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1일 수요일

허몽 - 야쿠마루 가쿠

2008년 고단샤
2010년 우리말(북홀릭)

얼마전 국내에서 있었던 조두순의 아동 강간 상해 사건. 당시 가해자는 나이가 많고 '알코올'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받아 형기가 감형이 되어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일본에도 이와 거의 유사한 법이 있는데 그게 형법39조로, 이번에 소개하는 야쿠마루 가쿠의 <허몽>이 그걸 소재를 삼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자주 노는 공원에 나이프를 들고 닥치는대로 아이들과 부모를 습격한 엽기연쇄살상사건의 범인 후지사키 히로유키.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지만 정신병 판정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고 정신병원에 수감됩니다. 그리고 4년후, 당시 사건으로 딸 루미를 잃은 사와코는 후지사키를 목격하고, 지금은 이혼한 전 남편 미카미에게 연락합니다.

<허몽>은 기본 소재와 사건의 진행, 복선과 반전까지 전부 독자에게 한 번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려는 소설입니다. 술 또는 마약을 인한 심신미약상태에서 저지른 범죄 행위, 정신병으로 인한 심신상실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허몽>은 가해자와 피해자 입장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과연 정신병으로 인한 범죄자도 보호해야할 피해자인지,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듯이 어처구니없게 당해버린 피해자만이 피해자인지, 누군가 나서서 딱 선을 긋는 게 아니라 이건 뭐 죽을 때 까지 계속해서 논의해야할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감정은 그걸 잘 받아들이지 못하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란 말만큼 울분을 풀어줄 말은 없는 것 처럼요.

 내용은 무거운데,진행속도는 대단히 경쾌하고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술술 잘 읽힙니다. 페이지 수도 300 쪽 좀 넘다보니 데뷔작 <천사의 나이프> 처럼 산뜻하게 읽힙니다. 어찌보면 소설이라기 보다는 '특집 드라마' 한 편 봤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안에서는 영상으로 옮기면 재미가 약간은 떨어질 요소가 있습니다만) 막판 여운도 없이 칼로 두부 자르듯이 탁 끝나버려서 더 그런 느낌이 컸나 봅니다. ^^ 소재는 무겁지만 진행은 경쾌하고 짧게. 이게 작가의 모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작가가 소설을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할 소재를 이용한 돈벌이 수단을 생각하는 것인지, 작가 나름의 주제의식을 흥미롭게 표방하기 위한 자기만의 노선을 구축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둘을 잘 양립하려는 것인지까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야쿠마루 가쿠 소설을 읽은 게 겨우 두 편이 다거든요. (데뷔작 <천사의 나이프>가 청소년 범죄자 처벌에 관한 내용이며, 아직 읽어보지 못한 <어둠의 밑바닥>은 아동 성범죄 이야기가 나오고, 작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악당>은 범죄피해자의 감정의 굴곡을 그렸다고 하네요.)

소재와 진행, 읽는 맛 등은 확실히 나쁘진 않은데, 미스터리적으로 재밌냐고 묻는 다면 좀 고민좀 해봐야 할 듯 하네요. 트릭까지도 전부 생각할 거리로 만든 면 자체는 점수를 줘도 괜찮겠지만요.

평점 5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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