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1일 월요일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 - 이누무라 고로쿠



2008년 소학관 가가가 문고
우리말 출간

2008년 단발로 나왔던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이하 비공사 추억)>이 주목을 받은 것은 아마 당해년도 신규 라이트노벨 순위 2위를 차지하면서 - 그 전부터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물론 이런 요소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흘러 들어와 이미 읽어볼 분들은 찾아서 읽어봤을 것이고, 2009년 초가을에는 우리말로 정식소개 되기도 했습니다.

일단 <비공사 추억>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합니다. 신성 레밤 황국과 적국 아마쓰가미가 있다는 설정. 두 나라 사이는 바다 높이가 달라서 생긴 '대폭포'라는 자연의 장관이 있다는 설정. 그리고 그 대해를 콕피트 뒷자석에 '신성 레밤 황국'의 미래의 황비가 될 소녀 '파나'와 함께 적국 아마쓰가미의 추적을 따돌리며 단기로 돌파해야하는 혼혈 비공사 '샤르르'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신분이 다른 두 남녀의 생존을 건 탈출기와 그 속에서 피는 달콤한 로맨스와 두근거리는 공중 추격전. 뭐 뻔한 내용이 나올거라 예상가능한데, 그런 뻔한 내용이 뻔뻔하게(?) 그대로 나오는 라노벨이 <비공사 추억>입니다.

그렇다면 소재, 과정, 결말 전부 <로마의 휴일>같이 뻔한데 어째서 인기가 있었느냐? 반문한다면 '묘사력'이 좋습니다. 단순한 줄거리를 작가는 섬세하게 잘 그리면서 두 명의 주인공 비중도 제대로 그립니다. 샤르르와 파나의 비중이 딱 5:5 로 나뉘어서 단 며칠간의 이야기지만 캐릭터 저울질을 잘 했더군요. 또한 공중전 묘사가 괜찮습니다. 모리 히로시의 <스카이 크롤러> 시리즈에서 보여준 짧은 호흡의 단어와 문장 끊기로 보여주는 속도감과 긴박감과는 다른 맛을 보여줍니다. 모리 히로시 스타일과는 정반대이지만 독자에게 전달해지는 느낌은 비슷합니다.

이렇게 <비공사 추억>은 큰 틀을 벗어나지 않지만 충실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흥분을 느꼈다! (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독자는 잔잔한 재미정도로 끝나녔을 텐데, 그게 이 책의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말초적인 재미는 없지만 가볍게 여운이 남는 조용한 내용의 소설. 벼라별 얘기가 다 나오는 라이트노벨계에서 구닥다리 소재를 들고나온 <비공사 추억>이 오히려 신선한 맛이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머리에 피도 안마른 어린 것들의 남녀상열지사가 아니라 감동적인 로맨스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뭐 비슷한 거죠.

여담)
<비공사 추억>이 인기를 끌어선지 출판사 소학관은 얍삽하게 후속편을 내놨습니다. (예상했던 겁니다만) 제목은 비공사를 그대로 계승해서 <어느 비공사에 대한 연가>입니다. (현재 2권까지 출간) 모티브는 전작이 <로마의 휴일>이었다면 이번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더군요. 내용은...........달리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전혀 다른 제목으로 나왔다면 오히려 고평가를 얻었을 내용인데, '비공사'를 붙이는 바람에 오히려 말아먹은 케이스가 되겠습니다. 뭐 이것 역시 흔하다면 흔한 일입니다만....

평점 6 / 10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화재와 밀실과 비남자 이야기 - 우라가 가즈히로



2005년 고단샤 노벨즈

본서는 전작 <마츠우라 준나의 평혼한 세계>의 후속편입니다. 전작에서 '기적의 소년'이었던 '야기 다케시'와 헤로인 '마츠우라 준나'에게 또 다시 괴사건이 속출합니다. 마을에는 연쇄방화사건이 일어나고(화재), 전작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이 불과 두 달 지난 시점에서 같은 학교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죠(밀실). 그리고 이 두사건의 접점은 중학교 1학년 이후로 계속 집안에만 틀어박힌 '은둔형 외톨이' 소년이 엮여있습니다. 소년의 특수능력(力)은 '비남자(雨男)'입니다. 이렇게 해서 본서의 제목은 소설 내용을 그대로 따서 나열해놓은 거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짚고 넘어가야할 포인트는 '특수능력'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준나와 다케시에게는 특이한 힘이 있습니다. 물론 이 특이한 힘 때문에 미스터리가 무슨 공상과학 판타지물이 되거나 하지는 않으니 안심해도 좋습니다. 특수한 힘을 이용은 하지만 딱히 미스터리를 방해하는 요소는 아니라 크게 문제시할 부분은 아닙니다.

