렐라가 되는 계기가 된 소설 <내 남자>. <내 남자>로 나오키 상을 거머쥐면서 우리말로도 무사히(?) 출간 되었다. 일단 이 소설의 기본 소재는 '근친상간'이다. 근친에도 부녀,모자,남매 등 여러 관계가 있겠지만, <내 남자>에서는 부녀상간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앞서 소개된 <고식 시리즈> 를 읽고 '사쿠라바 가즈키'의 팬이 된 독자에게 <내 남자>는 상당히 이질적인 작품일 것이다.

단순한(?) 내용의 소설에 읽는 맛을 더하기 위해서 <내 남자>는 시간의 역전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총 6 장으로 구성된 챕터는 2008년 6월을 첫 장으로 해서 마지막 6장은 1993년7월로 끝을 맺고 있다. 그래서 1장에서 독자가 어렴풋이 느끼는 괴리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의문이 해소되는 과정을 통해 부녀간의 관계의 원점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면서 해소된다. 물론 일반 미스터리적 쾌감을 동반한 해소가 아니라 답이 없는 답답한 해소이기 때문에 가슴 언저리가 묵직해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해답은 1장에 나와있고, 마지막 장은 그렇기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반적인 미스터리 접근은 <내 남자>를 읽는 좋은 방법은 아니다. 약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은 분명 존재하는 소설이지만 '약간'이라는 레벨에서 끝나기 때문이 많은 기대는 금물이다. 역전식 구성으로 어느정도 독자의 호기심읗 해소해주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발생하는 의문점이 있다. 하나와 요시로의 관계가 대표적인데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정도로 독자에게 바통터치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 내에서 묘사가 부족한 부분은 독자들이 알아서 상상을 해야하는데, 하나와 준고라는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 독자라면 그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독자에 따라 혐오감을 부를 소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호불호도 확실하게 갈릴만한 소설인데, 바로 그 감정이입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쿠라바 가즈키 음습하며 퇴폐적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굳이 캐릭터 입장이 아닌 방관자적 입장이라도 분위기는 맘껏 즐길 수가 있다. 일종의 엿보기 취미로 말이다.

사실 사쿠라바 가즈키는 캐릭터 이름을 빌려 스토리를 말하는 구성을 다른 소설에서도 취한 바 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힐만한 <사탕과자는 뚫을 수 없어>에서 등장한 '우미노 모쿠즈'라는 소녀가 있는데, 일본어 발음으로 읽으면 아무 의미없는 발음 그대로 우미노 모쿠즈겠지만, 속 뜻은 바다의 쓰레기 라는 뜻이 된다. 구시라노 하나가 썩은 들판의 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부녀상간이란 소재, 즉 금단의 사랑은 이미 패미통 문고로 나온 <황야의 사랑> 삼부작 (문고판으로는 2부까지만 나왔고 1-3부를 합쳐서 <황야>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재출간됐다.)에서 이미 시도하기도 했다. <황야의 사랑>에서 <소녀 나나카마도와 일곱 명의 불쌍한 어른>을 거쳐 <내 남자>로 이어지는 순서도 있지만, 병행해서 <추정소녀> <사탕과자>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 <소녀 나나카마도.........>로 이어지는 계보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작가는 같은 소재를 여러번 변주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좋아한다. (혹평하자면 축소재생산의 반복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작품으로는 연대기식 구성을 사용한 <사쿠라바가의 전설>이 나중에 <청년을 위한 독서클럽>으로 이어지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쿠라바가의 전설 제목은 사사키 마루미의 '~~가의 전설'에서 따온 제명이라고 한다. 소녀소설에 미스터리 터치르 곁들인 작풍을 보인 사사키 마루미 소설을 보면 사쿠라바 가즈키의 원점이 거기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작가 인터뷰를 보니 <고식 시리즈> 빼고는 라이트노벨에서는 이제 손을 뗄 것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걱정도 많이 든다. 이런 식으로 축소재생산 (어느 의미에서는 온다 리쿠와 비슷한 경우라고도 볼 수 있다.)만 해댄다면 사쿠라바 가즈키의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묘사력은 갈수록 안정되가고 있긴 하지만 그 뿐이다. 기존의 작풍의 연결선상에 위치한 소설이 아니라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여담) 원서에서 하나가 준고를 부르는 '아빠'라는 말이 뉘앙스가 좀 다른데, 우리말로는 그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해서 아쉽다. 일본어 하는 사람이라면 원서로 읽는 걸 추천한다.

평점 7 / 10

2009년 5월 27일 수요일

악의 유희 - 막심 샤탕

제목 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원래 처음 출간예정표에서는 '악의 유희'라는 제목이 아니라 '카오스의 비밀'로 되어있었는데 (아마 이게 원제목과 일치할 듯 합니다.) 실제 출간하면서 '惡' 시리즈를 연상하는 제명으로 개명되었더군요. 아마 이유는 <악 삼부작>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상술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실제 소설을 읽고 나니 그리 동떨어진 개명은 아니더군요. (그렇다고 해도 원제목을 충실하게 해줬으면 싶지만요.)

야엘 말랑은 매우 평범한 20대 여성입니다. 어느날 초자연적 현상 - 그림자들이 나와서 야엘에게 이상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지극히 평범한 프랑스 여성의 일상이 어떻게 파괴되어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 <악의 유희>입니다. 그림자들이 야엘에게 말하고자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서 미국 뉴욕까지 이어지는 논스톱 스릴러입죠. 야엘의 옆에는 우연찮게 사건에 휘말린 토마스라는 청년이 함께 합니다.

사실 <악의 유희>에 쓰인 소재는 '컨스피러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영화면 영화, 소설이면 소설에서 하도 쓰여서 이제는 식상한 소재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제 이야기를 하자면 얼치기이긴 하지만, 저는 한때 역사를 전공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진실'이란게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기록으로의 역사에 대한 맹신, 승자를 위한 역사 등등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역사란 것이 모래성과 비슷하다는 것을 말이죠. 뭐 그래서 역사를 때려쳤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역사학계 자체야말로 철저하게 권위라는 철옹성에 틀어박힌 난공불락의 요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새 공략에 실패한 비주류는 '음모론'이라는 계란으로 요새를 쳐보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죠.(아니면 철옹성의 충실한 주구가 되던가...) 어쨌든 <악의 유희>는 소위 말하는 음모론을 기본 소재로 쓰고 있습니다만,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자는 것은 항상 '생각하고 의심'하자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는 순간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되고 그저 거대한 매스 미디어 공장에 의해 사육되는 가축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이런 고전적인 주제를 짜임새 있는 플롯으로 흥미롭게 엮은 내용을 보면, 역시 막심 샤탕은 대단한 작가입니다. 재미와 주제의식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신문은 '준비된' 죽창이라고 연신 까댑니다.
어느 신문은 전경에게 마구잡이로 구타당하는 시위자를 부각합니다.
자 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요즘 돌아가는 우리나라 모습만 보더라도 <악의 유희>를 소설속 공상이라고 치부하기는 힘들 겁니다.

평점 7 / 10

2009년 5월 25일 월요일

심플 플랜 - 스콧 스미스

이 소설을 읽고 놀랐던 것은 16년 전에 쓰여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또 하나 깜짝 놀랐던 점은 '인간 심리'를 리얼하게 묘사한 심리 소설에 가까웠다는 것이었죠. 작년에 EBS에서 했던 다큐 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이란 TV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착각에 빠져 사는 존재인지 알려주는 재밌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심플 플랜>은 그런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소설이지만 현실보다 더 그럴싸하게 잘 포장해서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심플 플랜>은 매우 간단한 줄거리를 갖습니다. 주인공=1인칭 화자=나=행크 미첼은 형과 형의 친구 루, 이렇게 세 명이서 트럭을 타고 가다가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시체 한 구와 수백만 달러가 든 돈 가방이 들어있었습니다. 평범한 소시민이 갑작스레 돈다발 세례를 받고 정신을 못 차린채 결국 세 명은 그 돈을 꿀꺽하기로 계획합니다. 아주 '간단한 계획'일 듯한 그 계획이 어떻게 예상을 벗어나고 인간의 관계를 파탄내고 정신을 좀 먹어들어가는지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행크와 아내는 착각에 빠진 존재입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자신들이 저지른 일들 전부가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리라 착각을 하면서 계획을 진행해 갑니다. 하지만 균열은 균열을 부르고 결국 심플은 컴플렉스로 변해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블랙 코미디'로 끝을 맺습니다. 씁쓸한 결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나마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됐든 목적 하나는 달성했으니까요, 하나는.

아마 이 소설을 읽고 소설 속 캐릭터들이 멍청하다고 느꼈을 독자도 있을 겁니다. 나라면 저렇게 하진 않았을텐데 말이야!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말이야! 하면서.....하지만 인간 심리의 맹점이 거기에 있습니다. EBS의 인간 심리 프로그램을 보고 흥미가 동해서 심리학 관련 서적을 도서관에서 닥치는대로 찾아보면서 느낀겁니다만, '나라면......하지 않았을텐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심리적 함정에 빠져있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심플 플랜>에서는 부정한 돈이 등장합니다만, 가정을 해서 정당한 돈이, 그것도 거액의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 듯 생긴다고 해도 거기서 자유로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죠. 또 하나 평범했던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런 의문을 품는 그 사람조차 사건에 발을 내딛는다면 더 잔인해지지, 더 멍청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할 겁니다. 이런 글을 치고 있는 저조차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죠.

일반적인 추리소설로 읽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심플 플랜>은 인간 심리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 재밌기 때문입니다. 행크와 아내가 꾸는 <한 겨울 밤의 '덧없는' 꿈>의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심플 플랜>을 읽어보세요. 그리고 읽고 나서 캐릭터들이 멍청하다고 느꼈다면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심플 플랜>은 대단히 낙관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겁니다.

평점 7 / 10

2009년 5월 24일 일요일

악의 주술 - 막심 샤탕

<악의 주술>은 전직형사이자 사립탑정, 조슈아 브롤린을 주인공으로 한 <惡 삼부작>의 완결편입니다. 전작에 이어서 이번에는 시리즈 최고의 놀라운 요소로 가득합니다. 시작부터 공포로 가득합니다. 부검장면으로 시작하는 프롤로그의 '호러' 연출은 독자의 시선을 바로 잡아까는 매력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의문을 심어주죠. 과연 그런게 가능할까? 하고 말이죠.

