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3일 금요일

경성탐정록 - 한동진


2009년 학산문화사

<경성탐정록>은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탐정소설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명텀정 설홍주와 조수 왕도손 (기타 다른 이름도 있지만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여기선 삼가겠습니다.)의 캐릭터는 다분히 셜록 홈즈와 와트슨을 의식한 네이밍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미스터리 독자는 이름을 보는 순간 '엇!'하면서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서 단행본이 나오면 사야지 사야지 생각했던 게 예전일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단편이 모여서 한 권의 책이 나왔더군요. 사놓고 읽기는 진즉에 읽었지만 감상을 쓰는 것이 늦어졌습니다.

아무튼 <경성탐정록>은 총 5편의 단편을 싣고 있습니다.
운수 좋은 날, 광화사, 천변풍경은 본격 미스터리 카테고리에 들어가겠고
황금 사각형은 암호 미스터리에 더 알맞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편 소나기가 실려있습니다.

'운수 좋은 날'은 서로 다른 사건이 한 데 합쳐서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구조를 이용한 미스터리이지만 얼개 자체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의외성이란 면에서는 점수를 짜게 줄 수 밖에 없지만 제목과 내용의 묘한 일체감(?)으로 호감이 가는 단편입니다.

'광화사'는 누드모델을 하던 여성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을 쫓는 내용입니다. 용의자 윤곽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본격 테이스트지만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나서가 진짜(?) 시작인 단편입니다. 범인 VS 탐정이란 구도의 대결은 보기는 좋았지만 범인이 좀 더 교활하고 냉혹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묻어난 단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거시기 장소의 난이도가 너무 쉬웠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구성을 보자면 장편으로 각색해서 나왔더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로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 나오더군요.)

'천변풍경'은 여관에서 살해당한 한 일본인 남성의 살해 용의자로 청계전에 사는 거지가 지목되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약간 분량이 늘어나는 일이 있더라도 후반부 미스 디렉션을 좀 더 보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운수, 광화, 천변 3단편 중에서는 천변풍경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황금 사각인형'은 암호를 이용한 미스터리면서 제목부터 유달리 튑니다. 다른 제목은 아마 이미 알아차린 독자들이 많겠지만 국내서 유명한 작가의 단편 제목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금 사각인형만 다르죠. 관찰자로만 존재하는 듯한 왕도손 군의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 힌트를 얻어 일사천리로 풀어가는 설홍주의 논리가 재밌던 단편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의외였던 것은 '소나기'입니다. 가장 마지막에 실리기도 했고, 내용이 '일상' 계열의 미스터리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단편이 없었더라면 점수가 최소 -1점은 감점됐을 겁니다. 매일 매일 우산을 들고 와서 짬뽕과 교자를 시키는 한 청년의 기이한 행각을 놓고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간단한 소재를 재밌게 엮은 구성력, 단순하고 재밌는 논리와 유머스런 대사와 결말까지 가장 마음에 쏙 들었던 단편입니다. 짬뽕이 몹시 먹고 싶어지는 단편입니다.

다음 작은 '장편'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시리즈가 안정권에 장착해서 외전 형식으로 '허 부인'과 '손 박사'의 활약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하)

평점 7 / 10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