기본 노선은 제목대로입니다만, 주인공도 그렇고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비 내리는 소년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집단 괴롭힘'이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지겨울만도 한 소재인데도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매력적이다는 반증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작가들이 너무 안일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전작을 읽은 분이라면 이미 이 책의 대략적인 분위기 - 특히 찌질대는 다케시 - 를 알기 때문에 크게 독서를 방해할 요소는 아닙니다만, 본서부터 손에 든 독자라면 약간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수록된 미스터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물론 진상을 전부 모를 때는 상당히 복잡해 보입니다만, 진실이란 콜롬버스의 달결과도 같죠. 그런 겁니다. 그런 단순한 진상을 좀 복잡하게 보이게 만들려고 작가의 이런 저런 트릭을 준비는 해놨습니다만, 깊이는 없습니다. 단지 마지막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깔끔함 보다는 여운을 더 중시했다고 볼 수 있겠죠.

표지도 그렇고, 삽화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라이트노벨 분위기 + 청춘 미스터리 내음을 물씬 풍기는 합니다만, 갈수록 그런 분위기는 없어진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일단 전 9 권으로 본 시리즈는 끝났습니다만, 솔직히 그냥 시리즈 1권만 읽어봐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적 매력과 미스터리 흡입력 둘 중의 하나라도 뛰어나다면 전 시리즈 추천하겠지만, 둘 다 그렇게 뛰어난 시리즈는 아니니까요.

여담) 마츠우라 준나 시리즈

1. 마츠우라 준나의 평온한 세계
2. 화재와 밀실과 비남자 이야기
3. 미스터리를 잘 쓰는 법 알려드립니다
4. 야기 다케시, 사상최대 사건
5. 사요나라 준나 그리고 불사 괴물
6. 세상에서 제일 추악한 아이
7. 타락한 천사와 금색 악마
8. 지구인류 최후의 사건
9. 태어날 아이들을 위하여 (完)

평점 3 / 10

2009년 8월 28일 금요일

달을 향한 사다리 - 히구치 유스케



2005년 문예춘추
2008년 문고판

지능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사이 정도지만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겨준 '행복장' 관리인으로 평화롭게 살고 있는 40살 먹은 주인공 '후쿠다 사치오(男)'.(일명 '보쿠상'이라고 불리는데, 딱히 우리말로 옮기기가 어려워서 여기서는 원래 이름은 후쿠다로만 칭합니다.) 입주민들과 사이좋게 살면서 '내가 모두를 친절하게 착한 사람이 되면, 다들 착한 사람이 될거야' 라는 인생관을 견지해온 후쿠다의 소소한 일상이 하루 아침에 깨집니다. 맨션 외벽 페인트 칠을 하던 후쿠다는 입주민중 한 명인 '구리무라 요코'가 자기 방 안에서 나이프에 찔려 죽어있는 장면을 보고 맙니다. 사다리에 타고 있던 후쿠다는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지고 정신을 잃고 말죠.

그리고 병원에서 나흘 만에 정신을 차린 후쿠다는 뭔가 이상합니다. 예전에는 몽롱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 두통은 나지만 - 다른 사람들의 말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며 기억을 잘 못하던 것들이 없어지고 여러가지 기억이 다 납니다. 그러나 후쿠다 앞에 기다리던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후쿠다가 병원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입주민 전원 - 죽은 사람은 제외 - 이 야반도주(....)를 해버리고 말았으니까요. 항상 '행복'하고 '선량'하게 살아온 후쿠다 앞에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그렇게 처음부터 가짜였던 겁니다.

알바로 생계를 꾸려나간다고 생각했던 청년은 상습 빈집털이범이었고, 대학교 조교수라던 남성은 학교에서 짤린지 반년이 넘었고, 짤린 이유가 실습실에서 각성제 제조를 하다가 학교에 적발당했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입주민 중에 두 명은 아예 신분을 위조로 해서 입주했고, 마지막 한 명은 여성 속옷만 훔치는 변태범이었습니다.

행복했던 후쿠다는 사고로 지능이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죠. 살인 사건이 일어난 맨션, 입주민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생계, 부동산에서는 맨션을 허물고 오피스텔을 지으면 어떻냐는 등 제안도 들오오는 등 후쿠다는 급박하게 바뀌는 현실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해 나갑니다. 겉으로는 예전의 지능이 떨어지는 듯한 연기를 하죠. 그러면서 사라진 입주민의 행방을 찾고, 사건도 조사하게 됩니다.