포클랜드의 외딴 삼림 속에서 여자 시체가 발견됩니다. 거미줄에 둘러쌓인채, 내장과 뇌는 완전히 사라졌고 몸에 나나 상처는 '거미'에게, 그것도 대형! 거미에게 물린 듯한 상처만 남은 시체였습니다. 그리고 발견된 시체의 얼굴은 전부 극한의 공포를 맛 본 상태라는 걸 알려줍니다. 전작들도 엽기적인 사건이지만 시리즈 완결편은 더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여기에 주인공 조슈아 브롤린과 전편 <악의 심연>에서 조슈아의 파트너 역할을 맡았던 '애네벨 오도넬'이 다시 한 번 팀을 짜서 사건에 개입하게 됩니다. 단서를 하나 하나 모아가던 조슈아와 애너벨은 유력 용의자를 찾습니다. 하지만 일반 가정집에서 거미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면서 사건은 급속히 펴저갑니다. 그리고 또 다시 발견되는 피해자. 그리고 유력 용의자 마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지는 듯 하는데..............

사람 한 명을 둘둘 말을 정도의 '자연산' 거미줄을 얻는 것이 가능한가! 과연 대형 거미가 저지른 일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범인은 어떤 방법으로 피해자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는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제목 처럼 '주술'이나 '초자연'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사건이 하나 둘 베일을 벗어가면서 '과학적 논리적'으로 입증되가는 면들이 재밌습니다. 용의자가 바뀌고 바뀌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은 제프리 디버에 버금가는 아니 능가한다고 느낄 정도로 짜임새 있게 꾸며져있죠. 600페이지에 달하는 많은 내용이지만 정말 단숨에 읽힙니다.

이번작의 계절적 배경은 봄입니다. 1편이 가을, 2편이 겨울, 마무리 3편이 봄입니다. 그럼 여름은? 이라는 의문을 갖을 분들이 많지만, 작가는 일부러 여름편을 빼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여름편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죠. 단순히 돈 욕심이 있었다면 작가는 이 시리즈를 더 연장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만, 완성도에 더 공을 들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춘하추동 사부작이 아닌, 삼부작으로 惡 시리즈는 끝을 맺는 것이죠. 하지만 막심 샤탕의 다른 작품에서 조슈아가 조연으로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최근에 제가 추천하는 추리소설 중에, 이 <악 삼부작>은 빠지지 않고 들어갑니다. 일본 미스터리 쪽에 '쩔어' 있는 입장입니다만, 결국 재밌는 소설은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재확인 시켜주는 귀중한 추리 소설이 바로 <악 삼부작>입니다. 그래도 망설이는 분이 계시다면 더도 말고 1권만이라도 읽어보세요. 첫 권을 읽고 '惡의 매력'에 빠진 분들이라면 마지막 3부까지 단숨에 읽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 <악의 유희>를 재밌게 읽으신 분이라면 당연히 이 시리즈도 읽으셔야 할 겁니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평점 8 / 10

2009년 5월 22일 금요일

오치켄 - 오쿠라 다카히로



2007년 리론샤 (미스터리 야)

'미스터리 야'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여러번 했으니 넘어가겠습니다. 오쿠라 다카히로는 이미 데뷔작인 <세명째 유령>에서 라쿠고(落語 : 일본 전통예능)과 미스터리의 접목을 이용해서 인기를 끌었는데,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미스터리 <오치켄> 역시 라쿠고+추리를 합친 내용의 연작 중편집입니다.

부원수 두 명 뿐인 '오치켄(라쿠고연구회)'에 정원수 3명을 채워줄 주인공 '오치 켄이치'가 오치켄 부장 기시 야이치로의 강제(?) 권유로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공식동아리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회원수는 많은 '종이 접기' '낚시' '웃음 연구회' 각각 세 동아리는 오치켄이 쓰는 방을 노리고 있는데, 떡하니 신입부원 오치 켄이치의 등장으로 '닭 쫓던 개' 겪이 되버립니다. 하지만 오치켄이 사용하는 사무실 관련 인정 서류가 도난당하는 사건과 유령 소동이 합쳐져서 오치켄 존속에 위기일발 사태가 일어납니다. 용의자는 종이 접기 이하 세 동아리 관계자들이죠. 주인공 오치 켄이치는 라쿠고연구회를 그만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차에 어쩌다보니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와트슨 역이면서 홈즈 역이기도 한 캐릭터입니다. 오치켄 부장인 '기시 야이치로'의 언행을 보면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일부러 알려주지 않고 힌트만 주고 있습니다.

데뷔작 <세명째 유령>에 비하면 전문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매우 읽기 쉽게 꾸며져있습니다. 라쿠고 이야기는 당연히 나오지만 이해하기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라쿠고 문외한 독자라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미스터리 야'가 저연령층 이상을 타겟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나온 고육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애들 조차도 라쿠고에 관심없는 애들이 많은 걸 생각하면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흥미를 끌어줄 내용이 등장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겠죠.

미스터리는 일상 계열이라고 봐야겠죠. 유령 소동에 얽힌 이야기를 그린 첫 편. 두 번째 중편은 미성년자 -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라도 아직 미성년인 사람들이 많죠.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흡연하는 장면을 캠코더에 찍은 범인을 잡는 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전편에서 오리무중이었던 '문서 사건'이 이번에 확실하게 밝혀지죠. 그리고.......까지도요. (호호) 독특한 점을 꼽으라면 주인공 오치 켄이치는 일견 와트슨에 가깝습니다. 사람 좋고, 수줍음도 많이 타고, 긴장도 많이 하는 등 탐정역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에 가깝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부장인 기시와 부원인 나카무라의 도움으로 와트슨에서 홈즈로 레벨업을 이룹니다. 기시와 나카무라는 켄이치에게 힌트를 제공할 뿐 직접적인 설명은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죠. 처음에는 기사 유이치로가 탐정역이 아닐까 싶었지만 실제로는 와트슨=홈즈가 되버리는 구성입니다. 이런 구성을 취한 이유는 작가 후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하나 부터 열까지 전부 설명해주는 소설이 아닌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이 있는데, 딱 거기에 맞춘 내용이더군요. 나카무라의 행동은 그렇다치고 기시 유이치로의 언행을 보면, 이 캐릭터야 말로 '진짜' 탐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겁니다. 미스터리의 결정적 힌트는 '라쿠고'입니다. 하지만 해당 힌트에 되는 라쿠고에 관해서는 알기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처음 보는 독자라도 같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너구리 같은 남자, 오치켄 부장인 기시 유이치로와 끌려가기만 하는 듯 하다가 자립성도 보여주는 오치 켄이치, 마이 페이스 나카무라 등 재밌는 3인방 이야기는 후속편으로 이어집니다. 2009년에 <오치켄, 위기일발>이란 속편이 나왔더군요.

평점 5 / 10

2009년 5월 20일 수요일

수로에서 웃는 여인~낭인 사몬의 괴이 강의 - 와와타리 소스케



2008년 고단샤 노블즈

<수로에서 웃는 여인(이하 웃는 여인)>은 38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현재 메피스토상은 정통 미스터리보다는 틀이 없거나 틀을 깨는 '변격' 미스터리를 떠올리게 되서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확실히 갈립니다. 1회 수상작이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였지만 2회 수상작이 세이료인 류스이의 <코즈믹>인 걸 봐도 메피스토상이 목표로 하는 것이, 단순히 미스터리만 좋아하는 독자가 원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코즈믹>은 국내에 소개예정이라고 하니, 나온다면 '각오(?)'를 하시고 보시는게 좋을 겁니다. )

96년에 스타트를 끊어 지금까지 미스터리, 호러, SF, 판타지 등 엔터테인먼트 장르를 아우르는 내용의 수상작이 다수 나왔는데 <웃는 여인>은 호러 계통의 비교적 정통 미스터리에 가까운 내용의 소설입니다.

배경은 에도시대. 마을에는 소문이 떠돕니다. 여자 유령을 본 사람은 얼마 안가서 죽는다는 내용입죠. 이런 소문이 무성한 사이에 가신중 한 명인 에하라마타 자에몬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암살범 일당이 한 명 한 명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어가면서 남긴 말은 '죽은 이가.....'라는 말이었습니다. 술이면 사족을 못 쓰는 검호 '히라마츠 사몬'과 검술 실력은 뛰어나지만 무서움을 많이 타는 청년 '세리야 진주로'가 사건의 내막을 밝힌다는, 뭐 그런 내용입니다.

일단 딱 보고 느낀 점은 '교고쿠 나츠히코' 스타일을 콤팩트하게 엮어놓은 스피디한 소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설 안에서는 이런 저런 괴담이 등장하지만, 핵심은 제목대로 '수로에서 웃는 여인' 괴담입니다. 귀신이 나오는 호러스런 내용을 미스터리로 엮으면서 매끄럽게 결말을 내는 부분이 교고쿠 나츠히코 소설에서 교고쿠도의 장광설을 대폭 삭제한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시대극에 가까운 소설이지만 덕분에 빠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페이지도 220페이지 정도로(우리말로 나온다면 아마 280-300페이지 전후) 얇아서 부담없이 한 손에 들고 읽을 수 있죠.

아무 관련없어 보이던 괴담들이 하나로 엮이면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나, 은근슬쩍 묻어가는 복선 그리고 대담하게 독자에게 제시하는 힌트까지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소설입니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편의상 호러 미스터리라고도 볼 수 있는데 '호러' 내음이 그다지 깊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남자보다는 여자 귀신이 더 무섭습니다. 그 여자 귀신이 씨익~ 웃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닭살을 내보이고 싶지만, 실제 소설에서는 그렇게 호러스럽지 않습니다. 그냥 괴이한 이야기 수준으로 끝나는 것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여담) 마지막 '이름'을 보고 대체 누구야!!? 라며 벙찐 독자가 있다면, XX페이지를 살펴보세요. 정체가 나옵니다. (핵심 미스터리 플롯과는 상관없는 부분입니다.)

여담2) 낭인 사몬의 괴이 강의 시리즈는 현재 3번째까지 나왔습니다. (두번째까지는 고단샤 노블즈, 3번째는 일단 단행본)

평점 6 / 10

2009년 5월 18일 월요일

좌90도에 검은 삼각형 - 야노 류오



2007년 고단샤 노블즈

<극한추리 콜로세움>으로 데뷔해서, 서바이벌 게임 미스터리를 집필하고 있는 야노 류오의 4번째 소설 <좌90도에 검은 삼각형>입니다. 제목은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것일까? 고개가 갸웃거립니다만, 일단 영문제목은 라고 되어있더군요. 검은 삼격형 미스터리.

저택(관) 안에서 벌어진 살인극(劇)을 추리하여 진범을 잡아야 합니다. 단, 탐정역 캐릭터는 외부와 단절된 방안에서 24시간 내에 정답을 도출해야 합니다. 갇힌 방안에는 오로지 살인극의 목격자와 대화할 수 있는 LCD 모니터와 기록을 메모할 수 있도록 컴퓨터 1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탐정역 참가자는 총 10 명. 남자5, 여자5으로 성비는 1:1입니다. 총 5 팀으로 나뉘며 남녀 한 명이 한 팀이 됩니다.

