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일 수요일

리피트 - 이누이 구루미


2004년 문예춘추
2007년 문고판
2009년 우리말 (북스피어)

컴퓨터 게임. 직접 즐겨본 적은 없다고 해도 다들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단어일 것이다. 컴퓨터 게임의 특징은 딱 잘라 '세이브'와 '로드'이다. 물론 초창기 이런 류 게임은 '저장'과 '불어오기' 기능이 없었고 게임 오버는 그대로 게임 '끝'이었다. 이건 우리네 인생과 완벽하게 같은 이치다. 과거 고등학교 2학년 모월 모일에 '저장'을 해두고 언제든지 그 시점을 다시 '불러오기' 같은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게임도 발전해서 저장하기와 다시 불러오기가 등장하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이건 그대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후회)과 반복을 통한 학습효과를 응용한 대발견에 가까운 기능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꾸준히 발전하여 그 자체를 아예 '게임화' 하는데 성공하는데 한 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선풍전인 인기를 끈 '어드벤처' 장르다. 일관된 스토리가 있고 중간 중간 분기점이 있으며 분기점에 따라서 해피엔딩과 배드 엔딩이 나뉜다. 처음에는 어느 분기점이 해피엔딩인지 알 수 없지만 플레이어는 하나 하나 경험하다보면 어느 분기점이 '정답'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구조이다. 그리고 시행착오가 싫은 사람은 이미 '경험'해 본 사람의 '조언'(공략)을 보고 처음부터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갈 수도 있다. <리피트>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아니, 비슷한 장르의 소설이나 영화를 읽거나 본 사람이라면 매우 비슷한 구성이란 걸 이미 눈치챈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제 슬슬 소설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이누이 구루미의 <리피트>는 모리 게이스케(작중화자)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앞으로 며칠 후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하고 그걸 정확히 예언하고 맞춘다. 그리고 남자는 게이스케에게 자신은 '리피터'라고 소개하며 게이스케를 10달 전 과거로 되돌려 줄 수 있다고 한다. 10년 20년도 아니고 불과 열 달. 주인공도 딱히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맹렬하게 소망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가 그런 데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면서.

그렇게 해서 리피터라고 하는 남자가 말한 장소로 나간 곳에서 게이스케는자신과 같은 처치에 처한 동료를 만난다. 그리고 게이스케는 다른 이들과 함께 가마자의 안내를 받아 과거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리피트를 경험한 동료가 하나 둘 하나 둘 죽으면서 게이스케는 불안헤 휩싸이는데.............

소설 <리피트>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위와 같다. 세이브와 로드 시점은 정해져있고, 정해진대로 로드에 성공은 하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게임은 정해진 수순대로 행하는 반복이기 때문에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신'이 될 수 있지만, 현실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도 <리피트>에서 게이스케가 겪는 열 달이라는 긴 시간이라면 말이다. (영화 <그라운드혹 데이>(국내에는 '사랑의 블랙홀'이란 제목으로 알려짐)는 주인공이 24시간 반복이기 때문에 변인통제가 가능했을지는 모르지만)

동료들이 하나 둘 사고(또는 살인?)을 겪고 남은 리피터들은 의심에 빠진다. 혹시 우리 안에 '범인'이 있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런 구성은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인 동시에 한 명 한 명 사라져가는 공포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일맥상통한다. 물론 기본 설정은 SF같기 때문에 전통적인 느낌의 미스터리로 접근하면 물론 아웃이다. 약 500 페이지의 소설인데 반 정도가 '리피트'하는 얘기로 채워졌으니까 말이다. 미스터리에만 이끌려서 집어든 독자라면 뭐여 시방!! 이럴지도 모르니 주의를 요한다. 뭐 나중에 실제 사건이 터진다고 해도 진상 등은 그리 중요한 비중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여기에 게이스케는 '연애' 문제도 겪고 있다. 리피트 前에 사귀던 '유코'라는 여자와는 안좋은 기억을 갖고 채였다. 그러나 리피트 동료 중에 '시노자키 아유미'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리피트 後에 게이스케는 '유코'와 사귀고 있는 상태이다. 결국 새로 시작한 세계에서는 유코를 차버리고 시노자키와 사귀지만, 연애의 행방은 물론 카오스다. 문고판 해설에서는 2005년도 오버 플로우에서 발매한 <스쿨 데이즈>라는 막장(?) 18금 미소녀 연애 게임을 예로 들긴 하는데, 비슷한 면모가 보인다면 그건 사실이다. 어차피 연애 어드벤처 자체의 모태는 서양의 어드벤처이기 때문. 18금 연애 어드벤처는 거기다가 연애+섹스의 비중을 높인 것 뿐이니까 말이다. 뭐 이런 연애 어드벤처도 얼마전에 나온 <러브 플러스>(닌텐도DS로 발매)라는 리얼리티를 적극 활용한 녀석의 등장으로 새로운 발전을 맞이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리피트>는 시간반복 + 살인사건 + 연애요소 등이 한데 합쳐진 게임같은 소설이다. 재밌는 요소를 잘 버무리긴 했지만, 문제는 페이지 수 한정과 작가 특유의 여성관(좀 부정적이다) 때문에 깊이 있는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 소설의 단점이다. 어쨌든 다 읽고 나면 좀 기대에 '어긋'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크게 실망할 것도 없는 그런대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녀석이다. 큰 기대는 하지 말고 보길 권하고 싶다. 원래는 재작년에 썼던 게시물인데 이것 저것 넣고 수정하다보니 이상한(?) 얘기가 잔뜩 들어갔는데.......그냥 넘어가 주시면 고맙겠다.

참고로 <카마이타치의 밤> GBA 버전이 한글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리피트 감각을 맛보고 싶은 분들은 꼭 해보시길 바란다. 일본어 공부중이거나 할 줄 아는 분이라면 <쓰르라미 울 적에>와 이란 어드벤처 게임도 추천~~ (둘 다 플레이스테이션2로 발매~)

참고로 이누이 구루미는 다른 명의로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본격 미스터리 평론가'로도 활동중인데, 그에 비해 소설은 본격 미스터리와는 좀 동떨어진 녀석을 쓰고 있으니 뭔가 아니러니한 기분이다. (노리즈키 린타로와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흠.....)


여담으로 <리피트>의 부제는 wheel of fortune이다. 운명의 수레바퀴. 물론 이 소설도 이누이 구루미가 기획중인 '타로트 카드 시리즈'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붙은 '부제이지만, 소설을 다 읽고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단어를 음미해보면 좀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면 딱 제목대로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평점 6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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