소설의 기본 포인트는 지능이 떨어지는 주인공이 사고로 우연찮게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설정입니다. 아마 가장 직접적으로 떠오르는 녀석은 다니엘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일 겁니다. 국내에는 <오! 하나님>인가 하는 드라마 원작으로 알려졌겠지만, 원작 자체가 상당히 유명한 소설이죠. 그리고 방식은 좀 다르지만 <페노메논>도 비슷한 범주에 넣을 수 있겠네요. 이 밖에도 많겠지만 이런 스타일은 이제는 어찌보면 정형화된 소재이기도 한데요, <달을 향한 사다리>는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내용만큼 <앨저넌에게 꽃을>과 초반은 유사합니다.(히구치 유스케 스스로 말하기를 <앨저넌에게 꽃을>이란 소설을 몰랐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역시 히구치 유스케 다운 부분은 그런 내용임에도 소설 안에는 유머가 가득합니다. 순진무구했던 후쿠바다 변신(?)한 캐릭터는 능글맞은 중년탐정 유즈키 소헤이와 흡사한 구석이 있고, 여성 속옷 도둑이었던 변태범이자 학원 강사인 입주민 '모노후베'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듯한 기분이 드는 재밌는 조역이기도 합니다. 후쿠다와 모노후베 둘 이서 밀실을 두고 토론하는 장면이나, 속옷을 갖고 후쿠다가 모노후베를 놀리는 대화장면 등이 참 재밌게 그려집니다. 모노후베는 딱 만화같은 캐릭터죠.

추리입장만 보자면 사건 자체는 단순합니다. (그렇게까지 단순무식하지는 않지만) 밀실살인이지만, 당연히 밀실이란 것이 말이 안되고, 살해당한 이가 있으면 살해자가 있을 것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사건자체도 상당히 빨리 해결됩니다. 아직도 페이지가 많이 남았는데 끝나서 좀 어이가 없다 싶지만요. 물론 여기서 다른 쪽의 기대를 하는 독자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진짜 진상은 이게 아니겠구나! 하면서요. 그러나 <달을 향한 사다리>는 다른 의미에서 독자의 기대를 철저하게 부숩니다. 독자를 가감없이 때리는 반전은 충분히 납득이 가고 - 비록 복선이 없다고 해도 - 그렇게 끝이 났기 때문에 착잡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의 여운이 달콤 쌉싸름하게 남지 않나 싶네요. (소설에 쓰인 소재와 다른 영화, 소설로 대략적인 예상을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과연 그런 결말일지는.........?)

살인사건 보다는 다른 의미에서 뒷통수가 땡기는 미스터리입니다. 역시 히구치 유스케 미스터리는 범인과 동기 등 사건의 진상을 까발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게 장점일지 단점일지는 독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지겠지만요.

평점 6 / 10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十三의 저주 - 미쓰다 신조



2008년 가도카와 호러 문고

<십삼의 저주>는 <死相學탐정 시리즈> 첫번째로서, 고분샤에서 나왔던 <재앙의 집>처럼 단행본이 아니라 처음부터 문고판으로 나온 오리지널 장편 '호러' 미스터리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처음부터 문고판으로 발행하는 작가는 대인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쓰다 신조 정도면 단행본으로 내놓아도 큰 무리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물론 문고판 오리지널 소설 계열은 <도죠 겐야 시리즈>같은 깊이감은 없습니다. 단지 작가가 원래 추구하는 노선,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을 알기 쉽게 했느냐, 정말 복잡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지 본질적인 차이는 없더군요. 그래서 신 시리즈에 거는 기대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지도 모르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재미는 아닙니다만,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재미를 보여주더군요.

이번에 새로나온 <사상학탐정 시리즈> 1권은 한자에서도 알 수 있 듯이 죽음이 드린 사람의 관상을 보고 그걸 해결하는 20세 청년 '츠루야 순이치로'의 이야기입니다. 어릴적 부터 특수한 능력으로 인해 고민이 많았던 주인공 순이치로는 외할머니한테서 - 능력이 격세유전이라고 하더군요 - '死視'를 제대로 콘트롤 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도움을 받게 되죠. 물론 할머니도 비슷한 일(?)을 하던 터라 순이치로는 어릴적부터 할머니 일도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20살이 되면서 독립을 하고 도쿄에 '탐정사무소'를 차립니다. (물론 겉으로는 그렇죠.)

그리고 첫 의뢰인이 순이치로를 찾아옵니다.
미모의 앳된 처녀 '나이토 사야카'. 하지만 그녀한테서 '죽음'이 보이질 않았기 때문에 순이치로는 첫 의뢰인임에도 불구하고 퇴짜를 놓습니다. 하지만 다시 찾아온 사야카를 본 순이치로는 놀라고 맙니다. 13개의 죽음의 선이 사야카와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첫 의뢰를 맡은 순이치로는 사야카와 함께 '이리야 저택'에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순이치로는 '이리야' 가문의 사람 전원에게서 '죽음'의 선을 보게 되죠.
과연 저주의 실체는?