총 다섯팀은 1번 팀부터 5번 팀으로 순서를 나누어 추리를 시작합니다. 동시간대에 추리를 해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1~5번 팀은 순서대로 추리를 해야합니다. 각팀마다 주어진 유효시간은 24시간입니다. 단, 1번 팀이 정답을 맞추면 나머지 팀은 추리극에 참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아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5번째 순서에 참가하게되는 팀이 몹시 불리한 듯 하지만, 추리극에 참가하지 않은 팀은 외부 모니터를 통해 참가한 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단, 음성은 들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참가한 팀은 컴퓨터에 정리를 위해 자료를 남겨 놓는데, 순서가 뒤로 갈수록 선행팀의 자료를 모두 볼 수가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순서가 빠르다고 좋고, 느리다고 나쁘다는 이분법으로 생각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스즈키 하가네(男)와 츠즈라 하루카(女)가 팀이 되어 4번째 순서가 되어 (나머지 캐릭터들은 들러리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두 캐릭터 이름만 밝힙니다.) 서바이벌 추리극에 참가합니다. 1번 부터 3번째 팀의 자료를 하나 하나 보면서 하가네는 이런 저런 추리할 근거를 찾아냅니다만, 하루카가 살인극의 목격자인 '산고(산호)'와 나눈 대화를 듣는 순간 혼란에 빠집니다. 전팀이 남긴 자료와 하루카가 들은 증언이 서로 엇갈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부 엇갈리는 것도 아니고 일부는 일치하는 내용도 있기에 더 헷갈립니다. 여기에 3번째 팀이 남긴 자료는 단 한 문장의 반복입니다.

'두 번째 팀이 남긴 자료는 순 엉터리다! 거짓말이다! 우리를 함정에 빠트릴려고 획책한 것이다!'

라는 말이죠. 과연 하가네와 하루카는 악조건을 딛고 24시간 내에 올바른 추리를 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타이틀 <검은 삼격형>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서로 엇갈리는 주장이 하나로 합쳐지는 부분은 괜찮았고, 그것이 타이틀과 그대로 연결되는 부분 또한 좋은 편입니다. 검은 삼각형과 관련된 힌트는 군데 군데 등장하고, 독자에 따라서는 금새 정체를 알고 사건의 내막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지간한 가정집에는 이 삼각형은 전부 있을 겁니다. 없는 집을 찾기가 훨씬 어려울 겁니다.) 게임 룰이 깔끔하고 앞서 참가한 팀의 자료를 참고해서 추리할 수 있다는 부분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앞선 팀이 남긴 자료의 진실성 여부는 50:50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서바이벌 게임인데 소설에서 그런 긴박감은 느끼지 어렵습니다. 자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극한 상황인데도 다들 침착(?)하게 게임에 참가하는 모습은 좀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아니면 인간심리학상 '이건 현실이 아냐!'라며 '설마 진짜 죽이겠어?'라는 현실도피 생각으로 참가해서 그렇게 다들 침착했을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요. 또한 <극한추리 콜로세움> 등에서 비판을 받았던 부분 중 하나가 '결국 흑막은 뭐냐?'라는 부분이었는데, <좌90도에 검은 삼각형>에는 흑막이 전면에 등장해서 게임을 진행시킵니다. 하지만 흑막이 참가자를 모집하는 동기가 너무 흔한 것이라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또한 참가자를 강제로 참가시키기 위해 '초능력'을 사용한다는 부분은 좀 깨는 부분이었습니다. 초능력보다는 그냥 최면술 정도로 했더라면 낫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참고로 초능력은 본 게임의 추리극과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야노 류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데뷔작을 읽고 나서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네요. 재밌는 설정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좀 더 분발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야노 류오와 비슷하게 서바이벌 게임 장르에 몰두하고 있는 라이트노벨 작가 '도바시 신지로'가 있는데, 데뷔작인 <문의 바깥>은 수작에 속합니다. 미스터리보다는 '심리' 묘사에 더 주력하는 스타일이며, 후속작인 <짜라투스트라의 계단>도 역시 밀실 게임을 그리고 있는 등 야노 류오오 비슷한 노선을 표방하지만 실제 내용은 서로 상이합니다. 두 작가의 장점만 합친 소설이 나온다면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싶지만, 소설 집필이란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죠. 그냥 팬 입장에서 아쉬운 소리를 뱉어봤습니다. 참고로 <문의 바깥>(전3권. 완성도는 2권이 제일 높음)은 우리말로 출간됐습니다.

여담)
극한추리 콜로세움
시한절명 맨션
상자 속의 천국과 지옥
좌90도에 검은 삼각형 (이상 서바이벌 게임 미스터리)
직녀 퍼즐 브레이크 (단행본) (퍼즐 미스터리)

평점 5 / 10

2009년 5월 15일 금요일

추정소녀(推定少女) - 사쿠라바 가즈키



2004년 패미통 문고

라이트노벨 출신으로 나오키 상을 거머쥔 '신데렐라' 같은 작가 사쿠라바 가즈키의 원점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라는 얘기가 나온다면 아마도 <빨강X핑크> <추정소녀> <사탕과자 탄환을 뚫을 수 없어> 대략 이 세 작품으로 압축되지 않을까 싶다.

그전까지 별 시덥잖은 작품만 발표하던 작가가 자기만의 색깔(주장)을 처음 내세운 것이 <빨강X핑크>였고, 원래 계획상의 결말과 달리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나버린 좌절(?)기이자 부모살해를 소재로한 <추정소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추정소녀보다 2달 늦게 발간) 아동학대를 소재로한 <사탕과자 탄환을 뚫을 수 없어>가 있다.

이중에 <추정소녀>는 2009년도에 가도카와 문고(일반문고)로 재간되면서 원래 플롯상에 존재했던 다른 결말을 같이 실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탕과자 탄환을 뚫을 수 없어>를 사쿠라바 가즈키의 색깔의 원점으로 보고 있다. (작가 스스로는 <빨강X핑크>를 자신의 전환점이라고 했다. 고독과 폐쇄 등을 잘 그린 수작이다.) <추정소녀>는 종반과 결말이 흐지부지 끝나버린 안타까운 완성도를 보여주는데 비해 <사탕과자 탄환........>은 일관된 모습을 보여줘서 가장 완성형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추정소녀>의 부모살해와 <사탕과자>의 아동학대는 짬뽕이 되어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2005년도 간행)이란 일반소설로 축소 재생산 되기도 한다.

<추정소녀> -> <사탕과자> <소녀 직업>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삼부작 시리즈(?)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일단 두 명의 소녀가 주인공. 아동학대와 살인이 소재로 쓰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2명의 소녀라는 설정이다. 한 명도 아니고 세 명도 아닌 두 명. 보통 사회를 구성하는데 최소로 필요한 인원을 세 명으로 보는데 거기에 한 명이 모자란 두 명이란 요소는 불안을 나타내는 상징적 구성으로 현재와 미래의 불투명과 함께 소설 속에서 소녀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과 초초를 더욱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철저하게 혼자일때 보다는 어설프게 둘이 있는 경우가 더 고독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추정소녀>에는 남자 조역이 한 명 등장해서 어느정도 비중있는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이 다른 두 소설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물론 <추정소녀>도 결말부분에서 시라유키가 사라지고 소녀와 소년이 남아사 결국 이쪽도 '둘'이라는 숫자를 맞추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여기서는 <추정소녀>를 얘기해보기로 한다.

지방소도시에 사는 15살 여중생 '스고모리 카나'는 가출을 한다. 이유는 엄마가 없는 틈을 타서 의붓아빠가 자기 방에 침입(?)하려고 해서 '활'로 쏘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출소녀 카나는 의문의 소녀 '시라유키'를 만나서 도쿄로 도주한다. 하지만......

사춘기 소녀의 가출과 부모살해를 다룬 내용으로 초반에는 시라유키의 정체에 관한 미스터리를 던져놓지만 종반, 결말에서는 그런 요소는 아무렴 어때 수준이 되버려서 깔끔한 맛이 떨어진다. 단지 초점을 미스터리에만 놓고 읽을 경우, 되다만 작품이 되지만 스스로를 '보쿠'(보통 남자가 쓰는 1인칭 말이다. 제목인 '추정'소녀와 겹쳐서 떠올리면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부르는 사춘기 소녀의 고독과 초초한 심리, 무력감을 '도망치는' 행위로 표현한 소설로 읽는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2009년도에 재간된 가도카와 문고판에는 엔딩이 총 3개가 수록되었다.
엔딩1 : 원래 작가가 생각했건 결말
엔딩2 : 패미통 문고 편집부측 요구로 태어난 결말 (패미통 문고판은 이쪽 결말)
엔딩3 : 엔딩2를 짧게 다듬은 버전
결말은 패미통 문고판 결말 보다는 가도카와 문고판으로 나온 엔딩1이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이쪽이 더 해피(?) 엔딩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점 5 / 10

2009년 5월 12일 화요일

念力密室! - 니시자와 야스히코



1999년 고단샤 노블즈
2004년 문고판 (사진)

발간 순서로는 시리즈 3번째에 해당하지만, 발표 순서로는 표제작 '염력밀실!'이 시리즈 처음에 해당합니다. 총 6개 단편중 5개는 염력밀실1~5 같이 번호가 붙어있는데, <환혹밀실> <실황중사> 사이 사이에 해당하는 내용의 연작 성격을 띠고 있죠. 물론 단편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 들은 독립적이기 때문에 단편과 장편 관련성은 어디까지나 시리즈 팬을 위한 장치입니다.

32살 이지만 백발의, 만년초판 미스터리 작가 호시나 마사오(남)
타이트한 미니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육감적인 몸매의 미녀 형사 노케 마사오
중학생으로 보일 정도로 어려보이는, 후리소데가 잘 어울리는 특급 미소녀 간오미 츠기코.
캐릭터 설정만 보면 만화같은 내용이라고 짐작하기 쉽습니다. 게다가 문고판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나면 그런 선입견이 더 강해집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딴판이죠. 아, 초능력이 등장하잖아? 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군요. 예 맞습니다. 초능력은 당연히(?) 등장합니다. 하지만 <초능력 시리즈> 안에 들어있는 본질은 본격에 가깝기때문에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입니다.

