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4일 목요일
식물의 법칙 - 사와키 쿄
1990년
1997년 창원추리문고
일단 제목은 <고금화가집>에 수록된 시에서 발췌한 문구입니다. 원문 해석은 제 능력(?) 밖의 일이라 내비두고, 일단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해보면-오역은 제 기본(?) 스킬이니 그걸 감안하셔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 이름에 자부심이 있다면
자, 물어보자, 검은물떼새여(미야코도리)
내가 사랑(생각)하는 사람이 무사히 서울에 있는지 없는지....
이 중에 두 번째 문구의 원문이 "いざ言問はむ都鳥" 인데, 이게 바로 원래 책 제목입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우리말로 바꿔야 알기 쉬울까? 머리를 쥐어 짜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창원추리문고에서 나오는 모든 일본 소설에는 '영문 제목'이 딸려나온다는 걸 말이죠. 이 책의 영제는 'Rule of Green' 입니다. 아하~ 직역하면 '녹색의 법칙'이 되겠지만(rule를 또 어떻게 번역해야 느낌이 사나 고민을 해봐야하지만 다행히(?) 저는 영어 까막눈입니다.뭐 일본어도 까막눈 수준이긴 하지만요. 아니 우리말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군요. 호호) 본서에서는 '식물'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기 때문에 <식물의 법칙> 정도로 해석하면 무난하지 않을까 싶어서 결국 이걸 제목으로 정해버렸습니다. 뭐 국내에 이 소설이 정식으로 소개될 확률은 거의 없을테니 대충 대충 했다는게 정답이지만요. (무책임은 저의 기본덕목이죠....)
아무튼 얘기가 길어졌는데, 본서는 1990년도 '기타무라 가오루' 일당 (와카타케 나나미, 가노 도모코 등)의 주특기인 '일상 미스터리' 계열에 속하는 미스터리 단편집으로 등장했고, 제가 읽은 문고판은 1997년도에 발간됐습니다.
식물과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선상에 놓인 사건을 놓고 벌이는 추리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한 단편이 후반부에 가서 새롭게 부상하는 스타일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과 가노 도모코의 <나나쓰노코> 등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본서가 앞의 두 권과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첫째 '시적'인 느낌의 문장이 보다 '문학'적 향취를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무리입니다. 앞서 나온 두 권은 결국 깔아놓은 복선과 암시를 회수하면서 안정된 착지를 보여주지만, 본서는 복선과 암시를 다시 회수하는 것까지는 같지만 착지가 불안정합니다.(특히 괴테의 문구로 마무리하는 결말의 여운이 인상적입니다.)이런 부분은 '안티 미스터리'로 해석할 여지로 남습니다. 아마도 첫째 부분 때문에 오히려 미스터리가 불완전해 보였을지도 모르죠. 굳이 '미스터리'에 집착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당위성 문제까지 생기니까요. 미스터리 색채를 더 엷게 만들었다면 오히려 평가가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작가 사와키 쿄는 이 책을 끝으로 작가생활을 접었다고 하네요. 단행본 발간당시 혹평을 받았다고는 하는데, 혹평을 받을만한 내용인가 자문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와카타게 나나미, 가노 도모코, 기타무라 가오루의 일상 미스터리와 비교해서 명료한 전개와 깔끔한 결말과는 거리가 있는데, 오히려 그런 부분이 당시 출판된 일상 미스터리 계열의 작품들과 차별화가 되는 하나의 근거가 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차별화된 부분이 비평가와 독자에게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못한게 패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담으로 와카타게 나나미의 데뷔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제8화 '판화 속 풍경'에서 '아마츄어 오케스트라단에 소속된 바이올린 취미를 가진 식물학자'가 등장하는데요, 본서의 주인공 '사와키 케이'는 식물 분류학자이면서 바이올린 취미를 갖고 아마츄어 오케스트라단에 소속되어 연주회를 갖기도 한다는 설정입니다. 아주 똑 닮았죠? <식물의 법칙> 안쪽에 보면 릿쿄 대학 미스터리 (立教大学ミステリ) 클럽 사람들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보이는데, 와카타케 나나미 경력을 보면 같은 대학 소속으로 미스터리 클럽에서 활동했었다고 하죠. 이런 것을 보아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서 나온 바이올린+아마 오케스트라단+식물학자는 본서의 사와키 케이가 분명해 보이며 이건 일부러 작가가 카메오로 출연시킨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참고로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1991년 발간됐습니다.
평점 6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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