죽음을 보는 특이한 능력과 저주만으로 전형적인 호러 서스펜스 계열로 생각하기 쉬운 내용의 소설입니다. 거의 후반부까지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종잡을 수 없는 괴현상에 시달리는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묘사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전부 복선입니다만.....) 하지만 후반부 맥락 없던 현상들이 하나 하나 가닥을 잡아가고 공통점이 발견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죠. 물론 뜬금없는 게 아니라 복선을 전부 깔아두고 있습니다. 또한 마무리는 의외로 본격 미스터리 다운 결말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모 소설류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여사의 소설 중에 강령술,저주 어쩌구 하는 내용이 나오는 모 소설이 있습니다. 자세한 언급은 생략합니다.

<도죠 겐야 시리즈>에 비하면 깊이감은 이쪽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기본적인 노선은 변함없는 호러 미스터리 계열입니다. 고전 추리소설 요소를 살짝 버무린 면은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유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겁니다. 정신없이 재밌는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읽어서 손해볼 소설은 아닙니다. 단행본 보다는 문고판으로 나온 것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완성도라고 표현하면 알맞겠네요.

평점 6 / 10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가루이자와 매직 - 니카이도 레이토



1995년 도쿠마 노벨즈
1997년 문고판
2008년 고단샤 문고판 (사진)

니카이도 레이토 관련 글은 아마 처음 쓰는 것 같습니다. (같은 게 아니라 처음 맞네요.^^)

일단 작가의 대표작은 - 일본산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알만한 '니카이도 란코 시리즈'를 꼽을 수 있겠네요. (니카이도 란코라는 여탐정의 이름은 다분히 '에도가와 란포'가 창조했던 '에도가와 란코'에서 따왔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에도가와 란코의 지명도는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만.) 이쪽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 정통노선을 최대한 따르려는 작가의 어떤 의지가 느껴지는 시리즈입니다. (<인랑성의 공포> 시리즈가 대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와는 반대 노선을 가는 - 95년도 초판 작가후기에서 스스로 밝혔 듯 - 가벼운 (Light) 미스터리를 쓰기 위해 탄생한 것이 지금 소개하는 <가루이자와 매직>입니다. 그 후 시리즈물이 되는 <미즈노 사토루 시리즈> 데뷔작인 셈이죠.

제목만 보면 흔하디 흔한 <여행(Travel) 미스터리> 장르에 속할 듯 한 내용입니다. 실제 내용도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주인공 '미즈노 사토루(男)'와 밑의 직원 '미나미 유카리(女)' 두 명이 출장을 끝마치고 도쿄로 돌아오던 도중 특급열차가 오랜 시간 정차에 있던차에 미즈노의 변덕으로 둘이서 가루이자와 역에서 내리면서 시작되죠. 가루이자와 하면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일본의 대표 피서지로 유명한 장소입니다. 그런 장소 플러스 소설 초반부가 열차 장면이다보니 아무래도 그쪽(?) 미스터리가 아닌가 싶은 오해를 살 수도 있겠더군요.

게다가 <니카이도 란코 시리즈>에서 보이던 중후한(?) 맛과는 전혀 다른 시종일관 문체부터 분위기까지 전체적으로 깃털마냥 가볍습니다. 일단 주인공 사토루의 조형부터가 상당히 만화적인데요, 180Cm의 훤칠한 키 (일본남성 치고는 엄청나게 큰 거죠)에 모델 뺨치는 얼굴이지만 직장내 여성들에게는 '궤짜' 취급 받는다는 설정입니다. 미모의 여성과 당연히 원 나이트 스탠드 해야하는 장면에서 여자가 목욕하러 들어간 사이에 사토루는 게임보이(휴대용 게임기) 붙잡고 게임을 하고 있다거나, 여자랑 데이트 하러 갔는데 차비부터 식비 등 데이트에 든 모든 경비를 1원 단위까지 집요하게 더치 페이를 한다거나, 툭하면 여행사에 기모노를 입은 미모의 중년 여성이 찾아온다거나, 손목에 차고 있는 롤렉스 시계는 사실 중국산 가짜라거나 등등, 소설 초반에는 주인공 설명을 직장 여성 동료의 증언(...)을 빌어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여행 미스터리' 계보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실제는 그냥 본격 계열 미스터리로 집어넣어도 무방한 구성이더군요. 단지 캐릭터 조형을 가볍게 만들어서 독자들의 부담을 한껏 줄였다는 것과 여행지에서 일어난 사건이란 점만 약간 다를 뿐이더군요.

그래서 소설의 개략적인 내용은 가루이자와 역에서 내린 사토루와 유카리는 지인인 '구마타' 부부가 경영하는 팬션에 찾아갑니다. 그리고 근처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사토루와 유카리가 탔던 특급열차 내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 걸 나중에 알고, 지붕위에서 기묘하게 죽은 사건이 발생하고, 출장갔던 거래처 사장의 마누라도 살해당한 사건이 나오고...여기에 사이비 종교까지 가세해서 시종일관 종잡을 수 없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초반부터 꼼꼼하게 깔아놓은 복선, 그리고 그걸 회수하는 방법은 전형적은 본격입니다. 그래서 니카이도 레이토 입문작으로 추천할 만한 내용입니다. 물론 추리소설 마니아 급이라고 자부한다면 <미즈노 사토루 시리즈>보다는 <니카이도 란코 시리즈>를 먼저 추천하겠지만 말이죠.