'염력밀실1~5'는 공통사항이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사이코키네시스'와 다른 하나는 '밀실'입니다. 결론부터 가자면 사건(보통 살인)이 발생하지만 밀실안에서 벌어졌고, 그 밀실을 만드는 방법으로 '염동력'을 사용하고 있죠.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자면 '초능력'이 나오는 미스터리라고 해서 벌써부터 설레발 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 시리즈는 초능력을 인정(긍정)한 상태에서 그걸 바탕으로 논리를 펴나가는 미스터리입니다. 따라서 이번 단편집의 초점은 'WHY' 밀실을 만들어야 했는가?에 있습니다. 'HOW' 밀실이 아닙니다. WHY를 기준으로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무너지고 다시 가설이 서고 하면서 진실에 한발작 한발작 접근하는 내용의 추리소설입니다. 비록 초능력이 등장하지만 '논리적'인 미스터리입니다. 따라서 캐릭터 설정, 일러스트만 보고 지레짐작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염력밀실!>에 수록된 단편중 가장 특이한 내용은 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염력밀실F'입니다. 간단하게나마 사건성은 있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시리즈 전체적인 '복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호시나 마사오(男), 노케 마사오(女), 간오미 츠기코, 치즈카 사토코 중에 사토코(호시나의 전처)가 화자로 나와서 그와 그녀 사이의 '딸'을 대신 키우는 '다크'한 내용의 짤막한 단편인데, 대체 이 시리즈 결말을 어떻게 끌어갈지 무척 궁금해지게 만드는 단편이기도 합니다. 이런 당혹스런 단편은 시리즈 4번째 작품이자 3번째 장편인 <몽환순례>로 이어집니다만, 이쪽은 '번외편'이더군요. 아무튼 현재(2009) 시점에서 완결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리즈 최신작도 그냥 연재분 모아놓은 단편집만 계속 나오고 있고, 본작 장편은 <실황중사> 이후 끊겨버렸습니다. (<몽환순례>는 번외편이다보니 아무래도 느낌이 많이 다르죠.) 이 시리즈는 장편보다는 단편이 더 발랄하고 재밌긴 합니다만, 그래도 듬성듬성이라도, 구색맞추기라도 장편도 좀 넣었으면 싶군요. 아무리 재밌는 단편도 계속 읽으면 물리는 법이거든요.

평점 7 / 10

퍼펙트 플랜 - 야나기하라 케이

2004년 다카라지마샤
2008년 우리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를 발표하고 있는 다카라지마샤에서 신인발굴을 목적으로 같은 이름의 상으로 대상작품을 발표하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퍼펙트 플랜>은 제2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보다 앞서 먼저 소개된 <4일간의 기적>이 1회 대상 수상작품. 그런데 이 상은 타이틀과는 달리 미스터리와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소설에도 대상을 주는, 어찌보면 웃기는 상이다. 1회 수상작인 <4일간의 기적>은 재생과 치유를 다룬 판타지 소설이었고, 미스터리 요소는 제로에 가까웠다. 2회 수상작 <퍼펙트 플랜>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설정의 유괴를 다룬 미스터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별로 궁금한 요소가 없는 너무 평탄한 내용의 유괴 스릴러다.

간단하게 <퍼펙트 플랜>은 도시나리라는 아이를 유괴하는데, 유괴가 아닌 보호이며 아이 부모에게 주식 얘기를 넌지시해서 그 주식을 통해 돈을 번다는 내용이다. 그 와중에 요슈아라는 조커가 끼어들면서 사건은 좀 복잡해 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 뿐인 내용이다. 아, 존재감 제로인 여자형사가 나와서 추적도 하곤 하는데, 아무렴 어때?

기본적인 스타일은 역시 영미권 스릴러 스타일을 차용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해킹, 크래킹,주식 등등 좀 있어보이는 소재를 쓰고는 있는데 이 완성도가 허접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의외성이 있나? 전혀 없다. 눈꼽만치의 반전도 없는 흐르는 강물을 보는 기분의 소설이다. 한 80년대에 나왔다면 오호~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2000년대 시대. 어설픈 첨단(?)요소를 전부 삭제해버리고, 단순한 플롯만 가지고 직구를 던졌다면 오히려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은 헛소리로 치부할 게 아니다. 딱 그말이 들어맞는 소설이 <퍼펙트 플랜>이니까 말이다.

평점 1 / 10

2009년 5월 11일 월요일

인디고의 밤 - 가토 미아키



2005년 동경창원사 (미스터리 프론티어)
2008년 문고판
2008년 우리말

<인디고의 밤>은 가토 미아키의 데뷔단편이자 창원추리단편상을 수상한 '인디고의 밤'에 세 편의 신작을 더해 나온 연작단편집입니다. 이 소설이 화제(?)가 됐던 이유는 시부야 '클럽 인디고'라는 호스트 바에서 일하는 호스트와 오너 아키라를 주인공으로한 미스터리 단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총 4개 단편을 수록했는데, 호스트 업계 제왕이자 베일에 쌓인 유야와 여러 호스트 들, 밖에서는 프리 라이터 글쟁이이자 클럽 인디고의 오너 다카하라 아키라(여자), 그녀와 동업자인 시오야, 그리고 트랜스젠더인 마담 나기사 등 설정만 봐도 재밌을 캐릭터들이 나와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죠. 일단 표제작인 '인디고의 밤'은 클럽 인디고의 단골 손님 여성 한 명이 살해당하고, 클럽 인디고 넘버원 호스트 TKO가 발견하면서 시작합니다. TKO가 범인이 아니라면 대체 범인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렇게 해서 호스트 들이 자기들만의 인맥과 연줄을 동원해 용의자를 찾아나선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통괄하는 사람은 작중화자=주인공=다카하라 아키라입니다. 용의자였던 스토커를 잡지만 그 스토커마저 시체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다시 반전하고 만다는 구성으로, 가장 짜임새 있는 플롯과 미스터리로 봐도 크게 나무랄데 없는 깔끔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광고문고로 쓰인 '절찬' 어쩌구는 오버가 좀 심합니다. 그 정도로 잘 만들어진 단편은 아니에요.

그리고 이어지는 '원색 소녀' '센터 거리 NP 보이즈' '밤을 쫓는 자들' 나머지 세편은 이에 비해 미스터리 강도가 극단적으로 낮아집니다. 소녀유괴범 찾기, 여고생 협박범 찾기 등 범인이건 무엇이건 일단 '진실'을 찾는다는 행위는 비슷하지만 그 과정이 표제작에 비해 완성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변함없고 마담 나기사는 언제나 귀엽(?)지만, 그 뿐입니다. 미스터리 잣대를 들이대면 점수를 많이줘봐야 1~2점 정도겠네요. '인디고의 밤' 정도로 완성도가 꾸준히 유지됐다면 하다못해 5점은 줄만한 시리즈가 됐겠지만, 안타깝습니다. 하긴 이 소설은 보고 있으면 문장이 그대로 화면이 되어서 드라마나 만화 보는 감각으로, 약하지만 미스터리 양념 소스가 들은듯 만듯한 느낌의 요리를 맛보는 기분으로 보면 딱 적당한 내용입니다. 눈높이를 낮추면 재밌을 내용이니, 아직 안 보시거나 이 소설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그런 점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유키 가오리'의 그림체를 떠올리면서 이 시리즈를 봐서 그런지 제법 재밌게 봤습니다. (호호) 유키 가오리는 <천사금렵구> <백작 카인 시리즈> <루드비히 혁명 시리즈> 등, 미려한 그림체로 유명한 순정만화 작가입니다. 만약 유키 가오리가 이 시리즈를 만화로 만든다면 점수를 대폭 줄지도 모르겠군요. ㅎㅎ

여담) 유야 정체가 제일 궁금합니다. (.......)

평점 3 / 10

2009년 5월 10일 일요일

명탐정 양호실 아줌마 (3) (4) - 미야와키 아키코



1991,1993,1997,1998년 슈에이샤
2003년 문고판 (사진)

-표적이 된 학교 (후편)
문고판 2권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첫사랑의 씁쓸함과 여자는 무서워! 비스무리한 내용입니다.^^

-소설은 말한다
가오모토 안즈의 소설책이 10대 사이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합니다. 작가는 고등학생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설정이죠. 하지만 진구지 군이 다니는 학교에 가와모토 안즈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진구지 군은 우연찮게 학교 책상안에 있던 가와모토 안즈에게 보내는 협박장을 보게 됩니다. 협박장이 들어있던 바인더의 주인은 야마부키 미사키. 미사키는 진구지에게 자기가 가와모토 안즈이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노자와 마츠코가 가와모토 안즈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마츠코는 이상한 사고에 휘말립니다. 질주하는 오토바이에 치일 뻔 하거나, 교정을 거니는데 위에서 석고상이 떨어집니다.......

복면장가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 요소와, 책 내용을 바탕으로 가출한 한 소년(호시노 케이치) 이야기가 서술트릭을 이용해서 재밌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은 내용이 있습니다만, 로망이란 그런 것이겠죠.

-화원의 환영 (전,후편)
사이좋아 보이는 4명 간자키 스미레, 하루야마 사쿠라, 나츠키 다리아, 아키노 란.
하지만 실제로는 부자집 딸 스미레와 그녀를 괴롭히는 나머지 세 명으로 된 그룹입니다. 겉으로만 서로 친한척 하는 것이죠. 그러나 다리아가 교실 4층에서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진구지와 양호실 아줌마가 사건에 개입합니다. 다행히 다리아는 목숨은 건지지만 의식 불명 중태입니다. 입원한 병원은 스미레의 아빠도 있는 곳으로 일행은 병원으로 다 같이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스미레의 오빠인 간자키 도시야가 등장하죠. 사쿠라, 다리아, 란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던 스미레는 그 사실을 말 못하고 오직 도시야에게만 밝힙니다.

용의자가 돌고 돌면서 흑막이 드러나는 구성이 돋보입니다. 초반에 왕따 사건을 해결하면서 그냥 싱겁게 끝나는가 싶더니만 사실은 그건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플롯이 재밌습니다. 단지 소재가 지금은 너무 흔해빠진 녀석이 되다보니 지금 읽기에는 식상하다는 것이 단점이겠군요.

-저주받은 관(저택)
유명 디자이너 가타기리 가오루가 자신의 별장 역실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진구지 군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사건은 디자이너 가오루이 딸인 미치루가 진구지가 다니는 학교에 전학오면서 바뀌죠. 미치루를 보고 또 혹해버린 진구지는 그녀의 부탁을 듣고 친구 하루마타와 양호실 아줌마와 함께, 사건이 일어났던 별장에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다시 사건이 발생합니다. 미치루의 이복오빠의 애인이자 모델인 마리에가 사망합니다. 경찰이 출동하지만 빈틈을 노리고 차를 몰고 나간 카메람 조수 우라베가 과속으로 사고를 일으키면서 범인은 우라베가 아닌가 하고 다들 안심을 하게 되죠. 하지만..........

처음에는 왜 저주받은 관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좀 의아해했지만, 읽고 나선 납득했습니다. 저주가 있을지도 모르죠. 애증의 소용돌이에 얽매인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즐거웠습니다(?).

