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중앙공륜신사
1999년 문고판
2007년 창원추리문고 (사진)
고등학교 2학년생인 히로타 에츠시는 무더운 여름방학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 내용은 전에 사귀다가 지금은 헤어진 전여친 미야자와 유미카가 치바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입니다. 하지만 유미카가 투신하기 불과 몇 시간전에 에츠시에게 전화를 합니다. '나 지금 신주쿠에 있는데, 에츠시 좀 나와볼래?'라고 말이죠. 그리고 에츠시는 유미카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몇 시간후 유미카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치바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당초에는 자살로 처리되지만, 여러 정황으로 타살이라고 확신한 주인공 에츠시는 유미카의 친구이자, 유치원 동창 (.....)인 토모자키 스즈코와 함께 미야자와 유미카의 죽음의 진실을 파치기 시작합니다.
초반 내용만 보면 상당히 슬픈(?) 그런 내용일 듯 하지만, 만약 미야베 미유키가 <모방범> 스타일로 썼다면 상당히 아련한 내용이 됐을지도 모르죠. 온다 리쿠가 <유지니아>스타일로 썼다면 '이 뭐병!'이란 얘기가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작가는 히구치 유스케. 우리나라에는 <나와 우리의 여름>이란 데뷔작이 우리말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소설 읽어본 분이라면 <사과나무 길>과 꽤 유사한 설정을 갖고 있다고 느낄 겁니다. 소설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사합니다. 둘 다 겉으로는 슬플 것 같지만 안으로는 상당히 유쾌하고 가벼운 소설입니다. 이 두 소설이 라이트노벨 미스터리 카테고리로 들어간다면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칭송받았을지도 모릅니다. (하하)
에츠시와 스즈코는 유미카의 주변인물을 상대로 이런 저런 유미카에 관해 물어보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싸가지 없고, 지만 알고, 남을 배려할줄 모르지만 '미소녀'. 뭐 대충 그런 얘기입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유미카의 숨겨졌던 이런 저런 사실이 드러나고, 미싱 링크가 하나씩 연결되면서 슬슬 사건의 전모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형적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주인공 내면의 감정은 되도록 보여주지 않습니다. 옛여친 유미카에 관해서조차 주인공은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나와는 리듬이 맞지 않았을 뿐이야' '그렇게 험담을 들을 정도로 나쁜 애는 아니었지' 그런 말을 농담조 말에 섞어서 흘릴 뿐 확실하게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끝까지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주인공의 눈을 통해 등장인물과 사건은 철저하게 묘사됩니다. 복장과 표정은 기본이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세밀하세 보여주죠. 섬세한 심리묘사를 원하는 분에게는 맞지 않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한적인 모습이 시니컬한 분위기를 살려줘서 저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제 성향과 무척 와닿습니다.
미스터리 얼개는 매우 간단합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타살이면 범인은 누구냐? 끝이죠. 미스 디렉션도 숨어있고, 반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독서를 꼼꼼하게 하는 분이라면 초반에 쉽게 맞출 수 있기도 합니다. 세세한 묘사가 오히려 이런 곳에서 걸림돌이 되죠.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공정한' 미스터리라고도 볼 수 있을 듯 하네요.
작가의 데뷔작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다른 작품도 되도록 모으고 있습니다만, 히구치 유스케 책은 함부로 추천하기가 몹시 곤란합니다. 물건너도 마찬가지 평인듯하지만 독자에 따라서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작가 중 하나입니다. (다른 작가도 뭐 마찬가지지만요) 좋아하는 독자는 무척 좋아하고 싫어하는 독자는 '쓰레기'라고 서슴지 않고 말할 정도로 싫어하더군요. 아무튼 저는 전자입니다. 패턴이 비슷하고, 주인공 설정이 유사하고, 미스터리 강도가 낮고하다고 해도 작가의 유머가 저와 상당부분 저와 일치합니다. 그래서 이 작가에게 내리는 점수는 순전히 제 개인적인 점수일 뿐입니다. 믿으시면 곤란합니다. (믿을 분도 안계시겠지만.....)
평점 7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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