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2일 수요일

코끼리와 귀울음 - 온다 리쿠


1999년 쇼덴샤
2003년 문고판 (사진)
2008년 우리말(비채)

요즘은 뜸한데 몇 년 전 온다 리쿠 열풍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이곳저곳에서 경쟁적으로 온다 리쿠 소설을 출간한 적이 있다. 적이 있다고 한 것은 이제는 광풍이 지나간 다음인지 출간이 뜸하기 때문이다. 뜸하기보다는 거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해야 할까? 신간은 나오는 데 그게 우리말로 재빠르게 소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이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소개되는 것과는 다르게 유행처럼 퍼지는 독감 같은 기세로 나왔던 온다 리쿠 소설이 지금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해답은 뜻밖에 간단한데, 소설을 읽어보면 된다. 너무 싱거운 답이겠지만 그게 최선의 답이기도 하다.

온다 리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독창성이 없다는 것이다. 데뷔작부터 시작해서 최근작까지 - 가장 최근작은 읽어보지 못해서 판단에서 제외 - 다 읽어봤지만 거의 대부분 작품에는 '모티브'가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하고 썼더니 결과물은 달랐네요. 작가 후기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 심지어는 책 장정부터 해서 - 원서 <코끼리와 귀울음>이 대표적인 예 - 따오는 걸 좋아한다. 안 좋게 말하자면 표절의 여왕이라고 봐도 좋을까? 그래서 온다 리쿠 소설을 읽다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향수의 여왕이네 어쩌고 하는 좀 웃긴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사실 알고 보면 별거 아니다. 진실도 알고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온다 리쿠가 거기서 끝났다면 우리나라에 이렇게까지 소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티브는 따왔을지 모르지만 그걸 온다 리쿠 나름대로 재가공을 했고, 그 가공작업이 다행히 독자들 입맛에 맞았다. 그래서 나도 그랬지만 온다 리쿠에 푹 빠진 사람은 푹 빠졌고, 한 두 권 읽어보고 내 취향이 아니야! 한 사람도 있었고 뭐 그런 거다. 그 재가공이 잘 된 예는 <초콜릿 코스모스>를 보면 된다. 딱 봐도 <유리 가면>에서 나온 소설인데, 캐릭터 조형부터 문장으로만 진행되는 소설이지만 단어와 단어 사이에 긴장을 집어넣은 면밀한 점은 전부 온다 리쿠의 노력의 결정체이다. 태생은 독창적이 아닐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진품에 가까운 녀석이 나온다. 이것 또한 온다 리쿠의 특징이다.

<코끼리와 귀울음>은 그런 온다 리쿠의 요소를 잘 보여주는 단편집이다. 기본적으로는 안락의자 탐정물이라는 고전 미스터리물을 빌리면서 온다 리쿠 자기가 좋아하는 요소를 집어넣고 있다. 공포와 판타지 그리고 유머를 말이다. 총 12개 단편이 수록됐는데 각 단편의 분량은 대부분이 짧다. 무리해서 결말을 지으려 하기보다는 '정말 그랬을까?'라는 선에서 타협하는 면이 오히려 재밌다. 엄밀한 의미에서 공정한 미스터리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단편집이지만 미스터리로 읽어도 재밌는 녀석이기 때문에 온다 리쿠의 대표 미스터리 단편집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탁상공론'이다. 세키네 슈운과 나쓰가 사진을 놓고 벌이는 추리대결이 익살스럽게 잘 그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세키네 집안 총출동 버라이어티 장편소설은 지금도 기다리는 중이다. 언젠가는 나오겠거니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에 실린 '마술사' 역시 도시 괴담이란 판타지를 미스터리로 맛깔나게 포장한 녀석이고, '왕복 서신'은 작위적이긴 하지만 편지만으로 이루어진 미스터리라는 면에서 흥미로운 단편이다. 물론 세키네 다카오와 슈운 두 부자가 나오는 '대합실의 모험'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 역시 즐거운 단편이다. 개인적 경험 때문에 '급수탑'이 준 애틋한 재미 빼놓을 수 없다.

평점 7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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