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7일 화요일

마인(魔人) - 김내성

2009년 판타스틱

추리소설 팬 중에 우리나라 추리 소설 역사에 관하여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나오는 소설 하나가 있습니다. 그 책이 이번에 소개할 '김내성'의 장편 탐정 소설 <마인>입니다. 1939년 당시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녀석으로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런 '과거'의 소설이 2009년에 - 아무래도 국내에 미스터리 시장성이 전보다 나아졌다는 판단이 더해졌을 듯 합니다만 - 두 가지 판본으로 덜컥 나와버렸습니다. 하나는 여기서 소개하는 '판타스틱'에서 나온 양장본이고, 다른 하나는 '삽화'가 들어간 '정산미디어' 버전이 있습니다. (물론 2008년도 지만지 버전이 있긴 합니다만 이쪽은 육안으로 확인하질 못했습니다.)

책 장정이나 가격으로 보나 기타 등등 판타스틱 판 (페이퍼하우스) <마인>이 가장 충실한 판본인 듯 하지만 이게 또 실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한 얘기는 논문 수준으로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비전문가 입장에서 깊게 다룰 수 있는 여지가 적다보니 삽화본과 판타스틱본 둘 다 결국 원본을 임의로 바꾸었다는 정도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여기서는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순수하게 책 내용만 갖고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공작부인 주은몽의 결혼축하기념으로 열린 가장무도회. 이 날 공작부인이 어릿광대의 습격을 받는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은 귀신 같은 재주로 종적이 묘연해 집니다. 공작부인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가는 복수귀 해월. 그리고 여기에 맞서는 명탐정 유불란. 하지만 참극은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기본 소재는 '복수'입니다. 복수는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입니다. 여기에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까지 곁들여지면 그야말로 딱인데, <마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로 잘 알려진 <장한몽> (원작은 일본소설 <금색야차>)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 폭풍같은 인기를 끌었던 것과 마찬가지겠고, 이런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는데 '막장 드라마'라고 욕은 욕대로 먹으면서도 시청율이라는 최강의 방패이자 무기를 동시에 챙기는 유치한 드라마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통속적인 요소는 그 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는 없는 듯 합니다. 오히려 당시의 통속은 귀여운 맛이라도 있었지만 작금의 그것은 그냥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녀석들로 변질됐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겠지만요. 이런 추리와 통속은 에도가와 란포에서도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탐정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정작 대중이 선호한 건 '통속'이었던 란포의 고뇌에서 김내성의 고뇌를 같이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좋은 추리 소설도 독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마인>에 들어간 그런 요소는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포용해야할 것들이겠지요. 유불란은 작중에서 '탐정은 리얼리스트여야하지, 로맨티스트여서는 안된다'라는 말을 하지만 로맨티스트인 탐정도 탐정이고, 리얼리스트인 탐정도 탐정인 결국 '같은' 탐정이란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마인>은 철인이 아닌 고뇌하는 탐정 유불란이란 캐릭터 덕분에 오히려 독자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마인>은 복수와 연애질을 제외하고 불가사의해 보이는 범죄와 참극이 더해질수록 쌓여가는 단서와 수수께끼 그리고 앞을 알 수 없는 전개까지, 고전 미스터리가 갖추어야할 요소를 두루 갖고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라던가, 요것이라던가, 저것이라던가.......아무튼 고전 추리에서 빠지면 제법 섭섭할 요소들 몇가지를 활용하고 있어서 고전 팬들이라면 즐거워서 입가가 씰룩거릴 겁니다.

이렇게 <마인>은 당시 통속적인 요소가 들어가있는 동시에 본격적인 '탐정' 소설로서의 묘미까지 동시에 갖춘 추리소설입니다. 그저 <마인>의 단점은 당시에는 상당히 멋진 트릭이었을 법한 구성이, 현대에서는 난이도가 상당히 쉬운 트릭이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과거의 향채가 묻어나는 <마인>은 역사성이 제로라는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마인>의 추리소설적 가치를 떨어트리지는 않을 겁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짬을 내셔서 서점에 직접 가셔서 여러 판본을 비교해보시고 구매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평점 8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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