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6일 화요일
기노즈카 탐정 사무소 - 히구치 유스케
1995년 지츠교노니혼샤
1999년 고단샤 문고판
2008년 창원추리문고 (사진)
경시청 근속 37에 빛나는 '기노즈카 씨' (단, 경리과 근무)
근무중에 경시총감상 수상에 빛나는 기노즈카 씨 (단, PC업무도입 관련)
정년퇴직후에 염원하던 탐정사무소를 연 기노즈카 씨.
하지만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릴리가 없죠.
필립 말로를 따라하려 하고 마이크 해머를 부러워하면서 담배와 술은 일절 못하는 기노즈카 씨지만 그래도 비서만큼은 미인으로 채용하기 위해 여기저기 광고도 게재해봅니다. 그러나 파리 한 마리 조차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파칭고 옆자리 남자가 스리세븐을 냈다는 이유때문에 어쩌다보니 기노즈카 씨 사무소에 모모요라는 여고생(이라고 기노즈카 씨는 잘못봤지만 알고보니 23살 먹은 처녀)이 찾아오고 선심쓰는 척 기노즈카 씨의 비서가 되주겠다고 합니다. 모모요의 겉모습은 짧은 머리에 빈약한 가슴, 청바지에 야구모자 차림...아무리 뜯어봐도 여성스러움의 여자로 안 보이지만 꿩대신 병아리라고 기노즈카 씨는 결국 모모요를 비서로 채용합니다. 하지만 모모요는 기노즈카 씨 예상과는 달리 날카로운 직관과 논리적인 사고력을 가진 여성입니다.
만날 파리만 날리다가 어쩌다 한 건씩 들어오는 사건이라고는'금붕어 유괴사건' '개 맞선시키기' '국화 살해사건' '고양이 실종사건' 으로 기노즈카 씨가 염원하던 살인사건과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게다가 그나마 '추리' 흉내라고 내볼참이면 옆에 있던 조수가 한 발 앞섭니다. 물론 기노즈카 씨도 같은 말을 하려고 생각하는 중(?)이었죠.
사건도 사건이지만 소설의 전체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스럽습니다. 하드 보일드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나이 육십을 넘긴 기노즈카 씨는 사실 수사경험은 전혀 없고 (경리과 근속) 담배는 피면 어질어질 기절하고, 술은 무지 약하고, 변변한 연애경험 한 번도 없고 주위에서도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그냥 노인네일 뿐이죠. 마음만 청춘입니다. 이런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가 <기노즈카 탐정 사무소>를 유머스럽게 만들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여기에 추리는 조수가 더 뛰어나죠.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는 듯 하지만, 기노즈카 씨는 사람이 착합니다. 예, 사람이 착하면 되죠. 더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 중간 중간 계속해서 허풍을 떨긴 합니다만 그 정도는 그냥 애교로 봐주면 됩니다.
이 연작 단편집의 문제점이라면 아마 사건 그 자체일겁니다. 아주 기본적인 가감법 만으로 범인상이 전부 드러나는 그런 단순한 구조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패러디와 유머가 더 맛깔스런 추리소설이다보니 추리 그 자체의 빈약함이 오히려 별로 신경에 거슬리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제 경우에 한해서일 거고, 빈곤한 사건 때문에 재미없고 유치하다고 생각할 독자들도 있겠죠.
단순하면서 유치한 재미를 갖춘 미스터리를 찾는 분들 계시다면 <기노즈카 탐정 사무소>가 딱입니다.
평점 5 / 10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후쿠이에 경부보의 인사 - 오쿠라 다카히로
2006년 동경창원사
2008년 문고판
전에는 몰랐는데 오쿠라 다카히로가 <형사 콜롬보> 마니아 라고 하더군요. 콜롬보는 TV 드라마가 원작이고 소설은 없는데, 소설 버전 발매시 오쿠라 다카히로가 맡았던 것이 총 5권인가 된다네요. 말만 소설판이지 기본 시나리오에 살을 붙이는 거기 때문에 반이상은 번역을 맡은 이의 창작이죠. 그런 콜롬보 마니아인 작가가 콜롬보 스타일의 단편집을 발표했습니다. 그게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후쿠이이 경부보의 인사>입니다.
총 4 편이 수록됐고, 각각의 내용은 콜롬보 시리즈를 아는 분이라면 매우 친숙한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단편 초반은 범인의 입장에서 범행을 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그리고 바로 화면이 바뀌어서 형사 후쿠이에(콜롬보 역할)가 등장해서 사건 현장을 조사하죠. 단순한 사고사인 듯 하지만, 조사하다보니 좀 이상한 곳이 나옵니다. 그래서 후쿠이에는 거기에 의문을 갖고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서 형사와 범인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마지막에 결국 범인은 범행을 인정하고 쇠고랑을 찬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말하는 '도서추리'와 같습니다.