미즈노 사토루 시리즈는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직장인편과 학생편인데요, <가루이자와 매직>은 직장인편에 속하며 시리즈 첫 장편입니다. 직장인편은 전부 끝 단어다 <무슨 무슨 매직>으로 되어있고, 학생편은 <무슨 무슨 불가사의(미스터리)>로 끝나더군요. 그리고 단편집이 한 권 있습니다.

평점 5 / 10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황천 억덕 - 이마무라 아야



1995년 집영사
2002년 문고판

이마무라 아야의 <황천 언덕>은 표제작 '황천 언덕'을 포함해 총 12 개 단편이 수록된 주옥같은 단편집입니다. 90년대 초기 장편은 관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표방한 작품이 많았는데, 이 단편집은 본격 미스터리 보다는 약간은 판타지스러우면서 '호러' 테이스트가 결합한 서스펜스물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안심했다가는 당할 수 있습니다. 안심은 금물이죠.)

첫 단편 '처음 보는 당신에게'가 단편집 전체적인 분위기를 대변합니다. 학창시절부터 주인공 주위를 맴도는 여자 스토커가 등장하는데요, 결혼했다가 남편과 이혼한 주인공에게 과거의 여자 스토커가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 편지에는 주인공의 일상이 낱낱이 기록되있죠. 장르는 사이코 서스펜스 정도 되겠네요.

두 번째 단편 '속삭이는 거울'은 미래를 알려주는 거울에 얽힌 단편입니다. 할머니의 유품인 거울로 인해 결정된 미래에 의해 농락당하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쪽은 판타지한 호러 계열이죠.

세 번째 단편 '마리카'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삿포로에 단독부임한 아버지한테서 이상한 편지를 받고 거기에 얽힌 비밀이 나중에 밝혀진다는 내용입니다. 초반에는 '이혼(離魂)'이란 소재를 이용한 판타지인 것 같지만 결국은 본격 미스터리 다운 결말을 보여준 재밌는 내용입니다.

'시간을 거듭해서'는 판타지 로맨스 계열로 넣으면 되겠고, '하프 앤드 하프'는 전형적인 호러 스타일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내용입니다.

'쌍두의 그림자'는 불당 천장에 그려진 기이한 자국에 얽힌 내용으로 호러가 미스터리로 바뀌는 과정은 '마리카'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마무리가 좀 더 호러스럽게 다듬어진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겠군요.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주인공이 택시에 탔는데, 택시 기사가 참 말이 많은 아저씨로, 얼마전 있었던 유명 여자 아나운서의 사건을 다각도로 추리해서 피로한다는 내용으로, 본 단편집 중에 가장 본격 미스터리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무리는.....?

'꿈 속으로'는 판타지 계열에 속하겠고, 이어서 등장하는 '구멍 두 개'는 남자 주인공이 인터넷 상에서 여자 행세를 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그걸로 그냥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죠.^^

'머나 먼 창'은 어머니를 여의고 두 다리를 잃어버린 소녀의 일기로 그려지는 내용인데, 순진무구했던 소녀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독자들은 알겠죠. 아니, 단편 속 주인공 소녀도 언젠가는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을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만....

'환생'은 말그래도 환생에 얽힌 스토커 이야기입니다. 마무리는 해피(?)엔딩입니다만, 팔에 닭살이 돋는 - 염장이 아니라 호러틱해서 - 결말입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녀석이 표제작인데, 일본 <고사기>에 수록된 '황천 언덕(요모츠히라사카)'를 모티브로한 호러 단편입니다. 표제작 치고는 평범한 내용이라서 크게 인상에 남는 작품은 아닙니다.

수록된 단편을 대략 소개해봤는데요, 이중에서 인상에 남는 작품은 - 제 마음에 드는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이하와 같습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마리카'
'쌍두의 그림자'
'환생'
'속삭이는 거울'
'처음 보는 당신에게'

정도네요.

그러고보니 주로 호러 테이스트지만 미스터리 맛이 더 강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뽑은 건 아니고 그냥 우연입니다. 우연~~! (?)

