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31일 목요일

지옥의 기술사 - 니카이도 레이토

1992년 고단샤
1994년 고단샤 노블즈
1995년 문고판

니카이도 레이토의 대표 시리즈 <니카이도 란코 시리즈> 첫 작품이다. 일본 미스터리, 그중에서도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란코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음 직할 것이다. 시리즈 주인공의 이름을 란포 작품에서 따온 것처럼 <지옥의 기술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란포 냄새가 물씬 나는 작품으로 완성됐다. 얼굴과 전신을 붕대로 감은 정체불명 괴한의 협박으로 시작되는 초반부가 딱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기괴한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문장이나 문구가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좋은 의미로)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라 남자가 신출귀몰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연속살인을 벌이고, 그중에는 3중 밀실 살인사건까지 등장하는데, 그 부분에서는 딕슨 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예 작가 스스로 밝힘)

분위기와 논리를 기반으로 한 전개는 전형적인 탐정소설이란 말에 걸맞은 완성도다. 다만, 작중 화자인 니카이도 레이토(엘러리 퀸 같은)는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을 고수하며, 여고생 탐정으로 데뷔한 니카이도 란코는 사건을 명쾌하게 (중간에 실수도 하지만) 해결하지만 딱 그것만 보여준다. 굳이 여자를 탐정으로 해야 할 당위성이 보이지 않는다. 캐릭터성이 모자란다고 말하면 더 간단하려나.그에 비해 작가의 다른 시리즈 <미즈노 사토루 시리즈>는 캐릭터가 상당히 강조되는 데 그래서 그런가? 아무튼 <지옥의 기술사>는 란포+카 조합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좋은 간식거리가 되는 소설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 연결 부분이 부드럽지 못하고,캐릭터들의 대사에는 작위적인 부분이 너무 많다. 또한 초반에 강력한 힌트가 포진해있는데 요즘 독자들한테는 금새 들통날 듯한 부분이다. 그것도 같은 방법으로 속여서 꼼꼼한 독자는 비교적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만들어 놓고 있다. 반대로 페어 플레이 정신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단점도 많지만 그래도 싫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소설을 모처럼 만에 읽어서 그런가 그냥 즐거웠다. 가장 재밌던 부분은 주석 부분. 소설 마지막에 작중 화자인 레이토가 달아놓은 주석이 꽤 많은데, 이게 압권이다. 소설 속 화자=작가라는 등식으로 생각한다면 작가 니카이도 레이토는 꽤 재밌는 사람임이 틀림없다.그리고 자기 생각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편이기도 하고. 뭐 그래서 몇 년 전인가 <용의자 X의 헌신> 사태(?)도 있었고 말이다.


1992년 단행본으로 첫선을 보였는데, 권말에는 시마다 소지의 추천이 수록됐다. 당시 시마다 소지의 신 본격 선언과 맞물린 행보였던 듯. 니카이도 레이토 말고도 이미 우리말로 꽤 소개된 우타노 쇼고의 데뷔작 <긴 집의 살인>이나 아비코 다케마루의 <8의 살인>도 전부 비슷한 시기의 작품이면서 시마다 소지의 추천사가 딸려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라 남자가 나타나서 복수를 외치고 밀실 살인을 벌이는 장면은 나중에 아동 미스터리로 나온 <카의 복수>와 유사한 설정이다. 다만, <카의 복수>는 아동용답게 성인요소를 대부분 배제했다는 게 다른 점이다.

평점 6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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