도서 추리 방식은 누가, 어떻게, 왜 그랬는지 (변형된 도서추리방식도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를 알아내는 재미는 없습니다. 형사(또는 탐정)와 범인의 대결구조가 핵심이며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긴장감'이 재미의 포인트죠. 그래서 형사와 범인의 비중이 비슷해야 합니다. 형사쪽이 압도적으로 머리가 좋고, 범인이 바보 멍텅구리라면 이건 아예 게임이 되질 않죠. 비슷이라도 해야 서로 경쟁하는 재미가 있는 거죠. 한쪽은 잡으려고 하고 한쪽은 안잡히려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면에서 형사 콜롬보 시리즈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인상 깊은 범인이 나오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모든 에피소드가 높은 완성도를 갖지는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 오쿠라 다카히로의 콜롬보 스타일 소설 <후쿠이에 경부보의 인사>는 그런 명(?)범인이 나오질 않습니다. 그나마 인상에 남는 범인이라면 두 번째 단편에서 등장하는 전직 과학연구소 직원인 인물입니다. 경찰수사 방식을 잘 아는 것을 이용해 치밀(?)하게 준비해서 달아나는 방식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단편이지만 분량도 다른 녀석들에 비해 제일 많다보니 그래서 더 만족스런 완성도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경우도 콜롬보에 비해 후쿠이에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작은 신장에 매 단편마다 꼭 등장하는 '형사로 보이시지 않네요!' 드립에, 툭하면 날밤새기, 그리고 의외로 술이 세다는 것 등등 있지만 아직은 딱히 인상에 남지는 않습니다. 콜롬보 꼬리표가 계속해서 따라다닐 수 밖에 없는 후쿠이리에 시리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얼마나 콜롬보와 차별화를 하느냐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래도 매체 특성상 콜롬보에 비하여 비주얼적 장점이 전혀없는데 소설만의 장점을 얼마나 부각시키고 콜롬보와 차별화에 성공한다면 후쿠이에 시리즈는 그때서야 콜롬보 딱지를 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철저하게 콜롬보 스타일을 추구해서 시리즈 말미까지 콜롬보와 함께 하는 길도 있겠습니다만.......)
뭐 겨우 4편 가지고 평가하기에는 좀 이른감도 있긴 하지만, 그냥 적당히 재밌게 읽을만한 추리소설입니다.
여담) 드라마 버전도 있다고 하던데, 아직 보진 못 했습니다.
평점 6 / 10
2010년 1월 1일 금요일
수제 전병의 밀실 - 다니하라 쇼코
2009년 창원추리문고
<미나미 시리즈> 4번째이지만, 시간순서로는 가장 처음에 해당하는 <수제 전병(센베이)의 밀실>은 연작 단편집입니다. 표제작外 3개 단편은 전부 격월간 잡지 <미스터리즈!>(발행 : 동경창원사)에 연재됐던 것을 그대로 수록했고, 단행본 발간에 맞춰서 짧은 신작 단편 한 편을 추가해서, 총 5 개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신작 단편을 제외한 4개 단편은 미나미(와 나오미)의 1인칭 시점이 2편, 슈야 시점이 2편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단편에서 탐정역은 시리즈 1-3편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미즈시마 할아버지'라는 사람이 맡습니다. 기본적인 플롯은 미나미 또는 슈야가 수수께끼같은 상황을 만나고, 그 경위를 미즈시마 할아버지에게 설명해줍니다. 미나미(보다는 친구 나오미)와 슈야는 나름대로 추리라고 하지만, 결국 진상을 퀘뚫는 역할은 미즈시마 할아버지죠. 사건과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은 '안락의자탐정물'과 유사하지만, 탐정은 조수에게 게속해서 힌트를 줍니다. 그래서 탐정 혼자 전부 진상을 말하기 보다는 조수 스스로 진상을 깨닫게 하는 면이 많습니다. 이런 면은 정갈하게 깔린 복선과 맞물려 좋은 느낌을 냅니다. 이 시리즈도 우여곡절끝에 여기까지 왔는데요, 시리즈 최고 완성도는 본 단편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데뷔작도 좋았습니다만....)
수록된 단편의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체육관의 유령 : 체육관에 출몰하는 유령소동 (슈야편)
-수제 전병의 밀실 : 전병을 훔치려고 한 이유는? (미나미 & 나오미편)
-회전초밥 : 초밥 지점장이 손님을 폭행한 이유는? (미나미 & 나오미편)
-곰 가면, 할아버지 가면 : 미술실에서 노멘(가면)을 훔쳐간 범인의 정체는? (슈야편)
-그리고, 한 명 더 : 앞선 4개 단편을......................
각각의 단편은 독립된 내용이지만, 시리즈 독자를 위한 배려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미즈시마 할아버지가 키우던 '러시안 블루'의 이름이 왜 '겐조'인지, 미즈시마 할아버지와 슈야의 관계, 미나미가 리트리버 '모네'를 키우게 된 이유, 개인 모네가 어째서 고양이인 겐조를 졸졸 쫓아다니는지 등등(장편에서는 그냥 그렇다고 나왔던 설정들)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전작까지는 정형화된 소도구 같은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단편집에 들어와서 확실한 개성을 품게 됐다고 봐도 좋습니다. 이제서야 시리즈물 다운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다행입니다. 다음 시리즈는 다시 단편집이 될지, 장편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단편'쪽이 훨씬 재밌었습니다.
평점 6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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