사실 단편집을 읽다보면 딱 마음에 드는 단편이 하나만 있어도 그 단편집 전부가 이뻐 보이는데,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은, 독서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몹시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단편집은 아니지만 최소한 중간 이상은 가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전체적으로는 호러 계열에 속합니다만, 작가 습성 답게 미스터리도 빠트리지 않고 있어서 추리소설 팬들도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추천작~

평점 7 / 10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쿠비나키오니 섬 - 이시자키 코지



2007년 동경창원사 (미스터리 프론티어)

여고생 트리오와 이시자키 코지(작가와 동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시리즈 이후로 약 4년간 뜸했던 작가의 신작입니다. (물론 2008년도 여고생 트리오와 자학개그 이시자키 시리즈 최신작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먼저 제목 얘기부터 해야겠네요. <쿠비나키오니(首鳴き鬼)의 섬>이라는 타이틀인데, 소설 초반에 쿠비나키오니에 관한 민간전승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오니는 한자만 보면 우리말로 귀신에 해당하는데,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귀신'과는 다릅니다. 우리식으로 보자면 오히려 도깨비가 더 가깝겠죠. 그런데 도깨비와 오니가 같다? 라면 이게 또 그렇지가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냥 '오니'라고 하겠습니다. 오니 앞에 붙는 '쿠비나키'의 해석 문제도 있습니다. 소설안에 나오는 전승 내용중에는 목이 잘린 오니가 잘린 머리를 찾아서 울면서 방황한다는 항목이 있는데, 거기서 따온 것이 쿠비나키오니가 됩니다. 이걸 깔끔하게 우리말로 표현해보려고 했습니다만, 제 어휘력이 딸려서 무책임하지만 그냥 편하게 '쿠비나키오니'로 칭하겠습니다.

배경은 외딴 섬입니다. 그 안에 저택이 한 채 있죠. 그리고 그 섬에는 민간전승이 있습니다. (쿠비나키오니 괴담) 그리고 섬에 주인공 '이나구치'가 쿠비나키오니 괴담을 조사차 여자친구 '아카네'와 함께 찾아옵니다. 대풍이 불고, 그리고 약속대로(?) 사건은 벌어집니다. 쿠비나키오니 괴담에 빗대서요.

첫번째 피해자 : 한쪽 팔 절단
두번째 피해자 : 양쪽 팔 절단
세번째 피해자 : 머리와 양쪽 팔 절단
네번째 피해자 : 머리, 양쪽 팔 절단 그리고 시체 소각

피해자의 상태는 쿠비나키오니 괴담과 일치합니다. 오니도 처음에는 팔이 잘리고, 양팔이 잘리고 머리가 잘리고 나중에는 불태워지기까지 하니까요. 그래도 살아난 오니는 계속해서 울면서 자기 머리를 찾아 방황했다는 괴담이죠.

여기까지만 봐도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어떤 식의 트릭이 나올지 어느정도 예상이 가능할 겁니다. 지금 바로 '아! 그 트릭?' 이라고 떠올리는 분도 계실 텐데요, 아마 맞을 겁니다. 그런데 소설의 배경은 2002년도이죠. 생각한 트릭을 범인이 성공하려면 넘어야할 최대의 난관이 있습니다. 예 그겁(?)니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범인은 과연 어떤 트릭으로 그 난관을 뚫었을가? 하는 것이 <쿠비나키오니 섬>의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쓰인 트릭은 확실히 참신합니다. 현대적 과학수사와 고전적 미스터리 재미를 잘 융합한 것은 확실히 칭찬할 만한 사항입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서도 느꼈던 작풍 스타일인데요, 이시자키 코지의 미스터리는 2% 부족한 면이 있는데,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세련미가 없다고 해야할지, 소재는 좋은데 그걸 살리는 작가적 센스가 부족하다고 해도 되겠죠. 아예 철저하게 재미가 없어서 '이 작가 책은 다시는 안 볼거야!' 라고 차라리 카운터 펀치라도 독자에게 날려주면 깨끗하게 두 손 두 발 들고 작가에게 항복선언이라도 하겠지만, 이건 잽 하나 하나는 매서운데 전체적인 운영 능력이 아마추어 같아서 판정승을 내렸어도 뒷끝이 안 좋은 경기를 보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아쉽더군요.

확실히 재밌는 요소가 만재한 소설이지만, 실제 읽어보면 뭐랄까, '코믹' 소설을 읽는 기분입니다. 특히 후반부 주인공 이나구치가 절차부심 추리한 내용을 관계자가 모인 곳에서 피로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머리를 싸매고 구상한 추리가 진실이라고 확신한 명탐정이 과학수사 증거 앞에서 격침당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집니다. 트릭도 괜찮았지만 격침당하는 명탕점(?)의 모습이 제일 인상깊었네요. ^^


평점 5 / 10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나나히메(七姬) 환상 - 모리야 아키코



2006년 후타바샤
2009년 문고판

먼저 제목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원본의 한자를 그대로 음역하면 <칠희 환상>으로 이걸 직역하자면 <칠공주 환상>이 됩니다. 칠공주 해버리니까, 뭔가 요상야릇한 어감이 되버려서 일본어 그대로 '나나히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한 또 하나의 이유로는 '칠석의 나나히메' 라고 해서 '직녀(織女)' (오리히메)를 일곱 가지 다른 말로 부르는 일본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키사리히메(秋去姬)
아사가오히메(朝顔姬)
다키모노히메(薫姫)
이토오리히메(絲織姫)
사사가니히메(蜘蛛姫)
가지노하히메(梶葉姫)
모모코히메(百子姫)

이렇게 7개를 칭합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단편 역시 7개를 수록했고, 그 내용은 직녀의 이칭(異稱)과 <만엽집>, <고금화가집> 등에 수록된 관련 시를 이용한 작가의 창작 이야기입니다. 물론 여기에 미스터리 터치를 가미했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겠죠?

