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제6회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 독자 인기상을 수상한 '히구치 유스케'의 데뷔작이다.
도가와 순이치, 즉 작중화자인 나는 형사 아버지한테 뜻하지 않은 소식을 하나 듣는다. 같은 반의 여학생 노리코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여학생도 아니었던 노리코. 하지만 거리에서 우연찮게 '사카이 아사코'를 만나게 되면서 나의 일상은 바뀐다. 노리코와 중학시절에 친한 사이였다던 아사코는 노리코의 자살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한다. 결국 아사코의 분위기에 휘말린 나는 노리코의 자살 원인을 찾기 위한 '탐정놀이'의 와트슨 역을 맡게 되는데.....(홈즈역은 아사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인 주인공 순이치는 형사의 아들, 상대역인 여주인공 아사코는 지역 야쿠자 사카이조직의 외동딸.뭐 그런 '라이트 노벨' 같은 캐릭터 설정과 친구의 자살의 원인을 찾는다는 '미스터리'를 적당히 결합한 소설이다.
일단 히구치 유스케의 책은 본서로 2번째 손을 대는 것이지만, 대사 구성력 자체는 잔재미가 넘칠 정도로 탁월한 재미를 보인다. 순이치와 아사코의 밀고 당기는 대화 하나 하나가 매력적이다. 몇 해 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만화 쪽에서 화두로 등장한 '쓴데레' '모에' 라는 키워드와 딱 들어맞는 캐릭터가 '아사코'다. 친구의 자살 원인을 찾아가는 구성은 전형적인 '하드 보일드' 스타일이고, 원인을 규명하는 소년과 소녀 사이의 밀고 당기는 장면은 '청춘 로맨스' 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 두 가지 이질적인 노선을 잘 버무린 것이 <나와 우리의 여름>이다.
미스터리 완성도도 나쁘지 않다.(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고생+임신 이란 소재 만으로도 얼추 사건의 전모를 추리 가능한 본인의 뇌구조가 막되먹은 건지 어떤지는 중요한게 아니니 암매장 해두고, 사건의 베일을 한꺼풀씩 벗겨나가는 맛이 좋다. 싱겁게 범인이 밝혀졌다고 독자에게 떡밥을 던져두고 마지막에는 약간의 반전까지 준비하는 하드 보일드 스타일 구성은 히구치 유스케의 미스터리 스타일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초반의 복선의 배분도 좋았다. 마지막 반전과 연결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 요소였다. 상당히 공들인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적당한 재미를 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단지 3분의 2 지점까지는 순이치와 아사코의 비중이 비슷하다가 후반부에는 아사코는 별 활약도 없이 퇴장해버려서 허무한 느낌이 드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아사코라는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에 나도 휘말려 버렸던 것일까? 그러고보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급생>이란 소설이 생각난다. 역시 고등학생 주인공이 등장하고 자살한 여학생 그리고 임신이 소재였다. 거기서 나온 여주인공의 경우는 이질적인 느낌이 컸는 데 말이다. <나와 우리의 여름>의 아사코나 <동급생>의 히사요(아마 이런 이름이었던 듯)는 어차피 남성 작가의 시점에서 그린 남성 입맛에 맛는 소녀 캐릭터라는 면은 마찬가지지만 전자는 등장횟수가 적어지니 아쉬운 맘이 들 정도였고 후자는 읽는 내내 이질감을 느끼던 캐릭터였다.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히구치 유스케가 그리는 여성 캐릭터를 참고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권한다.
평점 6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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