-명탐정 진구지 미코토
번외편입니다. 진구지 군이 중학생 시절 자기가 살인사건을 해결했다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구로이 아자미가 게스트 출연하는 귀중한(?) 단편이기도 합니다.
사거건의 피해자 '가쿠 도미오'는 운동치에 성적도 별로고, 황당한 거짓말만 늘어놓은 왕따 당하기 딱 좋은 소년입니다. 운동회 당일 구교실 4층에서 떨어져 죽은 도미오. 사건은 사고로 끝나지만 진구지 군이 사실은 사고가 아니었다고 밝힌다기 보다는 어쩌다보니 그냥 그렇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평소 대단한 비밀을 알고 있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 도미오가 죽은 이유는 뭐 다들 짐작하는 대로의 내용입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 중에 진실도 섞여있다는 당연한 내용도 나오고 말이죠. 다만 이 단편으로 알 수있는 건, 역시나 양호실 아줌마의 정체는 오리무중이라는 것이겠네요. 어쨌든 명백한 살인은 아니지만 미필적 고의, 방조 등을 다룬 단편이었습니다.

1989년부터 부정기지만 꾸준히 나오던 이 시리즈는 1993년에 휴재에 들어갑니다. 연재가 재개된시기는 1996년. 아마 드라마 기획가 맞물려 연재가 재개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으로 나오게 되면 원작이 덩달아 팔리는 효과를 보게 되죠. 재개됐지만 결국 1999년 번외편을 마지막으로 많지 않은 분량으로 시리즈는 막을 내립니다. 연재 재개전에는 3학년이던 진구지가 재개되면서 다시 2학년이 되는 설정은 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사실 이 시리즈는 나올려면 지금도 꾸준히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장기 연재에 알맞는 스타일인데, 어째선지 그냥 끝나버렸더군요. 하긴 그래서 노마 미유키의 <퍼즐 게임 하이 스쿨 시리즈>가 대단한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장편도 아닌 단편만으로 20년 넘게 연재중이니까요. (퍼즐게임도 최근 시리즈는 질이 많이 떨어져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만......)

그림체는 순정만화이지만 굳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미스터리로 받아들이고 읽어도 무방한 내용입니다. 그림체도 얼핏 보면 '사사키 노리코' 스타일과 비슷하기 때문에 큰 거부감이 들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하늘하늘한 미소녀 그림을 보면 닭살 돋는 분들에게는 좀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이 시리즈는 미스터리이지만 아줌마의 변신(?)을 그린 마법소녀(?)물입니다. (....)

평점 6 / 10

명탐정 양호실 아줌마 (1) (2)- 미야와키 아키코



1990, 1991년 슈에이샤
2003년 문고판 (사진)

-명탕점, 최초의 사건
아버지와 함께 정원에서 얘기를나누던 구레바야시 쇼코. 두 사람은 근처에 갑작스레 떨어진 화분이 당황합니다. 간략한 프롤로그를 벗어나서 장면은 쇼코가 입학한 고등학교로 바뀝니다. 주인공 진구지 미코토(男)은 새로 들어온 신입생 구레바야시 쇼코와 그녀 옆에 있는 동급생 시라카와 유리카를 보고 장미와 백합같은 미소녀라며 흐뭇해하지만, 양호실 아줌마의 획책으로 양호담당이 됩니다. 양호선생 명으로 학생 건강기록부를 정리하는 도중에 쇼코와 유리카가 양호실로 찾아옵니다. 갑작스레 배가 아프고 토할 것 같다는 쇼코. 그리고 계모가 자신에게 독을 먹였기 때문이라는 쇼코의 얘기를 듣고 양호실 아줌마는 일갈 합니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쇼코가 진짜 독으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돌고 도는 용의자가 제법 짜임새 있게 그려져있습니다. 카폰 나오는 장면에서 좀 웃겼지만요. 아무래도 1화 연재가 1989년이다보니....^^;;

-프롬 나이트 머더
하나오카 히사코. 학생회 서기 담당이었던 히사코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합니다. 그리고 화면은 학생회장 다카하시는 졸업 댄스 파티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전교생에게 얘기하는 장면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때마침 자살한 히사코가 유령이 되어 학교를 배회한다는 괴담이 떠도는데, 진구지와 친구는 밤에 유령을 직접 목격합니다. 그리고 정년퇴직한 후루야 선생이 치매때문에 가끔 학교를 찾아오는 일이 있었는데, 학교 수영장에서 후루야 선생이 익시하면서 사건은 급진전 하죠.

자살과 유령소동, 치매를 앓은 피해자 등을 밸런스 좋게 엮은 내용이 돋보입니다.

-진홍색 끈 (전,후편)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된 진구지 미코토. 반이 바뀌면서 기대감에 부푼 진구지는 같은 반에 구로이 아자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합니다. 아자미는 애들 괴롭히는 성격이 더러운 여학생이었거든요. 하지만 새로 전학온 모리노 구루미라는 여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하죠. 하지만 최근 근처 공원에서 여성 연쇄 교살 사건이 일어나는데, 두 번째 사건의 피해자를 발견하는 사람이 진구지입니다. 그리고 진구지는 근처에서 감기로 결석중인 모리노 구루미를 목격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키우던 토끼의 실종. 전에 토끼를 죽인 적이 있다는 말, 손등에 난 상처로 인해 진구지는 구루미를 점점 의심합니다만, 설마 설마 망설이는 와중에, 아자미가 구루미를 보고 난 너의 과거를 알아!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집니다. 하지만 아자미는 다음날 행방불명이 되는데..........

구로이 아자미라는 캐릭터 조형이 참 괜찮았는데, 3번째 피해자로 나올줄은 예상밖이이었다기 보다는 예상대로라서 좀 안타까웠습니다. 나중에 '번외편'이라고 해서 다시 등장하긴 하는데 작가도 비슷하게 생각했더군요. 피해자로 상정하고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캐릭터가 작가의 손을 벗어나는 경우였다고 봐야겠죠. 아무튼 토끼 실종과 연쇄교살살인이 교차하면서 범인과 용의자가 서로 바뀌고 바뀌는 장면이 괜찮았습니다.

-표적이 된 학교 (전편)
그동안 연재된 3편과는 약간 성격이 다른 학교를 배경으로 한 소동극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첫사랑이었던 이즈미와 재회한 진구지. 이즈미한테 다시 사귀자는 제안을 받고 좋아 죽으려는 진구지 소년. 하지만 이즈미가 다니는 학교와 진구지가 다니는 학교 사이에 묘한 알력다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대항 운동회가 개최되고, 이즈미는 할 말이 있다면서 신축교실 공사장으로 진구지를 부르는데.........

기본 사건의 얼개자체는 매우 간단합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사건의 윤곽을 드러내서 김이 빠진 내용이죠. 하지만 뜻하지 않은곳에서 반전을 집어넣는 센스도 보여줍니다. 또한 양호실 아줌마의 이름이 나오기도 합니다. 아줌마 이름은 이때만 나오고 그 전이나 그 후로도 단 한번도나오질 않습니다. 양호실 아줌마야말로 이 시리즈 최대의 수수께끼라고도 할 수 있죠. ^^ 어쨌든 진구지 군은 불쌍한 소년입니다. 만나는 여자애가 다 그래서는 이건 뭐.......운명이라고 해야할지 작가의 저주라고 해야할지.....^^;;

사실 이 시리즈는 1997년 아사히 테레비에서 방영했던 동명의 드라마가 더 유명할지도 모릅니다. 전 10 화로 완결난 드라마입니다만, 원작은 7-8년 앞선 1989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연재된 잡지는 <마가렛>. 순정만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점 들어왔음직한 잡지 이름입니다. 아, 물론 일본 순정만화를 즐겨보는 사람에 한해서겠지만요. 틀어올린 머리에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별로 매력적이지 않아 보이는 노처녀 같은 양호선생이 실은 안경 벗고, 머리를 풀면 '미인'이 된다는 마법소녀 같은 설정 (평범한 여주인공이 마법스틱 같은 걸 이용해 변신한다는 것과 비슷하죠.). 상당히 자기 중심적인듯 하지만 알게모르게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자상함을 가끔식 보이는 장면등 탐정역 양호선생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만화입니다. 또한 와트슨 역에 해당하는 진구지 학생은 단순한 미스터리만 다룬 만화로 끝나지 않도록 감초같은 역할을 하는 캐릭터입니다. 단행본은 전8권, 문고판은 전4권으로 완결난, 사실 길지 않은 시리즈입니다만, 양호선생과 진구지의 조합이 재미의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물론 미스터리 자체 완성도도 나쁘지 않습니다. 빼어나지는 않지만 무난하게 깔고 무난하게 회수합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뒤집는 시도를 합니다. 비슷한 미스터리 색깔을 보이는 '노마 미유키'의 만화는 좀 더 본격에 가깝다면 미야와키 아키코의 미스터리 만화는 서스펜스류에 더 가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미야와키 아키코의 초기 히트작인 <야누스의 거울>은 이중인격을 다룬 양질의 서스펜스물이었습니다.

평점 6 / 10

2009년 5월 9일 토요일

야마타이와 어디입니까? - 구지라 도이치로



1998년 창원추리문고

유명한 역사의 일부를 소재로해 '그럴지도 몰라?' 류의 설을 풀어내는 내용의 단편집입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것은 언제입니까?
야마타이國은 어디입니까?
성덕(쇼토쿠)태자는 누구입니까?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명치(메이지)유신은 왜 일어난겁니까?
예수의 부활은 어떤 식으로 일어난겁니까?

이상 총 6 편의 단편이 들어있습니다. 이중에서 야마타이의 소재를 찾는 내용과 아케치 미츠히데가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한 이유(혼노지의 변)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소재거리는 되지 못하겠고, 부처와 예수를 소재로한 권두와 권말에 수록된 두 단편이 가장 읽기 편하고, 국사나 세계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성덕태자와 명치유신 정도는 아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메이지유신은 <바람의 검심(루로우니 켄신)>이란 일본만화 덕분에 유신 유신 아는 이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단편의 제목은 내용을 그대로 함축한 것입니다. 제목대로의 내용으로 대세에 어긋나는 주장을 펼치는 단편입죠. 부처가 출가한 이유는 마누라가 바람을 폈기 때문이고, 부처는 사실 성불능이었다는 얘기부터 - 불교도들이 봤을 때는 쳐죽일 주장이겠죠 - 예수의 부활은 사실은 시체바꿔치기 트릭이라는 주장까지도 나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로 경전이나 성서의 문장등을 이용합니다. 야마타이 국은 어디인가요? 에서는 주로 '위지왜인전'을 인용하고 조선시대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이야기도 나옵니다. 성덕태자에서는 당연히 일본서기와 고사기가 나와서 일본서기는 승리자의 입장을 대변한 왜곡이라는 주장도 하죠.

