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일 일요일
투명한 하루 - 기타가와 아뮤미
1999년 가도카와쇼텐
2005년 도쿄소겐샤 문고판 (사진)
기타가와 아유미는 정통 미스터리보다는 서스펜스 물을 주로 그리는 작가입니다. 특히 기억상실을 주요 소재로 잘 삼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도 '기억'을 하나의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주인공 유키하루와 치즈루, 두 사람은 어릴적-14년전의 연쇄방화사건으로 각자 엄마를 잃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치즈루가 대학교 입학을 하면서 우연히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치즈루가 임신하게된 걸 계기로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치즈루의 아버지에게 결혼승락을 받으러 갑니다. 하지만 치즈루의 아버지 히사노부는 특이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6년전 교통사고 때문에 전향성건망증이란 증상을 앓고 있죠. 전향성건망증이란 영화 <메멘토> 보신 분은 금방 '아하~' 하실 것이고, 하다 못해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이것도 힌트가 안되면 그냥 과거의 기억은 갖고 있고 지능도 정상이지만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여 기억하고 재생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치즈루의 아버지 히사노부는 자신의 딸래미는 아직도 중학생인 줄 알고 있죠.
주목할 점은 주인공이 유키하루와 치즈루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둘 다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둘다 대학생이면서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는 치즈루의 생각때문이죠. 나중에 대학원에 진학하고 그 후로는 계속 물리 분야쪽 연구에 매진하고 싶어하는 그녀는, 나중에 가면 애를 낳고 키울 시간이 부족할테니 젊었을 때 (.....) 빨리 애를 낳아 키우는 것이 더 낫다라고 판단해서 결혼을 서두릅니다. 애가 들었으니 결혼? 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판단 미스입니다.
여기서 전향성건망증을 앓고 있는 치즈루의 아버지는 대체 어떤 위치에 있냐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겠죠. <메멘토>나 <박사가 사랑한 수식>등에서는 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주역입니다. 그런데 <투명한 하루>에서는 주역이 아닙니다. 그 차이점이 대단히 큽니다. <투명한 하루>는 일단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그 주인공이 유키하루이기 때문에 히사노부의 병세는 관찰자적 시점에서 그려질 뿐입니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사실을 알아차린 적도 있을 것이고 뭔가 이상하다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겠지만 독자가 그걸 알 길은 유키하루의 눈을 통하는 것 뿐입니다. 게다가 그 유키하루의 눈은 불과 얼마전에 장인어른이 될 사람의 병세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해도도 부족하죠.
여기에 추가로 등장하는 것이 제일 위에서 언급했던 14년전의 '연쇄 방화 사건'입니다. 그리고 현재시점에 '의문의 살인 사건'이 2건, '뺑소니 사건'이 1건이 추가되면서 과거의 방화사건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사건의 핵심이 아닐까 싶은 인물로 부상하는 이가 바로 병을 앓고 있는 치즈루의 아버지 히사노부입니다. 진짜 병을 앓고 있는 걸까? 혹시 연기를 하는 건 아닐까? 혹시 히사노부가 진범이 아닐까?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진범은 대체 누구? 그래서 의문의 꼬리를 잡고 일어나는 서스펜스 물이 되는거죠. 히사노부가 만약 진범이라면 참 재밌는 상황이 되겠죠. 14년전 방화로 죽인 2명은 유키하루와 치즈루의 엄마거든요. 치즈루는 유키하루에게 엄마를 살해한 범인의 딸래미가 되는거죠. 게다가 치즈루는 유키하루의 애를 임신했고 둘은 결혼하기로 한 상태죠. 스토리는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서 흘러하게 되는거죠. (하지만....?)
착안점도 좋고 이야기도 술술 잘 읽히는 소설입니다. 마지막의 반전도 적당하고, 결말에 밝혀지는 사실은 너무 뻔해서 좀 식상하지만 - 좀 더 막장으로 갔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어쨌든 완성도는 괜찮습니다. 문제는 캐릭터의 조형입니다. 주인공 유키하루는 너무나 평범합니다. 인상에 남지 않습니다. 치즈루도 비슷하죠. 아버지가 범인이 아닐까 고뇌하는 모습을 잠깐 보여주지만 솔직히 주인공 같지 않은 주인공입니다. 있으나 마나하죠. 히사노부를 둘러싼 캐릭터들도 비슷합니다. 전부 존재감이 희박합니다. 열심히 떠들고 생각은 하는데 대본대로 떠드는 목각인형을 보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소설의 전체구조의 완성된 퍼즐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편이자만 정작 캐릭터는 배경에 가려져 자취를 감춘 모습입니다. (아 단 한 명의 캐릭터가 제일 맘에 들긴 하지만 여기선 언급은 생략합니다. 전부 말하면 재미 없으니까요.)
평점 5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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