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모래선혈 - 하지은

2009년 로크미디어 (노블리스 우드 클럽)

<얼음나무 숲>이 나온지 약 1년 만에 나온 하지은의 신작 <모래선혈>.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국적불명의 무대를 배경으로 한 - 읽다 보면 모 역사적 사실이 떠오르기도 하다만 어쨌든 통각마비인 주인공 레아킨 쿠세 황제의 동생입니다. 어릴적 부터 색과 감성을 잃어버린 그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매료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매료시킨 작가를 찾아서 '가출'을 합니다. 제국 쿠세가 식민지배중인 라노프로 가게 된 레아킨은 그곳에서 여류작가 '비오티'를 만나게 되죠.

이번에는 전작과는 좀 판이한 분위기의 판타지입니다.
<얼음나무 숲>은 차가우면서 따사로운 겨울 분위기와 음악이란 소재가 만나서 몽환적 분위기를 잘 살렸다면 <모래 선혈>은 땡볕이 내리쬐는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끊임없이 걷는 삭막하면서 텁텁한 분위기를 냅니다. (색과 감성을 잃은 레아킨이란 주인공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 강합니다.)하지만 단 하나의 청중을 위해 연주를 하던 <얼음나무 숲>의 천재 음악가와 거침없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와 단 한 명의 독자를 그린 <모래선혈>은 겉모습은 얼핏 달라보이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라노프에 도착한 레아킨은 죽음의 탑의 심판관이 되어 쿠세에 항거하는 라노프인을 처형하는 일을 맡습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매료시킨 작가를 찾는데, 남자인줄 알았던 작가는 알고니 여자였습니다. 게다가 레아킨이 상상하던 작가와는 나쁜 의미로 거리가 멀었죠. 하지만 서서히 감정을 하나 하나 알아 가는 어린아이 같은 레아킨과 그런 레아킨을 도와주는 비오티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매력적입니다. 여기에 쿠세와 라노프 사이에 얽히 라노프의 독립운동 이야기가 곁들어져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나아갑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단점(재미면에서)이 눈에 많이 띕니다. 전작은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미스터리를 적절하게 활용한 면이 돋보였던 반면, 이번에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평이합니다. 프롤로그를 장식한 황제의 '주사위'가 마지막에 재밌게 쓰이기는 합니다만, 읽고 나니 이건 웬걸 '집안 싸움'을 좀 거창하게 본 느낌이 마구 들더군요.

순수한 재미만 논한다면 <모래선혈>은 <얼음나무 숲>에 비해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모래선혈> 본문에서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언급하는 부분입니다만, 재미에 주력하면 내용이 없다고 뺨 맞고, 내용에 주력하면 지루하다고 뺨 맞는다는 대목입죠.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게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인데, <모래선혈>은 하지은의 과도기적 작품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각설하고(?) <모래선혈>의 교훈은 '금연 합시다'입니다. (.........???????)

평점 7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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