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2일 화요일

유리 기린 - 가노 도모코




1997년 고단샤
2000년 문고판

<유리 기린>은 저자 가노 도모코의 주특기를 그대로 살린 '연작' 미스터리입니다. 총 6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요, 그 중에 5편은 잡지 연재분이고 마지막 편만이 단행본을 발간하면서 새롭게 들어간 내용이더군요.

스토리는 기존의 - <유리 기린>은 가노 도모코의 통산 5번째 작품입니다.- 작가 특징에 반하는 스타트를 보여줍니다. 반한다기 보다는 결국 가노 도모코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라는 한숨이 나올 법한 '장면'으로 시작하죠.

한 명의 소녀가 밤길에 남자를 만나고 살해(?)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소녀의 이름은 '안도 마이코' 꽃다운 여고생입죠 (......)

기존의 가노 도모코 소설에서는 보이지 않던, 직접적인 사건 묘사로 테이프를 끊더군요. 이미 전작들에서도 빛 속에 가려져 숨어있는 인간의 악의를 희미하게 그리기는 했지만요, 사건 자체는 일상 미스터리 계열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놓고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작가도 드디어 한계에 부딛혔나 보나 생각했습니다만, <유리 기린>을 끝까지 읽고 성급한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가노 도모코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더군요.

첫 단편 첫 장면에서 바로 살해당해버리는 안도 마이코는 <유리 기린>의 헤로인입니다. 아니 죽은 소녀가 무슨 여주인공?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마지막 단편까지 읽고 나면 대부분의 독자-아니 모든 독자가 제 생각에 동의할 거라 믿습니다. 각각의 단편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캐릭터가 안도 마이코이기 때문이죠.

표제작이자 제일 처음 수록된 '유리 기린'은 묻지마 살인범에게 당한 마이코의 친구 나오코가 나옵니다. 시점은 나오코의 아버지로 진행합니다. 친구가 죽고 나서 행동이 이상해진 딸. 갑자기 자기는 안도 마이코이라고 주장하고, 살해당하던 장면을 정확하게 얘기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는 나오코를 보다 못한 아버지는 결국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죠. 그리고 결국 연작집의 '탐정'역 캐릭터인 학교 양호선생인 '진노 나오코'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두 번째 단편 '삼월의 토끼' 다시 시간이 흘러 '닥스훈트의 우울' 등이 이어집니다. 단편마다 시점은 바뀌지만 탐정역은 양호선생인 진노 나오코가 맡습니다. 그리고 '거울 나라의 펭귄'과 '어둠 속의 까마귀'로 이어지면서 죽었던 소녀 안도 마이코는 서서히 되살아나(?) 주인공 자리를 꿰차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은 모든 단편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탐정의 비밀이 밝혀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리 기린>이란 연작 미스터리 단편집은 끝납니다. 단편과 단편을 연결해서 하나로 묶는 것은, 작가의 데뷔작 <나나쓰노코>에서부터 이어져온 작가의 주특기죠. 각 단편은 독립된 듯 하지만 실제로는 연결되는 것이죠.

제목 '유리 기린'은 죽은 '안도 마이코'가 쓴 동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유리로 만들어진 기린이 나오는데요, 투명하면서도 슬픈 듯한 그런 내용의 동화입니다. 동화 속의 유리 기린은 안도 미아키의 화신이고, 유리는 섬세하고 투명하지만 깨지기 쉬운 모든 것을 대변하는 장치죠. 범인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악의 그리고 깨지기 쉬운 마음이란 소재를 다루고는 있지만 실제로 소설은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어둠이 있으면 당연히 빛이 존재하듯이 소설에서는 그걸 '구원과 사랑'으로 풀어갑니다. 딱히 노리고 만든 '로맨스'는 아니겠지만 <유리 기린>을 로맨스 소설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 싶네요. 전보다 악의의 표현이 직접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독서후 느끼는 따뜻한 느낌은 변함없습니다.

물론 미스터리적 재미도 있어야겠죠? 이번에는 일상 미스터리 계열보다는 직접적인 범죄가 나오다보니 '누가 범인일까?' 하는 맞추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한 단편마다 일상 미스터리, 안락의자 탐정, 서술 트릭을 이용한 미스터리, 판타지 미스터리 등 다채롭게 꾸며져 있어서 종합 선물 세트 같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단편만 따로 떼어놓고 판단할 경우 별 재미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본서는 연작이다보니 전체적인 완성도에 단점의 대부분은 묻혀버리기 때문에 그리 눈에 띄지는 않더군요.

가노 도모코의 초기작에 재밌는 것들이 참 많은데, 어째서 우리말로는 <니키와 앨리스 시리즈>가 먼저 나왔는지 그것이야말로 '미스터리'네요.

여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입니다.

평점 7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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