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5일 일요일

증인이 너무 많다 - 도로시 L. 세이어즈

1926년 Clouds of Wittness
2010년 우리말 (시공사)

피터 윔지 경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리즈물두 번째인 <증인이 너무 많다> - 원제목이 참 재밌습니다. 번역파자면 구름떼 같은 증인인데 의미심장합니다 - 는 전편인 <시체는 누구?>에서 바로 이어지는 시간대를 갖고 있습니다. 시간 순서만 보면 전형적인 속편격인데, 사실상 시리즈물로서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면을 보자면 <증인이 너무 많다>야 말로 진정한 시리즈 신호탄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맘큼 전작들에서 미진했던 캐릭터들의 성격이나 관계가 이번에 매우 멋드러지고 흥미롭게 그려지기 때문이죠. 윔지 경의 속사포 같은 만담이나 옆에서 거들어주는 하인 번터는 물론이고, 우직한 파커 형사까지 개성을 한껏 부여합니다.

미스터리는 가징 기본적인 구조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증인들이 증언을 하고 용의자가 지목되고 범인으로 재판을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증인들의 증언이 중구난방이다보니 사건의 본모습이 잘 안 보입니다. 그래서 피터 윔지경과 그 친구들이 주변에 퍼진 안개를 하나 하나 처리해가면서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것이죠. 진행과정 자체는 하드보일드에 가깝습니다. 단서를 포착하고 가봤더니 양파 한 껍질 벗겨지고 사건은 원점으로~! 새삼스럽지도 않은 전형적인 룰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별로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데요, 그런데 실제로 소설을 읽어보면 매우 재밌습니다. 그 이유는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과 유머와 위트 풍자가 느껴지는 문장 문장이 몹시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미스터리조차도 무척 대담한데, 감이 좋은 독자는 첫장에 바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작금의 미스터리는 그야말로 스피드 시대죠. 빠르게 술술 잘 읽히는 건 당연한 것이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이 없으면 간첩이고, 뒷통수를 사정없이 찍어눌러야 하는 반전이 없으면 식상합니다. 그런 면에서 <증인이 너무 많다>는 전부 반대되는 성향의 미스터리입니다. 하긴 80년도 전에 태어난 아이인데 2000년대 아이들의 스펙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욕심이긴 하죠. 하지만 읽다보면 어느새 빨려들어간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막판 법정장면은 클라이막스로 손색없을 정도죠. 아무튼 추천작! 개인적으로 전편보다 후속편이 더 재밌었습니다.

평점 7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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