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5일 월요일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노리즈키 린타로
2004년 각천서점
2007년 문고판 (사진)
2010년 우리말 (비채)
연재 <가도카와 미스터리> 2002년 ~ 2003년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2005년도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제1위에 랭크인한 본격 미스터리이다.
1988년도 <밀폐교실>로 데뷔한지 거의 20년 가까이 되는 신본격 미스터리의 기수에 속하는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 이 작가의 책은 세번째 장편 <황혼>을 처음으로 읽었다. 작가 이름 = 작중 주인공 = 탐정 역의 공식은 다분히 '엘러리 퀸'을 의식한 구성이며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도 주인공=작가 이름까지는 마찬가지 구성이지만 탐정역은 따로 있다),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은 없지만 스토리의 구성이나 지향점은 역시 '엘러리 퀸'를 떠오르게 한다. <황혼>의 경우는 주인공의 미스 디렉션이 너무나 작위적으로 느껴져서 금새 짜증이 나, 이 작가 책은 그냥 읽지 말아야겠다 느꼈을 정도로 별 재미를 못 봤던 안 좋은 기억이 있다.
그러던 내가 이 소설을 읽은 이유는, 아는 사람에게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 돈 주고 사라고 했다면, 띠지에 인쇄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제1위 라는 광고문구를 보았다고 해도 선뜻 지갑을 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황혼>을 읽고 대단히 실망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읽었는데, 대강의 내용은........
후배의 사진전에 참석한 '노리즈키 린타로'는 그곳에서 한 여대생과 우연히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가와시마 에치카' (에티카는 라틴어로 논리라고도 하는데, 본인은 라틴어를 모르니) 알고보니 그녀는 린타로가 알고 있는 하드 보일드 번역가로 유명한 '가와시마 아츠시'의 조카였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석고조각으로 유명한 예술가 '가와시마 이사쿠'였다. 이사쿠는 위암 수술을 받고 혼신을 다해 창작활동을 재개하고, 그 모델은 바로 그의 딸 에치카다. 아츠시,에치카는 린타로와 함께 찻집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이사쿠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후 아츠시로 부터 이사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린타로는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아츠시로부터 상담을 했으면 하는 언질을 받는다.
상담의 내용은, 이사쿠가 마지막으로 창작열을 태우던 전신 석고상의 두부가 누군가에 의해 잘려져, 그 머리 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발전하면서 사라진 석고상의 머리와 실제 사람의 잘린 머리가 이어지는 본격 미스터리가 된다.
일단 기본적인 구성은 <황혼>처럼 유머도 없고, 로망도 없는 순수한 로직(논리)으로 무장된 미스터리이다. 초반부터 후반까지 꼼꼼하게 등장하는 미스 디렉션과 복선은 불만을 토로할 구석을 찾기가 좀처럼 힘들 정도로 탄탄한 구성력을 갖추고 있다. 마지막에서는 퍼즐 조각 하나 하나가 전부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맛까지 있으니, 작가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생각을 말끔히 날려준 멋진 작품이다. 간만에 재대로된 본격 미스터리를 읽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유머가 전무하면서 비교적 두툼한 분량임에도 꾸준히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흡입력 좋았고, 작품내 의문점을 하나 하나 전부 설명하는 해설편은 감동적이다.
단점을 굳이 꼽자면 별거 아닌 사건(?)으로 이렇게 많은 페이지 수를 잡아먹어야 하는 의문점?과 복선의 배분과 회수가 워낙 꼼꼼하다보니 여기서 파생할 수 밖에 없는 막판 독자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치는 무게감이 적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어쨌든 순수하게 '퍼즐'다운 '논리성'을 중시하는 독자한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설이다. 본인 역시 모처럼 제대로된 본격 미스터리라서 평이 더 좋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런 걸 염두해두더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평점 8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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