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0일 월요일

시계 5개 - 아유카와 데쓰야


1987년 고분샤 문고판 (당시 타이틀 '시간의 우리')
1999년 창원추리문고 (단편 추가 수록)

 아유카와 데쓰야(鮎川哲也)
 일본 미스터리 역사에서 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특히 에도가와 란포가 적극적으로 밀어준 걸로 유명하기도 하고, 아유카와 데쓰야의 영향을 받은 미스터리 작가들도 많죠. 아리스가와 아리스라거나, 기타무라 가오루, 야마구치 마사야 등등 말이죠. 이번에 <시계 5개> 단편집을 읽어보니 란포가 좋아할만하고, 역시 후진 작가들이 영향을 받을만하더군요. 오히려 이런 작가가 재야에 묻혔더라면 그게 더 '미스터리'였을겁니다.

 일단 창원추리문고판에는 총 10 편의 주옥(정말입니다.)같은 본격 미스터리 단편이 수록됐습니다. <보석>이란 잡지에 연재됐던 단편들인데, 당시 편집장이 에도가와 란포였고, 각 단편에는 연재당시 란포가 직접 작성한 '루브릭'이 있는데, 단편집에는 그것들이 전부 복각되어서 미스터리 마니아를 위한 좋은 선물이더군요.

 가령 이번 단편집에서 제일 좋았던 '장미장 살인사건'에 수록된 란포의 소개문입니다.

 본지 3월호에 게재된 하나모리 씨와의 대담에서 이번 기획이 화제가 된 것은 많은 독자들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후 출제자를 다방면으로 물색한 결과 신예작가 아유카와 씨를 출제자로 선정하고 하나모리 씨와 한 사람 더 탐정소설 애호가에게 해결편 집필을 의뢰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나모리 씨의 해결편은 완성됐지만 다른 집필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조금 서운하기는해도 하나모리 씨의 해답과 출제자 아유카와 데쓰야 씨의 해결편을 상하단으로 실어 대조가 되도록 게재하기로 했다.
  실은 서로 다른 내용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하나모리 씨는 멋지게 출제자의 의중을 퀘뚫어 진범인을 지적하고 그 이유도 충분히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아유카와 씨의 도전편이 다른 추리를 세울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두가지 해결편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가령 결론은 같더라도 세부적인 추리에서 각각의 특징이 있으며 출제자의 투지와 해답자의 투지가 미묘하세 서로 얽히는 흥미가 있다. 만약 이것을 단순 승부를 낸다고 하면 정답을 제출한 하나모리 씨가 유리하겠지만 자세한 것은 독자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독자 여러분은 먼저 도전편을 읽으면서 각자의 해결편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출제자 아유카와 씨와 해답자 하나모리 씨의 해결편과 비교해서 읽었으면 한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아유카와 씨는 먼저 도전편만을 편집부에 보내고 그걸 원고로 작성해서 해답자에게 보낸 후에, 아유카와 씨는 해결편 원고를 나한테 보내왔다. 나는 그것을 자택에 보관했고 해답자는 물론 편집부 직원들에게 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비밀을 지켰다. (R)
표제작이자 제일 처음에 실린 '시계 다섯 개' 소개문에는 '완전 알리바이가 어째서 깨졌는가?'리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두 번째 실린 '딕슨 카에게 보내는 도전장,
트릭은 다했다, 다했다라고 말들 하지만 이 작가한테만큼은 트릭은 결코 다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 쓰인 트릭을 하나하나 놓고 따져보면 어디선가 먼저 쓰인 것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정도로 혼연일체가 되되면 거기에서는 새로움마저 느껴지기 마련이다. 전체로서 하나의 트릭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라는 문구가 보이기도 하는 등, 단편 하나 하나의 완성도와 내용도 물론 좋지만 란포의 소개문을 읽는 재미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더군요. 

 란포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단편집 얘기로 돌아오죠.

 10개 단편이지만, 알리바이 깨기, 밀실 살인이 주가 되고, 단편 분량에 맞게 각각 단편에는 적절한 트릭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표제작인 ‘다섯 개 시계’는 말 그대로 시간 알리바이를 깨는 것으로 여기에는 시계를 ‘물리적’ 트릭이 사용되고 있죠. 두 번째 ‘하얀 밀실’은 제목 그대로 밀실 살인이며 여기에는 ‘심리적’ 맹점을 이용한 트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장미장 살인사건’은 공정하게 단서를 배분하는 본격 미스터리이자 무려 ‘서술 트릭’을 이용한 미스디렉션과 노골적인 범인상 제시가 동시에 존재하는, 단편 치고는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녀석입니다.

 그 밖에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는 동시에 알리바이가 완전 뒤바뀌는 트릭, 골목길에서 사라진 피에로 복장을 한 범인을 다룬 소실 트릭 등등해서 완전 독창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적절하게’ 잘 다듬어진 트릭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고 재미 또한 얻을 수 있는 양질의 단편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습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고단백 영양식을 먹은 기분과 비슷하네요^^ 뭐, 단편 내용도 좋지만, 권말에 실린 기타무라 가오루, 아리스가와 아리스, 야마구치 마사야 세 명의 대담도 재밌습니다. 

 평점 8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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