첫 단편 '사사가니의 샘'은 그대로 사사가니히메 파트이면서 미스터리로 보자면 일종의 '밀실' 장르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칠일간 대왕(大王)과 소토오리히메(衣通姬) 둘 만이 지낸 후에 대왕이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외부의 접근은 일절 없는 상태에서 당연히 범인(?)은 소토오리히메가 됩니다만, 과연 사건의 진상은 어땠을까요? 사건의 진실을 태자 가루노미코(輕皇子)가 파헤칩니다.

두 번째 단편은 전편에서 일종의 탐정(?)역이었던 가루노미코가 선왕의 붕어로 왕위계승을 준비하던 도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술에 취한 나머지 가루노미코는 즉위에 쓸 용포를 짜던 소녀(외부의 접근을 일체불허하는)와 내통을 하게 됩니다. 갈수록 소녀에게 빠져드는 가루노미코. 하지만 소녀의 정체는............? 결국 폐태자가 되버린 가루노미코 앞에 나타난 소녀가 말하는 숨겨진 진실이란?

원래 모리야 아키코는 2003년 <천년의 침묵~이본 겐지모노가타리~>로 제13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했습니다. 일본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겐지모노가타리>정도는 다들 들어보셨을 텐데요 고전 문학을 바탕으로 작가의 창작을 넣고 거기에 미스터리 양념을 친 양질의 소설이었습니다. 이번의 <나나히메 환상>도 컨셉은 데뷔작과 똑같습니다. '직녀와 7개의 다른 칭호'를 바탕으로 고풍스런 느낌과 잔잔한 미스터리 그리고 약간은 판타지스런 내용에 비련의 로맨스까지, 잡다하게 섞은 듯 하지만 밸런스가 잘 맞아서 맛이 일품입니다. 물론 미스터리만 찝어보자면 솔직히 말해서 뛰어난 작품은 아닙니다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런 단점을 전부 덮어주고도 남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찾았습니다. 나중에 문고판으로 재독할 예정입니다.

평점 8 / 10

2009년 8월 17일 월요일

나팔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 시바타 요시키



2007년 동경창원사

소설의 주인공 코나츠는 고교 다니던 중에 집단 따돌림 때문에 은둥형 외톨이가 된 소녀입니다. 고교는 중퇴하고 그대로 집안에만 틀어박혀 생활한지 그럭저럭 4년. 코나츠에게 유일한 친구라고는 '아키'라는 고교시절 친구 한 명 뿐입니다.

단편은 총 7 편이고 마지막은 에필로그 성격이라서 뺀다고 하면 실질적으로는 6개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해바라기의 유혹
-검은 우산, 하얀 후산
-벚꽃, 벚꽃
-나팔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사람
-창문을 닫고
-새학기 ~에필로그

이런 구성입니다.

장르는 일상 미스터리라고 보면 됩니다. 첫 단편은 코나츠의 친구 아키가 거리에서 한 청년을 만나서 술집을 갔다가 호텔까지 갔던 경험담입니다. 대학생이 됐는데도 '버진'을 버리지 못한 아키가 첫경험을 하나 싶었지만, 막상 중요한 순간에 '서지 않아서' 아키의 꿈은 물거품이 되지만, 그 청년의 변명이 '이건 다 해바리기 때문이야!'였죠. 그래서 해바라기에 얽힌 상상을 코나츠가 한 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단편은 코나츠가 집안에서 유일하게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때는 베란다에 빨래를 널 때입니다. 그 날도 베란다에 나간 코나츠는 집앞 공원을 가로지르는 검은 우산을 쓴 사람을 봅니다. 때는 한 겨울이었죠. 눈, 비는 안 내리고요. 그리고 저녁에는 하얀 우산. 그러다가 결국 '미니(?) 스토커'를 잡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굳이 장르르 나누자면 일상 미스터리겠지만, 미스터리 강도는 꽤 낮아서 거의 느껴질 듯 말 듯한 단편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독자 예상대로(?) 코나츠가 결국 은둔형 외톨이를 탈출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끝이 납니다.