그래서 이런 스타일은 '아무 생각 없이' 읽어야 합니다. 특히 관련 전문지식을 보유한 독자가 있다면 상당히 신경에 거슬리는 내용일 겁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배울 점이라면 '유연한' 사고방식일 겁니다. 역사학 전공하신 분은 아실 겁니다. 역사서 자체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우를 범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이죠. 미스터리가 여기와 연관이 있겠죠. 100% 확신할 수 있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 이외에는 전부 의심의 대상이 됩니다. 증인의 증언을 100% 믿을 수 있나요? 의외로 인간의 증언만큼 믿을 수 없는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부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의심하고 의심해라! 정도가 되겠죠. 이런 의심의 대상을 역사적 내용과 결합한 것이 <야마타이는 어디입니까?>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짤막한 단편이라 논문 수준의 학술적 고증을 토대로한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속작 <신 세계7대 불가사의>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듯 한데, 그냥 이렇게 해석하는 '재미'도 있다는 사실 정도로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시간 때우기 좋은 즐거운 단편집이 될 것이고,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수가 인정하고 있는 정설에 반하는 내용이 영 거슬린다면 그냥 이 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세요. 그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아무튼 단편중에 '야마타이'를 다룬 것이 제일 완성도는 좋습니다. 아무래도 이게 제일 처음 쓴 단편이고 나머지는 책으로 출판하기 위한 일종의 데코레이션에 가깝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국내에 출판될 일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나온다면 오픈 마인드로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평점 4 / 10

2009년 5월 8일 금요일

따뜻한 손 - 이시모치 아사미



2007년 동경창원사

<따뜻한 손>은 짤막한 7개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 단편집입니다.

왜 피해자는 다른 사람의 흰가운을 입은채 살해당했는가?
어떻게 피해자는 자살한 이의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냈는가?
만원 전철안에서 치한이 살해당한 이유?
어째서 피해자 지갑에는 현금 50만엔이 들어있었는가?
휴게실 화장실에 간다고 해놓고 사라진 남성의 진의는?
돼지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한 여성이 거짓말을 한 이유는?

일단 6개 단편은 이렇게 살인사건부터 간단한 일상계열로 나뉘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은, 연작 단편의 완결편 적인 성격이 강해서 미스터리보다는 그냥 소설로서의 마무리에 가깝습니다. 물론 추리 비스무리한 구석은 있습니다만.....

가장 단순한 미스터리 연작 단편집일 뻔한 <따뜻한 손>을 독특한 풍미를 느끼게 해준 것은 다름아닌 캐릭터 설정입니다. 처음 시작은 '하타 히로코'라는 대학원에서 생물학 전공중인 여성이 화자로 등장합니다. 히로코는 한 남성과 동거중인데, 그 남성의 정체는 다름아닌 인간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사는 '미지의 생물'입니다. 물론 겉모습은 일반 남성과 같습니다. 에너지 흡수는 상대방의 손을 잡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죠. 그래서 히로코는 항상 칼로리를 오버해서 음식을 섭취하고 동거인이 손을 통해 히로코가 과다 섭취한 칼로리를 빨아들입니다. 그래서 히로코에게 미지의 생물은 다름아닌 다이어트 머신(....)이기도 합니다. 미지의 생물=긴짱(애칭)으로 불리는 남자는 히로코를 '먹이'로 택한 이유는 다름아니라 히로코의 '魂'이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혼이 깨끗해야 에너지도 맛있다는 설정이더군요. 그래서 히로코가 일하는 실험실에서 동료가 살해당했을 때 긴짱이 나서서 추리를 해 범인을 지목한 이유는 바로 히로코가 혼이 더렵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죠. 또한 범행현장-특히 살해당한 시체-에서 패닉을 일으키지 않도록 마이너스 에너지까지 빨아들여 주변사람들을 침착하게 해주는 역할도 담당합니다.

여기서 잠시 이시모치 아사미의 미스터리 특징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시모치 아사미는 시리즈물을 만들지 않는데 ( <문은 닫힌채>의 탐정역인 우스미 유카 시리즈가 있긴 합니다만....)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습니다. 경찰이 아닌 일반 학생이나 사회인이 계속해서 살인사건에 조우하는 것이야말로 리얼리티가 없다는 뉘앙스였습니다. 그래서 <달의 문>이란 작품안에서는 테러범에게 점령당한 비행기 안에서 일어난 밀실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탐정역 캐릭터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살인이 벌어진 화장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았다는 이유로 탐정역을 맡게 되죠. <따뜻한 손>에서 인간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사는 미지의 생물을 창조한 이유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일반인이 살인사건에 개입할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한 가공의 설정인 것이죠. 분량이 짧다보니 현장을 눈앞에 두고 패닉을 일으키는데 지면을 할애하기 벅차다보니 그런 것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한 설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과 두번째 단편은 이렇게 히로코와 긴짱이란 기묘한 동거인이 겪은 살인사건을 다뤘는데, 세번째 단편은 등장인물이 싹 바뀝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기타니시 다쿠미라는 남성이 화자로 등장하고 그와 동거중인 여성 '무짱'이 나옵니다. 여기선 다쿠미는 인간이고 무짱이 인간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사는, 인간의 탈을 쓴 생물이죠. 3,4번 단편은 기타니시와 무짱의 활약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5,6번은 두 팀이 번갈아 등장하다가 마지막 단편에서 두 커플(?)에 한데 모이면서 소설은 결말이 납니다.

짧은 분량의 단편을 모아놓았지만 미스터리는 본격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단편 첫 부분에서 포인트가 되는 부분을 찝어주고 사건을 진행시키는 공평함도 갖추고 있습니다. 단지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기가 꽤 쉽다는 사실이 단점이죠. 물론 그냥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들어서 맞추어야 페어한 독자가 되는 건 당연한 것이고요. 아무래도 단편 특징상 페어한 의외성을 갖추기란 꽤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면을 감안한다고 해도 <따뜻한 손>은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아는 분은 기묘한 두 커플의 로맨스를 그린 '애정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요. (호호)

평점 5 / 10

2009년 5월 7일 목요일

해한가~자각몽 - 나승규



2008년 시드노벨

2권에서 재미를 궤도에 오른 <해한가> 3권은 '꿈' 이야기입니다. 첼리스트 시우는 '기면증'이란 특이한 병을 앓고 있는 청년입니다. 기면증이란 시도 때도 없이 잠에 빠져들어 장소를 불문하고 끊어진 실처럼 쓰러져서 잠에 빠지는 병입니다. 그래서 시우는 주위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이죠. 그러나 시우를 도와주는 미인 쌍둥이 자매 서연과 소연이 있습니다. 각각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인 쌍둥이 자매는 어릴적 부터 시우를 도와준 존재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최근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산장에 시우와 두 자매가 고립되고 밖에서 백호가 등장하고, 자매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그런 꿈입니다. 그리고 셋은 설악산 스키장에 놀러가던 도중 시우가 꾸던 꿈과 똑닮은 상황에 직면합니다. 꿈처럼 백호가 등장하고 서연이 잡아먹힙니다. 하지만 꿈에서 깨보니 시우 옆에 있는 존재는 '서연'. 그리고 둘은 약혼한 상태입니다. 다시 혼란에 빠진 주인공은 쓰러지지만 깨어보니 1년전 사건이 있던 그 산장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성은 '소연'이었는데.........

<자각몽>은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처음부터 거의 종반까지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사이코 서스펜스 비스무리하다고 봐도 좋겠죠. 핵심 부분은 교고쿠 나쓰히코의 <우부메의 여름>과 궤를 같이 합니다. 이건 <우부메의 여름>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게는 <자각몽> 역시 지X를 하네요~ 라는 평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인간은 착각하는 존재입니다. 얼마전 방영했던 '인간의 두 얼굴'이란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꽤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인간의 착각, 선입견, 편견,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등등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실험을 통해서 보여준 흥미로웠던 프로그램입니다. <자각몽>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단지 추리소설에서 보여주는 꽉 찬 논리로 보기에는 중간 중간 허점이 존재합니다만, 이 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야 하겠죠.

마지막으로 결말은 2권과 더불어,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을 법도 합니다. 저 같으면 '케찹'이 허벌라게 튀는 결말 아닌 결말로 지어버렸겠지만, 작가 스스로가 우유부단한 성격이 아닌가 싶은 결말이었습니다. 아니, 작가는 선택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창조한 소설 속 캐릭터에게 눌렸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군요. 행복이란 건 자기만족이니까요. 아무튼 독자에 따라서는 기분나쁠 내용일지도 모를 <자각몽>입니다만, 2권에서 보여줬던 재미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재미가 좀 있어졌는데, 아니 작가 후기를 보니 다음권이 시리즈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이건 반착이에요. 예, 반칙입니다. 이제 좀 맘을 다잡고 읽을만하다 싶으니 끝이라니, 말이 안됩니다. 물론 라이트노벨 특징상 단편집이나 외전이 나올 확률이 존재합니다만, 그래도 그렇지 끝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입니다. 3권에서 '해한가'와 관련된 떡밥을 좀 뿌린다 싶었더니 그래서 그런거였군요. 등장기회가 거의 없던 의사와 변호사에게도 활약할 기회도 줘야할텐데, 그래야 캐릭터 밸런싱이 맞을텐데, 역시 1권은 뒤에 위치시키는 편이 낫던데, 2권과 3권에 다른 사건을 넣어서 '관계'를 그려야 좋았을텐데,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리가 잘 되지 않네요. (오타와 비표준어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평점 6 / 10

전파적 그녀~행복 게임 - 카타야마 켄타로



2005년 집영사 수퍼 대시 문고
2008년 학산문화사 (우리말)

사건의 발단은 전철 안에서, 쥬자와 쥬우가 성추행범으로 몰리면서 시작됩니다. 당연히 결백한 쥬우는 치한 누명을 쓰고 옴짝달싹 못합니다만, 때마침 지나가던 오치바나 히카루(아메의 여동생)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어째선지 쥬우가 성추행을 저지르고 여자애와 으싸으싸 했다는 해괴한 소문이 퍼져있습니다. 평소에는 쥬우를 무시하는 반애들도 이번에는 쥬우에게 결멸하는 시선을 보냅니다. 그리고 학생회의 호출로 간 쥬우는 소문의 진상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히지만 금발로 염색한 불량 청소년의 변명 따위는 통하질 않죠. 부학생회장에게 상처까지 입혀서 퇴학까지 각오하는 쥬우지만, 학생회장 카오리의 중재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합니다. 하지만 쥬우를 향한 악질적인 장난은 멈추지 않습니다. 우편함에 고양이 시체, 발화사건, 장난전화 등 신경을 거슬리는 장난이 이어지죠. 하지만 이런 악질 장난은 쥬우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쥬우가 다니는 학교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역시 처음에는 사건에 개입을 안하려고 하지만 결국 히카루도 피해자가 되버리는 바람에 쥬우는 사건개입을 선언하고, 아메와 일당들을 데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범인을 잡으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제목대로 '행복' 게임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행복한 사람의 행복을 뺏어오는 행위, 일종의 제로섬게임으로 행복게임을 한다는, '망상'에 가까운 내용이 나옵니다. 다수의 망상이 공공연하게 인정받는=상식이란 것으로 비추어보면 행복의 제로섬은 말도 안되는 내용입니다만, 사람이란 묘한 것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습니다. 보고 싶지도 않은 것이 보이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행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미스터리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루즈합니다. 해피엔딩, 다들 행복해졌어!! 만만세 외치다가 나오는 쥬우의 망상에 놀란 독자들도 있을 법도 합니다만, 이미 소설 패턴에 익숙한 독자라면 그다지 반전이라고 할 것도 없을 겁니다. 1,2권에서도 즐겨쓰던 수법이니까요. 캐릭터 수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겠죠. 그 인물밖에 남는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쉽습니다. 그런 것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마무리는 잘 다듬어져 있다보니 중반, 후반부의 느슨한 분위기를 제법 잘 다독여 줍니다. 결론은 미스터리보다는 그냥 가벼운 서스펜스물로 받아들이면 읽는 데 불편한 건 없다는 겁니다.

