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로크미디어
<바람의 마도사>로 원로(?) 판타지 소설 작가 '김근우'의 최신작입니다. <광검>과 <흑기사>까지는 보다가 한동안 뜸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피리새> 덕분에 작가 이름이 머릿속에 각인되었군요.
아무튼 판타지 소설하면 보통은 D&D 룰이나 돌킨이 창조한 룰을 따르거나 소재만 갖다가 새롭게 창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얼마전부터는 무협 세계관과 융합한 퓨전 판타지가 지금까지도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적 판타지에 대한 여러 담론은 오고 갔습니다만,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가 그런 담론에 많이 접근한 결과물일 겁니다. 그런데 김근우의 <피리새>는 철저하게 한국적입니다. 일단 기본 모티브는 '바리데기 공주 설화'입니다. 그걸 바탕으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피리새라는 소녀가 무당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속에는 처용(정규교과과정을 졸지 않고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또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신라하면 떠오르는 '화랑'이란 것도 한 역할을 맡고 있죠. 소재만 그렇다할 뿐이지 등장하는 캐릭터는 현대적입니다.
상권의 첫 시작부분 '큰 가람'을 보면 그렇습니다. 수도관리국 소속 직원이라는 두 남자의 대화는 유머를 담아 독자를 부드럽게 소설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멋지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캐릭터는 자연스레 소설의 메인 캐릭터 '바오 가람'과 '피리새'라는 주역을 소개하는 역할까지 잘 하고 있죠. 이어지는 '일곱번째 공주'에서 나오는 미루 공주나 동료 화랑 캐릭터들도 현대적입니다. 덜렁대는 듯 하지만 귀엽고 영특한 공주라는 캐릭터, 분량상 많은 등장 장면이 적지만 7명의 화랑과 국선화랑. 아마 이 부분만 가지고도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듯 한데, 아쉽게도 <피리새>의 주인공은 아니죠.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가리박사'라는 감초 같은 캐릭터가 있습니다. 피리새, 가람과 함께 서역으로 가는 도중 사사건건 가람의 구박(?)을 받는 인물입니다만, 입담이 재밌습니다. 물론 캐릭터 자체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고요. 가리 박사의 정체나 전체 플롯을 봐서는 큰 의미의 '미스터리'로 접근할 수 있는 여지도 있고 말이죠.
어릴적 부터 귀신을 보는 재주가 있는 피리새. 나무를 베는 숙명을 짊어진 가람. 이런 주인공들은 서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도중에 이런 저런 일을 겪게 되고 성장해 갑니다. <피리새>는 그런 소설입니다.
소설은 상,하 권입니다만 대략 1000 페이지 정도가 되는터라 분량이 제법 됩니다. 게다가 1페이지당 활자수도 요즘 출간되는 소설에 비하면 많은 편이죠. 아마 김근우라는 작가가 엄청난 유명세를 떨치는 작가였다면 <피리새>는 상,하 권이 아니라 전 4 권 이런 식으로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량입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좀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피리새와 가람에게 집중된 이야기 구조 자체는 불만 없습니다만, 미루 공주와 달이장 공주, 가람의 동료 화랑, 소설의 도입부를 잘 이끌어준 서다함과 마휼, 37대 주몽인 바리수와 아리수 등등 주인공과 엮이는 여러 캐릭터들의 소설에서 그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더 보고 싶어지거든요. 분량이 좀 늘어나더라도 관련 에피소드를 좀 더 보여줬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서 지나가듯이 미스터리로도 볼 수 있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물론 정통 미스터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예전부터 제가 주장하는 어떤 장르든 미스터리적 플롯(특정인물의 정체, 사건과 사건의 세계관을 바탕으로한 합치 등등)의 도입은 소설의 재미를 위해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라는 걸 <피리새>는 잘 보여주더군요. 물론 좀 더 비꼬았더라면 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만 되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양산형 판타지 공장이었던 로크미디어의 새로운 시도 (라기 보다는 자구책이겠지만요.)인 '노블레스 클럽' 브랜드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은의 <얼음나무 숲>과 김근우의 <피리새>만으로도 말이죠. 확실히 양질의 판타지 소설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덕분에 <바람의 마도사>가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아마 '라니안'이었던 듯 한데........
평점 8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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