원래 이 연작단편집은 '동경창원사'에서 발행하는 <미스터리즈!>라는 잡지에 연재된 것들을 한 데 묶은 것입니다. 그리고 설정만 보면 같은 출판사에서 예전에 발간됐던 '사카키 츠카사'의 <은둔형 외톨이 탐정 3부작 시리즈>가 떠오르더군요. 물론 소설의 화자가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인 캐릭터 구도나, 일상 미스터리 계열, 전편에서 나왔던 캐릭터들이 후속 단편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점 등 여러면에서 비슷한 구석이 많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미스터리 강도와 재미면입니다. '본격'의 충실한 팬이라면 어느 것이든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두 소설만 놓고 보자면 사카키 츠카사의 <청공의 알> 쪽이 완성도가 더 높습니다. 일상 미스터리란 장르가 따지고 보면 참 어려운 장르인데요, 재미와 미스터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가 참 힘들죠. 그런 면에서 가노 도모코의 <코마코 시리즈>나, 기타무라 가오루의 <하늘을 나는 말 시리즈> 등의 일상 미스터리 초창기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건 다른 작가들에게는 높은 허들이겠죠.

시바타 요시키의 소설은 이로써 두 번째가 되는데, 문장력 등은 나쁘지 않은데, 재미가 별로 없습니다. 뭔가 딱 와닿는 것이 없군요. 비슷한 소재의 다른 작가 작품에 비해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해서 실망스럽더군요.

여담) 소설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코나츠에게도 남친이 생겨서 큰 맘 먹고 버진 탈출!을 하려고 하다가 생리때문에 좌절하는 내용이었습니다. (......)

평점 2 / 10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뇌남II~흑막의 얼굴 - 슈도 우리오



2007년 고단샤 (상,하)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중 가장 많은 이견을 보인 작품을 하나 꼽자면 아마 <뇌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통 미스터리도 아니고, 의학 스릴러도 아닌 아무튼 란포상을 받기에는 좋은 의미로 '독특한' 소설이었는데, 7년만에 그 후속작이 나왔더군요. 제목도 단도직입적입니다, <뇌남II>라고. 분량은 상,하권 합쳐서 약 760 페이지 정도. 꽤 두꺼운 볼륨이죠.

무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오타기'라는 도시입니다. 초반부는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와시야 마리코'가 나와서 역시 전작에서 스즈키 이치로를 쫓던 형사 '차야'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타기에서는 정신병력이 있던 사람들의 흉악범죄로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정신병 치료를 받고 일반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지장이 없다는 의사의 판단하에 퇴원하고 얼마 후 하나같이 '의문의 실종'을 했었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실종됐던 정신병력을 갖고 있던 이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후 일명 '묻지마' 범죄를 저지릅니다.

마리코는 이런 사실을 깨닫고 차야에게 알려주고, 차야는 그걸 바탕으로 지금은 몰락한 정재계에서 유명한 사람을 찾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차야가 찾아기전 그 거물(지금은 퇴물)은 머리가 잘린 채 살해당하죠. 그리고 그곳에서 '스즈키 이치로'의 혈흔이 나옵니다.

잠복수사 중이던 형사 두 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수법으로 범인은 역시 스즈키 이치로가 아닌가 싶지만, 형사 차야는 스즈키가 그런 짓을 저질렀을 거라는 사실은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리죠. 그리고 결국 단서를 찾습니다. 잠복중 차량에 설치해뒀던 감시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으로 말이죠. 범인은 여자. 에나멜 라이더 수츠를 입은 모델 같이 쫙 빠진 미녀. 한편 스즈키 이치로는 무슨 꿍꿍인지, 재단을 대신해서 미술관을 설립한다는 둥 하면서 은행가 등을 만나면서 여러 교섭을 벌입니다.

그리고 사건은 예상대로 아주 싱겁게 끝나버리고 상,하권은 허무하게 끝납니다. 정말 허무하게요. 하하..... 이 소설을 범인 찾기로 접근하면 완전 '아웃'입니다. 스리 아웃 체인지~에요. 분량이 많은 만큼 쓸데없는(분량 늘이기로 밖에 여겨지지않는) 묘사가 상당히 많고 (특히 초반부 사가에 에피소드) 실제 흑막의 정체는 너무나 싱거워서, 스즈키 이치로가 뭐를 노리는지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진행방식은 하드보일드인데, 싱겁기 그지 없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입니다.

제목의 부제를 직역하자면 '장기 명수의 얼굴' 정도가 되겠습니다. 소설을 읽고 나면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직접적으로 손을 댄 범인이 있고, 그 범인을 조종한 흑막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냥 흑막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흑막의 얼굴은 마지막에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되어서 나오는데, 그 부분은 좀 볼만했군요. 그리고 마지막 챕터를 보면 후속편이 또 나올 것 같은데, 그냥 여기서 끝내도 되는데, 라고 작가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나온다면 찾아서 읽어보긴 하겠죠. 후속편이 나온다면 아무개와 아무개의 대립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까 싶은데, 구성력을 더 키워서 나온다면 좋겠군요.

아, 전편은 안 읽어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뇌남2>에서 전편 내용을 고스란히 다 까발려주더군요.

평점 2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