평점 5 / 10

2009년 5월 6일 수요일

전파적 그녀 - 카타야마 켄타로



그림출처 : http://dash.shueisha.co.jp/topics/denpadvd.html

2004년 집영사 수퍼 대시 문고
2007년 학산문화사 (우리말)
2009년 OVA

주인공 쥬자와 쥬우는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불량 청소년입니다. 어느날 수상한 편지 한 통을 받고, 편지에 쓰인 곳으로 찾아간 쥬우. 그 앞에는 앞머리로 눈가를 가린 수상한(?) 여학생 한 명이 쥬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쥬우를 본 여학새은 대뜸

'전 전생에 당신의 노예였습니다.' (아마 이런 대사였을 겁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라고 말하며 쥬우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당혹해하는 쥬우는 그 자리를 피하지만 여학생은 그런 쥬우의 태도에 아랑곶않고 신출귀몰 쥬우 근처를 맴돕니다. 여기까지 오면 제목의 <전파적 그녀>는 아마도 그 여학생, 이름은 오치바나 아메(雨)를 가리키지 않나 대부분의 독자는 생각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불량 청소년과 망상 소녀 앞에는 무차별연쇄살인사건이 나타납니다. 피해자를 사정없이 구타하고 마지막에는 와이어 줄로 숨통을 끊는 연쇄 살인마. 하지만 쥬우가 속한 반의 반장 후지시마가 사건의 피해자가 되면서 쥬우는 사건에 개입하게 되죠. 그리고 사건의 현장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오치바나 아메...................

처음에는 전형적인 라이트노벨 풍으로 학교를 배경으로 한 러브 코메디 물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실상은 엽기연쇄살인이 등장하는 미스터리風에 가까운 내용입니다. 그리고 제목과 내용은 정확히 일치해서 사실은 소설 1권으로 끝났을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예상밖으로 인기가 좋아선지, 후속권이 나왔지만 1권만 읽어봐도 지장은 없습니다. 폭력장면과 묘사는 라이트노벨 치고는 수위가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오치바나 아메 같은 캐릭터 조형은 전형적인 라이트노벨 방식이죠. 그리고 사건 자체는 미스터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엽기범죄.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가 재미의 관건인데, <전파적 그녀>는 제법 밸런스를 잘 잡은 축에 속합니다. 미스터리만 보자면 실망을 할 수도 있겠지만, 미스터리 중에서 '서스펜스' 정돌 생각하면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못한 점을 전 높이 사고 싶군요. (이건 찜찜함은 2권에서 더 강해집니다만.....)

미스터리 요소가 좀 불만스럽긴 합니다만, 뭐 이건 이것대로 이 정도가 딱 알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범인이 중얼중얼 나불대는 모습은 좀 마음에 안들긴 합니다만, 뭐 라이트노벨 미스터리야 제법 많지만 그 중에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은 얼마 없다(대부분은 졸작)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파적 그녀>는 걔중에서는 성공한 축에 속하지 않나 싶습니다.

소설은 1권이 2004년 발매됐고 우리말은 2007년도 경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1권을 베이스로 <전파적 그녀 OVA>가 나왔더군요. 40분 정도의 러닝타임이란 짧은 시간 안에 1권 내용을 우겨넣었던데, 중요한 곳은 비교적 잘 집어주고 있습니다. 서스펜스 효과를 위해 시작 부분을 약간 변경시켰더군요. 그렇다고 속을 독자(시청자)는 거의 없겠지만요. 대신 쥬우의 어머니 쥬자와 베니카는 애니메이션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소설로 읽기 불편한(?) 분은 그냥 애니메이션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여담) <전파적 그녀>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가의 다른 시리즈 <쿠레나이(紅)>가 있습니다. 여기서 쥬자와 베니카가 재등장하죠. 시간 순서는 <쿠레나이 시리즈>가 먼저입니다. 굳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만........

평점 6 / 10

전파적 그녀~어리석은 자의 선택 - 카타야마 켄타로



2005년 집영사 수퍼 대시 문고
2007년 학산문화사 (우리말)

시리즈 2권입니다. 전편에서 우여곡절(?) 끝에 같이 하게 된 머리를 금발로 물들인 불량 청소년 '쥬자와 쥬우'와 전파계 망상(?) 소녀 '오치바나 아메'. 쥬우는 고장난 비디오 플레이어를 새로 사기 위해 아메와 함께 아키하바라에 갑니다. 어딘가 수상쩍은 가게에서 아메가 판매원과 물건 가격을 흥정하는 동안,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쥬우는 부모를 잃은 미아를 구합니다. 소녀의 이름은 카가미 사쿠라. 수상한 남자가 사쿠라에게 찝적대던걸 쥬우가 도와준거죠. 그래서 친해진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후. 연속영아유괴 안구 탈취사건의 새로운 피해자가 나타납니다. 생명에는 지장없지만 두 눈을 뽑힌채 발견된 피해소녀의 이름을 본 순간, 쥬우는 아키하바라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사쿠라를 떠올립니다. 그 때 내가 경찰서까지 데려다 줬더라면......가슴저린 후회를 하는 쥬우는 결국 안구수집광이라고 명명된 범죄를 멈추게 하기 위해 나섭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연찮게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주인공입니다. 머리가 안 따라줘서 몸으로라도 떼워야 하는데, 경찰도 뜬 구름 잡고 있는 사건을 일개 고삐리가 해결할 수 있을리 만무하죠. 그래서 쥬우는 결국 도움을 청합니다. 전편에서는 오치바나 아메가 그 도움의 손길이었다면 이번에는 아메의 친구가 조력자로 등장합니다. 아메의 친구 유키히메와 한 조가 되어 피해 어린이들이 사라졌던 곳을 방문해 보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는 보이질 않죠. 도서관에 가서 미스터리 소설도 읽어봅니다만, 그런다고 '범인은 이 안에 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독자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류의 범죄는 사회파라면 범인의 의외성은 일단 거의 물건너 간다고 봐야겠고, 다른 곳에서 뒷통수를 치려고 노리는 것이 하나의 패턴입니다. 사실 범인은 주변에 있었다!라는 패턴이라고 한다면 이 구성은 또 식상합니다. 역자후기에도 있습니다만, 안구수집광이라고 해서 저 역시 '포르말린 병'에 넣은 눈깔사탕을 연상했습니다만, 그런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오츠 이치의 <리스트컷 사건>과도 다릅니다. 결말이 나오고 어째 그런 일이!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혹시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 잔혹합니다. (호호)

새로 등장하는 두 명의 캐릭터 유키히메와 마도카는 사실 <쿠레나이 시리즈>(카타야마 켄타로가 쓴 다른 시리즈. 단, <전파적 그녀>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와 더 연관이 많습니다. <쿠레나이>에서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쪽 계열 캐릭터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두 소녀가 2권에서 보여주는 황당무계한 듯한 장면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할 요소입니다. 유키히메와 마도카를 그냥 도검 마니아에 공수도 소녀라고 인식해도 상관은 없겠지만요. 망상 소녀 아메와 딱 삼인조가 되어, 그야말로 유유상종일지도 모르죠.

"쥬우, 왜 그러는거야?"
"쥬우는 기도드리고 있는 거랍니다"
"기도?"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있는거에요. 빨리 아침이 오게 해달라고....."

여담) 번역은 <문학소녀 시리즈>와 <인사이트 밀>을 맡았던 최고은인데, <전파적 그녀>의 번역은 군데군데 아니다 싶은 곳이 있더군요. 원래 내가 한, 이상한 번역은 못찾으면서 다른 이가 해놓은 번역은 유달리 눈에 잘 띄더군요. 그래도 '절대'란 말을 너무 남용하더군요. '반드시' '꼭' 정도로 바꿔서 해야하는 곳이 있었는데, 편집부는 대체 뭐하는 건지....에휴.......

평점 5 / 10

2009년 5월 4일 월요일

해한가2~거미집 - 나승규



2008년 시드노벨

1권을 보고 미묘한 느낌 때문에 2권은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해한가> 1권은 확실히 일반적인 라이트노벨치고는 소재와 접근 방식이 약간 다르긴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뿐이고 별 다른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이 본편보다 더 괜찮아서 역으로 기대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한거죠. 망설임이 들 때는 눈 딱 감고 질러! 라고 누군가 귓가에 속삭여준 듯한 기분이 들어서 3권까지 업어왔습니다. (진짜 업어온 건 아닙니다.)

그리고 방금 2권을 다 읽었습니다. 300페이지 정도로 1권보다 약 40페이지 정도 줄었습니다. 1권도 본편은 25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다보니 실제 내용은 더 늘었다고 해야겠죠. 아무튼 내용은 나비 같은 네 소녀가 거미줄에 걸려 '거미'에게 잡아먹히는 내용입니다.

소심하고 안경을 쓰고 다니는 모범형 A
성격이 급하고 반항적인 불량아 B
운동을 좋아하고 덜렁대는 육상부 O
치밀하고 계산적이며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AB

이렇게 4명의 소녀가 등장합니다. 같은 여학교에 다니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 네소녀는 비밀 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런 저런 비밀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이용해 안 좋은 일도 해버리죠. 하지만 이런 네 명의 소녀 앞에 한 명의 여선생이 등장하고 선생은 소녀들에게 구원의 밧줄을 건네지만, 네 소녀의 눈 앞에서 밧줄은 끊어집니다. 여선생의 비밀을 누설하고 선생은 그때문에 죽고 맙니다. 그리고 게시판을 폐쇄한지 1년이 지난 어느날 AB는 우연찮게 다시 비밀 게시판에 접속하는데, 그곳에 사라졌던 '거미'가 올린 글이 올라옵니다.

<거미는 거미집에 먹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혼비백산한 AB는 나머지 세 명에게 연락을 하고 1년만에 한 데 모인 네 소녀. 그리고 AB를 시작으로 한 명식 거미에게 먹힙니다. 그런데 AB는 먹히기 전에 B에게 '구원'을 얘기합니다. 거미는 우리 네 명 중에 있다고 하면서 말이죠...............................

사실 2권이 먼저 나오고 1권 내용은 나중에 나오는 것이 더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해한가'와 주변인물에 서서히 초점을 두다가-아 이 캐릭터 뭔가 있을 것 같은데?라면서 주변인물에 해당하는 내용을 좀 더 뒤에 내보였으면 하는 것이죠. 그런데 1권은 그 주변인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2권같이 해한가와 주변인물(심지어 이름만 언급되는 캐릭터도 있습니다.)은 조금씩 보여주다가 주변인물의 한(恨)부터 정리하고 그 다음에 해한가와 관련된 비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세련된 구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건 전형적인 독자- 그 중에서도 나만의 입장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독자는 작가를 배반하는 존재입니다. 작가는, 나는 이렇게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쓴 것인데, 딱히 미스터리를 고려하고 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독자는 멋대로 미스터리가 부족해서 재미가 없다고 작가를 비난한다거나, 구성을 바꾸라고 요구 합니다. 그럴 때 작가는 당혹스러울 겁니다. 난 원래 그걸 노리고 쓴 게 아니라 순수하게 내 글을 보고 나와 공감해줄 독자가 독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만족하는데.....왜 내 기대와는 어긋나는 '반응'이 오는 것일까? 하고 말이죠. 저는 '이기적인' 독자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팔짝팔짝 뛸 정도로 좋아하고 맘에 들지 않는 책을 만나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비난을 합니다. (비평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없고요.) 그런 면에서 <해한가-거미집>은 잘 만들어진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면서 근본적인 '自我'에 관한 메인디쉬에 미스터리 디저트를 곁들인, 요리사가 만들고 싶은 요리와 음식을 먹을 손님이 느낄 풍미를 저울에 놓고 잘 조율한 먹음직스런 요리입니다.

여기서 쓰인 미스터리는 전형적인 서술트릭입니다. 물론 멋들어진 트릭이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소재 자체가 많이 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네 소녀의 별명인 혈액형에서 이미 진저리를 쳤을지도 모를 독자도 있을 겁니다. 또 혈액형 타령이야!! 라면서 말이죠. (호호) .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가면 왜 그런 구성을 취했는지 독자도 충분히 납득할 겁니다. 특히 마지막 해결파트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의 글과 그림을 적절히 이용한 연출은 제법 임팩트 있는 좋은 구성입니다. 아무리 뻔한 - 수도없이 반복된 - 소재라도 포장을 적절히 잘만하면 충분히 '신품'급으로 통하는 것이죠. 1권과 마찬가지로 해한가가 해답을 제시해주는 것은 분명 같지만 구성을 바꾸면 이렇게 반응도 확연히 달라지죠. 비슷한 '구원'을 논하는 <문학소녀 시리즈>가 어째서 호평을 얻는지 연구해보면 작가 나승규는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명심해야할 것은 모든 독자를 만족시켜줄 책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설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오타. 그리고 비문들이 영 거슬립니다. 이건 1차적인 책임은 작가에게 있겠지만 그걸 교정해주는 것이 편집부의 역할인데,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미얄의 추천>에서도 오타와 비문이 엄청 거슬렸는데, <해한가>도 이 굴레를 벗어나질 못했더군요. 그냥 라이트노벨 독자층에게 고만고만하게 팔고 말 것이라면 그냥 이대로 가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좀 더 많은 독자에게 받아들여지고 싶다면 철저한 교정과 감수를 거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시 라이트노벨이 그러면 그렇지. 캐릭터 이름만 우리나라 사람으로 바꾼 일본산 라이트노벨이라는 비아냥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거미집' 정도의 완성도만 유지해도 이 시리즈는 분명 성공할 겁니다. 1권에서 떨어져나간 독자가 있다면 2권까지는 읽어보고 판단해보세요. 2권까지 읽고도 별로 재미가 없다면 그냥 머릿속에서 지우면 되는 겁니다. 페이지 수가 많은 편도 아니고 가격도 비싸지 않습니다. 시간적 금전적 부담도 크지 않습니다. 산모 입장에서는 산고 끝에 낳은 첫애가 더 애착이 갈지도 모르겠지만, 산파입장에서는 둘째애가 더 이쁘고 귀여워 보이네요. 뭐 저는 일개 독자에 불과하니까요. 그리고 이기적인 독자이니까요.

평점 6 / 10

2009년 5월 2일 토요일

2009년 5월 1일 금요일

도구라마구라 - 유메노 큐사쿠

부우우우우웅~ 요란한 소리에 찌부둥한 머리를 움켜잡고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며 콕콕 쑤신다. 머리를 털듯 좌우로 잠깐 흔들고 나서 베개 옆에 있던 안경을 썼다. 이제서야 초점이 제대로 잡히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 기분이 든다. 물론 기분 뿐이지만. 하지만 곧바로 나는 다시 우울해졌다. 왜냐하면 여전히 내 진짜 이름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XX 요양원이라고 한다. 진짜 요양원인지, 실험용 불법 시설인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나같은 정신병자-나는 내 이름과 과거가 기억나지 않을 뿐이지 결코 정신병자가 아니다! -를 수용해놓은 사실상 감옥같은 곳이라고 한다. 나를 찾아오는 면회객(가족)-한 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수상한 인물을 제외하고-도 없을 뿐더라 언제부터 이곳에 갇혀서 생활하고 있는지 그것조차 알지 못한다. 단 하나 내 뇌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나는 내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니!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쿡쿡......크크크....하하하하.....아, 언제나 꾸는 이상한 꿈이 있긴 하다. 무슨 꿈이냐고? 하하.

세면대에 위치한 거울을 쳐다보면서 오늘도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이른 아침에 일어난 얼굴이라 그래선지 평소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래도 많이 잡아야 30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깔끔하게 세수를 하고 단장을 한다면 20대 후반으로 까지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간단하게 세수를 끝마친 나는 아침 배식이 있기 전까지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서 다시 한 번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대체 나는 누구인가? 내 이름은 무엇인가? 그리고 항상 같은 꿈안에서 '나에게 살해당하는 여자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어여쁜 여자들의 뒷꽁무니를 기분나쁘게 쫓아다니다가 으슥한 곳으로 여자를 잡아채서 잭나이프로 사정없이 여자를 마구 찌르는, 질나쁜 꿈이다. 칼날이 고깃살을 비집고 들어갈 때의 묵직한 손맛, 칼을 뺄 때 내 손짓을 만류하는 듯한 주저하는 손맛, 목에서 고성능 물총으로 뿜은 듯이 솟구치는 비릿한 내음의 검붉은 액체 그 모든 것이 내 오감을 만족시킨다. 꿈 속이지만 그건 마치 현실, 내 눈 앞에서 바로 벌어진 듯 생생하다. 정신없이 여자를 찌른 후 개운하게 붉은 샤워를 한 다음에 고개를 들면 내 앞에는 거울 하나가 놓여있고, 그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지른 다음 꿈에서 깨어난다. 이것이 내 정해진 악몽 패턴이다. 온몸을 식은땀으로 사우나를 한 채 깨어난 다음 항상 하는 일은 세면대 거울을 보는 일이다. 왜냐하면, 꿈속에서 거울에 비친 얼굴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거울에 비친 얼굴 안에서도 내 얼굴이 '미소'를 짖고 있지 않은가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런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예전에 저질렀던 범죄가 꿈으로 나타난게아닌가 하는 사실 때문이다. 일종의 무의식적인 자기고발이라고 해야하는 걸까? 어떤 이유에서 난 자아를 잃어버렸지만, 쾌락에 빠져 저질렀던 살해에 관한 기억만은 뇌세포가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능적으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기억이라고 뇌는 판단하고 그런 사실을 남겨두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동시에 몹시 황홀하기까지 하다. 아아, 역시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지만 미치광이가 아니지만 정신병자이면서 미치광이 임에 분명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하다. 큭큭.....하하하하.

오늘은 면회객이 오는 날이다. 물론 내 가족은 아니다. 나에게는 가족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있다고 해도 가족들은 이런 나를 버린 자식 취급했음이 분명할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주기적인 면회객이 있지만 내 가족은 아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는 형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전에 벌어진 수도권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를 찾는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내가 당시 유력용의자였다고 한다. 범행 수법이 내 꿈 내용과 몹시 닮았다고 하는데, 아마 범인은 나와 비슷한 부류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한테는 실제 저지른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나를 찾아온다.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물론 나는 결백하다. '그런' 꿈은 꾸고는 있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쿡쿡.....하하하..... 꿈과 현실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은 자여 그대의 이름은...........!! 하하.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한달만에 찾아온 그는 내 앞에서 인사도 없었다. 물론 나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말없이 내 앞에 책 한 권을 내밀 뿐이었다. 상,하로 나뉜 꽤 묵직한 책이다. 대체 무슨 책이지? 형사는 내 앞에 책을 내밀고 말없이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갔다. 아마 나보고 이 책을 읽어보라는 얘기인가 보다. 대체 무슨 책일까?
.......화면 점점 어두어짐

<정신병원에 수감중이던 환자, 자살>
금일 아침 7시경, 아침 식사 배달때문에 개인 병실을 돌던 직원 아무개 씨는 식사 배급에도 아무 반응 없던 7호실 병실을 의심스럽게 여겨 관찰구로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그 안에는 머리가 피투성이 된채로 쓰러진 입원 환자가 있어서 아무개 씨는 다급히 담당 의사를 불렀다고 한다. 부검 결과 7호실 환자는 두개골 함몰과 골절로 인한 대뇌출혈과 쇼크로 사망한 것이 밝혀졌다. 7호실에 입원하고 있던 吳XX 씨는 입원한지 2년이 지난 환자로, 극도의 정신착란과 심각한 이중인격을 앓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살에 쓰인 흉기는 당시 吳XX 씨 옆에 떨어져있던 피투성이 책 2권이었다고 하는데...................책 제목은......................<도구....................라>

........[화면 재차 어두어짐]

헉! 또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내가 자살을 했고, 신문에 실린 내 자살기사를 보는 내용이었다. 실로 유쾌하다. 꿈속에서라지만 자살한 내 모습을 내가 직접 볼 수 있다니, 몹시 유쾌하다. 낄낄낄....... 그런데......그건 정말로 꿈이었을까? 머리가 꺠질듯이 아프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시감? 흠, 모르겠다. 꿈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누구? 아 복잡하다. 그냥 꿈이었겠지. 아무렴 어때? 다시 잠이나 청하자. 쿨쿨. ......... 내일 다시 눈을 뜨면 이것 자체도 꿈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꿈이길 바란다...........부우우우우웅~

평점 10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